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熱)에 맞서는 신세대식 즉효, 직방의 더위 몰아내기 노하우는 냉(冷)이다. 겨울철에 이냉치냉(以冷治冷)으로 자주 등장하는 냉면이 바로 그 메뉴다. ‘냉면은 한겨울에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어야 제맛’이라고 아무리 우겨도, 푹푹 찌는 한여름 찜통더위를 혼내주는 덴 살얼음 동동 뜬 냉면이 으뜸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게다. 이마의 흐르는 땀을 ‘급냉(急冷)’시키는 덴 냉면만한 게 없다. 그런데 이 잘난 냉면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진짜냉면은 메밀이 100%다’ ‘전분을 쓰는 함흥냉면은 아류다’ ‘육수를 낼 때 꿩고기가 빠져선 안 된다’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다. 하나하나 받아주며 말을 나누다 보면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열불이 터져 마침내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더위 달래려고 갔다가 더위 먹고 냉면집을 나오기도 한다. 앞서 음식은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고 했다. 그런데 알기 위해 따지고 먹으면 맛이 뚝 떨어진다. 아주 묘한 일이다. 그래도 냉면 한번 제대로 따져 올바르게 알고 먹자.냉면하면 ‘평양’이냐 ‘함흥’이냐를 따진다. 평양은 ‘물냉(물냉면)’이고, 함흥은 ‘비냉(비빔냉면)’ 혹은 ‘회냉면’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평양냉면집이든 함흥냉면집이든 어딜 가도 ‘물냉’ ‘비냉’ 둘 다 판다. 게다가 냉면, 즉 찬국수를 평양과 함흥에서만 먹었을까? 아니다. 한반도 곳곳에서 먹었다. 서울에서도 먹었고, 강릉에서도 먹었고, 진주에서도 먹었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따로 구분 지어 먹을 음식이 아니다. 일반 서민도 먹었고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다. 그런데 냉면이 평양식과 함흥식으로 나눠 양대 산맥을 이루면서 이북의 대표 음식인 것처럼 자리 잡은 이유는 뭘까. 한국전쟁의 여파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음은 냉면의 찬 육수.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고기로 국물을 냈고, 여유가 없으면 맹물에 간장이나 소금을 넣어 간만 맞췄다고 보면 된다. 간장이나 소금보다 업그레이드한 것이 동치미와 김칫국물이다. 면(麵)으로 들어가면 ‘메밀 100%냐, 아니냐’를 따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조상들은 메밀 함량 안 따졌다. 구황작물이었기에 메밀이 지겨웠을 것이고, 한국전쟁 이전엔 하얀 밀가루가 오히려 귀했다. 요즘에야 메밀의 본 맛을 즐긴다느니 하며 너스레를 떨지만, 적당히 혼합돼 있어도 본 맛 즐기는 데 부족함이 없다. 편안하게 자신의 입맛에 맞는 메밀의 혼합비, 예를 들어 ‘50대50(메밀가루 50에 밀가루 50)’을 찾아서 먹는 게 냉면 맛있게 즐기는 비법 중에 상(上)비법이다. 비빔냉면의 본향인 함흥냉면의 탄생배경도 알고 먹으면 재밌다. 함경도 지방엔 메밀농사보다 감자농사가 더 잘됐다고 한다. 감자 전분으로 만든 농마국수는 질기기만 질기고 별다른 맛이 없다. 그러니 온갖 양념이 더해진다. 매운 고춧가루를 붓고, 새콤한 식초를 뿌리고, 잘 익은 가자미식해를 얹은 게 함흥냉면이다. 요즘은 감자전분값이 뛰어 고구마전분을 주재료로 쓴다. 이 역시 ‘감자타령’까지 하며 찾아다닐 건 아니다. 냉면의 맛 평가에선 냉면만 고집할 게 아니다. 다른 메뉴도 잘 살펴봐야 한다. 일단 수육이나 제육의 메뉴가 없는 곳은 올바른 냉국을 기대하기 힘들다. 고기를 직접 삶지 않고 조미료를 써서 맛을 낼 가능성이 크다. 고기를 삶아서 육수를 낸 곳이라면 삶은 고기를 그냥 내칠 수는 없는 일. 손님상에 돈 받고 올리는 게 정상이다. 김치 맛 평가도 빠뜨리면 안 된다. 동치미 국물을 더하든 김칫국물을 더하든 김치가 맛이 없으면 육수와 섞은 국물의 맛도 좋을 리가 만무하다. 1. 의정부 평양면옥 동치미 국물이 넉넉히 들어 있어 냉면의 국물 맛이 가장 쨍하다. 탁하고 느끼한 맛이 전혀 없다. 고운 고춧가루를 추가해 매콤하게 즐기는 것이 더 맛있게 먹는 법. 면발은 가위가 없어도 될 정도로 부드럽긴 하지만 이로 쉽게 끊어지지는 않는다. 치아에 자신 없는 사람은 가위질이 필요할 듯하다. 평양냉면 1만1천원. 매주 화요일은 문을 닫는다. 경기 의정부시 평화로439번길 7. 031-877-2282 2. 봉피양 냉면국물 맛이 최고다.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감칠맛이 기가 막히다. 한편으로 느끼하다 싶을 정도인데 겨자와 식초로 맛을 잘 조절하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국물이 완성된다. 메밀의 함량은 70%, 그래도 탄탄한 조직감이 있어 씹는 맛이 거칠다. 100% 순메밀냉면도 판매한다. 평양냉면 1만4000원. 서초점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11. 02-587-7018 3. 서북면옥 대미필담(大味必淡, 좋은 맛은 반드시 담백하다)을 벽에 크게 써 붙이고 영업하는 평양냉면 전문점. 냉면 한 그릇 가격이 1만원을 훌쩍 넘은 상황에서도 8000원을 고집하는 착한식당이다. 육수를 낼 때 채소를 넉넉하게 사용해 천연의 달곰한 맛이 좋다. 공간이 좁아 매번 줄을 서야 하는 점이 무척 아쉽다. 평양냉면 7000원. 매주 일요일 휴무. 만두(6개) 7000원. 서울 광진구 자양로 199-1. 02-457-8319 4. 곰보냉면 함흥냉면 전문점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즐겨 찾는 집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고향이 함경도인 부모님 따라 어릴 적 ‘냉면=곰보’란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인이 박이게 다녀서다. 생강과 마늘 맛이 강한 비빔양념 속에 버무려진 맵고, 달고, 신 맛의 오묘한 조화에 매번 감탄한다. 함흥냉면 9000원.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109. 02-2267-6922 5. 평래옥 이열치열의 닭고기, 이냉치열의 냉면이 오묘하게 만난 메뉴가 있다. 닭고기 국물에 메밀냉면을 말아서 내는 초계탕이 바로 그것이다. 화채그릇 같은 볼모양의 그릇에 담아낸다. 기본반찬으로 나오는 닭무침을 면이랑 함께 먹으면 정신이 번쩍 나게 맛나다. 겨자의 톡 쏘는 맛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서두르지 않으면 20~30분 기다리는 건 기본. 초계탕 1인분 1만3000원. 2인 이상 주문 가능. 일요일은 쉰다. 서울 중구 마른내로 21-1. 02-2267-5892
출처 : 청사초롱
글: 유지상(음식칼럼니스트), 사진 : 청사초롱 박은경기자
※ 위 정보는 2019년 7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조회수
한국관광공사에 의해 창작된 은(는) 공공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사진 자료의 경우, 피사체에 대한 명예훼손 및 인격권 침해 등 일반 정서에 반하는 용도의 사용 및 기업 CI,BI로의 이용을 금지하며, 상기 지침을 준수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용자와 제3자간 분쟁에 대해서 한국관광공사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