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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북쪽, 고요한 바닷가 마을에 해안선을 따라 부드러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마을의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금속공예 작품들이 집 담벼락에 피어났다. 김녕마을을 수놓은 ‘고장난길’은 제주 사투리로 ‘꽃핀 길’이란 뜻. 바닷바람과 바닷물이 흘러들어오는 마을 곳곳, 시간이 흐를수록 멋스러워지는 금속공예 작품들이 다정한 온기를 품고 있다. 제주 바다는 늘 새롭다. 그 오묘한 빛깔을 보는 순간, 설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제주의 예쁜 해변 앞엔 바다를 바라보는 숙소와 카페 들이 줄지어 있다. 제주 바다를 만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발밤발밤, 해안선을 따라 느리게 걷는 것이다. 제주 북쪽, 올레 20코스 시작점인 김녕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품은 조용한 마을이다. 여행자가 드문드문 오가는 평범한 마을에 변화가 시작된 건 2014년 겨울. 마을에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금속공예 벽화가 만들어졌다. 올레 20코스 시작점에서 성세기해변에 이르는 약 3㎞ 길 위에서 금속공예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무뚝뚝한 시멘트 담벼락에 하얀 날개가 돋아났고, 검은 돌담 위엔 당장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것 같은 고래가 생겨났다. 해녀의 삶과 만장굴, 청수굴, 요트 그리고 바람 등으로 이뤄진 김녕마을의 특색이 작품 하나하나에 담겨 있다. 지도 한 장 들고 올레길 20코스에서 마을 안쪽으로 들어선다. 김성숙 작가의 이 여행자를 반긴다. 여행은 마음의 뿌리라는 것을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여행을 다니는 뭉툭한 발을 뿌리로 표현했고 그 위에 금속 잎들이 매달려 풍성한 나무를 이룬다. 여행자의 로망인 제주와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올레길 20코스 시작점에서 10분쯤 걸었을까. 바닷가 앞 초록 지붕 아래 둥지를 튼 카페 ‘다시방프로젝트’에 들어선다. 농가 주택을 리모델링해 안채는 카페로, 바깥채는 금속공예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김녕마을 고장난길을 기획한 남현경 작가가 운영하는 곳이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그녀는 바닷가 앞 작업실을 갖는 것이 꿈이었는데, 2년 전 이곳에 정착하면서 그 꿈을 이뤘다. 처음에는 차가운 마을이었지만 호기심 가득한 어르신들이 채소나 과일을 들고 자주 찾아왔고, 그녀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마을의 매력에 푹 빠진 남 작가는 동네에 온기를 입히는 일을 찾다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그림 벽화는 비와 바람에 잘 벗겨지는 데다 자칫하면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기에 무채색의 금속을 재료로 골랐다. 마음에, 풍경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벽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남 대표는 색다른 벽화를 생각했다. 마을사무국과 농어촌공사를 9개월 동안 설득해 ‘고장난길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그 결과 2014년 10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34점의 작품이 마을을 수놓았다. 처음엔 마을 어르신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금속공예 자체도 몰랐고, 무엇보다 자신이 사는 오래된 집의 벽을 뚫어야 하는 일이 마뜩잖았던 것. 하지만 완성된 벽화를 보고 한결같이 흡족해 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는 총 12명. SNS를 통해 모집하기도 했고, 학교 선후배 등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작가를 소개받았다. 김녕은 바닷가 마을이라 해풍과 해수의 영향으로 작품이 금방 망가질 수 있기에 철보다 주로 동을 소재로 했다. “철은 부식이 되지만 동은 착색이 돼요. 해풍과 해수에 색이 멋스럽게 변하죠. 세월 따라 작품은 점점 가치를 얻어가고요.” 남 대표의 설명이다. 동은 처음에 붉은빛을 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초록빛이 올라온다. 에메랄드빛으로 물드는 작품은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또한 금속공예의 매력이다. 동은 철보다 재료비가 2배가량 비싸지만 유지와 보수 비용이 들지 않으니 더 경제적이다. 다시방프로젝트를 나와 바다 가까이 걷는다. 어느 담벼락에서 추하늘의 작품 <섬집 아이>를 발견한다. 제주의 강인한 엄마, 해녀를 표현한 작품으로 어린아이를 떼놓고 물질하러 가는 그녀들의 애달픈 사연을 엿볼 수 있다. 김녕엔 낚시 포인트가 많다는 것을 이정근 작가의 <WORLD'S BEST FISHING SPOT>을 통해 알게 된다. 그의 작품 속에선 활기차고 역동적인 마을의 모습이 느껴진다. 주황색 지붕과 잘 어우러지는 해녀의 모습 앞에 선다. 해녀가 건져 올린 그물을 자세히 살펴보니 뭉게뭉게 피어난 꽃이다. 김선영 작가의 <Blossom Wave>는 그녀들이 한평생 건져 올린 건 꽃이라는 것을, 그녀들의 꽃 같은 청춘이란 것을 표현했다. 바닷소리 따라 물고기들이 해녀의 삶 속에 어우러진다는 의미를 담은 이현정 작가의 <Cantabile>은 부드러운 해안선처럼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작품을 지나자 오래된 집 안뜰에서 할아버지가 우뭇가사리를 말리고 있다. 한평생 이 마을에 살면서 심심했는데, 어느 날 봄꽃처럼 피어난 벽화가 반갑고 이 잔잔한 변화가 기분 좋다며 살포시 웃는다. 해녀를 표현한 여러 작품이 있지만 마늘 작가의 <Wonder HaeNyeo>를 마주할 땐 색다른 느낌이다. 해녀를 원더우먼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해녀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고 싶었다고. “해녀라고 하면 고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김녕의 여자들은 기가 세고 무뚝뚝하고 투박하다고 하죠. 땅이 척박해서 물질을 해야 했고, 바람과 파도 소리 때문에 말을 할 때 짧고 굵게 해왔기 때문이에요. 직접 만난 해녀들은 신나는 음악을 틀고 즐겁게 일하고 이방인에게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었죠. 해녀들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경쾌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담벼락뿐 아니라 고개를 들어야 자세히 보이는 작품도 있다. 이정근 작가의 <청굴물 글라(가자)>는 돌담 위에 자리한다. 아픈 사람들에겐 치유의 물이자 동네 아이들에겐 수영장, 농사꾼에겐 소와 함께 잠시 쉴 수 있는 용천수인 청굴물을 웹툰 형식으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이성식 작가의 <길을 걷다>는 그믐이나 보름이면 김녕 앞바다에 빠끔히 모습을 드러내는 신비한 두럭산의 전설을 담고 있다. 길에서 만난 할머니가 늘 물속에만 있다는 두럭산의 전설을 들려준다. 2시간쯤 걸었을까. 김녕의 특산물, 바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작품 앞에 선다. 벽화들이 들려주는 김녕의 이야기가 귓가를 간질이는 것 같다. 마을 깊숙한 곳까지 어르신들의 지혜와 제주의 오래된 멋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가득차 있다. 사계절 내내 고장난길이 마을을 더 소담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김녕 고장난길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로1길~21길 -문의 : 064-782-9801 주변 음식점 -다시방프로젝트 : 커피, 디저트 / 제주시 구좌읍 김녕항3길 18-16 / 064-901-2929 https://blog.naver.com/dasibangwork -전국수산 : 회, 전복죽 /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54 / 064-782-6633 -우리두리 : 향토음식 / 제주시 구좌읍 김녕로 173 / 064-782-5442 숙소 -마고펜션 : 제주시 구좌읍 김녕항3길 26-24 / 010-3386-8315 http://www.jejumagot.com/ -라쿤하우스 : 제주시 구좌읍 김녕로17길 22-10 / 010-6507-7663 http://blog.naver.com/poem901 글, 사진 : 박산하(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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