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하루 끝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 이보다 더한 위로가 있을까. 거기에 맛과 향이 가득하다면 더더욱.오비(OB), 그리고 크라운(CROWN). 달랑 브랜드 두 개만 있던 시절이 있었다. 맥주 얘기다. ‘이것이 톡 쏘는 맛이 강하다’, ‘저것이 홉의 향이 더 매혹적이다’ 하면서 골라 마셨다. 도토리 키 재기 같은 상황에서 비교를 하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세월이 흘러 카스, 하이트, 맥스, 클라우드 등 새 브랜드가 더해지고, 하이네켄, 아사히, 칭다오 등 수입맥주까지 들어왔다. 요즘은 크래프트 비어니 수제맥주니 하는 독특한 맛과 향의 맥주까지 가세해 주당들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크래프트 비어, 수제맥주의 세상은 오비와 크라운으로 대별되던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맥주의 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맥주가 단순히 목젖을 넘기는 청량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수제맥주는 시큼 달큼한 과일 향부터 홉의 쓴맛까지 복잡다단한 맛 세계를 선사한다. “향으로 한번, 맛으로 또 한번, 쌉쌀함에 다시 한번, 수제맥주는 언제나 옳다!”라며 환호하는 맥주 마니아도 있다. 맥주는 와인과 함께 가장 오래된 발효주다. 와인의 주재료는 포도 열매인 반면, 맥주는 보리를 가공한 맥아(malt)를 주재료로 발효시키고 여기에 향신료인 홉(hop)을 첨가하여 맛을 낸다. 값이 저렴해 가장 대중적인 주류로 꼽히기도 하고, 알코올 성분이 적은 편(5% 내외)인 데다 대량생산 체계를 갖춘 뒤론 보관도 쉬워 음료 대용으로 마시기도 한다. 맥주는 전 세계적으로 100여 종의 스타일이 있다. 김치를 재료나 만드는 법에 따라 배추김치, 깍두기, 열무김치, 동치미, 보쌈김치 등으로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다. 크게는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라거(Lager)와 에일(Ale)이다. 라거 맥주는 오비와 크라운이 떠오르는 노란색 맑고 투명한 맥주다. 잘 알다시피 탄산가스까지 더해지는 경우도 있어 시원한 청량감을 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에일 맥주는 요즘 대세로 자리 잡은 수제맥주라고 받아들이면 쉽다. 묵직하고 쌉싸름한 맛, 진한 향기를 나타내는 맥주다. 라거 맥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처음엔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한 번 맛을 들이면 에일 맥주만 찾을 정도로 강한 중독성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에일이 라거보다 오랜 전통을 가졌다. 에일은 맥주를 발효시킬 때 위로 떠 오르는 효모, 즉 ‘상면(上面)발효 효모’로 만들기 때문에 ‘상면발효 맥주’라고도 한다. 주로 영국, 아일랜드, 벨기에에서 많이 제조한다. 페일 에일(비터), 스타우트, 마일드 에일, 브라운 에일, 바이젠, 트라피스트 비어 등이 에일 맥주 계열이다. 라거는 19세기 중반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발효통 아래에 가라앉는 ‘하면(下面)발효 효모’를 쓰기 때문에 ‘하면발효 맥주’라고도 부른다. ‘라거’는 독일어의 ‘저장’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면발효 맥주(라거)는 상면발효 맥주(에일)보다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저장’시켜 만들기 때문이다. 라거 맥주 계열에는 필스너, 둥켈, 슈바르츠, 엑스포트 등이 있다. 우리나라 수제맥주는 지난 2002년 주세법 개정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가 도입되면서 영업장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팔 수 있는 브루펍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부 유통이 불가능한 한계가 있었다. 수제맥주 시장이 본격화된 건 2014년 주세법 개정 이후다. 소규모 양조장의 외부 유통이 허용되면서 대기업과 중소 수입사, 개인 양조장 등이 수제맥주 시장에 뛰어들어 2018년에는 633억원 규모로 시장이 커졌다. 업계에서의 현재 점유율은 1.26% 정도로 미비하지만 맥주 전체 시장(5조 원)의 절반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수제맥주를 제대로 즐기려면 잔에 신경을 써야 한다. 와인처럼 어떤 잔에 마시냐에 따라 맥주 맛이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와인은 샴페인 잔, 레드와인 잔, 화이트와인 잔 등 크게 세 종류가 있지만 수제맥주는 브랜드별로 전용 잔을 고집한다. 그 정도로 잔에 따라 맛 차이가 현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제맥주도 와인같이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마실 술이다. 그러나 소믈리에 같은 전문가가 될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추천이나 도움을 받으면서 편안하게 느끼면서 즐기는 편이 낫다. 올해에 대한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 이때, 마음 맞는 친구들과 가볍게 맥주 한잔 기울이며 뾰족한 마음들을 잠시 내려놓아 보자. 최근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서울의 수제맥줏집 몇 곳을 소개한다. 미성년자들은 안타깝지만 주민등록증이 나오면 두루 투어해보길. 인테리어는 1959년 지은 목조 건물을 개조해 빈티지한 느낌을 한껏 살렸다. 가게 안에 양조 설비를 갖춰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재미까지 준다.자체 개발한 30여 종 이상의 수제맥주를 선보이는데 각기 다른 개성과 맛을 지녀 고르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맛과 도수, 보디감이 다른 8가지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어메이징 샘플러가 도움이 된다. 파스타, 김부각 등 맥주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음식도 두루 갖췄다. 주소 서울 성동구 성수일로4길 4 전화 02-465-5208 한국인이 만든 국내 첫 크래프트 비어펍. 토종 수제맥주 1호 ‘밍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밍글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미국식 밀 맥주로, 진하고 씁쓸한 일반 페일 에일 타입 크래프트 맥주보다 쓴맛이 덜하고, 홉 향은 풍부하다. ‘연애(연남동 에일)’도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데, 목 넘김이 부드러워 수제맥주 초보자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감바스, 메가 프라이즈 등 맥주와 짝을 이루는 메뉴도 놓치면 아쉽다. 주소 서울 마포구 연희로 35 전화 02-3144-7499 한옥 마루에 앉아 처마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며 마시는 수제맥주가 낭만적이다. 오래된 한옥을 거의 그대로 활용하고 있어 다소 비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기와탭룸만의 매력이다. 다양한 양조장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가져와 내놓는다. 체코의 유명 맥주 필스너 우르켈 본사에서 품질관리 테스트를 거쳐 엄선한 한국의 10대 업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우리나라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안동브루어리 홉스터 아이피에이는 망고와 시트러스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여성들이 즐겨 찾는다. 얇게 채 썬 감자 위에 살라미, 베이컨, 치즈가 풍성하게 곁들여 나오는 살라미 뢰스티 등 맥주와 잘 어울리는 음식도 여럿 갖췄다. 주소 서울 종로구 율곡로1길 74-7 전화 02-733-1825 북한산 페일에일, 한라산 골든에일, 금강 다크에일, 지리산 아이피에이 등 우리나라의 산, 바다, 지역의 명칭에서 따온 이름을 붙인 시그니처 맥주를 선보인다. 가장 인기 있는 맥주는 감귤 향과 꽃 향, 그리고 약간의 쓴맛을 지난 지리산 아이피에이다. 처음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7가지 맥주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샘플러를 추천한다. 맥주와 어울리는 다양한 미국식 요리를 함께 판매해 식사하기에도 좋다. 주소 서울 용산구 신흥로 28 전화 02-794-2537 ‘진주햄’의 외식사업 1호점답게 맛있는 소시지가 있는 수제맥줏집으로 유명하다. 북유럽 정통 제조방식에 충실한 수입 수제맥주 20여 종을 선보이고 있다. 여성들이 선호하는 달콤한 과일향의 피치 에일을 비롯한 실험적인 제품들이 눈에 띈다. 대표 안주 메뉴로는 돼지 앞다리를 통째로 카브루 맥주에 120시간 저온 숙성시켜 깊은 맛이 느껴지는 카브루 비어 학센과 풍부한 육즙이 압권인 허브 통베이컨이 있다. 오직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모둠 소시지도 많이 먹는다. 주소 서울 서초구 서래로6길 7 전화 02-594-2018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뒤편에 위치했다. 대낮부터 맥주를 즐기는 이국적인 미국 분위기의 펍으로 국내 최고의 수제맥주전문점으로 꼽힌다. 맥주로 밑간해 촉촉하고 고소한 프라이드치킨, 두툼한 소고기 패티에 양파잼, 구운 치즈, 로스트 토마토가 들어간 버거 등 맥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와 먹을거리가 많다. 수제맥주 샘플러를 주문하면 원하는 맥주 3가지를 LED 플레이트에 서빙해 준다. 주소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 205 전화 02-6282-4466 전국 소규모 양조장에서 장인들이 만든 수제맥주를 선별해 판매한다. 가게가 위치한 지역의 이름을 딴 ‘은평맥주’로 소문났다. 사장 부부의 깔끔한 서비스 덕에 한겨울 달빛 아래에서 칼칼한 목을 달래기 최고다. 안주류는 브릭샐러드. 파스타와 피자, 리소토 메뉴도 분위기만큼 맛나다. 주소 서울 은평구 연서로 40 전화 02-353-1976 출처 : 청사초롱 글 : 유지상(음식칼럼니스트), 사진 : 박은경기자 ※ 위 정보는 2019년 6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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