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은 경주에서도 특별한 존재다. 그 속에 깃든 의미와 역사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시작된 나정(蘿井)도, 신라 사직의 종말을 고하는 경애왕의 자결이 이뤄진 포석정(鮑石亭)도 남산 자락에 있다. 무엇보다 극락정토를 염원하는 신라인의 예술혼과 신앙심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는 곳이다. 남산은 신라 역사를 말없이 지켜본 산증인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 용장골을 거쳐 삼릉으로 가는 남산 산행에 나선다. 용장골은 남산에서 가장 깊고 큰 계곡이다. 길이가 3km에 달하고 암반으로 이뤄진 풍경도 뛰어나다. 수량도 풍부해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산행하기에 좋다.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계곡이 산속으로 길게 이어진다. ‘쉬~익’ 하고 부서지는 바람 소리며, 청량하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그윽한 운치를 뽐낸다. 계곡에는 서너 명이 쉴 수 있는 커다란 바위도 제법 눈에 띈다. 본격적으로 남산의 불적을 만나는 것은 설잠교분기점에서 다리를 건너 용장사지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서다. 거친 돌길을 오르면 신우대(조릿대) 우거진 곳에 용장사지가 있다. 축대만 남아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절터지만 남산에서 손꼽히는 대가람이 있던 곳이다. 용장골의 이름도 용장사에서 비롯되었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절터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가 탄생한 장소다. 김시습은 어린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세조)의 행위에 분개해 전국을 떠돌다가 ‘설잠’이라는 법명으로 용장사에 7년간 머물렀는데, 이때 새로운 이야기(新話), <금오신화>를 저술했다. ‘금오’는 경주 남산의 금오봉에서 가져왔다. “용장골 깊어 오가는 사람 없네 / 보슬비에 신우대는 여울가에 움돋고 / 비낀 바람은 들매화 희롱하는데 / 작은 창가엔 사슴 함께 잠들었네 / 낡은 의자엔 먼지가 재처럼 깔렸는데 깰 줄 모르네 / 억새 처마 밑에서 들꽃은 떨어지고 또 피는데.” 김시습의 ‘용장사’란 시를 읊조리며 올라선 길에 머리가 없는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이 기다리고 서 있다. 일명 ‘삼륜대좌불’이라 불리는 불상이다. 쟁반 모양의 둥근 대좌 받침과 대좌를 3층으로 중첩한 모습이 이채롭다. 대좌 윗부분까지 흘러내리는 옷자락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불상의 격을 높여준다. 다만 머리가 사라져버린 탓에 우리를 향해 머금었을 온화하고 신비한 천년의 미소를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법상종의 대선사인 대현스님이 불상 주변을 돌며 예배하면 불상도 스님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뒤 바위에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茸長寺址 磨崖如來坐像)이 숨은 듯 얌전하게 새겨져 있다. 고개를 들어 산봉우리를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 가운데 석탑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있다. 용장사곡 삼층석탑(茸長寺谷 三層石塔)이다. 이 석탑을 마주하고 있으면 용장골 정상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인데, 특별한 점은 기단을 한 단만 올린 것이다. 아마도 자연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아 석탑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는 건 산 전체를 기단부로 삼았다는 얘기고, 탑에 석가모니의 뼈와 사리를 봉안한 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에 비추어보면 남산은 석가모니의 무덤이요 불국토인 셈이다. 발아래 남산의 골과 경주의 너른 들을 바라보다 문득 석탑까지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험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헉헉거리며 오르는 숨소리에 속세의 번뇌를 다 실어 보내고, 순백의 마음이 되어 청정무구한 부처님의 세상으로 들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는지. 용장사곡 삼층석탑에서 조금만 오르면 임도에 닿고, 임도를 따라 오르면 금오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나온다. 금오봉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삼릉으로 향한다. 부드러운 흙길을 밟으며 가는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건 바위 절벽에 새겨진 커다란 불상이다. 높이가 무려 6m에 달한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三陵溪谷 磨崖石迦如來坐像)이라 이름 붙인 불상은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이 도드라지고, 몸체는 얕게 새겼다. 몸을 약간 뒤로 젖혀 남산 절벽에 기대어 앉아 인간세상을 살피는 부처의 미소가 마음에 평안을 준다. 상선암에 들러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정신없이 내려가면 계곡 건너편 능선에 멋진 부처님이 앉아 있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三陵溪 石造如來坐像)이다. 당당하고 듬직한 자세가 보기 좋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의 주름이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과거에는 부처의 얼굴 아랫부분이 시멘트로 보수되어 흉물스러웠는데 지금은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서 부드러운 인상을 회복했다. 광배도 불상 뒤편에 파손된 채 방치되었던 걸 복원해 과거의 위풍당당함을 짐작케 한다. 500m 정도를 더 내려가니 근사한 삼릉계곡 선각육존불(三陵溪谷 線刻六尊佛)이 모습을 드러낸다. 앞으로 튀어나온 바위에는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본존을 향해 서 있는 협시보살상을, 뒤편의 바위에는 석가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연꽃무늬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의 협시보살상을 새겨 놓았다. 마치 붓으로 그린 듯 음각한 솜씨는 신라의 회화미술을 보는 착각이 들게 한다. 뒤쪽 바위 윗부분에는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세웠던 법당의 흔적이 남아 있다. 목적지인 삼릉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지친 발걸음에 힘을 주어 내려가는 길에 머리가 없는 불상을 만났다. 불두도 없고 두 무릎이 파손되었지만 예사롭지 않은 불상이다. 자연스러운 옷 주름과 섬세한 매듭은 당시 스님들의 복장을 유추하기에 충분하다. 체격도 건장하다. 머리가 온전하게 남아 있다면 상당히 멋진 모습이었을 테다. 머리가 없는 불상은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소나무 숲속에서 출토되어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머리가 없는 석불좌상에서 능선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돌기둥 같은 암벽에 새겨진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三陵溪谷 磨崖觀音菩薩像)이 있다. 대좌 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은 환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금방이라도 하강할 것 같은 모습이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손에 보병을 들고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남산 산행의 대미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배동 삼릉(拜洞 三陵)이다. 3기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삼릉이라 불린다. 무덤의 주인은 신라 왕조 8대 아달라이사금,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이라 전해진다. 하지만 기록이 없고 아달라이사금과 신덕왕은 700여 년의 시간차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곳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삼릉의 매력은 소나무 숲에서 찾을 수 있다. 고요함이 흐르는 정적인 분위기가 어쩐지 남산과 닮았다. 코끝에 와 닿는 솔향기도 상쾌하다. 용장골에서 출발해 삼릉에 도착하기까지 마주한 불상과 석탑을 생각하면 남산은 신라인에게 부처의 나라, 불국토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사성장 탑탑안행(寺寺星張 塔塔雁行·절은 천상의 별만큼 많고 탑도 기러기 떼처럼 솟아 있다)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은 남산을 일러 이렇게 말했다. 신라 전성기 때는 절만 무려 808군데나 되었다고 하니 일연의 말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돌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듯 불심을 담은 신라인의 예술혼이 천년이 지나도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남산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소나무 숲에 내리는 햇살도 신비롭고, 바람 소리도 “원왕생 원왕생” 하는 신라인의 축원으로 귓가에 들려온다. 포석정지 신라시대 가장 아름다운 이궁지. ‘성남이궁터(궁궐 남쪽에 있는 별궁)’라고도 한다. 현재 별궁은 사라지고 전복 모양의 돌 홈만 남아 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남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끌어들여 돌 홈에 흐르게 하고 잔을 띄워 주고받도록 했다. 잔이 홈을 따라 흘러 자기 앞을 지날 때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454-3 - 전화 : 054-750-8614 - 홈페이지 : gjfmc.or.kr/gjsiseol/main/mainPage.do - 입장료 :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 - 관람시간 : 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연중무휴 동궁과 월지 신라 왕궁의 별궁터.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외국의 사신이나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던 장소다. 연못 왼편에 건물을 두고 돌을 다듬어 석축을 높이 쌓아 직선으로 만들고, 오른편에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어 연못가가 휘어지고 꺾어지며 자연스러운 언덕이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연못 가운데에는 세 개의 섬을 조성했다. 연못은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뤄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전체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더욱 넓어 보이고 신비롭게 보이도록 한 신라 조경술의 수준이 놀랍다.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 전화 : 054-750-8655 - 홈페이지 : gjfmc.or.kr/gjsiseol/main/mainPage.do - 입장료 :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 관람시간 : 09:00~22:00, 연중무휴 앨리게스트하우스 가격과 접근성 등이 숙소 선택 기준인 여행자에게 추천하는 게스트하우스다. 도보로 대릉원 10분, 첨성대와 ‘동궁과 월지’는 20분 거리다. 객실은 1인실, 2인실, 가족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코로나19로 도미토리는 운영하지 않는다. 가족룸에만 2층침대가 놓여 있고, 모든 객실에는 싱글침대가 놓여 있다. 객실마다 도어록이 설치되어 안전성을 높였고, 샤워 시설을 갖춘 화장실도 객실 안에 두어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였다. 수건, 비누, 샴푸, 린스, 치약, 헤어드라이어 등이 제공된다. 조식은 무료로 1층 로비 한쪽에 마련된 주방에서 직접 토스트, 달걀프라이 등을 만들어 커피, 음료 등과 함께 먹을 수 있다.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106번길 12 - 전화 : 010-6211-1402 - 홈페이지 : alleyhostel.modoo.at - 가격대 : 1인실 3만5000원~, 2인실 4만5000원~, 가족룸 8만 원~ ※ 숙박요금은 변동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주휴원 오래된 시골 기와집을 한옥 숙소로 리모델링했다. 객실은 사람들이 따뜻하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황토방으로 만들었다. 요와 이불을 깔고 방바닥에 누워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잘 수 있다. 2~4인실 3개, 2~3인실 2개, 4~5인실 1개로 구성되어 있다. 화장실은 현대식으로 모든 방마다 내부에 있으며 쾌적하다. 방문을 열면 아름다운 마당 풍경이 보인다. 지붕 높이만큼 큰 목련나무 한 그루가 있고, 마당 곳곳은 화초로 꾸며져 있다. 부대시설로 공동주방과 카페를 갖췄다. 숙소 뒤쪽의 도봉서당을 거쳐 선도산을 오르는 산책길은 풍경이 예뻐 한 번쯤 걸어볼 만하다.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서악길 154 - 전화 : 010-5651-1253 - 홈페이지 : www.huewon.kr - 가격대 : (비수기) 주중 5만 원~, 주말 6만 원 / (성수기) 주중·주말 7만 원~ ※ 숙박요금은 변동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용장골 → 용장사지 →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 용장사곡 삼층석탑 →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 머리가 없는 석불좌상 →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 배동 삼릉 → 앨리게스트하우스 둘째 날 / 대릉원 → 첨성대 → 월성 → 국립경주박물관 → 동궁과 월지 ○ 대중교통 정보 [버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일반버스 505, 507번이나 좌석버스 500, 506, 508번 승차 후 삼릉 하차 ○ 자가운전 정보 경부고속도로 → 경주IC → 오릉사거리 우회전 → 포석정 → 삼릉 글 : 오주환 여행작가 / 사진 : 권대홍 사진작가 ※위 정보는 2021년 9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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