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 사회교과서 5학년 2학기 3단원 '유교 문화가 발전한 조선' 단원에서 조선의 다양한 모습을 공부할 수 있다. 특히 유교문화로 예를 중요시 여겼던 옛 조상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으며, 양반들이 많이 살았던 안동에서는 조선 특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건축물과 학문 연구에 힘썼던 서생들의 생활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창 밖으로 봄의 멋진 풍경이 지나가고, 낙동강 물줄기가 휘감아 도는 경상도의 작은 마을. 이곳이 바로 양반, 선비의 고장인 내 고향 안동이다. 봄이면 벚꽃과 개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밥 잡수셨니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서 인정이 가득 넘쳐 흐르는 곳. 동무들끼리 모여 해가 지도록 흙 놀이를 하고, 계곡에서 돌을 뒤집어 한 바가지 줍던 골부리.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내 어릴 적 동심(童心)의 기억들이 생생히 떠오르는 곳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호남선 열차는 향수를 찾아 떠나 온 사람들을 따스히 안동 역에 내려놓는다. 경북 안동. 퇴계 이황과 서애 류성룡 등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숨결이 스며 있는 곳으로 유교문화뿐만 아니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봉정사를 중심으로 불교문화도 발달한 명소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에 들어서면 곳곳에 자리 잡은 서원, 사찰, 고택들이 길 가던 나그네를 압도한다. 가느다란 바늘조차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특유의 깐깐함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인간미가 가득한 한국 속의 작은 한국 안동. 눈을 감고 명상에 젖노라면 옛 선인들의 삶이 투영되어 흐른다. 고서에 파묻혀 학문에 취하고 정자 위에서 자연을 벗 삼아 음미하며 때로는 풍류를 논했던 선비들의 삶의 궤적과 멋의 자취를 좇아가 본다. 안동 하면 가장 먼저 '하회마을' 이 떠오르듯 하회마을은 안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관광 명소이다. 물 하(河)자에 돌 회(回)자를 붙인 하회마을은 마치 물에 떠있는 연꽃과 같은 '연화부수형 지형'으로 하회마을의 전경을 한 눈에 보려면 64m 높이의 부용대 정상에 올라가 보는 것이 좋다. 부용대를 가기 위해서는 일단 하회마을을 돌아서 화천 서원 앞 주차장까지 가야 한다. 화원 서원 담벼락에는 '부용대 450보'라는 친절한 설명의 간판이 있는데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450보가 정말 맞는지 세어보면서 걸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이다. 부용대에 올라서면 하회마을의 풍수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물줄기에 포근하게 감싸인 마을의 모습이 주변 경관과 참 잘 어울린다. 부용대의 좌우에는 옥연·겸암정사가 있는데 고색창연한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이 만년에 기거하면서 임진왜란 때의 일을 기록한 국보 '징비록'을 저술한 곳이다. 최근에는 영화 '조선 남녀상열지사'의 촬영 장소로도 이용되기도 했다. 겸암정사는 겸암 류운룡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부용대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다. 하회마을에 들어서면 조선시대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의 집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남아 있다. 솟을대문을 세운 거대한 규모의 양진당, 충효당, 북촌 댁, 주일재, 하동 고택 등의 양반 가옥인 기와집과 작은 규모에서부터 제법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서민 가옥의 초가집들이 담장을 사이에 두고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조선 시대 세워진 수많은 서원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인 병산서원은 하회마을에서 낙동강 줄기를 따라 4㎞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하회마을에서 화산을 넘어 낙동강이 감도는 바위 벼랑을 마주 보며 서 있는 병산서원은 그 절묘한 경치와 뛰어난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병산서원을 찾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연, 서애 류성룡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는 것과 병산서원이 가지고 있는 주위의 풍광 때문이다. 정문인 복례문을 지나면 나오는 만대루. 그 누각에 오르면 낙동강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병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눈에 띄는 문구 하나 '신발을 벗고 오르세요' 많은 사람이 누각에 올라 그 풍경에 취해 한참 동안 감상에 빠지게 된다. 오롯하게 병산의 기운을 받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안동에서 남안동 나들목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영호대교를 건너 산 위에 우뚝 솟은 영호루를 볼 수 있다. 영호루는 영남을 대표하는 정자로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영남 삼대루(三代樓)중 하나이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 몽진하여 이 정자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환도 후인 1362년 영호루 세 글자를 어필로 하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호루는 안동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당대 이름을 날렸던 시인들의 시가 게판 되어 있어 그 옛날 영호루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유교 문화의 뿌리가 깊은 안동의 자랑거리는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헐리지 않은 도산서원이다. 도산서원은 안동시청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28km쯤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이 짓고 후학을 가르쳤던 도산 서당과 학생들이 숙식한 농운정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마루 기둥에는 지금도 퇴계 선생이 직접 '도산서원'이라고 쓴 조그만 현판이 걸려 있다. 이에 관한 일화도 전해 내려오는데 이야기는 이렇다. 퇴계 선생의 제자인 정구는 몰려드는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서당을 증축해야 한다고 선생에게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선생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급우들과 함께 급히 평상을 만들어 마루에 붙였다고 한다. 어설퍼 보이는 평상이긴 했지만, 당시 배움의 열정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가 매일 보는 천 원짜리 지폐 앞면에는 퇴계 선생의 초상화가 있고 뒷면에는 도산서원 전경이 보인다. 도산서원을 볼 때 자세히 그려진 지폐를 보면서 서원을 둘러보는 것도 또 다른 재밋거리다. 수애당(水涯堂)은 안동에서 영덕 방향으로 30분 정도 이동한 후 수곡교를 건너면 그 끝에 자리 잡은 곳으로 '수애'는 수애당의 건립인 류진걸의 호이다. 원래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었으나 임하댐의 건설로 1987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전통가옥에서 불편한 부엌, 화장실, 세면장을 외부 형태의 변경 없이 개조한 것 빼고는 모든 방과 대청마루에 황토를 발라서 예스러움이 묻어나게 하였다. 수애당 마당에는 널뛰기와 굴렁쇠 굴리기, 떡방아 찧기 등의 민속놀이들을 마음껏 체험할 수 있다. 농암종택은 안동의 북쪽 끝 도산면 가송리에 위치해 있다. 안동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도산면 소재지를 지나 봉화와 경계선에 이르면 고산정 이정표가 보인다. 이 이정표를 따라 진입하면 저절로 '이야~'라는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깎은 것 같은 절벽과 에메랄드 빛 강물이 어우러져 신비감을 자아내는 이곳이 가송리이다. 가송리의 협곡과 은빛 모래사장의 강변이 조화롭게 어울려 있어 이른바 '도산 9곡'의 비경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에 농암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 -기간 : 매년 9월 마지막 금요일부터 10일간 -장소 : 안동시 일원 (낙동강변축제장, 하회마을 등) -내용 : 탈춤공연, 민속축제, 하회마을전통축제, 관광객 참여행사, 전시 및 부대행사 -관광문의 : 054-856-3013/ 축제문의: 054-841-6397~8 ※ 위 정보는 2016년 9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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