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 경주는 5학년 2학기 1단원에 소개된 ‘우리 역사의 시작과 발전 ’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삼국시대 신라의 수도였다. 천년동안 한 나라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다했던 경주가 간직하고 있는 유적은 과히 경이로울 정도이다. 어떤 사람들은 경주에 서너 번 다녀온 뒤 경주에는 뭐 볼 거 없다고 한다. 하지만 경주는 아무리 여러 번 다녀도 가보지 못한 곳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알면 알수록 더 많은 갈 곳이 생기는 신비로운 도시이다. 하나 하나 경주의 유물과 유적에 담긴 의미를 일일이 찾으면 그 내용과 깊이와 역사를 감지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이런 경주의 수많은 유적 유물들 중에서도 그 특이함과 한적함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는 곳이 현 경주의 중심부에서 비껴난 양북면의 골굴사와 기림사이다. 흔히 경주 동해안을 보기 위해 감포의 대왕암과 감은사지를 들르는 경우는 많아도 오가는 길에 일부러 이 사찰들을 찾는 이들은 많지 않다. 길이 험하지도 않고 한참 걷는 일도 없으니 산책하며 천천히 구경하기엔 좋은 곳들이다. 골굴사는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골굴사는 경주의 최고 오래된 유서깊은 사찰로 꼽히는데, 불국사와 석굴암 보다 앞서 건축된 것은 물론 이웃해 있는 기림사보다도 미리 세워진 사찰이기 때문이다. 골굴사는 1천500여년 이전에 세워졌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6세기 무렵 신라시대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약반전산에 12개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했다. 신라의 고승 원효가 입적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지만 아직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원효가 분황사에서 고선사를 거쳐 골굴사와 기림사로 왔다는 기록들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골굴은 드물게 보는 자연 석굴이다. 유명한 석굴암조차 인공석굴인걸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대단히 희귀한 쪽에 속한다. 이곳을 아는 사람들은 골굴이 그리 유명하지 않은 걸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보물과도 같은 장소를 나만 알고 있다는 여행자의 어린 이기심인 걸까. 골굴암은 경주 함월산 기슭 거대한 석회암 12군 데에 석굴을 파고 불상을 모셨던 곳이지만, 지금은 대개 굴을 판 흔적이 있고 가장 높은 곳의 마애불만 남아 있다. 조선시대의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골굴석굴도 에는 마애불을 목조건물이 덮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걸로 보아 조선중기까지도 잘 보호되고 있었던 듯하다. 높이 4m, 폭 2.2m정도의 이 마애불은 석회암 성질 때문에 쉽게 풍화되어 떨어져 나간 부분이 많아, 훼손을 막기 위해 머리 위쪽에 둥근 모양의 투명한 보호 각을 설치하였다. 그러고 보면 파고 들어가기도 쉽지 않은 석회암이 이 작은 산중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이 마애불과 석굴들을 보려면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석회암군을 지그재그형으로 돌아가는 위태로운 길을 돌아야 한다. 무섭거나 위험하지는 않으니 여기서도 작은 재미를 느껴볼 만하다. 재미있는 것은 마애불 오르는 길 옆 안내판에도 쓰여 있는 남근바위와 산신당의 여궁이다. 수련장 오른 계단 끝 왼쪽 숲에 있는 남근바위와 산신당으로도 불리는 여근바위는 삼신을 빌어 자식을 기원하는 이들이 예부터 줄을 이었다고 한다. 부녀자들이 남근상을 참배한 뒤 여근바위 앞에서 밤새 기도하면 소원성취의 증표로 여궁에 정수(精水)가 가득 고였다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하여간 토속 신앙의 잔존으로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경주 사람들은 기림사를 많이 찾지만, 외지에서 온 여행객들은 기림사를 잘 모른다. 일단 교통이 불편하고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누구나 잘 아는 불국사조차 이 기림사의 말사에 불과할 정도로 예전에는 잘 나가는 사찰이었다. 이 일대의 최대 거찰로서 전국 31본산 중 하나였던 기림사는 교통의 불편과 불국사의 대대적인 복원 등으로 쇠퇴하여 지금은 거꾸로 불국사의 말사가 되었다. 기림(祇林)이란 이름은 석가모니가 제자를 가르치고 중생을 교화하면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원정사의 숲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사찰은 643년(선덕여왕 12)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져 오지만, 확인할 증거는 없다. 다만 <삼국유사> 에 682년 감은사 앞바다에서 만파식적을 얻은 신문왕이 왕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절 냇가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있던 고찰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답사객이나 여행객들에게는 기림사 진입로의 숲이 잘 알려져 있다. 비록 200여m에 불과한 짧은 거리지만 길을 걷는 동안 속세를 떠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운치가 있다. 사찰의 구조는 옛 건물들이 있는 부분과 그 옆 약간 위쪽으로 신축한 경내로 나누어져 있다. 옛 기림사는 호젓하고 운치가 있다. 옛 기림사 뜰에는 17세기의 건물인 대적광전, 18세기 이후의 것인 응진전을 비롯한 조선시대의 목조 건물들이 있으며, 승병활동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남루, 신라 말기의 석탑인 작은 3층 석탑, 500여년 된 보리수나무 등이 남아 있다. 기림사 유물박물관에는 기림사에서 나온 각종 유물들과 건칠보살반가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건칠보살반가상은 종이로 만들어 옻칠을 한 특이한 보살상이었지만, 지금은 금칠을 해 놓아 본래의 모습과 분위기를 찾기가 어려워 안타깝다. 대좌 아래의 먹글씨로 미루어 1501년(연산군 7)의 것으로 추정된다. 기림사 진입로 옆으로는 조용한 계곡이 있다.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아 대체로 조용하며, 길 따라 300m 쯤 가면 감로암이 있고, 계곡을 따라 500m 쯤 가면 용두연이라는 곳이 있어 취사나 야영에 적당하다. 골굴사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101-5 골굴사 -문의 : 054-744-1689 http://www.golgulsa.com/ 기림사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419 -문의 : 054-744-2292 http://www.kirimsa.net/ ※ 위 정보는 2016년 9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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