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는 가을철 무를 수확하고 잘라낸 무청을 겨우내 말려낸 음식이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과거에는 무청도 버리기 아까워 이렇게 활용했다. 잘 말려둔 시래기를 별다른 식재료가 없을 때 된장국에도 넣고, 나물로도 무쳐 먹었다. 먹을 게 없을 때 만만하게 먹던 그런 음식이었다. 시래기는 그렇게 만만하고 보잘것없는 식재료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시래기의 위상이 달라졌다. 오히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시래기의 가치가 빛을 발하고 있다. 시래기는 이제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현대인의 건강을 챙겨주는 특별한 웰빙 식품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무가 주인공이고 시래기는 한낱 버려지는 무청을 활용한 음식에 지나지 않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시래기를 얻기 위해 무를 심는 시대가 됐다. 시래기무라는 품종이 따로 나왔을 정도로 시래기는 우리 식생활에 뚜렷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그만큼 시래기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도 많아졌다. 처마밑에 시래기가 주렁주렁 매달린 풍경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강원도에서 은근하고 수수한 시래기 맛에 빠져든다.백담사가 자리한 인제군 용대리는 황태의 고장이다. 그만큼 황태요리 전문점이 많다. 백담교차로에서 백담사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길목, 황태음식점 일색인 이곳에서 ‘백담갓시래기국밥’이라는 독특한 간판을 발견한다. 호기심이 발동해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 본다. 크지 않은 가게 안에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고, 한쪽은 책이 가득하다. 곳곳에는 화사한 그림도 걸려 있다. 도무지 국밥집 같지 않은 분위기다. 동행인과 익숙지 않은 ‘갓시래기’의 정체에 대해 두어 마디 주고받는데, 오너 셰프인 여주인장이 따뜻한 국화차를 내온다. “여기 오시는 많은 분들이 갓시래기에 대해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갓 삶은 시래기’냐고 묻고, 또 어떤 분들은 ‘갓 수확한 시래기’냐고 하세요”라며 미소를 짓는다. 이 집의 갓시래기는 무청이 아닌 갓을 말린 시래기를 일컫는다. 갓 하면 여수 돌산갓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강원도 지역에서도 많이 자란다. 강원도 음식점에서도 갓김치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갓은 추위에 강하고 재배하기도 쉽다. “제가 양구에서 텃밭을 가꾸며 갓을 키워봤는데, 일주일만 못 가 봐도 쑥쑥 자라 있더라고요.” 여주인장의 말이다. 귀촌한 지 오래되지 않은 그녀는 갓을 제대로 키워보기 위해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텃밭을 마련해뒀다고 한다. “현재는 갓을 제대로 수확하지 못해 품질 좋은 여수 돌산갓을 주문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제가 텃밭에서 수확한 갓을 식재료로 사용하고 싶어요.” 여주인장은 원래 음식점을 운영할 의도가 없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했는데 건강이 안 좋아져 이 지역에 왔다가 자연환경이 좋아 귀촌을 결심했다. 옛집을 개조하던 중 그래도 소일거리가 있어야겠다 싶어 살림집 한쪽에서 소박하고 건강한 음식을 팔기로 했다. 가족에게 음식을 해주던 엄마의 마음과 손맛으로 말이다. 이미 이 지역에서 황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과 경쟁을 피하기 위해 고심 끝에 선택한 메뉴가 갓시래깃국이었다. 갓을 손질해서 말리고 삶아 시래깃국으로 만드는 과정이 손이 많이 가지만, 손님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대접할 수 있어 행복하단다. 잘 손질한 갓시래기는 씹는 맛이 보드랍다. 갓 특유의 쌉싸름한 맛도 사라졌다. 기교 없는 자연 그대로의 맛이다. 구수한 갓시래깃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갓시래기정식을 주문하면 몇 가지 음식이 곁들여 나온다. 이 마을에서 나오는 싱싱한 백화고를 이용한 요리와 귀한 산초기름으로 부친 두부구이, 마늘을 듬뿍 넣은 돼지구이를 함께 맛볼 수 있다. 백화고구이에 곁들이는 기름장만 해도 직접 짠 참기름과 질 좋은 천일염을 사용한다.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과 진심을 담았다. 집밥보다 더 정성 어린 한끼 식사에 행복해진다. 시래기 하면 양구다. 양구 시래기는 전국적으로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특히나 고산 분지 지형인 양구군 해안면(펀치볼) 시래기를 최고로 친다. 일교차가 큰 청정 지역에서 자란 해안면 시래기는 부드러우면서도 구수한 맛을 낸다. 그런 까닭에 전국의 시래기 전문 음식점들이 양구 시래기를 사용하면 자랑스럽게 산지를 밝힌다. 다른 지역에서 양구 시래기를 이용한 음식을 맛볼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양구에서 시래기 음식을 맛보면 어떨까? 양구에는 시래기는 많지만 시래기 전문 음식점은 의외로 거의 없다. 그래서 ‘시래원’의 존재가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시래원은 시래기 요리 전문점이자 농촌진흥청 지정 농가맛집이다. 국토정중앙천문대로 향하는 길목의 조용한 시골 동네에 자리하고 있다. 식당 분위기도 요란하지 않고 목가적이다. 시래기 요리를 즐기기에 딱 편안한 환경이다. 메뉴는 시래기정식과 시래기닭찜이 전부다. 시래기닭찜은 하루 전 예약이 필수다. 시래기정식에는 해안면 시래기로 만든 다양한 시래기 요리가 올라온다. 시래기밥, 시래깃국, 시래기나물을 포함한 한 상이 차려진다. 시래기를 넣어 지은 밥에 양념장을 살짝 얹어 슥슥 비벼 먹는다. 시래기된장국을 넣어 비벼도 된다.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고 그대로 먹어도 좋다. 정답은 없다. 취향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반찬으로 나오는 시래기닭찜은 닭고기보다 시래기에 더 손이 간다. 달달 짭조름하게 간이 밴 시래기가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시래기정식의 마무리는 숭늉 한 사발. 시래기밥을 지어낸 솥에 끓여낸 터라 시래기가 간간이 떠다닌다. 시래기 밥상의 마무리로 제법 그럴싸하다. 춘천시외버스터미널 대로 맞은편으로 크고 작은 음식점이 모여 있다. 춘천 사람들이 즐겨 찾는 먹자골목이다. 그 골목에 ‘손수해물손칼국수’가 자리한다. 단골손님이 많은 집이다. 가게에 들어서면 대부분 해산물이 푸짐하게 들어가는 해물칼국수를 먹고 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만 시켜 먹는 별미가 있으니, 바로 시래기칼국수다. 사실 메뉴판에는 시래기칼국수가 따로 나와 있지 않다. 벽면 한쪽에 시래기의 효능을 설명하는 안내판과 함께 시래기칼국수가 적혀 있을 뿐이다.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시래기칼국수는 강원도에서 즐겨 먹는 장칼국수 스타일이다. 된장으로 맛을 내 구수하면서도 고춧가루가 들어가 얼큰하다. 된장과 시래기가 어우러져 진한 국물 맛을, 칼국수 면과 시래기가 어우러져 쫄깃쫄깃 씹는 맛을 선사한다. 질 좋은 양구 시래기를 사용한다. 시래기밥도 주문 가능한데, 하루 전에 예약해야 한다. 모든 칼국수에는 보리밥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큰 대접에 참기름을 두른 보리밥이 나온다. 무생채나물과 콩나물무침이 함께 제공되니 비벼 먹으면 된다. 이 집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별미는 매생이빈대떡이다. 매생이와 해물을 듬뿍 넣어 바삭하게 구워낸다. 시래기칼국수와 곁들이면 맛있는 별미 한 상이 완성된다. 백담갓시래기국밥 주소 : 강원 인제군 북면 백담로 8-3 문의 : 033-461-5915 시래원 주소 : 강원 양구군 남면 국토정중앙로 42 문의 : 033-481-4200 손수해물손칼국수 주소 : 강원 춘천시 충혼길34번길 12 문의 : 033-242-7330 주변 여행지 백담사 : 인제군 북면 백담로 746 / 033-462-6969 http://www.baekdamsa.org/ 박수근미술관 :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15 / 033-480-2655 http://www.parksookeun.or.kr/ 물레길 : 춘천시 스포츠타운길 113-1 / 033-242-8463 http://www.mullegil.org/ 숙소 만해마을 : 인제군 북면 만해로 91 / 033-462-2303 http://manhae2003.dongguk.edu/ 베니키아 KCP호텔 : 양구군 양구읍 파로호로 993-19 / 033-482-7700 https://www.benikea.com/hotel/infoHotel.do?hotelNo=1077 춘천베어스호텔 : 춘천시 스포츠타운길 376 / 033-245-4300 http://www.hotelbears.co.kr/ 글, 사진 : 김수진(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12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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