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여행작가 김애진 시간은 흐른다.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쌓인 시간은 흔적을 만든다. 그것을 우리는 역사라 부른다. 모든 역사가 낭만적일 수는 없다. 아픈 시간의 흔적을 보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역사가 바라는 것은 기억일 것이다. 인천에는 오랜 시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아름답게 지켜진 길, 개항장 거리가 있다. 어제의 그 길이 지금의 이 거리가 되어 우리의 마음에 기억된다. 어제의 낭만을 담았지만 슬픈 흔적이 곁들여진 그때 그 시절의 풍경을 만나보자. 인천 개항장 거리의 시작은 인천역 앞 차이나타운이다. 도로변에 차이나타운의 상징인 페루가 설치되어 있다. 페루는 마을 입구나 대로에 세우는 탑 모양의 중국식 전통대문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인천역 앞 첫 번째 페루인 중화가, 한중문화관 앞의 인화문, 자유공원의 선린문 등 총 3개의 패루가 세워져 있다. 첫 번째 페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짜장면박물관이 자리한다. 짜장면의 유래는 인천 개항기로 알려져 있다. 인천에 화교가 정착하면서 차린 중식당에서 간단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국수를 만든 것이 짜장면의 시초다. 짜장면이 번창하게 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다. 당시 양파의 대량 재배가 이뤄졌었고, 정부의 분식 장려가 겹치면서 밥 대신 짜장면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짜장면을 최초로 판매한 곳으로 알려진 공화춘은 1911년부터 70여 년간 운영하다 1983년 영업을 중단했다. 그 후 버려졌던 건물을 2012년부터 자장면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물관 안에는 화교와 짜장면의 역사를 소개하며, 당시 공화춘에서 수습된 유물을 활용해 1930년대의 식당 내부를 재현하고 있다. 인천 화교 역사와 한중 문화를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한중문화관과 화교역사관을 둘러보면 좋다. 인천아트플랫폼과 대불호텔 전시관, 생활사 전시관 부근은 일본풍거리로 불린다. 일제강점기 때의 근대건축물이 줄지어 자리한다. 개항시대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일본 조계지이기 때문이다. 조계지는 당시 강대국들이 침략과 식민을 위해 외국인이 거주하며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지정한 지역을 이른다. 현재 인천 중구청 앞 일본풍거리가 탄생한 아픈 역사지만, 지난 시간 위로 현재로 이어져온 교훈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공간은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총 8개의 근현대 건물로 이뤄진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1902년에 지어진 옛 조운업 건물, 1948년과 1933년 창고와 점포로 사용했던 건물, 1888년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 등으로 이뤄졌다. 다양한 분야의 전시가 이뤄지며, 북카페, 서점, 예술인 레지던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불호텔전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숙박 시설로 알려진 대불호텔을 통해 우리나라와 인천 중구 숙박 시설의 근대 역사를 두루 소개한다. 3층 규모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출구로 나오면 중구생활사전시관으로 이어진다. 생활사전시관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인천 중구의 생활사를 전시하는데, 일반 주택 내부부터 선술집, 극장, 다방 등 여러 공간을 재현했다. 그 옆으로 인천개항박물관과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 한국근대문학관 등 여러 박물관도 만날 수 있다. 인천개항박물관은 일본 제1은행의 인천지점으로 1890년대에 지어졌다. 은행으로 사용할 당시의 창문과 금고, 기둥 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많은 가치를 가진다.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근대문물과 관련 자료,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의 역사, 개항기 시절의 인천 거리풍경과 일본 은행과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일본 제18은행의 인천지점으로 사용했던 건물은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으로 운영한다. 이곳에는 개항 이후의 인천항 자료, 개항기부터 현재까지의 근대건축물과 관련한 사진과 영상 등을 전시한다. 개항장 시절 창고로 사용했던 건축물은 1890년대부터 1948년까지의 한국 근대문학을 볼 수 있는 한국근대문학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 박물관과 전시관들의 입장료는 500원에서 1,000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며, 짜장면 박물관, 한중문화관,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 인천개항박물관, 중구생활사전시관 등 5곳은 통합관람권으로 더욱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건물들 외에도 개항장 거리는 카메라만 들이대면 작품이 되는 사진 촬영 명소다. 중국과 일본풍 건물들의 이국적 모습 위에 한국적인 디자인이 가미된 거리는 걷는 내내 카메라를 놓지 못하게 만든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들과 함께 개항장 문화지구라는 이름으로 옛 건물들을 재현했기 때문이다. 개항장 거리에는 개화기 시대 의상 대여점이 여럿이다. 마음에 드는 옷과 액세서리를 골라 착용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 주변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개항장 거리의 모든 곳, 걷는 길도 앉은 자리도 개화기 의상과 무척 잘 어울린다. 차이나타운과 일본풍 거리에서 맘에 드는 사진을 잔뜩 촬영할 수 있지만 , 다음에 소개하는 장소들은 인생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촬영 명소다 . 붉은색 넘치는 차이나타운을 지나면 한미수교백주년기념탑이 있는 자유공원이 나온다 . 태양의 방향에 따라 빛과 그림자가 다르게 나타나는 기념탑도 촬영 명소라 할 수 있지만 , 자유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인천항 풍경과 석양도 놓칠 수 없다 . 자유공원 바로 아래 자리한 재물포구락부는 독특한 배경으로 특별한 사진을 만들기 좋다 . 재물포구락부는 개항기 시절 내외국인들의 사교 장소였다 . 지금으로 말하면 당대의 소위 인싸들이 모이는 클럽이었던 셈이다 . 건물 외부는 정갈하지만 , 내부는 화려하다 . 당대 파티 문화를 떠올려 보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 . 개항기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작품도 전시한다 . 재물포구락부 맞은편에는 인천역사자료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주택이 자리한다. 일제강점기 때 개인 주택이었고, 광복 후에는 식당, 사교클럽 등으로 사용됐었다. 1966년부터 인천시에서 매입한 후 한옥으로 증축하고 2001년까지 17명의 시장이 머물던 공관이었다. 현재는 역사자료관으로 활용 중이며, 정원을 비롯한 외부는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한옥의 형태를 갖췄지만, 정원의 생김이나 건물의 창 등이 일본식으로 남아있어, 흔히 볼 수 있는 한옥과는 다른 분위기를 전한다. 오랜 시간 많은 건물이 허물어지지 않은 채 남겨진 것처럼 이 길에는 한 가지 메뉴만 고집하는 오래된 식당들도 여럿이다.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먼저 맛볼 것은 당연히 짜장면이다. 이곳에 자리한 중국집 대부분이 원조를 자칭하지만, 짜장면의 원조로 알려진 공화춘의 후손이 만드는 신승반점이 유명하다. 이곳은 특히 유니짜장이 유명한데, 쌉쌀한 춘장 맛이 진하고 부드러운 짜장면을 맛볼 수 있다. 평일 식사 시간에도 항상 대기 줄이 있으니 대기 번호표를 먼저 받아서 주변 구경을 한 후에 식사하는 것이 좋다. 신승반점 맞은편에는 짜장면 거리에서 살아남은 복 전문점인 신일복집이 있다. 1957년부터 이어진 가게로 3대째 주인이 운영하고 있다. 가장 좋은 재료가 가장 좋은 요리라는 선대 주인들의 뜻을 따라 정해진 양만 한정으로 판매한다. 대를 이은 주인처럼 손님들도 대를 이어 찾는 곳으로 오래된 단골이 많다고. 가을과 겨울이면 맑은 복지리탕이 아닌 아욱과 된장을 넣은 복탕을 제공한다. 반찬 하나마다 정성이 묻어나고 철학이 느껴져 대접받는 기분으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인천에는 보통 밥으로 먹는 음식이 술안주로 더욱 유명한 메뉴가 있다. 바로 스지탕이다. 스지탕은 일반 설렁탕집에서 볼 수 있는 도가니탕의 안주 버전이다. 8시간 이상 고아내는 스지탕은 쫀득한 식감의 도가니와 감자가 듬뿍 들어가고 국물이 무한으로 제공된다. 두 곳의 스지탕 주점이 마주 보고 자리하는데, 대전집은 하얀 국물, 다복집은 빨간 국물이 특징이다. 개항장 문화지구에서 신포국제시장 방면으로 향하는 길에는 오랜 시간 자리한 백반집이 여럿이다. 그중 명월집은 그때 그 시절 그대로 난로 위에 끓이는 양푼 김치찌개로 유명하다. 가게에 들어서서 인원을 얘기하면 그에 맞는 8~10가지의 반찬과 밥, 누룽지를 내어준다. 양푼 김치찌개나 고추는 직접 가져다 먹는다. 대접과 고추장, 참기름도 제공해 직접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집밥을 먹는 기분 그대로다. 개항장 거리의 동쪽 끝은 신포국제시장이 자리 잡았다. 신포국제시장은 개항기에 형성된 시장으로 당시 외국 문물의 수입 창구 역할을 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시장답게 오래된 맛들도 다양하다. 개항장의 중국식 만두와 현대의 한국식 만두, 월병과 공갈빵 등이 대를 잇는 가게에서 만들어진다. 1958년부터 튀김 우동과 장어 튀김을 판매하는 노포도 자리한다. 지역민은 물론 관광객에게도 인기 좋은 신포 닭강정도 있다. 오래된 음식점들은 그 시절의 한결같은 풍경으로 자리한다. 새롭게 단장한 모습도 있지만, 지난 시간의 흔적은 곳곳에 묻어난다. 간판이나 벽지, 마룻바닥, 오래된 소품, 그릇까지. 거기에 주인들의 성실함과 친절이 반백년을 넘어 백년 가게로 향하는 길을 보여준다. 인천 개항장 거리에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기꺼이 동행하고 싶은 공간들, 진정한 음식은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되새기는 오래된 음식들이 있다. ✔ 주소 -인천역 :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69 / 1544-7788 -인천중구청 :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27번길 80 / 032-760-7114 -신포국제시장 :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49번길 11-5 / 032-772-5812 -인천문화관광 인천투어 : 032-832-3031 / https://itour.incheon.go.kr -개항장골목투어 : 032-752-3545 / http://gaehangjang.com ✔ 식당 -신승반점 : 중식 /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44번길 31-3 / 032-762-9467 -신일복집 : 복탕, 간장게장 /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44번길 30-1 / 032-772-6274 -다복집 : 스지탕, 모듬전 /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39번길 8-2 / 032-773-2416 -명월집 : 김치찌개 백반 /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23번길 41 / 032-773-7890 ✔ 숙소 -베스트웨스턴 하버파크 :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17 / 032-770-9500 -베니키아 월미도 더블리스 호텔 : 인천광역시 중구 월미로 268 / 032-764-9000 -베니키아 호텔 월미도 바다의 별 : 인천광역시 중구 월미로 242번길 7-2 / 032-765-7000 ✔ 여행 팁 인천관광공사는 인천 개항장 일대를 방문하는 관광객을 위한 교통편의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인천 8부두에서 출발해 인천역, 동화마을, 자유공원, 신포시장, 차이나타운 등 관광지 정류장에서 승하차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 후 이용할 수 있으며, 2020년 12월까지 무료 운행한다. ※ 위 정보는 2020년 12월에 작성된 것입니다.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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