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더위와 폭우의 연속이었던 2022년의 여름. 이번 여름에 오래도록 간직할 만한 추억이 없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쉽게도 에어컨 바람에 의지해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 스스로의 모습만 아른거릴 뿐이었다. 24시간 내내 스마트폰 속 SNS와 메신저로 타인과 연결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이 작은 화면 속에 가득한 다수의 사람들과의 연결이 아니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찔한 더위에 바깥만 나가면 정신을 못 차리던 그 여름도 이제는 지나갔으니, 잠시 세상과의 연결을 멈추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 보기로 했다. 온 몸의 독소를 빼내고 스스로를 정화한다는 의미의 '디톡스'. 최근에는 전자기기를 멀리하며 자신의 내면 상태를 점검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확립한다는 의미의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도 생겨났다. 스스로의 건강 면에서도 좋지만, 전기 에너지 절약 및 탄소배출 저감에도 디지털 디톡스는 제법 유효한 방법이다. 정선의 200년 세월을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지켜온 곳 상유재 여름의 끝, 디지털 디톡스에 도전해 보기 위해 찾은 곳은 정선에 자리한 품질인증 숙소 상유재. 상유재는 2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고고한 멋을 유지해온 덕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89호로도 지정된 바 있는 한옥 숙소다.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선 군청 일대에서, 상유재는 홀로 켜켜이 쌓아 둔 세월의 멋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 후문에는 거대한 뽕나무가 두 그루 세워져 있었는데, 고려시대 말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이 나무들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뽕나무이기도 하다. 문화재로서는 오래된 세월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숙소를 찾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숙소로서 낙후된 것은 아닐까 우려되기 마련. 하지만 상유재는 한국관광 품질인증 마크를 받았을 정도로 숙소로서의 기준을 지키는 일에 진심을 다한다. 가치가 깊은 건축물이니만큼, 시설의 퀄리티 유지나 보수 작업에도 여간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리라. 그래서인지 상유재는 마당부터 객실까지 그저 느긋함과 편안한 여유가 넘쳤다. 머무르는 사람도, 지켜나가는 사람도 그 누구 하나 조급함 없이 그 안에서의 시간에 녹아 들고 있을 뿐이었다. 마당 한 편에는 소박하게 지어진 카페도 지어져 있다. 영화 속 촬영지처럼 고유한 분위기를 풍기는데다, 상유재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조금은 이국적인 느낌도 들어서 투숙객이 곧잘 즐겨찾는 곳이기도 하다. 정선군 카페 도서관 1호로 지정된 이곳은 읽을거리도 제법 든든하게 구비되어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책 한권을 읽기에도 좋다. 고택의 낭만이 가득 머무는 곳 대청방 상유재는 방의 규모에 따라 대청방, 사랑방, 건너방을 예약할 수 있다. 한옥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의 경우 각 객실이 별채 건물로 나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한 건물 안에서 방을 따로 쓰는 개념으로 객실이 운영되니 이 점을 유념해서 예약하자. 이번에 다녀온 대청방은 침실에 대청 공간이 붙어있어 고택의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가장 좋은 방이었다. 가을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이 시기에 문을 활짝 열어두면 그저 마당을 내다보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침실은 깔끔한 벽지 도배로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고, 에어컨 및 장판 구비로 냉난방 시설도 충실하게 갖춰져 있었다. 화장실 역시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구성을 해두어 이용에 불편함이 없다. 마치 시골집에 온 듯 정겨운 색깔로 알록달록 개어 둔 이불이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폰을 꺼두고 고요한 방안에서 일기를 적으며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 보았다. 1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던가, 홀로 시간이 흐르는 모양을 천천히 지켜보았다. 스마트폰 없이 무슨 재미로 여행을 즐기느냐고 물어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유재에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널리 사랑받았던 우리의 전통놀이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바둑, 제기차기, 투호까지. 디지털로 모든 것이 옮겨가는 시대에서 여전히 자신들과 놀아줄 사람을 기다리는 놀이도구들을 보면서 못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목, 알까기, 바둑까지 시간이 진득히 필요한 놀이들을 즐기다보니 어느덧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멀리서 보거나, 가까이에서 느끼거나 아리힐스 스카이워크 & 정선 레일바이크 정선의 초목 우거진 자연경관을 마주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는 자연이 선물한 한반도 모양의 지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아리힐스 스카이워크다. '병방치 스카이워크'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이곳은 그 이름처럼 산을 발 아래 두고 하늘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선물해 주는 명소다. 푸른 산, 맑은 강물이 매력인 정선의 전경을 넓고 크게 볼 수 있는 곳이며 가을철에만 볼 수 있는 알록달록한 단풍 풍경이 일품이라고 허니, 푸른 여름을 놓쳤다고 아쉬워 말자. 정선 레일바이크는 레저 시설로서의 재미 뿐 아니라, 업사이클링 자원순환의 가치까지 함께 가지고 있는 관광 명소다. 2004년부터 운행을 중단한 철도 구간을 방치하거나 없애지 않고, 레일 바이크 운행 구간으로 재구성하여 새롭게 가꿔낸 이곳. 산악지형으로 인해 페달을 밟는 일이 고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잠시 넣어두자. 이동 상의 편의성을 고려해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히 구성되어 있는 코스는 힘겹다기보다 오히려 재밌게 다가올테니 말이다. 약 40분 가량 소요되는 시간 동안, 여러 산을 가로지르면서 영화 같은 풍경을 맛보는 생생한 즐거움은 그 어떤 관광보다도 짜릿하고 신선할 것이다. 어두운 터널과 숲속, 시골마을, 천변 등 페달을 밟을 때마다 펼쳐지는 다채로운 정선의 풍경들을 놓치지 말자. 흑백 세상 속에서 노동을 견디던 산업화 시대의 역군들을 기억하며 삼탄 아트마인 과거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기면서, 새로운 문화 관광지로서의 발자취를 새롭게 써내려 가고 있는 관광스폿은 정선 레일바이크 외에도 더 있다. 2001년 폐광된 탄광시설을 관광지로 다시 만든 이곳 역시, 정선의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관광지다. 산업화 시대 속 힘겨운 노동 조건을 이겨내던 광부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한 것에 더해, 꾸준한 관광객의 유치 및 지역상생을 도모하는 기획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그 가치가 깊다. 구경거리도 풍성하다. 과거 탄광시설에서의 노동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한 역사박물관과 다양한 예술 전시를 진행하는 현대미술관, 탄광시설의 잿빛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레일바이뮤지엄', 그리고 빈티지한 멋이 가득 넘치는 카페까지 시간을 충분히 두고 둘러보기 좋다. '아리랑, 아리랑' 흥겨운 노래가 절로 나오는 정선아리랑 시장 맛집, 회동집 강원도를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큰 규모와 많은 이용객을 자랑하는 정선 아리랑 시장. 과거 탄광지역일 때만 해도 정선의 인구는 무려 13만 명대에 달할 정도여서, 그간 이곳 시장에서 열린 5일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탄광산업의 쇠퇴가 만들어낸 빈자리는 관광 산업과 대중 교통수단의 발달이 메웠다. 지역 주민들의 시장이었던 이곳은 이제 전국 팔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오는 관광지로서 발돋움했다. 시장 내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든든한 한끼를 대접 중인 식당 한 곳을 찾았다. '콧등치기 국수'라는 정선 향토음식을 내놓는 메밀요리집, '회동집'이다. 메밀가루를 반죽해 칼국수처럼 만든 이 콧등치기 국수는 면발의 탄성이 워낙 좋아 후루룩 빨아 들이다 보면 그 면발이 콧등을 칠 정도라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통메밀로만 만들어 고소한 향이 일품인 이곳의 국수와, 입안 가득 풍미가 퍼지는 모둠전까지 구색 좋게 주문해서 맛보자. 옥수수로 만든 반죽을 올챙이처럼 빚어낸 '올챙이 국수'도 별미다. 수시로 올려대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으니 카메라로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두 손이 생겼고, 연일 땅 쪽을 향하던 고개를 올려보니 정선의 여유롭고 차분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밤낮없이 SNS와 메신저로 연결된 디지털 세상과 거리를 두니, 일상에 지쳐 하늘 색깔 한번, 나무가 우거진 모양 한번을 제대로 마주할 틈 없었던 나 자신의 사적인 시간이 생겨났다. 흘러가는 구름의 모양을 손가락 끝으로 따라가며, 상유재 처마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아무런 생각이나 떠올리며 흘려 보내는 시간 속에서 무엇인가 천천히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그간 잊고 지냈던 여유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총천연의 초록빛 수목이 가을의 색깔로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이번 가을, 정선에서 스스로를 위한 디지털 디톡스 여행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전자기기와 멀어진 거리만큼 아름다운 자연과 여행의 추억은 한층 가까워질 것이다. 글, 사진 : 여행작가 박지우 ※ 위 정보는 2022년 9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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