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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을 천재이자 조선 최고 사상가, 개혁가로 알고 있다. 그 화려한 수식어에는 아버지이자 남편, 무력할 수밖에 없어 괴로워한 가장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인다. 다산을 만나러 가는 길, 그 꼬불꼬불하고 비탈진 길에는 야속한 가난과 붉은 동백꽃이 있었다. 1800년 다산을 총애하던 정조가 승하하고 이듬해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다산은 천주교도로 몰려 경상도 장기현(지금 포항시 장기면)에 유배되었다. 그해 10월 처조카 황사영의 백서사건이 일어나자, 다산은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취조를 받고 강진에 유배되었다. 고달픈 18년 귀양살이의 시작이자, 다산을 조선 최고의 학자로 거듭나게 한 18년의 시작이었다. 한양에 남은 가족에게는 기나긴 고난의 시작이기도 했다. 다산은 마흔, 부인 홍씨는 마흔하나, 두 아들 학연과 학유는 열여덟과 열다섯, 막내딸은 이제 여덟 살이었다. 다산수련원에서 시작한 길은 작은 언덕 하나를 지나자 금세 다산초당 초입으로 이어진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오솔길은 워낙 유명해서 곳곳에 안내판이 설치되었다. 여러 기관과 단체가 세운 안내판은 트레킹에 필요한 정보와 다산을 소개하는 내용이라, 꼼꼼하게 읽고 걸으면 산책에 도움이 된다. 안내판에서 다산초당까지 길지 않은 산길에 삼나무가 길쭉길쭉 시원하다. 사람들이 하도 지나다녀서인지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 곳곳에 나무뿌리와 돌부리가 드러났다. 굴곡진 다산의 생애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하면 지나친 감정이입일까. 수염이 덥수룩한 둘째 아들 학유가 8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도 귤동마을을 지나 이 산길을 걸어 올라갔을 것이다. 이윽고 산비탈 중턱에서 다산초당을 만난다. 당당한 기와집 한 채에 동암과 서암이라 불리는 부속 건물도 두 채나 된다. '유배지라더니 살 만하셨나 보네?' 비딱하고 장난기 어린 궁금증이 떠올랐다. 다산은 힘든 유배 생활 중 외가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귀양살이를 했다. 다산초당은 해남 윤씨 집안의 산속 정자가 있던 곳으로, 유배지의 적막함이 아니라 산정의 고요함이 있었고, 다산이 온 뒤 배움의 열기 가득한 학당이었다. '초당(草堂)'이라는 이름과 맞지 않게 기와집으로 남은 것은, 1957년 초당을 복원할 때 다산을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지나쳤기 때문이다. 다산은 강진 유배 초기 8년 동안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다산초당을 거처로 얻고 무척 기뻤던 모양이다. 바위에 글자를 새기고, 우물을 파고, 연못도 꾸몄다. 초당을 방문하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초당 앞 너른 바위 위에서 솔방울로 차를 달이기도 했다. 다산초당의 4경이라 불리는 정석(丁石), 약천, 석가산, 다조(차 부뚜막)에는 다산이 유배지에서 찾아낸 소소한 기쁨이 서려 있다. 모두 초당 주변에 있으니 둘러보자. 다산의 가난은 그 내력이 짧지 않다. 과거에 급제하기 전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는 여종이 이웃집 호박을 훔쳐다가 죽을 쑤어 끼니를 해결했고, 벼슬할 때도 책을 팔아 생계를 이었다. 호박을 훔친 여종은 홍씨 부인에게 회초리를 맞았고, 다산은 이 상황을 민망히 여기며 그때의 심정을 시로 읊었다. 1784년 여름, 큰아들 학연이 첫돌 즈음의 일이다. 다산초당 대청에 앉아 오른쪽을 본다. 서암은 다산의 제자들이 머물면서 수업 자료를 준비하고, 수업이 끝나면 돌아와 스승의 말씀을 정리하고 토론을 펼치기도 한 공부방이다. 서암은 다산의 사상과 개혁안이 500권이 넘는 책으로 엮이며 학문의 이름을 얻은, 다산학의 산실이다. 다산이 있을 때도 살림이 어려웠는데, 가장이 죄인의 몸이 되어 천 리 밖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니 남은 가족의 고생이야 말해 뭐 하겠는가. 생계를 책임져야 할 홍씨 부인은 가재도구를 처분하고 양잠을 했다. 두 아들은 농사를 배웠고, 큰아들 학연이 수확한 마늘을 팔아서 아버지를 찾아왔다. 초당에서 일어나 백련사로 길을 잡는다. 백련사 오솔길이 시작되는 곳에 다산이 평소 기거한 동암이 있다. 2000권이 넘는 책을 두고 연구에 몰두하며 집필한 다산의 서재이자 연구실이고, 방문한 손님을 맞는 사랑방이기도 했다. 다산은 공부하다가 동암에서 나와 멀리 강진만을 바라보며 머리를 식히기도 했다. 나중에 그 자리에 천일각을 세워 방문객의 쉼터가 되고 있다. 동암과 천일각 사이로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이 시작된다. 바닷가 벽촌에 다산과 학문의 '급'이 맞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다산의 학문적 고민과 문제를 이해하고 알아준 이는 흑산도에 유배 중인 둘째 형 정약전뿐이었다. 둘째 형 외에 다산을 알아준 지기가 이웃 백련사의 혜장선사다. 해남 대둔사 출신인 혜장은 당대 최고 학승으로, 불교 경전뿐만 아니라 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다산보다 열 살 아래인 혜장은 1811년 입적했다. 다산은 혜장의 묘비에 '《논어》와 성리의 깊은 뜻을 잘 알아 유학의 대가나 다름없다'고 적었다. 다산은 외롭고 고된 유배 생활 중에 학문적 고민을 토로하고 싶을 때 백련사를 찾았고, 혜장은 수도 중 유교의 가르침이나 천주교의 깊은 이치가 궁금할 때 다산을 방문했으리라. 둘은 차와 학문을 나누고,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간을 나누었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만덕산 오솔길은 그렇게 탄생했다. 만덕산 두 굽이를 넘자, 멀리 산허리에 백련사가 보인다. 1km 남짓한 오솔길은 30~40분이면 닿을 수 있어 산책하기 적당하다. 두 번째 산허리를 내려서자, 백련사의 아담한 차밭이 나온다. 이곳 만덕산은 차나무가 많아 '다산(茶山)'이라 불렸다. 정약용의 호 다산은 만덕산의 별칭에서 유래한 것이다. 백련사 차밭 옆에는 1500그루가 넘는 동백나무가 숲을 이룬다.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나무 숲이다. 동백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면 일대는 동백꽃 꿀을 먹으며 꽃가루를 나르는 동박새의 지저귐으로 소란스럽고, 상춘객은 동백나무 그늘을 유유히 걸으며 봄의 향연을 만끽한다. 동백꽃은 피었을 때 어느 꽃보다 정열적이고, 꽃송이가 땅에 떨어지면 그 정열은 애절함으로 변한다. 이른 봄에는 화사함으로, 늦은 봄에는 애절함으로 보는 이에게 상춘의 만족함을 선사하는 것이다. 2016년 3월 12일 현재, 백련사의 동백꽃은 꽃망울을 터뜨리며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 이달 말에 만개하고 낙화하여 꽃송이가 방문객을 위한 레드 카펫을 펼칠 것이다. 백련사에서 나와 강진만에 접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에 닿는다. 바닷바람이 아직 매섭다. 막 산행을 마친 터라 몸이 더 서늘하다. 방조제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남포를 지나 강진 읍내에 들어서면 오늘 트레킹이 마무리된다. 이곳에서 읍내까지 4.2km. 트레킹 끝에는 '사의재'가 있다. 다산이 강진에 와서 처음 머무른 주막으로, 유배 생활의 고초와 시름이 다산초당보다 훨씬 깊고 진한 곳이다. 지금은 당시 주막을 복원해 음식을 파는 강진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다산의 절망과 고난을 더 깊이 느끼고 싶다면 사의재까지 걸어도 되고, 백련사 앞 철새 도래지에서 멀어지는 강진만의 겨울을 마지막으로 누리는 고니 떼를 구경하고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도 좋다. 오늘 트레킹은 강진의 별미 바지락회무침으로 마무리한다. 강진만 건너 칠량면에 자리 잡은 '청자식당'은 강진 바지락회무침의 원조다. 20여 년 전 이 집 사장님이 직접 캐낸 바지락으로 개발한 메뉴가 강진 10미가 되었다. 싱싱한 바지락에 애호박, 양파, 미나리 등 신선한 채소와 갖은 양념을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다. 한 젓가락 먹음직스럽게 집어 입에 넣어본다. 트레킹으로 바짝 마른 입에 맑은 침이 고이며 한순간에 식욕이 돋고, 쫄깃한 바지락과 아삭한 미나리, 부드러운 애호박이 어우러진다. 남도 최고 산책로를 마무리하는 남도 최고 입맛으로 손색이 없다. 다산초당 -주소 :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 68-35 -문의 : 061-430-3911 주변 음식점 -청자식당 : 바지락회무침 / 칠량면 칠량로 86-3(칠량면 공영주차장 옆) / 061-433-1515 -해태식당 : 한정식 / 강진읍 서성안길 6 / 061-434-2486 -강진만갯벌탕 : 짱뚱어탕 / 강진읍 동성로 18 / 061-434-8288 숙소 -다향소축 : 도암면 다산초당1길 7-5 / 061-432-0360(한옥스테이) http://다향소축.kr/ -한옥과돌담 : 성전면 월남3길 36-21 / 070-8803-1669(한옥스테이) -사의재한옥체험관 : 강진읍 사의재길 31-5 / 061-430-3335 http://www.sauijaehanok.com/wpage/index.php 글, 사진 : 이병유(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6년 3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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