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한옥마을에서 지도 없이 ‘일루와유 달보루’를 찾아가는 방법이 있다. 활짝 열린 대문 밖으로 꿈결 같은 선율과 사람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가면 된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정담을 나누고, 달을 올려다보는 곳. 일루와유 달보루 에는 오늘도 휘영청 밝은 달이 뜬다. 북한산 자락 아래, 공연을 보고 문화생활을 즐기며 잠도 잘 수 있는 한옥이 있다. 복합문화공간을 쉬이 찾아볼 수 있는 요즘이지만 한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이는 건 드물다. 이 재밌는 일을 꾸린 이는 미술인문학자인 조진근 관장이다. 북한산을 정원 삼은 터에 한옥을 지었더니 혼자만 알기에 아까운 경치였고, 누군가와 이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었단다. 서울의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기획 일을 하던 관장은 예술가들이 쉬어가는 게스트하우스이자 많은 이가 문화를 향유하는 문화공간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19년 7월, 숙박, 공연, 전시, 강연을 아우르는 한옥 복합문화살롱 ‘일루와유 달보루’가 문을 열었다. 구수한 사투리처럼 들리는 이름에는 ‘제일가는 누각에서 누워 놀다(壹樓臥遊)’라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달보루는 ‘달 보는 누각’이라는 뜻. 조 관장은 누마루(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에서 북한산 비봉에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는 순간을 가장 사랑한다. 숙소 그 이상의 한옥은 쉼 그 이상의 휴식을 선사한다. 한옥 콘서트, 다도 체험, 독서 토론, 영화 감상 등 달보루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은 제대로 잘 쉬는 법을 일러준다. 하나같이 문턱 높은 문화생활이 아니라 일상에 스며드는 문화적 체험들이다. 대표 프로그램은 도심 속 한옥 콘서트인 <메이드 오브 트리>, 복합문화기업 ‘옐로밤’과의 합작 프로젝트로 열리는 소규모 공연이다. 지금까지 인디, 판소리, 클래식, 재즈와 탱고 기반의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가 대청마루 또는 마당에 섰다. 대청 기둥에 등을 기댄 채 구름이 흐르는 하늘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 경험은 일상 속 낭만적인 일탈이다. 생동감도 뛰어나다. 지척에 앉은 아티스트와 눈을 맞추고 멜로디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어느덧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 놀이마당이 된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성격이 뚜렷한데도 달보루는 ‘휴식’과 ‘머묾’이라는 숙소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다. 집은 전통 한옥 못지않은 격조가 느껴짐과 동시에 무슨 말을 해도 허허 웃는 친구처럼 소탈하다. 그것은 조 관장이 설계자에게 의뢰한 세 가지 요소-전통 한옥의 건축양식을 따라달라, 북한산의 운치를 담아달라, 손님이 편안히 머물도록 해달라-가 집에 충실히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전남 구례군의 고택인 운조루, 덕수궁의 석어당, 창덕궁의 낙선재에서 한옥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조 관장은 이를 달보루에도 구현하고 싶었다. 전통 한옥이라면 모름지기 나무, 황토, 돌 등 자연이 준 재료를 써야 할 터. 달보루는 우리 땅에서 자란 소나무로 한옥의 뼈대를 잡았고, 바닥에는 황토를 깔았으며, 창에는 전통 한지를 입혀 창살 사이로 햇빛과 달빛이 은은하게 스미도록 했다. “한옥은 자연과 호흡하는 집”이라는 조 관장의 말처럼, 달보루는 자연의 재료로 지어 자연을 담는 집이 됐다. ㄷ 자형 한옥의 객실 세 개는 모두 북한산 조망권이다. 어느 방에서나 창만 열면 북한산 능선이 시원스럽게 내다보인다. 낮에는 북한산 풍광에 감탄하고 밤에는 산봉우리로 떠오른 달빛을 이불처럼 덮고 잔다. 객실은 ‘휴먼 스케일’에 중점을 두어 마음껏 널브러져 쉬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곳에서 한갓지게 사색하고, 누군가와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술 한 잔 걸치며 긴장의 끈을 풀고 싶은 충동이 인다면 그 때문이리라. 같은 연유로 가구나 소품도 지나치게 시선을 사로잡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거기 있던 정물처럼 단정하다. 방은 저마다 특징을 지녔다. 누마루방은 일루와유 달보루 건축의 백미인 누마루가 딸려 있다. 히노키방은 향긋한 편백나무 탕에서 족욕을 즐길 수 있다. 2층 전체를 쓰는 2층 방은 마주 보는 대청 창으로 바람길을 내어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시원하다. 지하 1층은 객실은 아니지만 달보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조 관장이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작업실이 되었다가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되었다가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준비하는 연습실이 되기도 한다. 일루와유 달보루는 북한산 달빛 아래 몸을 누이는 아늑한 숙소요 일상의 풍류가 흐르는 문화살롱이다. 조 관장의 소망은 한결같다. 자연을 닮은 집이 때 묻은 상념을 털어내는 비움의 공간이자 문화적 놀이로 마음의 곳간을 채우는 채움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일루와유 달보루의 하반기 달력이 흥 나는 계획들로 빼곡한 이유다. ※ Accommodation - 누마루방 : 큰 사랑채, 안채, 누마루를 합친 객실이다. 요를 깔 수 있는 온돌방으로 2명에서 최대 5명까지 묵을 수 있다. 방 사이에 단차를 두어 공간의 기능을 나누었다. 삼면이 트인 누마루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풍광이 뛰어나다. 화장실은 1층 대청 옆에 있는 것을 쓴다. - 히노키방 : 작은 사랑채에 만든 객실로 정사각형 방 2개를 합친 형태다. 친구나 연인 등 2명이 머무르기에 적당하다. 다도 테이블 아래의 나무판자를 들어올리면 커다란 편백나무 탕이 나타난다. 족욕이나 반신욕을 즐기며 피로를 풀 수 있다. 화장실은 1층 대청 옆에 있는 것을 쓴다. - 2층 : 2층 침대방과 온돌방, 대청마루 전체를 쓴다. 5명까지 쓸 수 있어 가족 단위 숙박객에게 인기다. 침대방에는 널찍한 통창이 있고, 온돌방에는 선자연(부챗살 모양으로 펼쳐놓은 서까래)이 한옥의 미감을 더했다. 대청 장마루(긴 널을 죽죽 깔아 만든 마루)에서 잠을 자면 황토 찜질방에서 숙면한 듯 몸이 개운해진다. 북한산 능선이 너울너울 펼쳐지는 풍경 또한 시원스럽다. 세면대와 화장실이 침대방에 붙어 있다. ※ Activities / Program - 한옥 콘서트 도심 속 한옥 콘서트 <메이드 오브 트리>는 복합문화기업 ‘옐로밤’과의 합작 공연이다. ‘가장 전통적인 집에서 듣는 가장 새로운 음악’을 지향하며 인디, 포크, 판소리, 클래식,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무대는 주로 마당이나 대청마루에 마련된다. 운치 있는 한옥에서 즐기는 공연은 색다른 여흥을 남긴다. 공연 일정은 홈페이지에 사전 공지한다. - 다도 체험 숙박객을 위해 상시 열리는 다도 체험과 5주간의 다도 강의, 두 가지 형태로 진행한다. 대청, 누마루, 히노키방의 다도 테이블에 앉아 북한산을 마주하며 차 한 잔의 낭만을 즐긴다. 다도 강의 신청 시, 사전 문의 요망. ※ Travel information - 위치 : 서울특별시 은평구 연서로50길 7-9 - 가격 : 누마루방(29~33만 원), 히노키방(21~24만 원), 2층(30~35만 원) - 문의 : 010-9988-8432 - 일루와유 달보루 홈페이지 ※ 찾아가기 서울지하철 3·6호선 연신내역 하차 후 연서시장 정류장에서 7211번 또는 701번 버스를 탄다. 하나고·삼천사·진관사입구 정류장에서 내려 오른쪽에 ‘1인1상’ 음식점을 두고 110m쯤 직진하다 왼쪽 길로 들어서면 일루와유 달보루다. ※ 인근 여행지 - 북한산둘레길 마실길 9구간 서울 북서쪽 끝자락인 은평구 일대를 지나는 북한산둘레길. 1.7km의 비순환형 코스는 진관생태다리에서 출발해 마실길근린공원을 지나 방패교육대 앞에서 마무리된다.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평탄한 길은 45분 정도면 완주할 수 있다. 생활형 한옥이 모인 은평한옥마을을 둘러보고, 마실길근린공원 내 하늘 높이 뻗은 은행나무 숲에서 숨을 고를 수 있다. - 셋이서문학관 천상병·중광·이외수, 기인이라 불리는 세 작가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공간 겸 북 카페다. 1층 한옥 온돌방에서는 수필 교실, 시 교실, 문학 콘서트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린다. 2층 ‘작가의 방’은 작가 개개인의 방처럼 꾸민 전시실이다. 세 작가의 작품과 친필 원고, 소품 등을 전시해 그들의 삶과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다. 글 : 이수린(여행작가) 사진 : 장명확(사진작가) ※ 위 정보는 2021년 2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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