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임진왜란과 왜구의 잦은 침탈 그리고 현재 독도 영유권 주장까지, 일본의 행태에 절로 혀를 차게 된다. 과거에는 이런 일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전라남도 진도군은 왜구의 침략이 잦았던 곳이다. 그곳에 백성을 보호하고 국토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것이 남아있다.
내륙의 시골풍경에는 편안함이 있다. 마을에선 낮은 담을 두고 이웃끼리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대문은 열린 곳이 많다. 신뢰, 믿음이란 덧붙임이 필요 없는 유기적 연대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외부의 공격 때문에 마을이 유기적으로 뭉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곳이 남도진성(사적 제127호, 2011년 7월 '남도석성'은 '진도 남도진성'으로 명칭 변경됨), 그 안에 남동마을이다.
전라남도 진도군은 지도 상에서 한반도의 남서쪽 구석에 위치한다. 또 진도군에서 남서쪽 구석에 있는 것이 남도진성이다. 진도대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남도진성 위치는 한마디로 오지에 가깝다. 현재는 진도대교를 통해 내륙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섬의 특징을 희미해졌지만, 여전히 예향의 체취가 진하게 남은 곳이며, 토질이 비옥해 농사하기 좋은 곳이다.
높이 3m 정도의 석벽이 약 600m 길이로 한 마을 감쌌다. 마을의 동·서·남쪽, 총 세 개의 문이 설치돼 있다. 성을 앞에 두고 주위를 살펴봤다. 남도 특유의 풍광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어났을 일들을 생각하면 맘 편히 즐길 수만은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 남도진성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남아있는 고려시대의 성곽이다. 축성 시기는 고려 원종 때로 전해진다. 당시 배중손이 이끈 삼별초가 진도에 웅거하면서 해안지대 방어를 위해 축성했으며, 제주도로 이동하기 전까지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활용했다. 이후 왜구의 침탈이 잦아들면서 조선 영조에 들어 재축성이 이뤄진다. 조선시대에 해안방어를 위한 수군의 성으로 탈바꿈되면서 현재의 남도진성 형태를 띄게 된 것이다.
석성 앞에 비석 6개, '만호비'가 세워졌다. '만호(萬戶)'는 조선시대 수군 수장의 관직명이다.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남도진성의 수장 중 뛰어난 수군만호(水軍萬戶)의 공적을 기렸다. 석성 앞에 나열된 비석은 마을 중간에 있었다고 한다. 서문을 통해 석성 내부가 살짝 보인다. 대략 살펴봐도 백년은 넘어 보이는 고목이 석벽에 몸을 기댔다. 줄기에는 확성기가 달렸다. 마을소식이 확성기를 통해 성안을 울린다고 생각하니 재방송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길고양이는 사람을 마주쳐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동행한다. 석성 안에 흐르는 기묘한 분위기, 시간을 역행한 공간감, 왠지 흥미로운 취재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고려시대 축성된 성벽을 지날 때에는 마치 사극의 한 장면처럼 극적이다. 문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80년대 개발 이전의 마을 모습이다. 외부에서 본 성벽의 깔끔하고 우람한 모습과 달리 내부는 사적지로서 면모가 그렇게 두드러지지도 않으며, 관광지로서 음식점, 기념품가게 등이 고루 갖춰져 있지도 않다. 다만 조용한 마을이 성안에 숨어 있을 뿐이다. 가지런히 놓인 기와지붕, 안락한 마당, 한적한 텃밭 등 기대했던 풍경은 아니다. 슬레이트를 겹겹이 얹어 그 위에 타이어로 무게를 실은 지붕, 시멘트벽에 균열이 생겨 덧댄 흔적 등, 지금까지 이곳에 남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풍경이다. 또한 여러 시대의 모습이 혼재됐다.
약 70m 정도 걸으면 마을의 중심이다. 곧장 직진하면 동문, 오른쪽으로 꺾으면 남문이다. 남문은 근래에 다시 만들어졌는지, 누각 모양새가 매끈한 게 눈길을 끈다. 계단을 통해 남문 위에 올랐다. 성벽을 경계로 두 종류의 풍경이 펼쳐진다. 남동마을로 시선을 옮기면 이질적으로 튀어 보이는 한옥이 보인다. 남도진성 내부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을 복원한 관아와 객사 건물이다. 성 외부로 눈을 돌리면 처음 보이는 것이 '옹성'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문을 보호하듯 손으로 감싼 형상으로,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쌓아져 있다. 석벽 위를 걸어보자. 시간을 거슬러 아련한 풍경이 떠오른다. 남쪽 바다와 그 옆으로 산세가 바다로 내리막을 탄다. 바다가 들어오는 방향으로 평지가 이어지고 남도진성과 맞닥트린다. 이 길을 따라 수많은 왜구가 침입했을 것이다. 왜구의 노략질이 약 13세기부터 잦아지면서 진도의 백성은 내륙으로 귀향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 20년까지 진도는 무인도였다. 진도에 만호부가 생기면서 다시 진도에 백성이 들어와 땅을 일궜다. 현재는 진돗개가 짖는 소리만으로도 정적이 끊기는 한적한 마을이지만, 과거에는 조용할수록 불안했을 공간이다.
동문 밖에서는 배추 출하가 한창이다. 이제 갓 봄으로 넘어왔는데, 진도에서는 벌써 배추가 다시 한 번 재배돼 출하 중이다. 진도는 '옥주(沃州)'라는 별호를 가졌다. 수려한 자연환경, 청정해역 그리고 비옥한 농토가 진도의 자랑이기 때문. 날씨도 따뜻해 1년 농사로 3년 치 주식을 모은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동문에 가까워지면 서문에서 본 마을 길과는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석성이 내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일종의 돌담길로 변모한다. 집마다 작은 텃밭이 하나씩 딸렸다. 겨우내 관리가 안 돼서 인지 조금은 휑하다. 진돗개는 집마다 한 마리는 기본. 진돗개 짓는 소리는 원 없이 들을 수 있다. 관아가 조성된 곳 가까이에 섰다. 시선이 관아를 거쳐, 남문을 지나, 멀리 남해까지 시원하게 뻗는다. 남문에서 성벽을 경계로 두 종류의 풍경을 즐겼다면, 여기서는 남도진성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진도의 한 풍경이 잡힌다. 이곳에 성을 세울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다. 산과 산 사이로 바다가 들어왔으며, 평지에 성을 지었으니 바다에서 온 왜구는 쉽게 이곳을 지나칠 수 없었으리라. 이젠 석성 외부에서 벽을 따라 걸어보자. 성벽 아래에는 큰 장방형 석재가 깔렸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석재를 쌓았다. 석재 사이로 작은 돌을 끼워 넣었다. 작은 개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향한다. 예전에는 여기서 남동마을 여인네끼리 모여 빨래를 하고 사는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작은 다리가 눈길을 끈다. '단운교'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넙적한 판석을 부채살처럼 사용해 아치형을 띄게 했다. 1930년대에 남동마을 주민이 만들었다는데, 진도가 예향이라 불릴만한 이유가 있다. 비교적 짧은 시간의 여정이다. 하지만 걷는 중간에 잠시 멈춰, 음미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념이 곳곳에 녹아있다. 남도진성은 차후 역사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관아와 객사처럼 옛 모습을 복원한다는 내용으로, 머지않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누군가는 여유를 찾을 것이고, 누군가는 남도의 매력에 취할 것이다. 그리고 공통으로 이곳에 담긴 선조의 국토 사랑에 감동받을 것이다. 1. 찾아가는길 * 자가용 목포IC → 영산호하구둑 → 영암방조제 → 금호방조제 → 77번 국도 → 우수영 → 금골교차로(진도대교 방면) → 신동삼거리(신동리 방면) → 굴포삼거리 → 남도진성 해남IC → 우수영 → 금골교차로(진도대교 방면) → 신동삼거리(신동리 방면) → 굴포삼거리 → 남도진성 * 버스 서울 ↔ 진도 : 1일 4회 왕복(5시간 30분 소요) 광주 ↔ 진도 : 1일 20회 왕복(2시간 소요) 목포 ↔ 진도 : 1일 22회 왕복(1시간 소요) 서울 ↔ 목포 : 1일 25회 왕복(4시간 40분 소요) 2.맛집 다도해관광회센타 : 전어요리, 생선회 061-543-7227 팽목횟집 : 생선회, 매운탕, 061-544-1975 구장터 : 생선매운탕, 백반 061-543-3722 산호복집 : 복어탕, 아구탕 061-544-8383 2.숙소 남강모텔 : 진도읍 성내리 46-10, 061-544-6300 프린스모텔 : 진도읍 남동리 745-5, 061-542-2251 왕고개모텔 : 의신면 침계리 878-1, 061-543-9556 진도관광모텔 : 군내면 녹진리 3-2, 061-542-2123 -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안정수 취재기자( ahn856@gmail.com ) ※ 위 정보는 2012년 12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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