요즘 브로맨스(bromance)가 주목받는다. 남자들의 끈끈한 우정을 로맨스에 비유한 말이다. 400년 전,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상 로맨스'도 이 못지않았다. 두 사람은 13년 동안 서신을 주고받으며 교류했고, 8년간 사단칠정에 대해 토론한 것으로 유명하다. 쉰여덟 살 퇴계는 성균관 대사성이고 서른두 살 고봉은 갓 벼슬에 나선 신참선비였으나, 두 사람은 신분과 나이, 지역을 개의치 않았다. 당시 선비들이 두 사람의 편지를 필사해서 공부할 만큼 영향을 미쳤다. 광주 광산의 월봉서원은 고봉 기대승 선생을 배향한 서원이다. 안동에 도산서원이 있다면, 광주에는 월봉서원이 있다. 고봉 사후 7년에 후학들이 망천사를 세운 게 시초다. 월봉이라는 서원명은 1654년 효종이 내렸으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사라졌다. 1941년 빙월당을 지었고, 1991년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췄다. 월봉서원을 방문하는 것으로 고봉의 정신세계를 만나기는 녹록지 않다. 서원이라는 공간의 가치를 발견하기조차 버겁다. 월봉서원에서 2008년부터 진행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해보자. 이곳의 체험 프로그램은 종류가 다양하고, 대상별로 눈높이를 맞춰 성리학의 본질과 즐거움 어느 하나 놓치지 않는다. '살롱 드 월봉' '꼬마철학자 상상학교' '청년선비문화원정대' '철학자의 부엌' 등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이 인다. 그 안에는 젊은 학자의 패기와 열정이 고스란히 숨어 있다.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호남 선비의 정신세계를 경험한 뒤, 월봉서원에 첫발을 디뎌보자. 체험에서 배운 내용이 서원을 들여다보는 단서가 된다. 사람들이 다시 방문하거나 하루 이틀 묵으며 돌아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너브실 마을을 지나 월봉서원에 오른다. 너브실은 '넓은 골짜기'라는 뜻이 있는 광곡(廣谷)의 우리 이름이다. 고봉 기대승의 후손인 행주 기씨 집성촌이다. 서원 가는 길은 실개천과 예스런 토담이 어우러진다. 월봉서원의 숙박동 이안당, 고봉의 장남 효증이 시묘하던 칠송정, 고봉의 후손 기세훈의 애일당도 운치 있다. 돌담길이 끝날 즈음, 왼쪽으로 월봉서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른쪽에는 강수당이 보조를 맞춘다. 강수당은 월봉 서원의 교육 체험관으로, 마을 초입의 이안당과 더불어 서원 방문객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다. '지루한 전통'이라는 선입관을 지우고,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통로이자 체험의 장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살롱 드 월봉과 '茶時_다시카페'이다. 살롱 드 월봉은 17~18세기 프랑스 살롱과 비견한 계산풍류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계산풍류는 16세기 조선 사대부들이 자연을 벗 삼아 누리던 풍류다. 주요 프로그램은 문화 공연과 이야기가 있는 살롱토크쇼 이다. 문화 공연은 주제에 따라 국악에서 재즈, 클래식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강연 역시 이와 보조를 맞춘다. 무엇보다 자연스런 교류의 장을 펼친다는 게 장점이다. 공연이나 강연이 끝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는 다담(茶談) 자리와 요월(邀月) 마당이 마련된다. 보고 즐기고 마는 프로그램을 넘어 사귐과 인연으로 발전한다. 올해는 4~11월(5월 제외) 매달 한 차례씩 개최한다. 다시(茶時)는 과거 선비나 관원이 차를 마시며 마음을 정화하던 시간과 모임을 이른다. 월봉서원은 이안당을 전통 차 문화 카페로 운영, 현대인이 다시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다시는 토크와 공연이 있는 '카페 다시 살롱'과 '카페 다시 음식공방'으로 5~11월 매달 각 두 차례씩 열린다.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선비의 하루'나 '드라마 판타지아'를 빼놓을 수 없다. 선비의 하루는 월봉서원의 대표 체험 프로그램이다. 3~11월까지 매달 한 차례씩(1월은 2회) 마련된다. 유생복을 갖춰 입고 숭덕사 배례부터 서원을 출입하던 조선 시대 선비의 하루를 재현한다. 드라마 판타지아는 고봉과 퇴계의 인연을 공연으로 선보인다. 4~10월까지(7월 제외) 매달 찾아온다. 서원 문화 체험과 공연 마당으로 구성되며, 배우와 관객을 넘나드는 공연이 펼쳐진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는 과정에서 고봉의 철학을 가르치는 철학자의 부엌(4·5·9월), 사단칠정을 놀이로 배워보는 꼬마철학자 상상학교(4·6·9·10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청소년이기진로교실(4·9·10월)도 주목할 만하다. 매달 한두 차례 열리며 알차기로 소문났다. 특히 올해는 11월까지 매달 셋째 토요일에 '월봉유랑-서원 오는 날'이라는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배움, 예술, 놀이, 음식 네 가지 주제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월봉서원의 프로그램을 한자리에 모아 운영한다. 월봉서원 프로그램의 종합선물세트나 진배없다. 봄(5월)과 가을(9월) 모두가 어울려 음악에 젖어보는 '문화의 날 작은 음악회'도 기대할 만하다. 그 모두가 여의치 않을 때는 홀로 월봉서원을 걸으며 마음을 닦는다. 서원 외삼문은 황룡강을 품은 망천문이다. 뒤로는 주강당인 빙월당과 내삼문인 정안문, 고봉 선생을 배향한 숭덕사가 축을 이룬다. 빙월당은 재건한 월봉서원의 출발점이다. 정조가 하사한 빙심설월(氷心雪月)에서 딴 이름으로, 고봉의 맑고 고결한 성품과 학덕을 비유한다. 빙월당에는 빈당익가락(貧當益可樂)이라는 편액이 걸렸다.《논어》<학이>편의 빈이락(貧而樂)과 같은 의미로 '가난의 즐거움'을 뜻한다. 퇴계가 제자들에게 자주 한 말이며, 고봉에게 보낸 편지에도 같은 구절이 있다. 빙월당 아래는 기숙사 역할을 한 동재(명성재)와 서재(존성재)가 마주한다. 빙월당에서 계단을 올라 정안문을 지나면 숭덕사다. 고봉 선생을 배향한 사당으로, 해마다 3월과 9월 초에 제를 올린다. 숭덕사는 백우산을 등지고 있다. 해발고도 312m로 전망대까지 1시간~1시간 30분 걸리며, 월봉서원 북쪽으로 오른다. 고봉과 부인의 묘까지 가는 길에는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철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가 고봉의 기개를 느끼게 한다. 고봉묘소에서 백우산 정상을 지나 월봉서원의 남쪽 백우정 방면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월봉서원은 KTX를 이용할 때는 광주송정역에서 내려 이동한다. 광주송정역 가까이 1913송정역시장이 있어 다녀올 만하다. 1913송정역시장은 송정역전매일시장의 새로운 이름이다.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로 젊고 활기차게 변신했다. 각 상점의 주인과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간판, 거리 디자인 등이 눈길을 끈다. 청년 상인들이 가세해 신구의 조화가 매력이다. 광주 5미(味) 가운데 떡갈비를 맛볼 수 있는 송정동 떡갈비골목도 광주송정역에서 가깝다. 한 가지 아쉬움은 대중교통편이다. 광주송정역에서 월봉서원까지 버스를 이용할 경우, 월곡동 흑석사거리에서 갈아타야 하고 소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월봉서원 중심으로 가볍게 느껴보고 싶을 때는 광주송정역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김봉호가옥을 같이 돌아봐도 좋겠다. <당일 여행 코스> 전통 체험 코스 / 너브실마을→점심→월봉서원→필암서원(전남 장성군) 예술 체험 코스 / 월봉서원→점심→용아생가→1913송정역시장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너브실마을→점심→월봉서원→김봉호가옥→1913송정역시장 둘째 날 / 용아생가→점심→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재미술관 관련 웹사이트 주소 -월봉서원 www.wolbong.org -광산구 문화관광 http://culture.gwangsan.go.kr/ 문의전화 -월봉서원 교육관 062-951-6434호 -광산구 문화체육과 062-960-8272 -1913송정역시장 070-8285-3171(송정역시장청년상인지원사업단) -광주시티투어버스 062-233-3399(광주광역시관광협회) 대중교통 정보 -[기차] 용산-광주송정역, KTX 하루 24회(05:20~22:15) 운행, 약 1시간 50분 소요. 광주송정역에서 송정 29․33․98번 버스 이용, 흑석사거리에서 임곡 89번 버스 환승. *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광주,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10~20분 간격(05:30~다음 날 01:00) 운행, 약 3시간 10분 소요. 광천터미널에서 임곡 89번 버스 이용. *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이지티켓 www.hticket.co.kr 자가운전 정보 -호남고속도로 광산 IC→광산교차로 나주․호남대 방면 좌회전→사암로 760m→산단9번교차로에서 임곡동 방면 우회전→하남산단9번로 4.2km→고봉로506번길 6.1km→너브실마을(월봉서원) 입구 좌회전 640m→월봉서원 숙박 정보 -호텔예술의전당 : 서구 시청로20번길, 062-600-9999 -호텔바나나 : 광산구 임방울대로825번길, 062-973-0774 http://blog.naver.com/bananakklim -이안당 : 광산구 광곡길, 062-951-6434 식당 정보 -예촌 : 오리백숙, 광산구 원사호길, 062-954-3104 http://www.yea-chon.co.kr/ -송정떡갈비 1호점 : 떡갈비, 광산구 광산로29번길, 062-944-1439 -장안낙지 : 낙삼탕, 광산구 광산로30번길, 062-942-4545 주변볼거리 -김봉호가옥, 용아생가, 무양서원, 월계동장고분 글, 사진 : 박상준(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