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에 개장한 평화누리길은 DMZ 접경지역을 잇는 대한민국 최북단의 걷기 코스다. 김포에서 시작해 파주와 고양, 연천으로 이어지는 189km 코스 중 행주산성에서 일산 호수공원에 이르는 고양 첫째길은 산과 강, 도시와 농촌마을을 두루 경험할 수 있는 길이다. 더불어 행주산성에서는 임진왜란의 아픈 역사를, 한강변 철책 구간에서는 한국전쟁의 상처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새 단장을 마치고 걷기 행사를 치른 평화누리길 고양 첫째길을 둘러보았다. 평화누리길 고양 첫째길은 행주산성에서 시작한다. 임진왜란 당시 바다의 이순신과 함께 혁혁한 무공을 세웠던 권율 장군이 열 배나 많은 왜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던 곳이다. 천혜의 요새인 행주산성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쉬엄쉬엄 걸으면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고양 첫째길을 시작하기 전에 든든하게 배를 채워두는 일이다. 다행히 버스를 타고 행주산성입구에서 내려 길 하나만 건너면 음식점들이 모여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행주산성의 터줏대감인 '원조국수집'. 이미 수십 년부터 행주산성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맛봐야 할 명물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이라면 둘이 먹을 수 있을 만큼 푸짐한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를 6,000원에 판매한다. 맛이라면 이미 이곳을 다녀간 수십만 명의 손님들이 보증하는 바다. 하지만 길게 줄을 서서 국수 값을 미리 내고, 때로는 모르는 사람과 한 테이블을 써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주변에 있는 다른 국숫집을 이용해도 된다. 자, 그럼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평화누리길 걷기에 나서볼까? 우선 임진왜란의 격전지이자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행주산성부터.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행주산성 정문을 들어서면 늠름한 권율 장군 동상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권율 장군은 한산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히는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다. 고작 3,000명의 군대로 3만의 왜군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두었다. 당시 부녀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서 승리에 결정적으로 공헌을 했고, 그로 인해 행주치마라는 말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행주치마라는 말은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행주대첩은 백성들까지 총동원된 장기간의 농성전이 아니라 군대끼리 단시간에 맞붙은 전투였다. 물론 임진왜란 전 기간에 걸쳐 조선의 백성들은 힘을 합해 왜군에 저항했지만, 행주대첩에서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권율 장군 동상을 지나 행주대첩비가 있는 산성의 정상에 서면 한강 너머 김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이 펼쳐진다. 행주산성에서 내려오면 평화누리길은 한강으로 이어진다. 길 곳곳에 표지판이 있고, 나무나 전봇대에 리본을 달아놓았기에 길을 헤맬 염려는 없다. 한강으로 향하는 작은 지방도 양옆에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있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운치가 있다. 메타세쿼이아길이 끝날 때쯤 눈앞이 확 트이면서 한강이 나타나는데, 고즈넉한 풍경 속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멀리 개화산과 올림픽대로, 계양산과 행주대교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다시 강을 따라 조금 걸으면 나비와 꽃,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색색의 메모지로 장식한 철조망이 나온다. 원래 이곳에 있던 철조망을 걷어내면서 일부를 남겨놓은 것이다. 평화누리길을 걷는 이들이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철조망을 보면서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평화누리길 곳곳에서는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을 걷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물론 아직도 DMZ 전역에는 철조망이 가득하다. 통일이 되는 그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듯이 철조망 또한 모두 걷힐 것이다. 그때는 베를린 장벽의 조각처럼 철조망 조각 또한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으로 판매될지 모른다. 철조망을 지나 행주대교 앞에 이르면 평화누리길은 둘로 갈린다. 하나는 한강변으로 이어지고, 다른 하나는 마을로 향한다. 한강변으로 이어지는 길은 군부대까지 연결되어 평소에는 민간인들이 통과할 수 없다. 그래서 군부대에 미리 허가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마을 길로 우회하여 호수공원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도 한강변 길 일부를 걸어볼 수는 있다. 여기서 일산 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군부대가 막아서고 있기에 그대로 돌아 나와야 하지만, 이 길은 잠시라도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철조망과 초소가 이어진 길 너머로 습지와 철새 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변 습지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즐기고 있던 청둥오리 떼가 인기척을 듣고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지금은 비어 있는 초소들 사이에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군인들, 손을 잡고 눈길을 함께 걷는 남북한 당국자들의 사진이 보인다. 현재 고양시가 군부대와 협의하여 한강변 길의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니, 조만간 누구나 한강을 따라 평화누리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을 길은 이름 그대로 고양시의 농촌마을로 이어진다. 도시에 무슨 농촌마을이냐고? 불과 수십 년 전, 일산신도시가 개발되기 전까지 고양시는 고양군이었다. 신도시 개발 초기만 해도 일산은 논밭의 바다에 둘러싸인 섬처럼 보였다. 하지만 신도시가 자리를 잡고 주변에 또 다른 신도시들이 들어서면서 고양시는 도시가 되었지만, 곳곳에는 여전히 농촌마을이 남아 있다. 바싹 마른 겨울 억새가 아직도 바람에 춤을 추는 작은 길을 따라 걸으면 이른 봄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의 손길이 분주한 밭이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한가한 풍경을 즐기는 사람이 보이고, 농촌 젊은 일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보인다. 마을과 마을로 이어지는 길에는 사람보다 먼저 동네 개들이 나와 낯선 방문자를 반긴다. 이렇게 농촌마을 길을 1시간 반쯤 걸으면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인 일산 호수공원이 나온다. 널찍한 호수를 중심으로 공원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높은 건물들이 들어선 모습이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닮았다. 호수공원을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전거다. 공원 입구의 무인 자전거 대여소를 이용하면 손쉽게 빌릴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도니 때마침 일몰이 시작된다. 호수를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와 함께 걷기 여행을 마무리한다. 여행정보 평화누리길 4코스 : 행주산성-행주대교-신평소초-청평지-호수공원 (11km, 3시간 소요) https://cafe.daum.net/ggtrail 글, 사진 : 구완회(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4년 3월 최초 작성되었으며 2024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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