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간다. 창창한 숲을 걷고 낡은 툇마루에 앉아 긴장을 풀면 스마트폰과 시계도 숨을 죽인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더없이 감미로운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욕심도 내지 않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 담양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자에서 찾았다. 배롱나무 스물아홉 그루가 석 달하고도 열흘 동안 붉은 꽃을 피우는 원림이 있다. 한여름에 붉은 꽃잎의 유혹이 시작되는 명옥헌이다.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 자락의 명옥헌으로 가는 길엔 가로수가 온통 배롱나무다. 붉은 꽃으로 배롱나무가 활활 타오른다. 연분홍에서 진분홍, 보랏빛으로 길가의 배롱나무가 눈부신 꽃을 피울 즈음에도 명옥헌은 조금 느리고 차분하게 아직 초록빛이 많다. 명옥헌을 둘러싸는 배롱나무와 붉은 소나무 숲은 명승 58호로 지정되었다. 정자 누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고 한숨 돌리면 여름날 배롱나무가 꽃 대궐을 이룬다는 연못이 보인다. 네모난 연못에 동그란 섬이 있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그곳에 배롱나무 한 그루가 꽃을 피운다. 초록 숲에 눈이 맑아지고, 그림 같은 풍경에 근심을 잊고, 서늘한 산바람에 마음이 착해진다. 장계 오이정은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던 부친 오희도가 다시 벼슬에 나간 지 1년 만에 유명을 달리하자, 그곳에 명옥헌을 짓고 부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숲 속에 정자를 짓고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팠는데, 계곡물이 연못을 채우고 그 물이 아래 연못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옥에 부딪히는 것 같다고 정자를 명옥헌(鳴玉軒)이라 했다. 꽃 핀 지 열흘 만에 떨어지고 100일 동안 날마다 새로운 꽃을 피운다는 배롱나무, 부친을 그리는 애절함처럼 연못으로 후두두 꽃잎을 떨구는 풍경이 애틋하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원림이며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소쇄원은 푸른 대숲을 지나며 시작된다. 곧게 자란 대숲을 걸으며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하늘을 가린 대나무 길이 끝나면 환한 소쇄원의 세상이 나타난다.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어우러졌다지만, 그 자리에 있던 하늘과 나무와 물처럼 바람에 말갛게 닳은 정자마저 자연의 일부로 느껴진다. 명승 40호 소쇄원의 주변은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숲으로 울창하다. 소쇄옹 양산보는 스승 조광조가 유배되자, 일찌감치 고향으로 내려가 은둔 생활을 하며 소쇄원을 조성했다. 속세를 떠나듯 청정한 대숲을 지나면 대봉대가 나오고, 애양단 담장의 동백나무가 보인다. 오곡문 담장을 가로질러 광풍각과 제월당 쪽으로 가려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몸도 마음도 차분해진다. 어느 곳 하나 소홀하게 지나치지 않았을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의 발자취가 느껴진다. 소쇄원에서 가장 시원한 광풍각은 사방이 탁 트여, 마루에 앉으면 온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광풍각은 조선 시대 학자 김인후가 만든 시문집 《소쇄원 48영》 중 2영에 ‘침계문방(枕溪文房)’이라 하여 머리맡에서 계곡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선비의 방으로 표현했다. 광풍각이 사교의 공간이라면, 제월당은 소쇄원의 풍광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색의 공간이다. 벽에 잠시 기대어 눈을 감으면 소쇄원의 자연이 감동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마다 깊은 슬픔을 다독여주었을 부드러운 바람과 은은한 달빛을 상상하는 시간이다. 성산 언덕 노송 사이로 우뚝 선 정자는 그림자도 쉬어 간다는 식영정(息影亭)이다.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며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로, 명승 57호다. “어떤 지날 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 내 말 듣소 / 인간 세상에 좋은 일 많건마는 / 어찌 한 강산을 그처럼 낫게 여겨 / 적막한 산중에 들어 아니 나오시는고” 로 시작되는 정철의 <성산별곡> 무대가 된 곳이다. 정자 문화에는 가사 문학을 빼놓을 수 없다. 식영정이 사랑받은 까닭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성산 주변의 자연과 그곳에서 풍류를 즐긴 선비들의 문화 덕분이다. ‘식영정 사선’이라 불린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은 성산의 절경 20곳을 택해 20수씩 ‘식영정 20영’을 지었다. 이것은 나중에 정철이 <성산별곡>을 짓는 기틀이 되었다. 송강 정철은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성산으로 내려와 4년 동안 지냈다. 당시 정철이 지냈던 죽록정 자리에 후손이 송강정을 지어서 정면에 송강정, 측면에 죽록정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정철이 이곳에 머물며 지은 <사미인곡>은 조정에서 물러나 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여인의 마음에 비유했는데, 그 시구가 남녀의 열애보다 애절하다. 한국가사문학관에 가면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본 가사 문학이 눈앞에 펼쳐진다. 담양에는 정철의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외에도 정식의 <축산별곡>, 유도관의 <경술가> 등 18편이 전승되어 가사 문학의 산실이라 할 만하다. 가사 문학 자료를 비롯해 송순의 《면앙집》과 ‘분재기’, 정철의 《송강집》, 친필 유묵 등 귀한 유물을 만날 수 있다. 고서면의 송강정까지 돌아보고 고서마을의 과수원을 지나다 보면 달콤한 포도 향이 난다.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담양 고서 포도는 8월 본격적인 수확 시기를 앞두고 있다. 격년으로 열리는 고서포도축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은 물론, 싱싱하고 달콤한 포도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직거래 장터가 마련되어 인기다. 명옥헌 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후산길 103 문의 : 061-380-3752 소쇄원 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소쇄원길 17 문의 : 061-061-381-0115 식영정 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가사문학로 859 문의 : 061-380-2812(문화체육과) 송강정 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송강정로 232 문의 : 061-380-3752 한국가사문학관 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가사문학로 877 문의 : 061-380-2701 http://www.gasa.go.kr/ 2015고서포도축제 일시 : 2015년 8월 21~23일 장소 : 고서면 증암천변 일원 문의 : 061-380-3757(고서면사무소) 1.주변 음식점 박물관앞집 : 박물관 정식 /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죽향문화로 22 / 061-381-1990 신식당 : 떡갈비 /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담주2길 18-13 / 061-382-9901 한상근대통밥집 : 대통밥 /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담장로 113 / 061-382-1999 http://www.한상근.com/ 2.숙소 메타호텔앤리조트 :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깊은실길 22-8 / 061-381-2002 http://metapension.com/pension/index.php 대나무이야기호텔 :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추성로 1346 / 061-382-1335 http://www.대나무이야기.kr/ 한옥에서 :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돌담길 88-9 / 061-382-3832 글, 사진 : 민혜경(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10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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