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된 나무 마루를 밟는 기분은 묵직하고 오묘하다. 이 마루에 위인들이 앉아 지기의 안부를 묻고 사상을 정립하고 정사를 논했다. 수백 년 세월을 숨 쉰, 검은 윤이 반질거리는 마루에 앉아 바람을 맞는 일. 삶을 달래는 명약이다. 안동, 아름다운 고택을 찾아 나섰다. 밤, 쪽문을 열고 방 안으로 바람을 들였다. 숲의 수천 나뭇잎이 빗물을 튕기는 소리, 상새, 소쩍새, 뻐꾸기의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함께 들리는 순간은 벅차고도 잔잔하다. 새벽에 눈을 떴다. 여명부터 날이 밝는 순간까지, 구름에 리조트의 가장 높은 곳인 박산정에서의 풍경을 보겠다고 다짐한 터다. 툇마루로 나가면 아스라이 아름다운 풍경에 잠은 산 너머로 달아나고 구름 속으로 녹아든다. 밤새 비를 맞은 숲은 청연하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습기 가득한 공기를 명징하게 울린다. 발아래 펼쳐진 고택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다. 처음 둥지 튼 자리가 댐이 되고 여기로 옮겨진 오래된 나무들의 짜임. 기와, 처마,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담 아래 시절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을 주섬주섬 마음에 새기면 어느덧 아침이다. 약속한 누군가가 하염없이 나타나지 않아도 감사할 만한 풍경이다. 구름에 리조트는 계남고택, 칠곡고택, 박산정, 서운정, 청옹정, 팔회당재사, 감동재사 등 총 7개의 고건축물을 고스란히 옮겨와 조성한 한옥 리조트다. 각 고택은 세월만큼 깊은 이야기를 저마다 품었다. 이 중 하룻밤을 묵은 박산정은 1600년대 건축물로 조선 선조 때 공조참의를 지낸 이지(李遲,1560~1631)가 학문 수양을 위해 건립한 정자다. 리조트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박산정(博山亭)은 이지의 호로, 원래 안동시 와룡면 도곡리에 있다가 안동댐 건설로 고지대인 상전마을로 옮겨졌고 2005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툇마루를 중심으로 작은방 두 개가 나란히 배치된 구조다. 검박한 선비의 방에는 횃대, 서안, 소반 등이 소담하게 놓였다. 광목으로 홑청을 두른 요와 이불은 아기를 재우는 할머니의 손길처럼 포근하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게 멍하게 지내거나, 리조트 내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전통체험(다도, 가양주 빚기, 한복 입기, 고추장 만들기 등)에 참여하거나, 리조트 아랫길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이곳을 누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하루가 짧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 귓속말 Tip 아침은 꼭 먹자. 평민은 입에도 못 댔다던 북어 보푸라기가 밑반찬으로 나오는 정갈하고 건강한 한 상을 낸다. 조식 시간은 8시부터 9시 30분까지. “계세요?” 인사하고 들어서자 제비가 먼저 객을 맞는다. 사랑채 처마에 둥지를 튼 제비는 ‘입 구(口)’자로 뚫린 하늘로 바삐 날아오른다. 집은 주인을 닮는다.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은 학봉 김성일 선생이 500년 전 지은 집은 현재 종손과 종부가 돌본다. 집 지은 이의 고결함이, 집 지키는 이들의 따뜻함이 집안 가득 조화롭게 스몄다. 종부 이점숙 여사는 학봉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 있는 집에서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모시는 진짜 종부다. 더러 맏집주손에게 종부라 칭하는데, 안동에서는 안 될 일이다. 투숙객 외에 한 해 2300여 명의 손님을 맞는 종부의 내공은 깊다. 투숙객이 들면 먼저 안동 식혜와 손수 만든 정과를 대접한다. 모과, 사과, 딸기, 무, 수삼, 박을 얇게 썰어 각각 꽃잎 모양으로 만든 정과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다. 이외에 마로 만든 다식, 곶감, 한과를 곁들여 오합, 인원이 많을 경우 칠합에 정성껏 차려낸다. 단연, 태어나서 맛본 정과와 다식 중 가장 맛있다. 방은 행랑채, 상방, 작은 사랑, 안채, 윗방, 종택의 동쪽에 외따로 떨어진 풍뢰헌까지 총 10개. 가장 좋은 방은 단연 풍뢰헌이다. 모란이 만발한 푸른 잔디 마당, 노송과 500년 된 모과나무까지 대청에서 한눈에 드는 풍경이 아름답다. 안채에 머문다면 누마루에서 고즈넉한 정취를 즐기는 것도 좋겠다. 누마루에는 꼭 보아야 할 귀한 물건이 있다. 학봉 선생 길제에만 펼친다는 10폭 병풍이 그것인데, 퇴계 이황 선생이 학맥의 적통을 잇는다는 의미로 하사한 병명의 글씨를 종부가 5년에 걸쳐 수를 놓았다. 종택 내 운장각도 꼭 둘러보아야 한다. 1만 5000여 점의 학봉 선생의 진품 유물을 소장하고 있고 이 중 503점은 중요 문화재다. 종손 김종길 선생과 동행해야 관람이 가능하다. 육중한 철문이 철컹 열리고, 빛바랜 고서들이 도열한 풍경을 마주한 순간은 마법에 걸린 듯 경이롭다. ✔ 귓속말 Tip 외국 손님이 투숙할 경우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심어주고자 종부가 손수 아침을 차리신단다. 종부의 손맛이 궁금하다면 외국인 친구와 동행하는 것도 좋겠다.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의 야트막한 동산의 꼭대기에는 오솔길이 반달 모양으로 이어진다. 오솔길 옆으로는 소나무 수천 그루가 병풍처럼 도열했다. 이 아름다운 경치가 품어 안은 곳이 이상루다. 안동 고택 이상루는 안동 김씨 시조를 모시는 재실로 1년에 한 번만 쓰고 문을 닫았다. 황토집은 사람과 함께 숨을 쉬어야 사는데 제사가 있는 10월 초아흐레, 단 하루만 온기가 채워지니 집이 자주 망가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시청은 이신자 관장에게 집을 돌보고 서후면 일대를 문화관광지로 활성화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재실은 온기로 채워졌다. 벌써 9년 된 이야기다. 길가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초입으로 들어서는 순간 탄성이 터진다. 길고 높은 소나무 군락, 150여 종의 꽃 중 시절 맞춰 핀 꽃이 알록달록 수놓은 축대, 그 위로 드높게 솟아 있는 이상루를 마주하면 꿈꾸듯 비현실적인 느낌이다. 작은방 1개, 사랑방 1개, 중간방 7개, 매난국죽으로 이름한 VIP실이 4개로 투숙이 가능한 방은 총 13개. 총 수용 인원은 80명 정도지만 사람이 많을 경우 누마루에도 자리를 깐다. 이상루 누마루는 영화 ‘광해’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주인공인 광대 이병헌이 왕을 풍자하는 공연을 펼친 곳이 여기다. 300년 된 누마루의 삐걱거리는 창문을 열면 노송 수천 그루가 정승처럼 선 솔숲과 150년 된 연못이 한눈에 든다. 이신자 관장이 직접 차린 아침 식사에 반해 재방문하는 객이 많다. 가족 단위나 개인이 투숙할 경우 안동 양반식 겸 약선식으로 27첩 반상을 꾸린다. 인삼꽃, 참죽, 두릅, 신선초 등으로 만든 장아찌와 국, 간고등어, 명태 보푸라기, 가오리찜 등으로 구성한 푸짐한 아침상의 가격은 1만원. 이렇게 차려내면 뭐가 남느냐는 질문에 “밥해주고 만날 천날 밑지지 뭐”라고 답하지만, 그녀의 웃음 속에는 자부심과 따뜻한 애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 귓속말 Tip VIP 객실 중 매화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연못, 축대의 야생화, 초입의 소나무까지 한눈에 든다. “한옥이라 숨길 데가 없어 어설퍼요”라고 이불 홑청과 수건을 삶아 너는 맏집주손 장복수 여사는 수줍게 웃는다. 지나친 겸손이다. 오래된 집은 소담하고 정갈하다. 마당, 사랑채, 안채 앞 장독대, 담장 아래 구석구석까지 집을 가꾸는 이의 정성이 깃들었다. 치암고택은 조선 고종 때 언양 현감과 홍문관 교리를 지낸 치암 이만현 선생이 낙향해 지은 고택이다. 안동댐 수몰 지역인 도산면 원촌리에 있다가 1976년 지금의 자리로 이건했다. 치암은 유난히 형제애가 좋아 형제들 집을 다 지어주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을 지었다. 그 탓에 여력이 없어 별당을 따로 내지 못하고 작은 사각마루를 사랑채 옆 툇마루와 연결했다. 이 작은 사각마루가 이 집의 백미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휘휘 도는 바람이 포근해 하염없이 머물게 된다. 머무를 수 있는 방은 상방, 중방, 안방, 사랑채, 행랑까지 총 10개. 한 번에 30~35명까지 수용 가능한 규모다. 가장 좋은 방은 사랑채로 방 하나만 써도 되고 툇마루까지 연결해 독채로 쓸 수도 있다. 사랑채와 툇마루 벽면에는 퇴계 이황을 비롯해 조선시대 문인들이 이 집을 방문해 쓴 글씨들이 빼곡하다. 말 그대로 글로 도배한 방이다. 올해부터는 고택에서의 다양한 전통체험이 가능해질 예정이다. 고택협동조합에서 예산을 받았고 현재 어떤 종류의 체험을 꾸릴지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다. ✔ 귓속말 Tip 맏집주손이 이불을 손수 짓는다. 정성이 어린 만큼 깨끗이 사용하길. 뒷마당에는 예쁜 페르시안 고양이 ‘묘리’가 산다. 안동 여행은 크게 다섯 권역으로 나뉜다. 하회마을 권역, 동남부 권역, 도산서원 권역, 그리고 숙소가 있는 봉정사 권역과 안동댐(시내) 권역이다. 학봉고택과 이상루는 봉정사 권역, 구름에 리조트는 안동시내 권역에 들고 치암고택이 두 권역 사이에 위치한다. 시내 권역은 안동문화관광단지로 조성됐다. 지근 거리에 여러 개의 박물관, 월영교, 호반 둘레길, 민속촌 등이 모여 있어 도보여행자라도 불편이 없을 정도다. 봉정사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 자락에 자리한 절이다. 672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극락전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국보, 바로 옆 조선 초기 건축물인 대웅전은 국보로 지정됐다. 요사채로 쓰고 있는 고금당과 화엄강당이 보물로, 고려시대 때 축조한 3층 석탑과 만세루가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축물이 나란히 있고 절 내 대부분의 건축물이 보물과 국보라 둘러보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5월이면 삼층 석탑 앞 담장 곁으로 사람 키 높이의 불두화가 만개한다. 하얗고 말갛게 핀 꽃 너머 보이는 상산(537m)의 산세가 아름답다.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안동에 유난히 과거 급제자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단다. 문화해설사에 의하면 시험 관련 기도는 기가 막히게 들어준다는 주인공이 이천동 마애여래입상이다. 고려시대의 석상으로 보물로 지정됐다. 거대한 자연 암석을 깎아 몸체를 만들고 머리는 따로 깎아 올려놓은 모양새다. 뒤로는 연미사가 있다. 마애여래입상을 기준으로 지형이 제비 모양을 하고 있다. 본래는 불상 앞 연구사(燕口寺)라는 절이 있었고 연구사의 요사채로 쓰던 곳이 연미사가 됐다. 대부분의 불상이 그러하듯 석불 역시 서방 정토를 향하고 있다. 서쪽으로 해가 기우는 시간에 찾아가면 암석에 새겨진 가사의 섬세한 주름과 얼굴 생김새를 자세히 볼 수 있다. 안동문화관광단지 구름에 리조트 정문을 나와 내리막길 5분을 걸으면 문화관광단지다. 문화관광단지 여정의 시작점은 민속촌이다. 초가, 토담집, 통나무집, 까치구멍집(안동 전통의 민가 건축방식으로 환기를 위해 지붕에 작은 구멍을 낸 집) 등의 농가와 정자, 고택 10여 채를 수몰 지역에서 이건해 마을을 꾸렸다. 고지대에 위치해 안동댐과 월영교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1994년 안동에서 미라 상태로 발굴된 이응태 시신 곁에는 그의 아내 원이 엄마가 쓴 편지와 남편의 병이 낫길 바라는 마음으로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가 있었다. 400년 전 모습 그대로 발굴된 편지와 미투리는 애절한 사랑의 상징이 됐다. 안동시는 두 사람의 사랑을 기리는 의미로 월영교를 놓았다. 월영교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387m) 목조다리로 여름밤이면 시민들이 모여드는 야경 명소다. 다리 주변으로는 안동 호반나들이길이 조성돼 있고 다리 건너편에는 안동 물 문화관과 안동 전통 공예장인들의 작품을 모아둔 안동공예문화전시관이 있어 상품 구매와 체험 활동이 가능하다. 구름에 리조트 뒤편으로 조성된 문화관광단지의 일원인 유교랜드와 테마 식물원 온뜨레피움도 둘러볼 만하다. 다양한 체험 활동이 가능해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즐겨 찾는다. 전통 리조트 구름에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민속촌길 190 -문의 : 054-823-9001 자세히보기 학봉종택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 2830-6 -문의 : 054-852-2087 자세히보기 이상루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 3193-6 -문의 : 054-843-3328 자세히보기 치암고택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퇴계로 297-10 -문의 : 054-858-4411 자세히보기 글, 사진 : 문유선(여행작가) 출처 : 청사초롱 2018년 6월호 ※ 위 정보는 2019년 12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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