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 5학년 2학기 3단원을 통해 조선의 ‘문화’와 ‘과학’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알 수 있다. 궁(宮)의 탐사를 통해 조상들이 후대에 전해주고자 했던 소중한 과학 기술과 기구들, 건축물에 숨겨 놓은 과학의 흔적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조선의 5대 궁궐 속에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운 조상들의 과학에 대한 열정이 숨어있다. 거대한 전각들에 환호하고 아름다운 건축미에 감탄을 늘어놓을 때 조상들이 연구하고 만들어놓은 과학문화재들은 궁궐 속 구석구석 깊은 곳에 자리잡아 우리의 찬란했던 과학문명을 증언해주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과학을 존중하던 시대였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렸던 조선에 대해 과학문명을 배척했던 나라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농사를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으로 여겨왔던 조선은 풍성한 수확을 위해 농업에 필요한 과학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과학은 이렇듯 농업, 건축, 날씨의 예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백성들의 실생활에 맞게 연구되어 왔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제 5대 궁궐 속에 숨어있는 과학이야기의 실타래를 하나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자. 궁궐에는 왕과 왕비 등 왕실가족들이 생활하고 집무를 보던 전각들 외에도 왕과 왕비를 보필하는 신하들이 일을 하던 궐내각사라는 공간도 있었다. 이 궐내각사에는 내의원을 비롯하여 홍문관 승정원 등 신하들이 일을 하던 중요한 관청들이 포진해 있었으나 경복궁은 궐내각사에 있던 전각들이 거의 불에 타 사라지고 대부분 남아있지 않다. 경복궁에 현재 남아있는 수정전 건물은 궐내각사에 소속된 건물로 세종대왕 시절에 집현전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워낙 왕들이 빈번하게 드나들었기 때문에 궐내각사 건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월대가 설치되어 있다. 늦은 밤까지 책을 읽으며 연구를 하던 신숙주가 차가운 집현전 건물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을 때, 친히 이곳에 왕림한 세종대왕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잠든 신숙주에게 벗어주었던 일화는 지금까지 잘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유명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의 무대가 되었던 건물이 바로 수정전이다. 수정전을 거닐다 보면 바로 앞에 작은 표지석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장영실이 자격루를 만들었던 보루각이라는 건물이 있던 자리를 나타내는 표지석이다. 보루각은 조선의 새로운 표준시계를 관장하던 관청으로, 이 곳에서 장영실은 중국과는 다른 조선만의 독창적인 표준시계를 만들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자동시보장치가 달린 기념비적인 걸작품 물시계 자격루를 발명하기에 이른다. 장영실은 세계 최초의 측우기를 비롯하여 해시계, 대간의, 혼천의 등을 만들어 조선의 과학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위대한 조선의 과학자이다. 향원정은 건청궁 앞에 있는 정자로 고종과 명성황후가 특히나 사랑했던 장소로, 이 아름다운 정자 옆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기를 밝혔던 전기발상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전기를 일으키려면 어마어마한 발전소가 필요할 것 같은데 도대체 이 아름다운 궁궐 안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한 바퀴 향원정 주위를 돌다 보면 건청궁으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 자그마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그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건청궁과 향원정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이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를 발전시켰던 장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종이 전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에 파견된 사절단이었던 유길준 선생이 돌아와 전해준 서양문명의 발전상과 전기의 경이로움에 대한 설명 덕분이었다고 한다. 호롱불을 밝히지 않고도 밤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주는 전구의 존재를 알게 된 고종은 직접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에 부탁하여 건청궁을 밝힐 수 있도록 전기공사를 맡기게 되었다. 에디슨 전기회사는 향원정이 있는 향원지의 물을 끌어다 발전소를 건설했고, 그 결과 건청궁에는 흐릿하게 흔들리는 호롱불대신 대낮처럼 환한 전구로 불을 밝힐 수 있었다. 건청궁의 전기는 이웃나라 일본이나 중국보다 2년이나 앞선 것으로 더욱 더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인 향원정 주변을 거닐다 보면 향원정으로 흘러드는 물결이 어쩌면 이렇게 흔들림 없이 고요하게 담겨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경복궁은 과학적인 수리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경회루나 향원정 등에 고여 있는 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치를 통해 썩지 않도록 잘 관리되고 있다. 더구나 향원정의 물은 열상진원이라는 샘에서 흘러 들어와 조선시대에는 식수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맑고 차가움을 유지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열상진원샘의 차가운 물이 향원정으로 흘러 들어갈 때에 물결이 세게 일렁여 향원정의 고요한 아름다운 정적을 깰까 우려하여 열상진원샘의 물길을 두 번에 걸쳐 직각으로 꺾어 놓았다. 세차게 뻗어나가는 물줄기가 한번 꺾이고 다시 한 번 더 꺾이는 절차를 거침으로 인하여 세찬 물줄기는 일렁임 하나 없는 고요한 물줄기로 변한다. 이런 세밀한 부분까지 흔들림 없는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어낸 조상들의 과학적인 지혜로움에 다시 한 번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향원정과 경회루를 이어주는 넓은 잔디밭은 과거에 아름다운 전각들이 있던 자리로, 이 빈 공터에 예사롭지 않은 돌로 만든 기둥이 우뚝 솟아 있다. 바로 풍기대라는 것으로, 단정한 반상을 연상케 하는 기둥돌 위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진 아름다운 팔각기둥이 우뚝 솟아있고 기둥가운데에는 무엇인가를 꽂을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있다. 이 구멍에 깃발을 꽂아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알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바람의 세기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깃발을 꽂는 구멍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작은 배수구가 만들어져 있을 정도로 과학적으로 설계된 귀한 문화재이다. 경복궁의 풍기대는 창경궁의 풍기대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풍기대 중 하나이다. 18세기에 그려진 동궐도에는 바람에 나부끼는 풍기대를 표현한 그림이 그대로 남아있어 궁궐에서 매우 긴요하게 사용되었던 과학문화재였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나라의 주요한 행사를 열던 근정전앞뜰에는 보기에도 울퉁불퉁한 박석이 깔려있는 반면 창덕궁 인정전의 반듯반듯한 돌바닥과 비교되는데, 이 부분은 상당히 의아한 점이기도 하다. 근정전 앞뜰의 투박한 박석은 우리 조상들의 과학적인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유산으로 울퉁불퉁한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그대로 갖고 있는 돌이다. 그 이유는 반듯한 돌을 깔면 햇볕이 내리쬐는 날 일제히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는 반면 박석을 깔면 불규칙적인 반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빛의 반사에 있어서 보다 편안한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조정의 대신들은 비단가죽신을 신어서 매끈매끈한 돌 위를 걸어 다니면 자칫 넘어지기 쉽겠지만 울퉁불퉁한 박석 위를 걸을 때는 미끄럽지도 않고 또한 행동거지를 더 조심하게 되는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박석의 효과는 이에 그치지 않고, 비가 올 때 살짝 높은 곳에 위치한 근정전에서 물줄기가 박석을 따라 아래로 펴져 내려와 자연적으로 배수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자연적인 아름다움, 배수의 용이성, 빛의 반사등을 모두 고려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과학적인 건축 아이디어의 집합체가 바로 박석이다. 동궐도를 보면 창덕궁의 인정전에도 박석이 깔려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바뀌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일제침략기에 일본의 침략자들이 창덕궁의 아름다운 박석을 모두 걷어내고 잔디를 심어버린 데에 있다. 잔디는 죽은 자의 무덤에 까는 풀로, 침략자들은 아름다운 우리 궁궐을 그렇게 무덤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창덕궁 인정전의 박석은 1994년에 복원되었으나 박석을 구할 길이 없어서 화강암을 반듯반듯하게 자르고 다듬어 가공한 돌을 까는 바람에 과거의 아름다운 자연미를 회복할 길은 요원해지고 말았다. 궁궐은 나무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라 화재와 물, 그리고 짐승의 분뇨와 같은 물질에 매우 취약했다. 그래서 화마(火魔)를 막기 위해 주술적인 의미로 만든 청동그릇 ‘드므’에는 물을 채워 두었고, 곳곳에 화재를 막아준다는 용을 부적으로 만들어 묻어두기도 했을 만큼 많은 신경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분비물은 나무를 부식시켜 궁궐 건물을 금방 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화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궁궐을 만드는 건축가들은 새들이 궁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부시’라는 이름의 그물을 궁궐지붕에 걸어두어 새똥이 궁궐기둥에 묻는 것을 방지했으며 새가 둥지를 틀거나 궁궐건물에 앉지 못하도록 뾰족한 ‘오지창’을 달아놓아 새의 접근을 막았다. 굳이 창덕궁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궁궐을 방문할 일이 있다면 건물 지붕아래 단청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고 ‘부시’와 ‘오지창’이 어떤 것인지 직접 확인하여 조상들의 지혜로움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경복궁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22번지 -문의 : 02-3700~3900 -휴궁일 : 매주 화요일 창덕궁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 -문의 : 02-762-8261 -휴궁일 : 매주 월요일 ※ 위 정보는 2017년 2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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