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강릉과 정선이 등을 맞댄 자리에 노추산이 서 있다. 소나무 우거진 숲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삼림욕의 세례를 누리는 산이다. 혹한의 계절을 앞두고 마음껏 아름다움을 뽐내듯 산 전체가 황홀한 붉은색으로 한창 타오르고 있다. 단풍 색에 취하러, 소나무가 뿜는 피톤치드에 또 취하러 이맘때 가기 딱 좋은 산이다. 노추산에는 지극한 가족 사랑으로 홀로 돌탑의 바다를 이룬 일화가 전해진다. 우리 조상 중 노추산에서 공부했다는 대학자의 이야기 또한 유명하다. 맑은 공기 깊게 호흡하며 노추산 단풍과 돌탑의 풍경에 몸을 던졌다. 어떤 경치를 품었을까 자못 궁금한 마음으로 산에 오르다 깜짝 놀랐다. 본격 산행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으로 펼쳐진 광경 때문이다. 산길 곳곳에 돌탑이 쌓여 있다. 몇 개나 될까. 하나, 둘, 셋…, 세어보다 이내 포기했다. ‘셀 수도 없이 많다’란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겠다 싶을 만큼 사방이 온통 돌탑이다. 누가 이런 장관을 만들었을까. 돌탑 개수만큼은 아니어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합심해 쌓았을까. 하지만 인근 설명문을 읽고 다시 놀랐다. 이 엄청난 수의 탑들을 쌓은 이가 딱 한 명이란다. 이야기는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 살던 차옥순 씨란 여성이 결혼을 하면서 강릉으로 이사를 왔다. 40여 년 전 강릉은 서울 새댁에게 얼마나 막막한 곳이었을까. 강릉에 대한 낯섦도 잠시. 차 씨는 가족과 함께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바닷가 도시 생활에 적응해 갔다. 하지만 설레던 신혼의 단꿈은 어이없게도 금세 깨지고 말았다. 4남매 중 아들 둘이 먼저 세상을 뜬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남편마저 큰 병을 앓았다. 불행을 끊기 위해 차 씨는 뭐라도 해야 했다. 절박한 마음이 닿았을까.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집안의 근심을 없애고 싶다면 노추산에 돌탑 3천 기를 쌓으라고 했다. 돌탑을 쌓는다고 먼저 세상을 떠난 두 아들이 돌아올 리 없겠지만, 남은 자식과 아픈 남편이 눈앞에 어른거려 가만있을 수만은 없었다. 차 씨는 그 길로 노추산으로 달려가 돌탑을 쌓았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1986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26년이었다. 그날 밤 산신령의 말씀처럼 정성으로 세운 돌탑이 자그마치 3천 기다. 젊어 시작한 일이 중년을 훌쩍 뛰어넘어 노년으로 이어진 셈이다. 차 씨의 간절한 심정 덕분인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족은 큰 걱정 없이 살았다고 전한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듯, 차 씨는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이름과 함께 3천 기의 돌탑을 남겼다. 사연을 알고 나니 돌탑 하나하나가 달리 보인다. 모정탑길은 노추산 힐링캠프를 지나면 나온다. 수직으로 뻗은 나무를 호위하듯 돌탑들이 서있다. 어른 허리께쯤부터 머리 높이까지 절묘하게 쌓아 놓았다. 주먹 정도 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올려놨을까 싶은 커다란 돌까지 크기도 다양했다. 수십 년 세월 동안 모양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끄떡없이 서 있는 탑들이 신기하다.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쌓았을 장면을 상상하니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모정탑길은 약 1㎞ 이어졌다. 길 중간에는 차 씨가 돌을 쌓을 때 살았다는 움막도 있다. 돌탑의 퍼레이드에서 벗어나면 이제는 단풍 잔치를 볼 수 있다. 해발 1,322m 정상까지 이어지는 산행은 가을 향기를 몸에 진하게 새기는 시간이 될 테다. 노추산이라는 이름에는 노나라 대표 인물 공자와 추나라 위인 맹자를 기리는 의미를 담았다. 신라의 문장가 설총과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가 노추산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율곡이 과거시험에서 아홉 번 장원급제한 사실을 기념한 ‘구도 장원비’도 볼 수 있다. 한 번도 어려운 수석을 아홉 차례나 했다니. 큰 시험 앞둔 자식 잘 되라는 마음으로 천재 학자 율곡의 기운을 얻으려는 부모의 발길이 노추산에 이어진다. 마침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코앞이다. 자식들 위해 쌓은 돌탑과 시험에서 아홉 번이나 1등 한 율곡이 공부했다던 노추산의 가을 풍경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1 여행 팁 모정탑길에 들어서면 화장실이 없다. 본격 산행을 시작하기 전 노추산 힐링캠프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좋다. 캠핑장에는 매점도 운영 중이다. 글 : 여행작가 이시우 사진 : 강릉시청 관광과 제공 ※ 위 정보는 2021년 9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mo{display:none;} @media screen and (max-width: 1023px){ .mo{display:block;} .pc{display:none;}}
조회수
한국관광공사에 의해 창작된 은(는) 공공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사진 자료의 경우, 피사체에 대한 명예훼손 및 인격권 침해 등 일반 정서에 반하는 용도의 사용 및 기업 CI,BI로의 이용을 금지하며, 상기 지침을 준수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용자와 제3자간 분쟁에 대해서 한국관광공사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