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행지를 가든 그 지역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장소로 역시 시장만한 곳이 없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동문재래시장은 제주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섬 특유의 생명력 넘치는 지역 주민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그 자체가 특별한 여행이 되는 제주의 또 다른 여행 명소다. 제주시 구도심 중앙로변에 자리한 동문시장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상설 재래시장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지금 동문시장의 근간이 되는 제주동문상설시장이 형성되었으며, 이듬해 모슬포에 국방경비대 제9연대가 창설되고 육지 왕래객이 늘어나면서 제주 상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원래 시장이 처음 생겨난 곳은 동문로터리 일대 남수각 하천이 흐르는 하류 주변이다. 이곳에서 매일 각종 물건들을 사고파는 장이 서다 아예 상설시장으로 발전한 것이 동문시장의 시초다. 지역 경제를 활발하게 이끌어가던 동문시장은 1954년 시장 건물 112채가 순식간에 불타버리는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그해 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재건축했다. 당시 건물에 입점하지 못한 상인들은 주변에 노점이나 좌판을 펴고 장사를 했다. 시장이 점점 확장되면서 노점은 줄었지만 지금도 둘러보면 주변 도로에 직접 키운 채소나 나물 등을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문시장은 마치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갖춘 만물상 같다. 제주도에서 제일 크고 오래된 시장답게 온갖 곡식과 야채, 생선, 과일, 식료품은 물론이고 의류, 신발, 생활용품, 농기구까지 없는 것 없이 다 갖추고 있다. 게다가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까지 빼놓지 않고 고루 챙겨놓았다. 올레 17코스가 지나가는 길목인 동문시장은 꼭 한번 들러봐야 할 여행 명소로까지 자리매김했다. 동문시장은 늘 사람들로 붐비지만 특히 주말이면 관광객까지 합세해 더욱 북적북적해진다. 시장 인근에 마련된 주차시설도 툭하면 만차 표지판을 내걸어 보통 두세 바퀴 정도 돌 각오를 해야 한다. 남수각 하천변을 따라 노란 유채꽃이 물결치는 어느 봄날. 제주를 여행 중인 홍콩 친구 둘이 동문시장을 찾았다. 외국 여행객 눈에 비친 동문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 넘치는 그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새콤달콤한 향으로 가득한 과일가게. 동문시장을 특징짓는 제1 품목은 역시나 귤이다. 어느 시장이나 과일가게는 있기 마련이지만 사시사철 귤만을 취급하는 곳은 아마 동문시장뿐일 것이다. 시장 골목 한 귀퉁이가 온통 주홍색으로 물들어 꽤나 볼 만한 풍경을 연출한다. 어디 먹는 귤뿐인가. 직접 키워 먹어보라며 귤 묘목을 가져다 놓은 점포도 있다. 사실 귤이 없는 동문시장은 팥소 빠진 찐빵이나 다름없다. 귤이라고 또 다 같은 귤이 아니다. 비가림, 노지, 타이벡, 하우스 등등 생긴 건 똑같은데 이름도 다르고 가격도 다르다. “노지는 땅에서 그냥 키운 것이고, 비가림은 비 맞지 말라고 가림 시설을 한 거우다. 타이벡은 바닥에 비닐을 덮어씌운 거고, 하우스는 알제?”
하나씩 차근히 설명해주는 주인아주머니 덕분에 그제야 겨우 고개가 끄덕여진다. 귤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다니!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라봉하고 천혜향까지는 알겠는데, 황금향? 청견? 이건 또 뭔가. “한라향이라고 작년에 품종 개량해서 처음 출하한 건데 맛이 좋다게. 한번 먹어보우다게.” 즉석에서 껍질을 벗겨 내놓는 과육 하나를 조심스레 베어 물었다. 순식간에 새콤한 향이 퍼지면서 시원한 즙이 배어나온다. 한라향이라니. 이름까지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정말 끝없이 펼쳐지는 귤 세상! 어디든 택배가 된다니 실컷 쇼핑을 한 후에도 가벼운 양손으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 동문시장은 규모도 크고 골목 상점들이 많아 자칫하다간 일행을 놓치거나 길을 잃을 수 있다. 가장 활기 넘치고 볼거리 많은 수산시장 거리가 특히 그렇다. 바다에서 막 잡아 올린 듯 펄떡거리는 생선들이 걸음을 자꾸만 멈추게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생선은 반짝반짝 은빛 비늘을 뽐내는 갈치다. 일명 ‘금치’라고 불릴 만큼 몸값이 비싼 생선이지만 제주산 은갈치를 사 가려는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몸값 높기로는 옥돔도 빼놓을 수 없다. 홍조 띤 소녀처럼 분홍빛 감도는 예쁘장한 옥돔은 제주를 대표하는 제1 생선이다. 반건조한 옥돔을 참기름에 구워 먹거나 미역국을 끓여 먹는데, 예부터 제주에서는 옥돔미역국을 산모의 보양식 중 으뜸으로 꼽아왔다. “요즘은 옥돔이 예전만큼 많이 잡히지 않거든. 많이 저렴하다 싶으면 중국산이라고 보면 된다우.” 관광객들은 대개 반건조된 옥돔을 많이 사 가는데 물건마다 가격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대부분 원산지 표시가 있으며 궁금한 것은 물어보면 된다. 시장 구경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가격 흥정이다. “아이, 조금만 더 깍아주꽈”, “에이, 기분이다! 고등어 한 마리 더 얹어주꾸마.” 여기저기서 밀고 당기는 흥정 소리가 시장을 더욱 활기 넘치게 만든다. 마트의 정찰 가격에 익숙한 이들에게 어쩌면 흥정은 불필요한 시간 낭비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동문시장에서만큼은 일부러라도 흥정을 붙여보자. 육지와는 전혀 다른 제주말을 경험하는 것도 색다르고, 투박한 말투에 담긴 따스한 제주 인심도 풍성하게 얻어갈 수 있다. 점포들 중에는 즉석에서 회를 떠주는 곳들도 있다. 부시리 같은 대형 생선은 미리 회를 떠놓고 조금씩 나눠 팔기도 한다. 회를 처음 접해본다는 홍콩 친구들은 몇 발자국 못 가 결국 회 한 접시를 집어들었다. “홍콩에선 찾기 힘든 음식이라 한번 먹어보고 싶어요.” 회 접시를 받아든 그녀의 얼굴이 기대감 만발이다. 식료품 코너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제주 고사리다. 보랏빛 감도는 오동통한 제주 고사리는 맛과 품질에서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 말린 고사리는 보관도 쉽고, 언제든 조금씩 꺼내 요리할 수 있어 선물하기도 좋다. 이밖에 몸, 톳, 양해, 동초 등 제주의 향토음식 재료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난 시장 구경이 된다. 우도 땅콩, 올레꿀빵, 각종 초콜릿, 감귤과즐 등 제주만의 특색을 지닌 주전부리들의 유혹은 한층 거세다. 한 집 겨우 지나면 금세 또 한 집 나타나니 시장을 나설 즈음엔 그중 어느 것 하나는 꼭 손에 들고 나오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시장을 나올 때 보니 홍콩 친구들의 양손에 이미 초콜릿, 과즐 등이 담긴 봉지가 주렁주렁 들려 있다. 이를 어쩌나. 동문시장의 매력이 이제 홍콩까지 접수했다. 동문시장은 공항과 가까워 여행을 마치고 쇼핑을 겸한 마지막 코스로 잡으면 좋다. 주변에 제주목관아, 관덕정 등 유적지들도 자리했다. 점포 중에는 신용카드가 통용되지 않는 곳도 있으니 미리 현금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고객지원센터 건물에 ATM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동문재래시장 상인회 064-752-3001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제주국제공항 → 용문로 → 용문로터리에서 제주목관아 방면 우회전 → 동문로터리까지 직진 → 동문시장
* 대중교통
제주국제공항에서 38번, 90번 버스를 타고 동문로터리 정류장 하차. 약 20분 소요.
2.주변 음식점
섬횟집 : 자연산 활어 / 제주시 서해안로 242 / 064-742-2929
해진횟집 : 다금바리회 / 제주시 서부두길 26 / 064-722-4584
제주에서첫번째 : 손수제비 / 제주시 중앙로19길 25 / 064-752-6041
3.숙소
나비스호텔 : 제주시 애월읍 애월해안로 885 / 070-4348-7337
빌레리조트 : 제주시 애월읍 고내로13길 79 / 064-799-2002
늘송파크텔 : 제주시 원노형5길 22 / 064-749-3303
- 글, 사진 : 정은주(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10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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