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경주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여행지였다. 고루하다는 선입관이 작용했는데, 근래 들어 흥미진진한 여행지이자 낭만의 도시로 바뀌었다. 밑바탕은 여전히 문화유산이지만 도시를 즐기는 방법이 달라졌다. 가장 주목받는 테마가 야간 여행이다. 시대와 세대를 넘나드는 밤의 신비는 고도가 간직한 옛터의 잠을 깨운다. 동궁과 월지, 계림과 첨성대, 대릉원 등이 중심이다. 보문단지도 좋지만 문화유산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시내권이 낫다. 거리가 가까워 한 코스로 엮기 알맞고, 도보 여행이나 소규모 자유 여행에 무리가 없다. 몇 차례 나눠 여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모처럼 경주에 왔다면 신라문화원의 체험 프로그램으로 시작한다. 지역 해설사가 신라의 비밀을 콕콕 짚어 들려준다. 경주는 일찌감치 해설사 문화가 자리 잡아 여행객을 밀고 당기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평소 털레털레 걸었겠지만, 백등을 들면 느낌이 다르다. 체험 프로그램에는 소원을 담은 백등 만들기가 포함된다. 백등 하나로 천년을 거슬러 신라의 달밤에 빠져든 것 같다. 덕분에 여느 체험 프로그램과 달리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나 연인이 많다. 일부러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 체험 프로그램 야간 행사는 주로 김유신, 최치원, 설총을 추모하는 서악서원을 출발지로 삼는다. 고택 처마 아래 차 한 잔 나누고 경주 이야기를 들으면 전통 공연이 이어진다. 신라 이야기를 가미한 퓨전 국악으로 세대를 넘나들며 호흡한다. 어슴푸레 어둠이 내리는 시간이라 옛 가락의 음률이 한층 청아하다. 다음은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백등에 소원을 적는 시간이다. 소원도 신라 화랑의 세속오계를 주제 삼아 적어간다. 나를 위한 소원(살생유택), 가족을 위한 소원(사친이효), 가까운 벗을 위한 소원(교우이신) 등이다. 백등의 면면에 깨알 같은 소원 문구가 새겨진다. 서악서원에서 나오면 백등에 불을 밝히고 동궁과 월지로 이어지는 고도의 밤길로 접어든다. 일반적인 코스는 동궁과 월지, 첨성대 등이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의 태자가 거처한 별궁이다. 문무왕이 삼국 통일 후 신선 사상을 담은 3개 섬(봉래․방장․영주)과 12개 봉우리(무산십이봉)의 돌을 쌓아 조성했으나, 조선 시대에 폐허로 전락했다. 《동국여지승람》은 선비들이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雁〕와 오리〔鴨〕만 날아든다'고 노래했다며, 월지를 안압지로 기록했다. 지금도 동궁과 월지보다 안압지로 기억하는 이가 적잖다. 그리 알았다면 달라진 경주를 다시 돌아볼 일이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2011년부터 안압지 대신 월지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 역시 낮보다 밤이다. 동궁과 월지는 경주 야간의 대표 여행지다. 연인들의 비율이 높을 만큼 낭만이 넘친다. 체험 프로그램과 상관없이 개인 여행자도 반드시 다녀간다. 첫걸음을 떼면 복원한 건물 3동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조명으로 웅장함이 더한다. 차례로 복원한 제1건물과 제3건물이 나타나고, 제3건물에서 왼쪽으로 돌면 제5건물이다.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걸어도 좋지만, 영상관이나 제3건물의 미니어처는 눈여겨볼 일이다. 고증을 거쳐 동궁과 월지를 재현한 콘텐츠다. 동궁과 월지의 본래 형상을 머리에 그려볼 수 있다. 월지에 물이 흘러드는 방향을 따라 돌고 싶으면 매표소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월지의 물은 동남쪽에서 흘러들어 수조에 모였다가 떨어져 연못을 채우고 출구로 빠져나간다.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 깨끗하다. 야경은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월지 북쪽에서 제3건물 쪽을 바라볼 때 아름답다. 전각과 섬, 수목의 조명이 밤의 연못에 색색으로 번진다. 북서쪽은 복원한 건물 3동을 한눈에 품을 수 있다. 그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걷거나 잠시 머무르며 밤빛의 그윽한 멋을 누린다. 월지를 바라볼 때는 바다를 그려도 좋겠다. 수중릉에 잠든 문무왕은 월지를 바다로 설정하고 만들었다. 바다를 가까이 마주한다는 임해전(臨海殿)이나 용왕전(龍王殿) 등 전각 이름이 이를 반영한다. 월지 서쪽의 첨성대 역시 아름다운 밤 산책 코스다.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만든 천문 관측대로 알려졌다. 높이 9.17m에 1년을 의미하는 365개 석재를 사용했다. 첨성대는 어둠이 주변의 대지를 집어삼킨 뒤에야 한층 우뚝하다. 그 아래에서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던 옛사람을 그린다. 천체에 대한 호기심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첨성대 남쪽은 인왕리고분군과 계림이다. 물푸레나무, 회화나무 고목과 고분이 앞뒤로 겹친다. 조명을 밝혀 초록빛이 도드라진다. 첨성대를 오가는 내내 볼거리를 제공한다. 고분의 야경을 가까이 보고 싶으면 대릉원으로 걸음을 옮긴다. 대릉원은 경주에서 가장 큰 황남대총, '천마도'로 유명한 천마총 등 고분 23기가 모여 있다. 고분 사이를 오가며 천년 고도의 숨결을 느낀다. 대릉원은 24시간 열려 있으므로 천천히 둘러봐도 좋다. 단, 천마총 내부는 오후 9시까지만 관람 가능하다. 낮 시간에는 월성 발굴 현장을 중심으로 왕경지구 유적 탐방이 유익하다. 월성은 신라 시대 궁궐터다. 성 모양이 반달을 닮아 반월성, 신월성이라고도 부른다. 신라왕궁영상관에서 출발해 발굴 현장 가장자리로 탐방로가 있다. 조선 시대 냉동 창고인 석빙고도 길목에 위치한다. 월성 발굴 현장은 월지나 첨성대에서 멀지 않다. 동궁과 월지 매표소에서 길 건너 월성 방면으로 이동한 뒤 첨성대로 이동할 수 있다. 낮에도 신라문화원의 유유자적 선비체험, 신라문화체험장, 추억의 경주 수학여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유유자적 선비체험은 선비복을 착용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자호를 정하거나 가훈을 쓰는 등 선비의 정신을 수양하는 식이다. 현재 단체손님에 한해 예약을 받고 있는 신라문화체험장은 금관 만들기, 초콜릿 만들기 등 문화재모양체험과 한지공예, 탈 꾸미기, 왕과 왕비 의복체험 등 전통체험으로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성인 단체는 추억의 경주 수학여행이 제격이다. 교복을 빌려 입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경주를 여행한다. 교외로 이동하고 싶으면 불국사나 양동마을로 방향을 잡는다. 경주를 대표하는 신구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불국사는 명불허전이다. 다시 방문할 때 보고 느끼는 게 훨씬 더 많다. 양동마을은 경주 시내에서 꽤 멀어 여유 있게 돌아봐야 한다. 그 여정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경주의 매력을 실감한다. 천년 고도가 바쁜 도시인에게 선물하는 성찰과 휴식의 시간이다. <당일 여행 코스> 풍경 코스 / 불국사→점심→대릉원→월성 발굴 현장→저녁→동궁과 월지 전통 체험 코스 / 신라문화체험장→점심→대릉원→첨성대→저녁→동궁과 월지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불국사→점심→신라문화체험장→대릉원→저녁→동궁과 월지→첨성대 둘째 날 / 파도소리길 트레킹→문무대왕릉→점심→양동마을 관련 웹사이트 주소 -신라문화원 www.silla.or.kr -경주문화관광 http://www.gyeongju.go.kr/tour/index.do 문의전화 -신라문화원 054-774-1950 -경주시청 관광컨벤션과 054-779-6077 -동궁과 월지 054-772-4041 -대릉원 054-772-6317 -첨성대(경주시 사적관리과 운영팀) 054-779-8786 대중교통 정보 -[기차] 서울역-신경주역, KTX 하루 21회(05:15~22:00) 운행, 약 2시간 10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경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17회(06:10~23:55) 운행, 약 3시간 50분 소요. *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코버스 www.kobus.co.kr 자가운전 정보 -경부고속도로 경주 IC→서라벌대로 4.8km→배반사거리 포항·시청 방면 좌회전→원화로 1.27km→동궁과 월지 숙박 정보 -베니키아스위스로젠호텔경주 : 경주시 보문로, 054-748-4848 -숨게스트하우스 : 경주시 북정로, 010-8876-2021 -가온실라 : 경주시 놋전2길, 010-2961-9009 식당 정보 -별채반 교동쌈밥 : 쌈밥, 경주시 첨성로, 054-773-3322 -도솔마을 : 한정식, 경주시 손효자길, 054-748-9232 -경주원조콩국 : 콩국, 경주시 첨성로, 054-743-9644 주변볼거리 -불국사, 파도소리길, 양동마을 등 글, 사진 : 박상준(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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