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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풍루 → 봉수당 → 낙남헌 → 화령전 → 득중정 → 미로한정 → 복내당 → 장락당 → 유여택 (1시간) ※ 화령전은 화성행궁과 별도의 건물이지만 동선상 함께 다룸 수원에 대한 정조의 마음은 ‘사랑’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그는 수원 땅과 백성을 사랑했다. 사랑했기에 자주 찾았고 기꺼이 낮아졌다. 24년의 재위 동안 열세 번 수원에 행차했다. 수원에 행차해 머물 곳이 필요했기에 화성행궁을 지었다.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고 잠을 청한 곳, 백성들이 먹을 죽을 먼저 맛본 곳, 노년에 머물고자 했던 곳, 수원을 기반으로 더 나은 조선을 만들고자 궁리했던 곳이다. 화성행궁을 거닐며 왕의 발걸음을 뒤쫓았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준 정조의 효심, 애민, 개혁 같은 단어들이 알알이 반짝였다. 조선의 위대한 왕이 220년이라는 시간의 타래를 지나 화성행궁에 살아 있는 것을 보았다.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면 이런 점이 좋아요! 1. 정조의 삶과 업적을 통해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다. 2. 정조의 애민 정신을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다. 3. 어렵게 느껴지던 조선의 역사를 흥미로운 ‘썰’로 들을 수 있다. 4. 정조가 사랑한 계획도시, 수원의 역사를 배우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5. 조선 시대 궁궐이 다 ’비슷비슷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견고한 성곽으로 둘러싸인 수원화성의 중심에 화성행궁이 있다. 220여 년 전, 정조는 창덕궁을 떠나 화성행궁에 와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열고 여러 행사를 치른 뒤 궁에 돌아갔다. 이 8일간의 행차가 그 유명한 화성 행차다. 임순이 해설사 : ‘수원’ 하면 생각나는 조선 시대 왕은? 단연 정조 임금이에요. 정조는 수원에 행차할 때마다 화성행궁 에 들렸어요. 행궁이 뭘까요? 당시 왕은 한양의 궁궐에 살았는데 지방에 가면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았어요. 그래서 지방 여러 곳에 지은 작은 궁궐을 ‘행궁’이라 불러요. 별궁, 별장처럼 생각해도 좋아요. 행궁의 용도는 크게 세 가지였어요. 첫째, 나라에 난리가 나서 궁궐이 위험에 처하면 피신하는 용도. 강화행궁이나 남한산성 행궁 같은 곳이 있죠. 둘째, 조선 시대 왕들에게 흔했던 피부병을 다스리고 휴양을 하는 용도. 온양행궁이 그 예죠. 셋째, 왕이 지방의 왕릉에 참배를 하러 갈 때 머물던 용도. 그게 바로 화성행궁이죠.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수원 현륭원에 참배하러 올 때 화성행궁에 머물렀어요. 재위 24년 동안 열세 차례나 왔죠. 1789년(정조 13)에 건립된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행궁 중 으뜸이다. 규모와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총 576칸의 건물은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다. 왕이 없는 평소에는 화성유수부* 건물로 쓰였다. 중요히 여긴 만큼 기록도 철저히 했다. 화성 공사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화성성역의궤》에 모든 기록을 상세히 남겨놓은 덕에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어도 예전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정조는 나이가 들면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행궁에 살고자 했다. 정조에게 화성행궁은 지방 임시 거처, 그 이상의 공간이었다. *유수부 : 도읍지 한양을 보호하는 특별 지방행정구역. 1793년(정조 17년), 정조는 수원을 화성으로 고치고, 수원부를 유수부로 승격시켰다. 임순이 해설사 :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이자 정조의 애민 사상을 보여주는 곳이에요. 정조는 어머니가 환갑을 맞은 기쁨을 화성 주민들과 나누었어요. 행궁의 봉수당에서 환갑잔치를 치른 다음 날, 신풍루 앞에 솥을 내걸고 과부, 홀아비, 고아, 가난한 사람들 5300여 명에게 먹일 죽을 쑤어요. 그런데 신풍루 2층 누각에서 이를 지켜보던 정조가 죽을 떠오라고 하더니 직접 맛을 봐요. 먹을 만한지 차갑지는 않은지. 백성들이 먹기 전에 왕이 먼저 맛을 본 거예요. 이런 왕이 어디 있어요? 정조에게 ‘애민’은 백성들의 편안함을 살피는 것이었어요. 신풍루는 백성이 임금의 용안을 올려다보기도 어려운 시대에 왕과 백성이 같은 음식을 먹은 자리죠. 이들에게 쌀 368석을 나누어 주기도 했어요. 이 진휼 행사로 화성부 인구의 10분의 1 정도가 혜택을 받았어요. 정조는 백성의 형편에 늘 마음을 썼다. 수원화성 축성에 참여한 백성들에겐 정당한 임금을 주었다. 여름에는 일하다 더위를 먹지 않도록 척서단이라는 약을, 겨울에는 털모자와 무명 옷감을 내려보냈다. 상언*이나 격쟁**에도 귀를 기울였다. 정조는 재위 동안 3355건의 상언이나 격쟁을 처리했다. 임금의 어진 마음을 헤아리며 좌익문과 중양문을 지나 봉수당으로 향한다. *상언 : 백성이 임금에게 직접 억울한 일을 말하는 것 **격쟁 : 임금의 행차 도중 징을 치고 나와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것 임순이 해설사 : 경복궁 정전이 근정전이듯 화성행궁 정전은 봉수당이에요. 마당 한가운데 왕이 지나다니는 길인 어로도 있죠. 봉수당이 유명한 건 1795년 윤 2월 13일,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가 열렸기 때문이에요. 정조는 효심 깊은 아들이었어요. 정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갑이었는데,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죽은 게 28살이었으니 어머니도 28살에 홀로 되어 아들을 지키려 무진 애를 썼겠죠. 그런 어머니가 환갑을 맞이하니 얼마나 감격스러워요. 그래서 성대한 환갑잔치를 계획하는데 한양이 아니라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화성으로 가요. 아버지 능을 방문하고 봉수당에서 잔치를 하고 별시*, 양로연, 대규모 군사훈련 등 여러 행사도 거행하기로 한 거죠.물론 이 모든 일이 어머니를 위한 효도 여행이라고 하면 너무 표면적인 해석이에요. 그 이면에는 화성 행차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반대파 세력에게 막강한 군사력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어요. 노론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의 근거지, 한양을 벗어나 6300여 명의 행렬을 거느리고 화성으로 가면서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준 거죠. *별시 :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특별히 보던 임시 과거시험 혜경궁 홍씨는 33년 만에 처음 마주한 남편의 능 앞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오열했다. 다음 날 열린 잔치에서 정조는 어머니에게 정성을 담아 술잔을 올렸다. 어머니의 남은 생에 눈물지을 일보다 웃음 지을 일이 많기를, 아들은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70종의 음식을 올린 혜경궁 홍씨의 상,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 궁중 무용인 선유락을 추는 무용수들이 어우러진 그 날의 모습이 《화성능행도》 중 <봉수당진찬도>에 남아 있다. 임순이 해설사 : 봉수당을 마주하고 오른쪽으로 가면 낙남헌이에요. 낙남헌은 경복궁의 경회루처럼 여러 가지 행사를 치르던 건물이에요. 벽이 없이 탁 트인 구조라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어요. 일제강점기 때 행궁에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곳이기도 해요. 정조는 환갑잔치 다음 날, 낙남헌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양로연을 열어요. 화성 행차에 동행한 70세 이상의 신하들과 화성 노인들, 380여 명이 주인공이었어요. 왕실 행사에 일반 백성을 초대하다니 얼마나 놀라워요. 정조는 한 사람당 하나씩 잔칫상을 주고 본인도 똑같은 상을 받았어요. 선물로 비단 수건을 묶은 지팡이를 주며 모두의 장수를 기원했고요. 화령전은 행궁과 별도의 건물이지만 꼭 가보셨으면 하는 곳이에요. 궁궐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도 보자마자 ‘멋있다’고 느낄 거예요. 낙남헌 북쪽에 문이 있어 같이 둘러보기도 편해요. 화령전은 정조 임금의 어진을 모신 영전이에요. 2019년에 정전인 운한각·복도각·이안청*이 1801년 창건 당시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보물로 지정됐어요. 화령전은 정조의 검소함을 반영해 소박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져요. 디테일도 대단해요. 뒤쪽 담벼락 벽돌은 아래는 크고 위로 갈수록 작아지고요, 복도각 기둥 중간에도 두 줄만 도드라지게 조각한 부분이 있어요. *이안청 : 정전에 이상이 생길 때 어진을 임시로 보관하는 곳 다시 행궁으로 돌아와 낙남헌 바로 옆은 득중정, 활을 쏘는 정자예요. 정조는 문무 모두 뛰어난 왕이었어요. 특히 활을 잘 쏴서 신궁으로 불렸죠. ‘득중정’이라는 이름도 정조가 활을 4발 쏘아 모두 과녁에 명중시킨 기념으로 지은 이름이에요. 정조는 화성행차 여섯째 날, 득중정에서 신하들과 활쏘기를 해요. 1순은 연속 5발을 쏘는 것을 말하는데, 정조는 5순을 쏘아 24개를 맞춰요. 일부러 한 발을 안 맞춘 거예요. 이게 정조의 여유예요. 자신도 다 잘하는 게 아님을 신하들에게 보여줘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였죠. 발걸음은 소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로 이어진다. 길이 꽤 가파른 건 팔달산 때문이다. 화성행궁은 팔달산을 뒤에 두르고 동쪽을 바라본다. 산의 지형을 그대로 활용하고 행궁을 사뿐히 얹어 자연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임순이 해설사 : 미로한정은 팔달산 기슭, 행궁 후원에 있는 정자예요. 화성행궁 야간개장에서 야경 명소로 손꼽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이기도 해요. 정조는 아들 순조가 15살이 되면 왕위를 물려주고 어머니와 함께 화성에 내려와 노년을 보내려고 했어요. 미로한정도 ‘장차 나이 들어 한가로이 쉴 정자’라는 뜻이에요. 그렇다고 놀기만 하냐? 아니에요. 정조는 여기에서 상왕의 역할, 순조가 있는 한양의 남쪽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려 했어요. 화성은 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교통의 요지였고, 군사적으로도 한양을 방어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의 외영*을 주둔시킨 것도 그런 이유였죠. 한양을 뒤에서 방비하며 화성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거늘 정조는 49살에 갑자기 돌아가셔요.그럼 정조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아니에요. 정조의 계획은 수포가 됐을지 몰라도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잖아요. 매년 10월마다 수원화성문화제가 열리잖아요. 220년 뒤의 사람들이 화성행궁에서 정조의 숨결을 느끼잖아요. 결국 정조의 꿈은 더 크게 이루어졌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외영 : 궁 밖에 있는 병영. 내영은 한양을 지켰다. 미로한정은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수원을 볼 수 있는 목 좋은 자리다. 가까이에는 겹겹이 포갠 듯한 행궁의 기와지붕이, 멀리에는 도심의 빌딩 숲과 자동차의 행렬이 보인다. 220년의 시차를 두고 시대가 다른 풍경이 흘러간다. 지나치기 쉽지만 놓치면 아쉬운 것이 있다. 미로한정에서 내려와 복내당 뒤쪽 담벼락에서 볼 수 있는 <화성원행반차도>다. 화성 행차 때 행궁으로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15m가 넘는 화폭에서 행렬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왕이 타고 가는 말, 좌마만 있고 정조가 보이지 않는 것도 재미있다. 당시에는 어진 외에 왕의 얼굴을 함부로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순이 해설사 : 복내당은 행궁의 안집, 장락당은 혜경궁 홍씨의 침전이에요. ‘장락당’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지었어요. 길 ‘長(장)’에 즐거울 ‘樂(락)’, 어머니가 즐거이 오래 사시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죠? 아들의 바람이 통해서인지 혜경궁 홍씨는 81세까지 살았어요. 유여택은 평소 화성 유수가 일하는 곳이었다가 정조가 행궁에 오면 신하를 접견하고 집무를 보던 곳이에요. 한 건물이 두 가지 기능을 한 거죠. 왕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실용을 중시하던 정조의 성격을 알 수 있어요. 유여택까지 봤으면 행궁의 주요 건물은 모두 본 셈이에요. 정문 신풍루와 두 번째 문인 좌익문 사이에는 관리들의 업무 공간이 모여 있다. 화성행궁의 행사 준비를 담당하던 외정리소, 서류 관리 업무를 하던 서리청 등이다. 눈여겨볼 만한 곳은 신풍루 좌우의 남군영과 북군영이다. 조선의 최정예부대, 장용영 외영 군사들이 주둔하던 곳으로, 양 군영에 100명씩 배치해 화성을 호위했다. 낙남헌에서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무예24기 시범 공연은 이들의 무예 실력을 재현한다. ‘무예24기’는 정조의 주도로 편찬한 무예서,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24가지의 무예를 말한다. 정조는 왕권 강화와 자주국방을 위해 장용영 외영 군사들에게 이 무예를 익히도록 했다. 임순이 해설사 : 화성행궁은 정조가 어떤 왕이었는지 보여주는 곳이에요. 우리가 조선 시대의 모든 임금을 낱낱이 공부하는 건 힘들다 할지라도 정조를 알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돼요. 나랏일 하는 사람은 국민을, 시민은 이웃을 아끼는 법을 배울 수 있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나라는 없잖아요. 잘난 역사든 못난 역사든 알아야 배울 건 배우고 고칠 건 고칠 수 있지 않겠어요? 역사를 꼭 머리 싸매고 외우지 않아도 돼요. 해설사와 함께하면 둘러보면서 배우고 들으면서 익힐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 문화재를 돌아볼 때 전국에서 활동 중인 문화관광해설사 제도를 적극 활용하기를 권해요. -이용시간 : 09:00~18:00 (연중무휴) -이용료 :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700원 -주소 :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화성행궁 관광안내소) -전화 : 031-228-4480 -홈페이지 : 수원문화재단 1. 화성행궁 관광안내소에서 현장 신청 2. 4명 이상 신청 가능 3. 단체(20명 이상) 신청은 홈페이지 참조 .tg {border-collapse:collapse;border-spacing:0;}.tg td{border-color:black;border-style:solid;border-width:1px;font-size:14px; overflow:hidden;padding:10px 5px;word-break:normal;}.tg th{border-color:black;border-style:solid;border-width:1px;font-size:14px; font-weight:normal;overflow:hidden;padding:10px 5px;word-break:normal;}.tg .tg-7fle{background-color:#efefef;font-weight:bold;text-align:center;vertical-align:top}.tg .tg-v0hj{background-color:#efefef;border-color:inherit;font-weight:bold;text-align:center;vertical-align:top}.tg .tg-i81m{background-color:#ffffff;text-align:center;vertical-align:top} 언어 요일 시간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월~일요일 (연중무휴) 10:00~17:00 (접수 마감 16:00) ※ 2020년 11월 현재 코로나19로 간단한 안내만 가능, 문화관광해설 재개 시 홈페이지( www.swcf.or.kr )를 통해 알림 ※ 위 정보는 2020년 1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text_strong{font-family: sans-serif; color: #607D8B; padding: 1%; font-weight: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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