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이면 떠오르는 고장이 몇몇 있다. 특히 단풍철이 되면 폭발적인 인기를 독차지하는 뜨거운 지역이 있는데 이번에 여행할 경북 청송도 그에 속한다. 청송이 그리워질 즈음, 그곳 태생의 김주영 작가의 대하소설 <객주>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길 위를 떠돌며 살아냈던 보부상들을 따라 청송으로 향했다. 조선후기 객주와 보부상들의 이야기를 그린 김주영 작가의 대하소설 <객주>가 지난 8월, 완결본인 11권을 선보이며 대장정을 마쳤다. 1979년 서울신문에 첫 연재를 시작한지 30여 년 만의 일이다. 이를 기념해 김주영 작가의 고향, 청송으로 떠난 독자와의 여행에 동행했다. 소설을 써 내려가며 켜켜이 쌓인 시간과 역사의 무게에 방황하기도 했던 작가는 자신의 인생과도 같은 소설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게다가 시작되는 가을, 청송이라니. 주왕산 단풍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가을이면 유독 빛을 발하는 청송으로 선생을 따라 나섰다. 출발 당일, 가을을 알리는 듯한 비가 내렸다. 안동을 지나 34번 국도에 올라 한참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가야 닿는 청송. 가는 길만 보자면 영락없는 강원도 산골의 오지마을이다. ‘푸른 소나무’를 뜻하는 ‘청송(靑松)’이란 이름이 괜히 붙었을까. 잠시 청송 주변을 살펴보자. 먼저 이 고장을 이름만큼 푸르게 만든 일등공신 낙동정맥이 보인다. 강원도 태백부터 동해안을 따라 부산 몰운대까지 이어지는 낙동정맥. ‘가을 청송’을 유명하게 만든 ‘주왕산’도 낙동정맥에 솟아 있다. 그를 사이에 두고 왼편으로는 산골마을 청송, 오른편으로는 해안마을 영덕이 있다. 산골 마을 청송을 여행하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그리 멀지 않게 바로 동해바다와도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 ‘볼(수록)매(력)’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아니던가. 전체적으로 산자락 권역에 속해 있지만 또 멀지 않게 바다와도 닿는 동네 청송으로 들어가 보자. 이번 여행은 <객주> 김주영 선생과 함께 하는 여행인 만큼 ‘김주영 객주길’이 빠지지 않는다. 청송에도 제주올레나 지리산 둘레길 같은 둘레길, ‘외씨버선길’이 있다. 청송뿐 아니라 영양, 봉화, 영월까지 국내의 대표 청정지역의 옛길 240km를 잇는다. 그중 김주영 작가의 고향인 청송 구간에는 그의 이름을 딴 ‘김주영 객주길’이 있다. 신기리 느티나무부터 감곡저수지(왕버들군락지)~수정사~마뭇골&비봉산~김주영생가&객주테마타운~고현지(야송미술관, 신촌약수터)까지 잇는 총 15.6km의 길이다. 넉넉하게 5~6시간은 필요한 길이다. 작가의 이름이 붙은 길을 주인공과 함께 걷는 기분이 새롭다. 꼬마 김주영이 뛰어놀았을 진보초등학교 주변 풍경은 “알아볼 수 없게” 변했지만 운동장은 그대로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진보시장 자락의 생가터도 자리를 지킨다. 한창 공사중인 객주문학마을에서도 청송 태생 작가의 흔적이 묻어난다. 객주길을 살짝 걸어 달기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달계약수라고도 부르는 달기약수는 철분과 탄산 등이 풍부한 물이다. 상탕·중탕·하탕·신탕 외에도 약수터가 더 있다. 철분 가득한 특유의 알싸한 물맛은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는 넘기기 어려운 맛이다. 하지만 이 약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으니, 약수터 주변에 자리한 달기약수닭백숙으로 맛보면 된다. 달기약수를 넣고 백숙을 만들면 초록빛이 도는데 특이한 색감과 더불어 담백한 맛이 으뜸이다. 달기약수로 목을 축인 후 청송문화예술회관으로 이동한다. <객주>를 30여 년간 끌어온 노작가의 강연은 잡초처럼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세상을 기어코 살아낸 소설 속 인물들이 또 다른 목소리처럼 들려온다. 객주, 보부상들처럼 직접 두 발로 길 위에 올라 삶을 유지해가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길 위에 발을 딛고 있어서일까. 끝없이 갈라지는 여러 가지 생각들은 주왕산에 닿아서야 사라지기 시작한다. 청송하면 바로 떠오르는 주왕산이 보인다. 주왕산이라는 이름답게 이 산은 ‘주왕의 전설’을 품고 있다. 주왕은 중국 당나라때 진나라 재건을 두고 반역을 일으켰다 실패했다. 그러다 쫓기고 쫓겨 신라땅까지 들어섰다 신라 마일성 장군에게 잡혀 최후를 맞는다. 뿐만이 아니다. 주왕산 전설의 실체가 신라 왕위쟁탈전에서 밀려나 반란을 일으켰던 김주원 김헌창 김법문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반란 역시 실패했기에 당나라를 끌여 들였다는 설명이 더해진다. 어찌되었건 여러 전설을 품었다는 것은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이야기이리라. 아직 단풍은 보이지 않지만 푸릇한 주왕산도 나쁘지 않다. 위풍당당한 기암 사이로 파고든 폭포들이 남아있는 더위를 식혀준다. 산을 찾으면 꼭 정상을 찾아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주왕산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대전사에서 시작해 제1폭포~제2폭포~제3폭포까지 보고 돌아오는 코스만으로 충분히 주왕산의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을이면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더해져 찾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앞서 소개한 코스는 남녀노소 모두 별 무리없이 걸을 수 있어 주왕산을 찾는 이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코스다. 청송의 속살을 마음껏 구경하는 기분이랄까. 주왕산과 더불어 청송 여행의 쌍두마차로 꼽히는 송소고택으로 향한다. 경주 최부잣집과 더불어 조선시대 영남 부자의 양대산맥으로 알려진 송소고택은 파천면 덕천마을에 자리하는 덕분에 ‘덕천동 심부잣집’으로도 알려진다. 청송 심부잣집으로 더 유명하다. 심처대부터 1960년대까지 무려 9대에 걸쳐 2만석꾼을 배출한 전통있는 명문가이다. 조선시대 왕비 3명이 이곳 ‘청송 심씨’ 출신이었다는 것으로도 그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때 만석꾼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1880년(고종 17년) 완성했다. 강력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는 법도에 따라 궁궐을 제외한 사가는 아흔아홉칸 이하로 크기를 제한했다. 사가에서 허용된 가장 큰 집이 아흔아홉칸이었던 것. 송소고택이 그렇다. 송소고택 시작점부터 높게 솟은 솟을대문이 고택의 스케일을 알려주는 것 같다. 대문에서 바로 보이는 큰 사랑채 앞 마당에 자리한 헛담을 따라가면 여인들의 공간인 안채가 자리한다. 송소고택을 살펴본 후에는 송정고택 뒤 언덕에 올라보자. 송정고택·찰방공종택 등 사이좋게 자리한 고택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언젠가 <객주>의 보부상들도 이 풍경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두 어깨에 가득 짐을 실은 그들은 이 대갓집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길 위에 오른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을까. 누구보다 자신의 인생에 뜨거웠을 객주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중앙고속도로 → 서안동 나들목 → 35번 국도 → 914번 지방도 → 송소고택(파천면 덕천리) <수도권 기준 4시간 소요>
2.주변 음식점
별미 달기약수터 주변에 약수백숙 전문점들이 몰려 있다. 경남식당 054-873-4859 서울여관식당 054-873-2177 달기약수촌 054-873-2662
3.숙소
경북 청송의 송소고택은 일반 사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흔아홉칸짜리 대저택이다. 조선시대 만석꾼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1880년 건립했다. 사랑채와 행랑채, 안채 등 대부분의 방을 일반에 개방한다. 하루 숙박비(2인 기준)는 5만원부터다. 예약 및 문의, 054-874-6556, www.송소고택.kr 이밖에도 덕천마을에는 심호택의 둘째아들 송정 심상광이 지은 송정고택(054-873-6695)과 청송심씨 악은공의 9세손인 찰방공 심당의 종택인 찰방공종택(010-9502-7611)등에서도 고택체험이 가능하다. 겨울철에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하니 반드시 미리 문의하도록 하자.
-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이소원 취재기자 msommer@naver.com
※ 위 정보는 2013년 9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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