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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26년, 통영 서피랑 아래 골목에서 박경리가 태어났다. 고향을 떠난 그는 50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글로 고향을 하나하나 그렸다.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첫 장에서 통영 구석구석을 짚은 뒤에야 김약국 집안 이야기를 꺼낸다. 소설 속 길을 따라 통영을 걸어보자. ★ 통영 문학 여행 추천 코스 ★ - 서피랑 마을: 99계단을 올라 강구안과 동피랑을 내려다보는 언덕 마을 - 충렬사(통영): 이순신 장군을 기리며 소설 속 동백길의 기억을 만나는 사당 - 통영 명정(정당샘): 충렬사 제향에 쓸 물을 긷던 두 우물 - 해저터널(통영): 일제강점기 바다 밑으로 뚫어 통영과 미륵도를 잇는 483m 터널 서피랑은 '서쪽 비탈'이라는 뜻이다. 박경리가 태어난 동네이자 『김약국의 딸들』의 주무대다. 소설은 통영에서 약국을 하던 집안이 기울고 다섯 딸의 운명이 저마다 엇갈리는 이야기를 다룬다. 서피랑으로 향하는 길은 여럿이지만, 99계단을 오르면 담벼락에 그려진 박경리 작가의 얼굴과 글귀를 볼 수 있다. 꼭대기에는 옛 군영의 초소였던 서포루가 있다. 누각에 서면 강구안 건너 동피랑이 마주 보이고, 소설의 배경이 된 옛 통영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통영 사람들은 이 언덕을 '뚝지먼당'이라 부른다. 소설 속 '뚝지'가 이곳이다. 해마다 음력 2월이면 고을 사람들이 여기서 바람의 신에게 풍신제를 올렸다. 서포루에서 서문고개 쪽으로 내려가는 골목에 박경리가 태어난 집이 있다. 모퉁이의 작은 표지판이 '박경리 선생 태어난 집'을 가리킨다. 옛 모습은 남지 않고 지금은 다른 주민이 살고 있어 안을 둘러볼 수 없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옛 통영성 서문이 있던 고개다. 서문고개 어귀에는 『김약국의 딸들』에서 이곳을 묘사한 대목을 새긴 조형물이 서 있다. 펼친 책 모양의 조형물에 박경리가 손으로 쓴 원고를 옮겨 적었다. 통영시가 소설 속 주요 지명마다 세운 조형물 가운데 하나다. 서문고개 동쪽, 뚝지와 세병관 사이 골짜기가 김약국네가 살던 간창골이다. 간창골에서 고개로 오르는 길이 가팔라 통영 사람들은 '서문 까꾸막'이라 불렀다. 소설 속 셋째 딸 용란은 남편의 매질을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도망 온다. 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 어머니 한실댁은 용란의 손을 잡고 밤길에 이 고개를 넘는다. 친정과 시집 사이, 딸을 돌려보내던 고갯길이다. 간창골 위쪽 여황산 기슭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다. 통영이라는 지명도 여기서 나왔다. 소설은 이곳 동헌을 기준으로 고을 곳곳을 짚는다. 국보 세병관은 '병기를 씻는다'는 이름처럼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며 지은 건물이다. 기둥 50개가 떠받친 너른 마루는 일제강점기 보통학교 교실이었고, 어린 박경리도 이 학교에 다녔다. 통제영 시절 통영은 장인의 고을이었다. 12공방에서 군수품과 진상품을 만들었고, 통영갓과 자개 소반은 전국에 이름났다. 지금은 세병관 곁에 그 12공방을 복원했다. 소설에도 통영갓과 소반, 나전 이야기가 나온다. 박경리는 고운 바다 빛깔과 노란 유자, 붉은 동백이 장인의 솜씨를 길렀을지 모른다고 썼다. 다시 서문고개를 따라 내려가면 충렬사 홍살문이 보인다. 서피랑 마을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충렬로 22 - 문의: 055-650-0580, 2570 충렬사는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606년 왕명을 받아 세웠다.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과 사당을 철폐할 때도 살아남았고, 지금도 봄가을이면 제향을 올린다. 소설은 서문 밖 뒷당산 대숲 앞에 충렬사가 있다고 적는다. 입구 쪽에는 400년쯤 된 동백 고목 두 그루가 서 있다. 본래 네 그루였지만 지금은 두 그루만 남았다. 박경리는 충렬사로 가는 길 양쪽에 아름드리 동백이 줄지어 봄이면 핏빛 꽃을 피운다고 표현했다. 바로 이 길이다. 곧게 뻗은 돌길 끝에 2층 누각 강한루가 서 있다. 누각을 지나 내삼문 돌계단을 오르면 정당이다. 정당 내부에는 장군의 영정을 걸고 그 앞에 위패를 모셨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경찰이 위패를 부수고 정당에 못을 박아 제향을 막았다. 해방 직후에는 김구와 여운형 등이 이곳을 찾아 참배했다. 정당에서 돌아서면 기와지붕 너머로 방금 걸어온 서피랑 서포루가 보인다. 경내 한쪽에는 유물전시관이 있다.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이 장군의 전공을 알리자 황제 신종이 내린 여덟 가지 물품인 팔사품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도장과 칼, 깃발, 나팔 등이다. 수군의 진법 훈련을 그린 수조도 병풍도 함께 볼 만하다. 충렬사를 나와 길을 건너면 명정이다. 충렬사(통영)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여황로 251 - 운영 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 이용 요금: 어른 1,000원, 청소년·군인 700원, 어린이 500원 - 문의: 055-645-3229 명정은 돌담 아래 나란히 판 두 우물이다. 하나는 일정(日井), 다른 하나는 월정(月井)이다. 해와 달을 합치면 ‘밝을 명(明)’ 자가 된다. 충렬사 아래에 있어 동네 사람들은 정당샘이라고도 부른다. 우물을 둘로 판 데는 사연이 있다. 처음 하나만 팠을 때는 물이 흐리고 적었는데, 옆에 하나를 더 파자 둘 다 맑아졌다고 한다. 일정의 물은 이순신 장군의 제향에 쓰고, 월정의 물은 마을 사람들이 길어 마셨다. 우물 위에 지붕을 씌웠다가 물이 흐려지고 돌림병이 돌자 이를 걷어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시간이 흘러 상수도가 들어온 뒤로 명정의 물을 긷는 사람은 없다. 입구 표석에 새긴 소설 대목은 두 우물이 충렬사 동백길 옆에 '부부처럼' 나란히 있다고 적는다. 이어 소설은 음력 2월 풍신제 무렵이면 고을의 젊은 각시와 처녀들이 밤새 두레박으로 정화수를 길었다고 쓴다. 서피랑 뚝지에서 바닷바람을 달래려 올리던 그 풍신제다. 아낙들은 정화수 물동이에 동백꽃을 띄웠다고 한다. 그 무렵이면 길 건너 충렬사 동백도 한창 꽃을 피운다. 백석과 김춘수도 이 우물을 시에 담았다. 충렬사 담장 앞에는 백석의 「통영 2」 시비가 서 있다. 명정에서 가까운 골목에는 옛 통영의 이름난 부호 집안이던 하동집이 있다. 소설 속 정국주의 어머니 하동댁이 살던 집으로 알려진 곳으로, 지금은 일제강점기 초에 지은 사랑채 고택 건물과 그 터가 남아 있다. 소설의 시선은 여기서 바다로 옮겨 간다. 소설은 명정골에서 대밭골로 되돌아 나와 갈림길을 꼬불꼬불 따라가면 ‘판데’에 닿는다고 적는다. 판데는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를 흐르는 좁은 물길이다. 통영 명정(정당샘)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충렬로 49 - 문의: 055-650-0580, 2570 해저터널은 판데목 바다 밑으로 통영 시내와 미륵도를 잇는다. 본래 미륵도는 가느다란 땅으로 통영반도와 붙어 있었는데, 그 목을 파서 바닷길을 냈다. 땅을 '판 데'라서 판데목이고, 한자 이름은 착량이다. 소설 첫 장에 그 유래가 나온다. 임진왜란 때 우리 수군에 쫓긴 왜병이 이곳에 몰려 엉겁결에 땅을 파헤치고 달아나려 했지만, 끝내 전멸했다는 이야기다. 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좁은 판데목 물길을 다리로 건넜다. 처음에는 나무다리를 놓았고, 뒤에 돌다리로 바꿨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이주가 늘자 물막이를 쌓고 그 밑을 파 내려가 1932년 길이 483m의 해저터널을 완공했다. 입구에 걸린 '용문달양' 현판은 물속 세계를 지나 땅에 닿는다는 뜻이다. 1967년 충무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자동차도 터널 안을 오갔다. 지금은 사람과 자전거만 다닌다. 박경리는 해저터널을 저승길에 빗댔다. 소설 속 한실댁과 윤씨는 미륵도 용화사로 불공을 드리러 가며 이곳을 지난다. 바다 밑 굴에는 전등불이 희미하고 바닥에 물이 괸다. 어둡고 축축한 길에서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더듬더듬 걷는다. 윤씨가 말한다. 아마도 저승길이 이럴 기다. 입구에서 나무 지붕을 얹은 비탈길을 내려가면 터널 안으로 들어선다. 소설 속 어둡던 굴과 달리 지금은 내부가 환하다. 아치형 골조가 겹겹이 늘어서고, 천장에는 조명이 줄지어 있다. 터널 중간쯤 벽에는 1932년 공사 당시 사진이 걸려 있다. 굴은 폭 5m, 높이 3.5m이며, 해수면 아래 최대 10m 깊이에 조성되었다. 머리 위로는 배가 지나간다. 자전거로 미륵도를 오가는 주민들이 관광객 사이를 스쳐 간다. 당동 쪽 입구 옆 돌계단을 오르면 착량묘다. 노량해전 이듬해,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수군과 마을 사람들이 이 언덕에 초가를 짓고 위패를 모셨다. 이순신을 기린 첫 사당이다. 지금도 해마다 음력 11월 19일 장군의 기일에 제향을 올린다. 돌계단 끝 첫 문 앞에 서면 해저터널 위 통영운하가 내려다보인다. 이 좁은 운하를 건너 미륵도 남쪽 산양읍으로 가면 박경리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은 2026년 4월 새 단장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전시는 박경리가 나고 자란 통영에서 출발해 문학의 길을 지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고향을 떠났다가 끝내 돌아온 박경리의 걸음을 그대로 따른다. 옛 통영을 축소해 만든 모형에는 간창골과 뚝지처럼 『김약국의 딸들』 속 지명을 하나하나 표시했다. 2004년 박경리는 떠난 지 50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 2007년 겨울에는 미륵도 양지농원에서 마지막 휴가를 보냈다. 이듬해 그가 세상을 떠나자 농원 주인이 묘소 터 800평을 통영시에 조건 없이 내놓았다. 박경리는 해저터널 위 판데목 물길을 건너 기념관 뒤 언덕에 묻혔다. 소설 속 두 여인이 염불을 외며 저승길을 떠올리던 그 물목이다. 해저터널(통영)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도천1길 1 - 문의: 055-650-0582 | 글, 사진: 김덕식 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6년 10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글, 사진은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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