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설악산 한계령 자락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길은 마을을 지나 내린천으로 흘러들고, 다시 소양강으로 이어진다. 첩첩산중에 자리잡은 하추리 마을은 조선시대 후기에 척박한 화전 지대였다. 메말랐던 산지는 백여 년의 세월이 흘러 잡곡 농사와 체험관광이 어우러진 특별한 공동체로 변모했다. 장작불 위 가마솥 밥을 짓고, 숲길을 걷는 체험은 여행자에게 느린 시간의 즐거움을 선물한다. 가을이 오면 마을에 도리깨질하는 소리가 드높아진다. 주민과 여행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도리깨축제는 산골 마을의 오랜 기억과 공동체의 온기를 전한다. 인제 하추리 산촌마을에는 도시의 삶을 내려놓고 산촌에 뿌리를 내린 강성애 사무국장이 있다. 도시에서는 기업과 지자체의 홍보와 브랜딩 업무를 맡았고, 농어촌공사의 체험휴양마을 콘텐츠를 기획하는 프로젝트 매니저로도 일했다. 2016년, 기업 연수에 적합한 마을로 선정된 하추리를 취재하기 위해 마을을 찾았다. 처음부터 내키는 출장은 아니었다. 농어촌공사 관계자가 동행하면서 급하게 취재 일정에 합류하게 됐다. 하지만 산골 마을에서 보낸 1박 2일은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깊은 산과 맑은 계곡,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곳에서 살아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마을에서도 사무국장을 찾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도시의 생활을 정리했다. 처음에는 6개월, 길어야 1년 정도 머물 생각이었다. 잠시 쉬어간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도시에서의 일은 누군가의 일을 대신해주는 느낌이 강했다. 하추리에서의 일은 달랐다. 작은 변화가 눈앞에서 보였고, 그 결과가 사람들의 삶으로 이어졌다. 자신이 하는 일이 마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맡은 일은 어르신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도와드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마을 축제를 준비하고 주민 화합 행사를 기획했다.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고 공모사업을 추진했다. 주민들을 고용해 마을기업을 운영하고, 마을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까지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산촌 생활이 늘 따뜻한 것만은 아니었다. 또래 동료가 거의 없기에 겪는 외로움도 있다. 주민 대부분이 고령인 만큼 마을의 미래를 향한 고민도 깊어졌다. 그래서 그녀는 마을의 체질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다.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기록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삶과 기억, 마을의 역사와 풍경을 영상으로 남기는 아카이빙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에 차곡차곡 쌓이는 기록들은 언젠가 다음 세대가 이 마을을 이해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혹시 후계자를 찾지 못하더라도, 마을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녀는 주민들이 “우리 마을의 자랑”이라고 말해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깊은 산속 작은 마을에서 보낸 10년이라는 시간에는 하추리와 함께 살아온 한 사람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추리는 조선 후기 화전민들이 척박한 환경을 일궈 터전을 잡은 마을이다. 마을은 설악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내린천과 만나는 곳에 자리한다.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숲 그늘에서 더위를 잊을 수 있다. 능선을 따라 펼쳐진 남향 밭은 햇볕이 풍부하다. 덕분에 수수와 조, 콩과 옥수수 같은 잡곡 농사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하추리가 녹색농촌테마마을 사업에 선정되면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되기 시작했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장작불 가마솥 밥 짓기 체험이다.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며 직접 밥을 짓는 과정은 도시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경험이다. 주말에는 2인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하면 된다. 20인 이상 단체의 경우라면 평일과 주말에 더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마트에서 쉽게 사 먹던 두부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맷돌로 콩을 갈고 간수를 넣어 두부를 만드는 과정이 정겹다. 트레킹 길에서 주운 솔방울과 나뭇가지로 만드는 목공예 체험도 마련돼 있다. 마을 숲에서 나온 나무를 활용한 우드버닝 체험은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납작한 나무판에 전기인두로 그림을 그려 넣어 나만의 예쁜 컵 받침을 완성한다. 황토로 손수건을 물들이거나, 그림과 글씨를 새기는 체험도 인기다. 자작나무숲과 마을 트레킹 코스도 빼놓을 수 없다. 숲해설가와 산림치유지도사가 동행하며 길의 역사와 숲의 생태를 들려준다. 옛 주민들의 삶과 산촌의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천천히 걷다 보면 숲의 바람과 계곡 소리마저 여행의 일부가 된다. 나 홀로 여행자 또는 가족 단위 방문객은 마을의 민박집을 이용할 수 있다. 단체 방문객을 위해서는 체험과 식사, 숙박이 포함된 패키지로 운영된다. 마을 카페는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잡곡으로 만든 음료와 간식을 맛보고 특산품을 구입할 수 있다. 하추리의 역사와 관광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작은 안내소 역할도 한다. 목조 온실 형태의 잡곡 정원은 하추리의 또 다른 명소다. 여름과 가을에는 실제로 자라는 잡곡을 만날 수 있다. 겨울과 봄에는 수확한 곡식을 전시해 사계절 내내 잡곡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햇살이 비치는 온실 안은 여행객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포토존이기도 하다. 마을에서는 수수와 차조, 백태와 서리태, 쥐눈이콩과 찰옥수수 등 아홉 가지 잡곡을 직접 수확해 판매한다. 들기름과 그래놀라 같은 먹거리도 인기다. 특히 마을 벌꿀로 단맛을 낸 그래놀라는 건강한 아침 식사 대용으로도 좋다. 하추리는 단순히 머무는 여행지가 아니다. 느긋하게 걷고, 여유롭게 먹고, 천천히 쉬며 산골 마을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는 곳이다. 하추리 산촌마을은 도리깨축제로도 유명하다. 도리깨축제는 2012년에 처음 시작됐다. 마을 공동체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주민들은 “우리 마을만의 축제를 만들어보자”는 고민을 나눴다. 그 끝에 선택한 것이 잡곡이었다.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작물이자, 앞으로도 하추리를 대표할 자원이기 때문이다. 축제의 뿌리는 ‘울력’ 문화에 있다. 예전에는 일손이 부족하거나 연세가 많은 집이 있으면 젊은 일꾼들이 함께 모여 도리깨질을 도왔다. 이웃이 이웃의 일을 거들고, 노동을 함께 나누던 공동체의 풍경이었다. 도리깨질은 농작물을 후려쳐서 알곡을 털어내는 타작 작업이다. 마을은 이러한 전통을 축제로 되살렸다. 도리깨질과 함께 불렀던 소리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처음 축제가 열렸을 때는 주민 백여 명이 모이는 작은 잔치였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리깨를 두드리고 노래를 불렀다. 부녀회와 노인회는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주민들은 한자리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하루를 즐겼다. 그 시절 축제는 그야말로 마을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잔치였다. 하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외지인들의 발길도 점점 늘기 시작했다. 작은 마을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방문객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인제군의 지원이 더해지면서 도리깨축제는 하추리를 대표하는 지역 축제로 성장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도리깨질 공연이다. 주민들이 한데 모여 힘차게 도리깨를 내리치면, 경쾌한 소리가 가을 하늘에 울려 퍼진다. 방문객들도 직접 도리깨를 잡아볼 수 있다. 전통 농사를 몸으로 느끼는 체험은 색다른 추억이 된다. 하늘을 향해 터져 나오는 강냉이 뻥튀기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옛 놀이를 체험하는 시간도 마련된다. 잡곡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부녀회와 노인회가 준비한 따뜻한 음식은 축제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정성껏 만든 향토 음식에는 산골 마을의 넉넉한 인심이 담겨 있다. 축제 기간에는 마을에서 생산한 잡곡도 만날 수 있다. 수수와 조, 서리태와 백태 등 다양한 잡곡을 평소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건강한 먹거리를 직접 장만하는 즐거움도 여행의 한 부분이 된다. 가을 수확을 마친 산골 마을에 도리깨 소리가 울려 퍼지는 풍경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순간이다. 그 소리 속에는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던 공동체의 기억이 담겨 있다. 10월 하순에 하추리를 찾는다면 도리깨축제와 함께 산골 마을의 따뜻한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인제 하추리 산촌마을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인제읍 하추로 187 문의 : 033-461-4481 영업시간 : 10:00~18:00, 연중무휴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achuri_village 글/사진 오원호(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6년 7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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