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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西歸浦). 누군가가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뜻이겠는데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름이다. 서귀포는 늘 같이 다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칠십리'라는 말인데 서귀포와 붙여서 '서귀포 칠십리'로 많이 쓴다. 식당에도 호텔에도 꽃집에도 주유소에도 온통 칠십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귀포를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냇물에 연외천과 동홍천이 있다. 연외천은 천지연폭포가 되고 동홍천은 정방폭포가 되어 바다로 들어가는데, 이 두 냇물 사이에 있는 문화자원을 이어서 길을 냈다. 걸음마다 그림과 시와 글씨를 만나게 되는 길, 작가의 산책길이다. 걸음은 화가 이중섭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가들 중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고, 각자 다른 그림을 그렸지만 우리의 미술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화가들이 있다.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1913~1974), 우리 민족의 서정을 서양화로 표현한 화가 박수근1914~1965), 강인하고 굵은 선감의 화풍으로 근대 서양화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이중섭(1916~1956) 등이다. 태어난 것은 세 사람 중에서 이중섭이 제일 늦었지만 저 세상으로 돌아간 것은 이중섭이 제일 빠르다. 불혹을 막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이중섭의 인생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부농의 집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일본으로 유학하고, 자신을 사모하여 원산까지 찾아온 일본 여인과 혼인해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던 시기. 광복이 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피난길에 올라 생활은 어렵지만 가족이 함께 생활하던 시기.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혼자 남아 생활고, 외로움, 절망감이 겹쳐서 좌절하다가 끝내 세상을 떠난 시기. 이렇게 세 시기 중 고향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림을 그리던 시기가 이중섭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피난길에 올라 부산으로 내려왔다가 제주도 서귀포의 한 농가에 자리 잡아, 생활은 어렵지만 가족들이 함께 했던 시기도 돌아보면 행복하지 않았을까? 이런 서귀포와의 인연으로 이곳에 이중섭미술관이 생겼다. 우선 미술관부터 돌아본다. 전시관에는 교과서나 도판에서 보던 중섭의 그림은 없다. 하기는 그림 값이 얼마인데... 은박지 그림들을 따라가던 걸음은 중섭과 부인 마사코(한국 이름 이남덕)가 주고받았던 편지 앞에서 멈춘다. 이중섭과 마사코는 서로를 '아고리'와 '아스파라거스군'으로 부르며 절절한 사랑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아고리'는 '턱이 긴 이씨'라는 뜻인데 이중섭의 애칭이었고 '아스파라거스군'은 부인 마사코의 애칭이었다. 서로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주고받던 두 사람이었지만 1953년 잠깐의 해후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미술관을 나서서 돌 위에 앉아있는 이중섭 동상을 지나면 가족이 자리 잡았던 농가가 여전히 남아있고 가족이 생활 했던 아주 작은 단칸방도 그대로 있다. 이중섭 가족이 머물던 방은 1.9평의 부엌과 붙어 있는 1.4평의 작은 방이다. 이곳에서 네 사람이 생활했다니 애잔한 마음이 든다. 이중섭거리를 지나 기당미술관으로 간다. 작은 공원 사이로 낸 걷기 좋은 길을 따라 천지연폭포 위쪽에 걸린 서귀교를 건너면 칠십리시공원이다. 시공원으로 접어들면 우선 기당미술관을 다녀오는 것이 순서다. 기당미술관은 제주가 고향인 재일교포사업가 기당 강구범이 건립하여 서귀포시에 기증한 미술관이다. 1987년 개관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시립미술관이라고 한다. '황토빛 제주화'라는 독창적인 화풍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화가 변시지(1926~2013)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고 특별전도 열고 있다. 기당미술관 아트라운지에는 격자로 나눈 넓은 창이 있다. 이 격자창으로 보는 한라산의 풍광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기당미술관에서 다시 칠십리시공원으로 돌아온다. 잘 정비된 공원의 구획을 나누는 조경수로 치자나무를 심어 각이 지게 다듬었다. 치자나무는 늘 푸른 나무이며 잎이 넓고 키가 작은 나무다. 꽃은 흰색으로 피는데 여섯 장의 꽃잎이 홑꽃으로 피는 종류도 있고 장미를 닮은 겹꽃으로 피는 종류도 있다. 겹꽃으로 피는 종류를 '꽃치자'라고도 부른다. 치자꽃의 향은 오래 전부터 사랑을 받았는데 향수 종류중의 가드니아(Gardenia)는 치자향을 베이스로 만든 것이다. 치자꽃의 학명이 'Gardenia jasminoides'다. 전설적인 미국의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는 무대에 설 때면 머리에 치자꽃을 꽂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칠십리시공원에는 시를 돌에 새겨서 군데군데 세워 놓았다. 길을 걸으며 돌에 적힌 시를 읽는다. 제주의 시인 양중해의 시비 앞에 선다. '마라도'라는 시다. 작곡가 변훈이 곡을 붙인 '떠나가는 배'도 양중해 시인의 작품이다. 박재삼의 '정방폭포 앞에서',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박목월의 '밤구름', 구상의 '한라산' 등을 읽는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으니 걷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시를 읽지는 못한다. 사실 길에서 만나는 시를 하나하나 모두 읽고 가더라도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는 않겠지만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탓이다. 칠십리시공원 깊숙한 곳에는 천지연폭포와 한라산이 한 눈에 잡히는 전망장소가 있다. 작은 정자도 있어 쉬어가기에도 좋다. 배낭을 벗어놓고 사진 몇 장을 담는다. 한라산 정상으로 연무가 끼어 또렷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다. 조금 전에 읽고 온 구상 시인의 시를 스마트 폰으로 찾아서 다시 한 번 읽는다. 漢拏山(한라산) - 구상 內焰(내염)을 고이 끝낸 시인의 하품. 정숙한 지어머니의 희어진 머리. 태초로부터 明暗(명암)을 이겨온 實 存(실존) 인연의 선악에도 자유로운 不動(부동) 國土神(국토신)의 離宮(이궁) 칠십리시공원 끝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천지연폭포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천지연폭포는 다른 기회로 접어두고 칠십리교를 건넌다. 이곳은 다리 이름도 칠십리다. 서귀포에서 칠십리가 차지하는 비중을 알만하다. 서귀포 칠십리의 역사적 사실은 1653년에 발간된 탐라지에 '서귀포는 정의현청-지금의 표선면 성읍마을-에서부터 서쪽 70리에 있다.'는 기록에서 찾는다.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 서귀포 칠십리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남인수의 '서귀포 칠십리'라는 노래가 발표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조명암이 노랫말을 짓고 박시춘이 곡을 붙인 이 노래가 인기를 얻게 되면서 '서귀포 칠십리'는 서귀포의 아름다움과 애틋한 그리움 등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서귀포 칠십리의 가사는...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휘파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황혼이 온다 (1절) 걸음은 서귀포항 입구에서 자구리 해안으로 이어진다. '자구리'는 '소를 잡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소를 잡는 곳에 반드시 물이 있어야 했는데 자구리 해안에는 물이 솟아나는 곳이 있어 소를 잡는 도축장으로 알맞은 장소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자구리 해안에는 민물이 나오는 담수욕장이 있다. 자구리 해안 언덕에는 이중섭이 은박지화를 그리는 모습을 형상화 해 놓은 조형물이 있다. 중섭은 자구리 해안에서 가족과 함께 게를 잡으며 놀다가 잡은 게를 집으로 가져와 반찬을 해 먹었다고 한다. 중섭이 게 그림을 많이 그린 것은 자기가 잡아먹은 게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자구리해안 끝에서 만나게 되는 곳이 서복전시관이다. 서복은 서불이라고도 불리는데 중국 진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초를 찾아 제주도의 한라산을 찾았다가 정방폭포 바위벽에 '서불과지'(徐巿過之-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암각글씨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도 '서불이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편 남해군 상주면에도 '서불과차(徐市過此)'로 읽는 암각글씨가 남아있는데 내용은 정방폭포의 것과 같다. 또 서불이 남긴 것으로 알려진 암각글씨는 일본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불 일행이 우리나라 남해와 제주를 거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서복전시관을 지나면 정방폭포 입구다. 정방폭포는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다. 이곳도 다른 기회로 접어두고 소정방폭포로 향한다. 소정방폭포는 이름대로 정방폭포의 축소판이다. 한 여름 물맞이를 하던 곳이라지만 지금도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소정방폭포를 돌아 나와 소암기념관으로 간다. 2008년에 개관한 소암기념관은 서귀포 출신의 서예가인 소암 현중화(1907~1997)의 업적과 그의 주요 작품들을 살필 수 있는 미술관이다. 소암은 20세기 우리나라 서예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데, 모든 서체에 능했으며 특히 초서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소암기념관에서 가던 길로 조금 더 가면 처음 출발했던 이중섭미술관이다. 이중섭이 살았던 집 마당에는 그늘 좋은 나무가 있고 나무 아래에는 정자와 나무 평상이 있다. 그늘로 들어 앉아 지금껏 걸어왔던 길을 되새겨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코스요약 -걷는 거리 : 6.5km -걷는 시간 : 2시간 30분(순 걷는 시간. 답사시간, 간식시간, 쉬는 시간 등은 포함하지 않음). 이 길은 미술관, 전시관, 기념관 등이 노선 상에 위치하고 있어 이들을 모두 찾아보려면 시간을 훨씬 많이 잡아야 한다. -걷는 순서 : 이중섭미술관 ~ 유토피아 커뮤니티센터 ~ 기당미술관(1.8km) ~ 서귀포칠십리시공원 ~ 천지연폭포 입구(3.1km) ~ 자구리해안 ~ 소남머리 ~ 서복전시관(4.4km) ~ 정방폭포 입구 ~ 소정방폭포(5.2km) ~ 소암기념관 ~ 이중섭공원(6.5km) -난이도 : 쉬움 교통편 -찾아가기 * 제주 공항에서 600번 리무진 버스를 타고 서귀포시 뉴경남호텔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약 1시간 20분 소요) 버스가 가던 방향으로 600m 정도 걸으면 이중섭미술관이다. * 제주 공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제주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다. 제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516도로방면 시외버스를 타고 서귀포시 동문로터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약 2시간 소요) 600m 정도 걸으면 이중섭미술관이다. -돌아오기 찾아가기의 역순이다. 걷기 여행 Tip -화장실 : 화장실은 각 답사처와 걷는 길 중간에 불편하지 않게 있다. -음식점 및 매점 : 이중섭미술관 부근, 천지연폭포 입구, 자구리공원 부근, 서복전시관 부근 등은 음식점과 매점 밀집지역이다. -숙박업소 : 이중섭미술관 부근은 숙박업소 밀집지역이다. -코스 문의 -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064-760-2481~2484 - 서귀포 문화예술포털 작가의 산책길 http://culture.seogwipo.go.kr/artroad/ - 작가의 산책길 카페 http://cafe.daum.net/wkrrkdmltkscorrlf - 작가의 산책길 064-732-1963 출처 : 한국관광공사 레저관광팀 (두루누비 durunubi.kr/ ) 글, 사진 : 김영록 (걷기여행가/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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