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나라들과 미국, 중국, 프랑스, 소련 등의 연합국 사이에서 벌어진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이었다. 일본은 중국 대륙을 침략하였고, 아시아와 태평양 곳곳으로 침략 전쟁을 확대하였다. 가미카제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적의 군함이나 군사 기지에 일부러 충돌하여 자살 공격을 한 일본군 비행기 부대를 일컫는 말이다. 발부리에 채이는 하찮은 돌멩이마저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감동의 제주. 이국적인 문화, 아열대 기후는 공항에 도착한 육지 손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가는 곳 마다 절경으로 아우성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제주는 우리나라 제1의 관광지라 일컬어진다. 허나 제주도의 이국적이고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 뿌려진 피와 눈물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은 여행객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가려진 우리네 부끄러운 역사의 비극을 애써 끄집어내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일 수 있겠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줘야 할 의무는 충분하다고 본다. 앞서 찾아간 제주 역사의 흔적은 아름다움만을 글로 담고자 했던 기자의 충분치 못한 역사 의식에 대한 통렬한 반성으로 다가왔다. 제주도는 관광지이기에 앞서 한국역사에서 매우 민감한 지리적 요충지였다. 일본군은 당시 침략 전쟁의 교두보로 제주도를 많이 사용했고, 전투기의 중간 보급소로 많이 활용했다고 한다. 특히나 대정지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강제노역과 각종 수탈,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한 희생을 강요 받았고 지금도 그 아픔은 선연하다. 알뜨르비행장터와 송악산에는 일제가 제주 주민 5000명을 매일 동원해 만든 비행기와 격납고 등 군사실의 흔적이 가득하고,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이라는 명분으로 무고하게 처형당한 제주 주민 132명의 유골을 수습해 한데 모아놓은 공동묘지인 백할아버지한무덤 등은 과거 일제나 우리 정부가 절대로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고, 얼마나 많은 우리네 선조 들이 그들의 과욕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는지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전쟁과 식민지의 과거. 물론 부끄럽지만 잠시도 잊어서도, 버려서도 안될 우리의 아픈 역사다. 제주섬에서 전쟁의 상처가 가장 확연히 남아있는 곳 중에 하나인 송악산. 제주시에서 95번 도로 또는 12번도로를 쭉 달려가면 나오는 송악산은 단지 감상만 하고 지나가기엔 생채기가 깊은 쓰라린 제주역사가 숨겨져 있다. 여러 개의 봉우리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진 단아한 모양이 포근한 어머니의 품처럼 여겨져 아늑하게 보이는 송악산은 정상에 올라 사방을 들러보면 대한민국 최남단인 마라도와 가파도가 한 눈에 보인다. 도보로 약 10분정도 올라가면 아직도 검붉은 화산재가 남아 있는 송악산 정상의 분화구를 볼 수 있는데 그 절경이 탄성을 자아낼 만큼 일품이다. 그런 이곳에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가 남겨 놓은 상처가 많다. 이것이 피눈물로 얼룩진 제주의 역사를 말할 때에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치는 곳이 송악산인 이유겠다.해안절벽 위의 찻길 주변에는 미국기의 공습에 대비해 파놓은 방공호가 몇 군데 있고, 절벽 아래에는 어뢰정 기지로 활용되었던 인공동굴이 15개나 남아있다. 또 인기드라마 ‘대장금’ 최종 촬영지로도 쓰인 송악산 밑 해안가에 있는 진지동굴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뚫어놓은 것으로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말해준다. 정말 아이러니컬하게도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가장 가슴 아픈 역사의 상처가 아로새겨져 있는 셈이다. 송악산 북쪽의 상모리 들녘에는 일제의 군사비행장이었던 알뜨르비행장의 흔적이 또렷하다. 일본 해군항공대 비행장이었던 알뜨르비행장은 중일 전쟁을 수행하면서 중국대륙침략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1926년 처음 계획된 비행장 건설은 1930년대 중반까지 10여년 동안 1차로 건설된다. 일본군은 1937년에 비행장 확장계획을 세워 기존 20만평에서 1945년까지 80만 평으로 비행장을 확장해 사세보의 해군항공대 2500여명과 전투기 25대를 배치했다. 가미카제호 조종사들도 이 곳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이곳 알뜨르 평야에는 과거에 펼쳐졌던 드넓은 활주로가 이제 모두 콩과 감자를 심는 밭으로 탈바꿈했지만 당시 건설된 20여개의 격납고와 탄약고 터 등이 옛 모습 고스란히 남아있다.알뜨르비행장을 가기 전에 섯알오름 밑에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예비검속'에 검거 되어 학살된 사람들 중에 132명을 학살 후 7년이 지난 후에 유족들이 유골을 수습해 공동으로 이장한 집단 묘역이 있다. 백할아버지의 한 자손이란 뜻의 ‘백조일손지묘’가 바로 그것이다. ‘조상이 다른 백서른 두 명의 할아버지 자식들’이 한날 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키어 하나가 되었으니 '한 자손'이라는 뜻이다. 1993년에 4.3사건 민간인 희생자유족회에서 위령비를 세웠다. 아직도 이곳 야산에서는 사람의 뼈가 많이 묻혀져 있다고 하나 1950년 당시 학살당했던 사람들의 유해도 아직 발굴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추사적거지와 대정향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비극 말고도 제주섬은 예로부터 유배지로도 유명했다. 특히나 한라산 서남쪽인 대정지역은 제주도에서도 가장 험한 유배지였다. 그 중에서도 대정읍성 동문 바로 안쪽에 제주도에서 추사 김정희가 몇 년간 유배생활을 한 초가가 있는데 바로 추사적거지이다. 초가는 주인댁이 살았던 안거리(안채), 사랑채인 밖거리(바깥채) 그리고 모퉁이 한쪽에 세운 모거리(별채), 제주식 화장실인 통시와 대문간, 방앗간, 정낭으로 이루어져 있다. 추사는 밖거리에서 배움을 청해오는 마을 청년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는 한편, 모거리의 작은 방에 기거하며 추사체를 완성했고 세한도를 비롯한 여러 점의 서화를 남겼다. 추사적거지는 추사체를 감상할 수 있는 작고 아담한 기념관 외에도 시대와 역사를 뛰어 넘어 학생들에게 산 교육장으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하겠다. 송악산 뒤에 있는 대정향교는 현종 1년(1835년)에 중건되었는데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적과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육을 하였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제와 초하루, 보름에 분향만을 하고 있다.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 4호로 지정된 이후 1984년 4월부터는 문명학원(사설강습소)을 열고 있으며 현재 운영은 제주도 향교 재단에서 맡고 있다. 후학들의 깨우침을 위한 깊은 가르침은 끝이 없는 듯 하다. 기암절벽을 이룬 산방산은 워낙 산 자체가 높고 해안가에 접해있어 구름이 산머리에 걸려 있거나 휘몰아치는 절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서린 곳이다. 게다가 이 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주변 해안 풍광이 무척 아름다워 영주 10경의 하나로 손꼽힌다. 산속에 방처럼 굴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산방산. 이 산은 해발 395m로 조면암이 돌출되어 형성된 종상화산체 화산이다. 산 자체의 모양도 특이하지만 이 곳에서 바라보는 해안경관은 환상적이다. 산방굴 안에는 천장에서 수정 같은 물이 떨어져 신비롭게 고이는 까닭에 수도승이 불상을 모셔놓고 수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산방산 뒤편 완만한 분지 원시림에 조성된 제주조각공원은 자연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조화로운 만남을 연출하는 곳으로서 남국의 빛과 독특한 문화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격조 높은 종합문화예술공원이다. 동양에서 가장 큰 조각공원 정문에는 공원의 상징인 삼각 타워가 세워져 있는데 철마다, 기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여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정문관을 지나 혼밭광장, 곶자왈길, 사랑의 미로, 조각광장에 이르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테마작품 160여점이 전시돼 있다. 혼이 담긴 작품들을 가슴에 담고 인공 폭포와 전망대에서 한라산과 쪽빛바다를 감상하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자연과의 조화를 꿈꾸는 아름다운 공간은 언제나 찾는 이들에게 만족감을 안겨준다. 당연히 사진촬영장소로도 그만! 안덕계곡은 산방산을 뒤로 하고 일주도로를 따라 2km쯤 떨어진 위치에 있다. 먼 옛날 하늘이 울고 땅이 진동하며 구름과 안개가 낀지 7일만에 크나큰 산들이 일어 서고 맑은 물이 암벽 사이를 휘돌아 흘러 내려 ‘치안치덕(治安治德)’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계곡. 제주도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임을 자랑하는 안덕계곡은 조면암으로 형성된 기암절벽과 함께 기슭에는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조록나무, 감탕나무, 종가시나무 등이 울울창창 숲을 이루며 하늘을 덮고 있다. 바닥에는 평평한 암반이 깔려 있으며 그 위엔 맑은 물이 쉼 없이 흐른다. 추사 김정희 등 많은 학자들이 적적함을 달래던 곳으로도 유명하며 멋스런 자태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인상적인 계곡이다. 경치가 빼어남에도 다소 덜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편이라 한적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은 여행객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대정지역 드라이브 포인트 산방산 아래 사계리에서 바닷가를 따라 4.7km를 뻗어나간 이 해안도로는 시원스런 풍경이 일품. 바닷가로 드넓은 모래사장과 바위해변이 연출하는 시원한 풍경에 누구나 한번쯤 차를 세우고 바닷가로 달려가 보게 하는 해안도로이다. 이 해안도로의 끝이 송악산인데, 정상에 서면 형제섬과 산방산, 또 멀리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기막힌 절경을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보는 일몰은 방문객에게 또 다른 느낌을 더해준다. ※ 위 정보는 2016년 9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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