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에서 고성까지 DMZ의 뿌리 깊은 역사를 더듬어본다. 팔작지붕의 한옥성당, 고구려인이 쌓은 성 등 아름다운 문화재를 비롯해 전쟁도 피해간 전통마을과 천년고찰까지 우리의 얼과 소중한 문화가 가득하다. 송지호 북쪽에 들어선 왕곡 전통마을은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들이 마을 둘레를 에워싸고 있다. 이처럼 산들이 에워싸고 있는 덕에 한국전쟁 때에도 대부분의 집들은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고택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전통마을 분위기를 잘 간직하게 된 것이다.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번듯한 외관을 갖춘 집들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일단 마을 안에 들어서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 빠져든 듯한 느낌이 든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수령이 150여 년을 넘은 노송 거목 10여 그루가 솔향을 뿜으며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다. 이곳 기와집들은 방과 마루, 부엌과 외양간이 전부 한데 붙은 강원 북부 지방의 고유 가옥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구조는 추운 겨울이 긴 지방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양식이다. ● 주소 :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길 35 ● 문의 : 033-631-2120 ● 홈페이지 :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b0b683af-5a09-4ee1-95d3-66e649168ec6&big_category=A02&mid_category=A0201&big_area=32 호로고루는 개성과 서울을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당리에서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지류가 흐르면서 형성된 현무암 단애 위에 조성되었다. 호로고루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 부근의 지형이 표주박, 조롱박과 같이 생겼다.하여 호로고루라고 불린다는 설과 고을을 뜻하는 ''홀(호로)''와 ''성''을 뜻하는''구루''가 합쳐져 ''호로고루''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경기도 지역에서 조사된 고구려 관방유적 중 당포성, 은대리성과 함께 3대 평지성 중 하나이다. 호로고루 동쪽벽은 현무암대지의 동쪽 부분을 막아 조성한 것으로 가장 높은 부분이10m로 성벽 위에서는 주변지역은 물론 임진강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다. ●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 문의 : 031-839-2565 ● 홈페이지 :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19c090e9-3a91-4bf7-9d3d-aa37eaaff273&big_category=A02&mid_category=A0201&big_area=31 경순왕은 신라 제56대 왕으로 마지막 왕이다. 성은 김, 이름은 부로 신라문성왕의 6대손이며 927년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경순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국가가 후백제, 고려, 통일 신라로 분열되어 있었고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각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상태였다. 이에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고자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에 귀부하였다. 귀부후 경순왕은 태자의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43년 후인 고려 경종 3년(978년) 세상을 떠났다. 경순왕릉은 오랫동안 잊혀져오다가 조선 영조 때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신라의 왕도인 경주 지역을 벗어나 타지역에 있는 유일한 신라왕릉이다. 망국 후에 조성된 때문인지 왕릉으로서는 매우 소박하다. ●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장남로 288 ● 문의 : 031-839-2143~4 ● 홈페이지 :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62e6ad58-e915-4909-8b57-bd8d5d244f8c&big_category=A02&mid_category=A0201&big_area=31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서, 1871년 4월 24일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요구하면서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였을 때,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당시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 이하 전 용사가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웠는데, 포탄이 떨어지면 칼과 창으로 싸우고 칼과 창이 부러지면 돌과 맨주먹으로 싸워 한 사람도 물러서지 않고 장렬히 순국하였다고 한다. 이 전투 후 성책과 문루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7년 안해루, 광성돈, 손돌목돈, 용두돈과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묘, 그리고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각 등이 모두 보수 정화되었으며, 이 때 세운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가 용두돈대 위에 서 있다. 당시에 사용한 대포와 포대, 성이 잘 남아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답사 오기에 좋으며,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과 돈대의 곡선 모양이 인상적이다. ●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해안동로466번길 27 ● 문의 : 032-930-7070, 7071 ● 홈페이지 :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45d36546-5af0-4536-8b1b-e0e61c70f8eb&big_category=A02&mid_category=A0201&big_area=2 강화성당은 고요한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로 처음 지정된 이래 강화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인천지방유형 문화재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1월에 국가사적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27번길 10 ● 문의 : 032-930-4571 ● 홈페이지 :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4f2f38e7-4e19-49f3-ad34-8d2d9b19c7d8&big_category=A02&mid_category=A0201&big_area=2 백담사는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절로 가야동 계곡과 구곡담을 흘러온 맑은 물이 합쳐지는 백담계곡 위에 있어 내설악을 오르는 길잡이가 되고있다. 신라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세웠는데 처음은 한계사라 불렸으나 그 후,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가 백개 있어 백담사라 이름 붙였다. 십여차례 소실되었다가 6. 25동란 이후 1957년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는 등 역사적 곡절이 많은 절이다. 자장율사의 유물소동일좌와 인조 때 설정대사에게 하양한 칠층소형옥탑 등이 있으며, 암자로는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이 있다. 백담사 앞 계곡 한쪽으로는 무수한 돌탑이 있는데, 백담사를 다년간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쌓은 것이다. ● 주소 : 강원도 인제군 백담로 746 ● 문의 : 033-462-6969 ● 홈페이지 :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82e0a52e-ca51-4ed2-a087-c1ea1d769e65&big_category=A02&mid_category=A0201&big_area=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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