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2단원에 소개되어 있는 통일신라에 대해 소개되고 있다. 성덕대왕신종이 위치한 국립경주박물관은 천년고도 신라역사문화의 고장 경주의 작은 미니어처와 같은 곳이다. 경주를 여행하기 전 국립경주박물관을 먼저 방문하여 각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확인하고 공부하는 것이 경주를 여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산사에서 신 새벽을 맞아본 사람들이라면 촉촉하게 이슬을 머금은 하늘위로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투박하지만 먼 곳까지 울림이 있고 그 깊고도 오묘한 울림에 마음 한구석, 따뜻한 감성에 젖게 만드는 종소리야말로 한국인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세계적인 유산이 아닐까 한다. 영혼을 울리는 종소리에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장인들의 비법이 숨어있다. 천년이 넘도록 이어온 성덕대왕신종의 고운 울림 속에 숨어있는 설화와 과학적 진실을 통해 한국종이라 불리 우는 우리의 유산을 제대로 공부해보자. 성덕대왕 신종을 우리는 에밀레종이라고 부른다. 이 종을 에밀레종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 까닭이 있는데, 종을 울렸을 때 '에밀레~~ 에밀레~~'하고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리기 때문이다. 소리가 너무나 맑고 아름다워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에밀레종에는 한 가지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때는 바야흐로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의 일이다. 경덕왕은 아버지 성덕대왕의 은혜와 공덕을 영원토록 기리고 싶어 했다. 아버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좋은 방법을 고민하던 중 경덕왕은 신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을 만들어 종소리를 통해 부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로 했다. 경덕왕은 종 만들기를 위해 신라 전역에 질 좋은 쇠를 시주할 것을 명령하게 된다. 마침내 12만근이라는 엄청난 쇳덩어리가 전국에서 모여들어 경덕왕은 정성스럽게 종 만들기 작업을 지속했으나 완성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경덕왕의 뒤를 이은 혜공왕은 경덕왕의 유지를 받들어 왕위에 오르자마자 다시 종 만들기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종 만들기에 대한 총책임을 맡은 봉덕사의 주지 스님이 꿈속에서 신비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맑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아이가 필요하다. 어제 시주를 받으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 집의 아이를 데려오너라. 잠에서 깬 주지스님은 잠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부처님의 뜻이라면...... 그것이 부처님의 뜻이라면......'날이 밝자 주지스님은 어제 자신이 찾았던 바로 그 집으로 찾아가 아이를 시주할 것을 간절히 청했습니다. 안됩니다. 스님.. 어찌 내 뱃속으로 낳은 아이를 시주하겠습니까. 다 가져가도 좋으나 아이만은 안됩니다. 스님...... 아이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매달렸으나 결국 아이를 시주하고 말았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아이는 결국 펄펄 끓는 쇳물 속에 넣어졌고 종은 완성되었다. 마침내 완성된 종이 타종 되는 순간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은 저절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름답게 울리는 종소리 가운데 '에밀레~~ 에밀레~~~'하는 아이의 소리가 섞여 있어 더욱 애잔함을 더했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마치 엄마를 간절하게 찾는 목소리와 같아서 함께 모여든 사람들은 가슴 아파하면서도 아름다운 종소리에 저절로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성덕대왕 신종은 국보 제 29호로 상원사 동종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오래된 종이다. 오래되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동종으로 손꼽히는 종이기도 하다. 성덕대왕 신종의 오묘하고도 아름다운 소리 때문에 한국종이라는 별칭이 새롭게 만들어지기까지 하였을 정도로 그 소리에 대한 평가는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성덕대왕 신종의 높이는 3.77미터 둘레는 7m정도 되며 무게는 20~22톤가량 된다.종의 꼭대기에 달려있는 용뉴 아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 구멍으로 잡음이 빠져나가 소리가 길게 음~~~~ 하고 울리는 역할을 한다. 성덕대왕신종은 소리 뿐 만 아니라 겉모양도 아름답다. 특히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종의 몸통 아래로 치맛자락처럼 사뿐하게 둘러져 있는 하대의 모습은 우아함을 자아내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하이라이트는 비천상일 것이다. 천상의 선녀가 꽃 속에서 맑은 음색을 하늘로 끌어 올리는 듯 한 우아함은 신라시대 종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이 아름다운 종은 점차 고려와 조선으로 갈수록 투박하고 단조로운 모양새로 바뀌었다. 성덕대왕 신종에 정말 '어린아이가 들어 갔을까'에 대한 이야기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특히 성덕대왕 신종처럼 큰 종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포가 없어야 하는데 사람의 신체가 들어가면 기포 발생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실패한 종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포가 많은 상태로 종이 만들어지면 종은 타종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금이 가고 결국은 깨지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 뼈에 들어있는 '인' 성분도 검출되지 않아 아이를 시주해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사실일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사실 종을 만들 때 사람을 재물로 바쳐 신종을 완성한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며 가까운 곳으로는 일본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에밀레종 전설 역시 생명을 바쳐 새로운 창조물인 종을 만들어내는 세계 전설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움직임도 있다. 여러 가지 가설을 뒤로하더라도 종을 칠 때 나는 소리가 너무나 애절하고 아름다워 마치 인간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닮은 소리를 내었기에 후세 사람들에 의해 창작되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금방이라도 부서질듯한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유리잔은 신라왕족의 무덤에서만 출토되는 경향이 있다.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여 늘 위협받으며 살아야했던 신라는 나라를 부국강병 시키기 위해 문호를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저 먼 서역의 페르시아인들과도 교류를 했을 만큼 열린 국가였다. 특히 유리제품은 신라인들이 자체적으로 만들기도 하였지만 사치품의 일종으로 유라시아대륙과 중국 등을 거쳐 수입된 제품들이 많았다. 전시된 작품 중에는 깨어진 부분을 금실로 감아 수리한 흔적도 볼 수 있는데 신라귀족들이 유리제품을 얼마나 귀히 여겼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동궁과 월지는 외국 사신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고 황실가족들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아름다운 연못이었다. 수많은 화초를 심고 각종 진귀한 동물을 뛰어 놀게 했던 신라인들의 도교사상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던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에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배가 발견되었다. 길이 620cm, 너비가 60~110cm일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배는 신라시대의 배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잔잔한 동궁과 월지의 물결위로 배를 띄우고 연회를 즐겼던 신라귀족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림이 그려지는가? 이 귀한 신라의 배는 월지관에 전시되어있다. 주령구는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14면체의 주사위이다. 술자리에 여흥을 주사위를 던져 각 면에 나오는 벌칙을 그대로 행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실천해 봐도 재미 있을법한 벌칙이 주령구의 각 면마다 빼곡하게 적혀있다. 노래 없이 춤추기, 여러 사람 코 때리기, 술잔 비우고 크게 웃기, 술 석 잔을 한 번에 마시기,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참고 가만히 있기, 팔을 구부려 다 마시기, 얼굴 간지럼 태워도 참기, 마음대로 노래 청하기, 시 한수 읊기 등 오늘날과 비슷한 벌칙도 있고 신라시대에 걸맞는 낭만적인 벌칙도 있다. ◈ 국립경주박물관과 함께 관람하면 좋은 곳 ◈ 대릉원, 첨성대, 월성, 동궁과 월지, 교촌마을, 내물왕릉, 오릉, 황룡사지, 분황사 성덕대왕 신종이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문의 : 054-740-7500 http://gyeongju.museum.go.kr/html/kr/ ※ 위 정보는 2016년 9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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