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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다, 머드축제. 우리가 아는 보령은 잠시 잊자. 가을 보령이 풀어놓은 풍경만 따라잡기에도 가슴이 벅차다. 충남 보령에서 지도를 꺼내 대천해수욕장의 바다를 지워버리고 내륙으로 들어선 길. 가을 보령은 그렇게 만나야 옳다. 먼저 가야 할 곳은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장밭마을. 해마다 11월이 되면 장밭마을은 온통 노란색 ‘바탕화면’이 된다. 마을에는 3000그루 은행나무 이파리가 일시에 노랗게 물들어 휘날린다. 은행나무는 주민들이 은행 열매 수확을 위해 심어 거두는 것들이다. 마을 안쪽 고택을 담장처럼 둘러친 은행나무의 노란 바탕 위에 감나무의 잘 익은 감이 붉은빛으로 점을 찍는다. 장밭마을은 이름대로 긴밭(長田)이 있던 마을. 은행 수확이 ‘제법 돈 되는 일’이었던 시절, 주민들은 밭 이곳저곳에다 은행나무를 심었다. 여린 가지를 꺾어다 꽂으면 은행나무는 자란다. 본래 은행나무는 마을이 아니라 밭둑에 있었다. 느럭번덕지, 당살미, 문안고랑, 윗장밭…. 주민들은 이런 정겨운 지명의 밭둑에다 되는대로 은행나무를 심었다. 그러다 마을에 저수지가 들어서고 비탈진 밭을 논으로 개간하면서 은행나무가 서 있는 자리가 논두렁과 마을이 됐다. 장밭마을에서 은행나무가 사람들의 삶에 바짝 다가서 있는 까닭이 이렇다. 장밭마을 은행나무 경관의 절정은 단연 신경섭 전통가옥이다. 고택 돌담을 끼고 집을 둘러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온통 노란빛으로 환하다. 집은 아예 대문이 없어 은행잎이 노란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너른 마당까지 사람들이 무시로 드나든다. 여기서는 너나없이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보령에 성주산이 있다. 성주산의 이름은 ‘성인(聖)이 사는(住) 산’이란 뜻이다. 이름대로 성주산 아래 모란꽃 형상의 명당 여덟 곳이 있다고 전해진다. 성주산 휴양림이 들어선 화장골도 그중 한 곳이다.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단풍만큼은 화장골이 최고 명당이라는 것이다. 늦가을 성주산 휴양림 단풍은 마치 풀무를 불어넣은 아궁이 속의 숯불처럼 뜨겁게 달궈진다. 단풍나무 숲의 규모나 나무의 수령으로만 본다면 감히 내장산이며 선운사 같은 이름난 단풍 명소에다 댈 수는 없지만, 당단풍나무의 진한 색감만큼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단풍이 절정일 때도, 이곳에는 북적이는 인파나 트로트 가락이 없다는 것이다. 성주산 휴양림에서 머잖은 곳에 성주사지가 있다. 사지(寺址)란 절터라는 뜻이니 성주사지는 ‘성주사가 있던 터’를 말한다. 절이 사라지고 남겨진 폐사지는 가을에 가장 빛난다. 저무는 가을 무렵에 스러져버린 것들의 정취와 덧없음이 더 농밀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성주사는 선종을 대표하는 큰 절 아홉 곳, 이른바 ‘구산선문’ 중의 하나였다. 선종이란 어려운 불경을 모르더라도 수양을 잘하고 선행을 쌓으면 마음속에 있는 부처를 꺼낼 수 있다고 믿었던 불교의 종파. 구산선문을 일으킨 신라의 무염대사는 20년 동안 중국에서 머물며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진심으로 돌봤다. 그가 남긴 오도송의 한 구절. ‘큰 배를 이미 버렸거늘 어찌 작은 배에 매어 있으리오.’ 텅 빈 절터에서 그 글귀를 외다가 문득 ‘비어 있음으로 충만하다’는 문장을 떠올렸다. 만수산 자락의 절집 무량사. 여기는 보령이 아니라 충남 부여 땅이다. 행정 경계는 그렇지만, 무량사는 부여보다 보령에서 더 가깝다. 보령 여행에서 무량사를 자연스럽게 끼워 넣은 까닭이다. 무량사에 대해 말하자면 말년에 여기 머문 김시습 얘기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지만, 이번에는 ‘종소리’만 얘기하기로 하자. 무량사에서 진정 감동했던 건 뜻밖에도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무량사의 범종소리는 유독 두껍고 무겁게 끌린다. 종을 치는 순간 아래로 모였던 소리가 몸통 빈 공간을 휘돌아 위쪽의 음통으로 빠져나온다. 소리는 깊고 웅장하다. 여느 절집 의 것과는 소리가 다르다. 한번 칠 때마다 웅∼하고 이어지는 여운이 길고 또 길다. 공명을 부르는 소리다. 무엇이든 붙잡아 같은 소리를 내려 한다는 느낌이다. 그 소리를 받은 몸이 공명을 하는 듯하다. 도합 서른세 번. 종두(鐘頭·봉을 치는 소임을 맡은 스님)가 마음을 다해 치는 종소리가 무량사 아래 마을까지 둥근 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범종은 지상의 인간과 지하세계의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소리다. 번뇌를 끊고 지혜를 얻어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종소리다. 그러니 무량사에 가거들랑 종소리를 놓치지 말 일이다. 혹시 모를 일 아닌가. 적막한 초겨울 밤, 종소리로 문득 깨닫게 될지. 출처 : 청사초롱 글, 사진 : 박경일(문화일보 여행전문기자) ※ 위 정보는 2018년 1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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