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모임, 가을이라서 더욱 할 이야기가 많다. 지난 가을산행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가 오간다. 수다가 길어질수록 가보고 싶은 산이 하나, 둘 늘어 가는데, 문제는 시간이다. 가을은 너무나도 짧다. 한 지인의 산행 이야기 속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하다. 청량산이라… 맑을 청(淸)과 서늘할 량(凉)을 되뇌었을 뿐인데, 바람 따라 마음은 이미 청량산으로 떠나버렸다.
음지는 시원하고 양지는 따뜻해서 좋다. 이런 가을은 산을 타기 좋은 시기. 누군가가 등을 떠미는 듯 문밖으로 나서기가 쉽다. 파란 하늘은 맘 놓고 떠나라며 맑기만 하다.
태백산맥이 들에 내렸다가 예안(禮安) 강가에서 우뚝하게 맺힌 것이다. 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 멧부리 두어 송이뿐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 골 안에 들어가면 사면에 석벽이 둘러 있고 모두 만길이나 높아서 험하고 기이한 것이 형용할 수가 없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이 청량을 두고 한 말이다. 팔도를 유람한 이중환에게 어떤 인상을 줬기에 그 기이함이 형용할 수 없었다고 한 것일까. 청량산을 타기 전, 들릴 곳이 있다. 청량산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한곳에 모아 전시한 '청량산 박물관'에 먼저 가보자.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한라산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이 산들도 이름을 내건 박물관이 없건만, 인지도나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 청량산은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이곳에 얽힌 이야기가 많고,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봉우리와 산의 지세에 대한 전시를 눈여겨 살펴보면 좋다. 산행하는 경로의 큰 그림을 그려가며 걷는 느낌이 감명 깊을 것이다.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청량산 옆을 비껴 흐른다. 산골을 따라 일자로 들어가면서 산세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능선이 안동과 봉화의 경계를 이룬다. 암석이 드러나는 산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청량산의 드러난 암석과 봉우리는 그 조화가 수려해 예로부터 작은 금강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한 가지만 더 숙지하고 산으로 들어가자. 조선시대 이전의 청량산은 불심이 가득한 산이었다. 봉우리 이름도 보살봉, 의상봉, 반야봉, 원효봉 등으로 지어졌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 유교식으로 고쳐졌다. 이후 퇴계 이황이 청량산 봉우리를 중국의 무이산과 연관시키면서 '육육봉'으로 부르는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해 외장인봉·선학봉·축융봉·경일봉·금탑봉·자란봉·자소봉·연적봉·연화봉·탁필봉·향로봉 등 12개 봉우리를 만나러 가보자. 산행 출발지점으로 3곳이 마련돼 있다. 이번 여정은 청량산 도립공원의 제일 안쪽의 입석에서 시작해 응진전, 어풍대, 김생굴, 자소봉 순으로 올라 능선을 타고 하늘다리를 건너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청량사와 청량정사를 지나 다시 입석으로 내려오는 구성이다. 그윽한 정취가 산길에 가득하다. 얼기설기 얽힌 나뭇가지와 풍성한 잎 덕분에 산길이 시원하다. 저 높은 정상을 언제 올라가나 걱정인 반면에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 산길에 진입하면서 오감을 통해 전해지는 산기운이다. 산속 깊이 들어갈수록 청량산은 응진전, 총명수, 어풍대, 청량정사까지 하나 둘 보따리를 풀었다. 얼마 걷지 않아 총명수라는 안내판과 바위틈으로 물이 고여 있는 장소가 나온다. 최치원이 이 물을 마시고 총명함을 얻었다는 설화가 내려오는 곳이다. 그만큼 물이 맑고, 바위틈으로 흘러내린 물은 정신이 번뜩 들 만큼 냉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곧이어 청량사가 내려다보이는 어풍대가 나온다. 금탑봉의 여러 층 중 가운데 위치한 자리로, 고대 중국의 인물 '열어구'가 바람을 타고 와서 보름 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전해져 '어풍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탁 트인 전망과 산속에 자리한 청량사를 조망하기 좋은 위치다.
이어서 주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조금 거칠다. 흙길과 자갈길이 번갈아 나타나고 거대한 바위가 드문드문 드러난 길에선 깊은 산속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꽤 높이 올라왔다고 느껴질 즈음, 김생굴이 나온다. 이곳에서 김생은 10년 동안 글씨를 연마했다고 한다. 그와 관련된 설화가 있다. 굴에서 글씨를 연마한 지 9년이 됐을 즈음 김생은 세상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떠났던 속세가 그리울 법도 했을 것이다.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어두운 굴속에서 김생은 글씨를, 자신은 길쌈을 해서 서로의 솜씨를 겨뤄보자고 제안했다. 김생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어두운 굴에서 서로의 솜씨를 발휘. 결과는 김생의 패배. 처녀가 옆에 있으니 집중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김생은 떠날 시기를 1년 더 뒤로 미루고 연마에 정진했다는 이야기다. 김생굴을 지나면 곧 주능선에 오른다. 산을 훑고 올라온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니 시원함이 그지없다. 주위는 소나무가 즐비해 향긋한 향도 기분 좋다.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이 좁은 간격을 두고 솟았다. 자소봉에 올라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다. 화창한 날에는 서쪽의 소백산, 남쪽의 주왕산, 서남쪽의 학가산이 보인다. 산세를 따라 봉우리가 이어지고 청량산의 기상이 느껴진다. 동쪽으로 맥을 따라가면 우뚝 솟은 산이 일월산이다. 가까운 탁필봉을 지나 연적봉에도 올라서서 또 다른 분위기의 풍경도 즐겨보길 권한다. 능선을 따라 자란봉 방향으로 가면 하늘다리를 만날 수 있다. 이 다리는 국내 최고 높은 곳에 만들어진 최장 거리의 현수교이다. 겉보기에는 튼실해 보이지만, 막상 다리에 발을 디디면 그 아찔함과 스릴에 절로 간이 콩알만 해진다. 손은 어느새 난간을 꽉 쥐고 있다. 다리에서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손을 잡고 싶은 이성이 있다면 청량산 하늘다리에 데려갈 것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장인봉 전망대에서 낙동강 건너로 펼쳐진 풍경을 감상한 후 청량사와 청량정사를 보기 위해 다시 한 번 하늘다리를 건너보자. 사실 한번 건너기는 아쉽지 않은가. 한번 건너봤다고 다시 건널 때에는 주위 풍경이 좀 더 넓게 보인다. 아래로 시원하게 뻗은 계곡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풍경, 그 속 하나하나가 경이롭다. 다리를 건너 갈림길에서 계곡 아래로 뻗은 뒷실고개로 진입. 산새가 조잘대는 골짜기의 그윽함이 좋다. 산 중턱의 '청량사'가 나뭇가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가까워질수록 절터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전해지고, 그 주위의 풍경이 점점 시원하게 드러나니 누가 신발에 모터를 달았는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던 발걸음이 빨라진다.
해발 870m 청량산의 약 4부 능선 즈음에 자리한 청량사를 중심으로 한 폭마다 봉우리가 그려진 병풍이 둘러졌다. 청량산이 말할 수 없는 기이함으로 가득하다면, 청량사 풍경은 형용할 수 없는 고즈넉함으로 가득하다. 녹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숲은 보는 것만으로 눈이 맑아지는 것 같고, 듬성듬성 드러난 바위마다 표정이 담겼다. 이번 여정의 동선이 풍경 속에서 도드라진다. 기암의 층간을 걸었고 멀리 보이는 자소봉의 오른편으로 올라갔으며 왼쪽으로 능선을 타고 뒷실고개를 따라 내려오는 선이 그려진다. 나무그늘에 앉아있는 동안 무념무상의 시간이 흐르고, 일어났을 때에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 (663)에 창건된 고찰로,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 주위로 20여 개의 암자가 있었다는 설에서 청량사가 불교의 요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봉우리 이름이 유교적 의미를 담은 명칭으로 바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이 청량사에도 이어져 산사 규모가 축소됐다고 한다. 곳곳에 연꽃이 핀 항아리가 있다. 수십 장의 꽃잎 속 노란 수술이 마치 어풍대에서 바라본 산 중턱의 청량사 같다. 다음 목적지는 청량정사이다. 이황은 이곳에서 숙부이자 안동부사를 지낸 송재 이우 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이후 과거급제하며 벼슬생활을 하는 틈틈이 이곳을 찾아와 학문에 정진했다. 벼슬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온 후에도 제자와 함께 청량산을 자주 찾았다. 그에게 청량산이 어떤 의미였는지 '산을 바라보며'라는 시조에서 엿볼 수 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구름 메(산) 없으리오 청량산 육육봉이 경개 더욱 맑노매라 읍청정 이 정자에서 날마다 바라보니 맑은 기운 하도 하여, 사람 뼈에 사무치네 이황은 청량산을 '우리 집안의 산'이라는 뜻의 '오가산(吾家山)'이라 불렀을 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또 스스로 '청량산인'이라 했고, 청량정사는 오산당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스승의 마음을 후학이 몰랐을 리 없다.
순조 32년에 이황의 후학이 모여 스승이 머물며 학문을 연구하던 자리에 청량정사를 세웠다. 그 후로 수많은 학자가 이곳을 찾아왔으며, 이황을 존경하는 선비들은 청량산을 유람하며 시를 짓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조선시대 성리학에 큰 획을 그은 이황이 어릴 적부터 늙을 때까지 즐겨 걷던 그 길 위, 선비들은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청량산은 이미 자연이 완성한 작품이다. 여기에 고즈넉한 산사와 이황의 산 사랑이 어울렸으니 따로 매력 타령이 가당키나 하겠나 싶다. 산행을 마치니 건조했던 마음을 누가 다독였는지 촉촉하다.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영주IC → 봉화읍 → 유곡삼거리 → 명호면 북곡리 → 청량산 도립공원 남안동IC → 도산서원 → 청량산 도립공원
2.맛집
솔봉이 : 송이돌솥밥, 송이전골, 054-673-1090 인하원송이식당 : 송이돌솥밥, 054-673-9881 봉화송이식당 : 소고기 송이국밥, 054-673-4788 시골밥상 : 시골밥상, 054-673-4459
3.숙소
무진파크 :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054-673-9988 궁전모텔 :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054-674-0300 JS모텔 : 태백시 문곡소도동, 033-553-6659 동아모텔 : 태백시 황지동, 033-552-2365
-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안정수 취재기자( ahn856@gmail.com )
※ 위 정보는 2012년 10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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