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건축은 3차원 회화다. 자신만의 재료를 활용해 빛과 색으로 그림을 그린다. 파주출판단지는 건축가들의 경연장이나 진배없다. 그 가운데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써내려간 건축의 시다. 평화누리길이나 심학산을 더해 늦가을 나들이 코스로 삼을 만하다. 자유로에서 빠져나와 파주출판단지로 들어선다. 계획하에 짜인 단지가 이국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파주출판단지는 80년대 말 출판공동체를 조성한다는 취지하에 출발해 무려 30여 년 동안 빈터를 채워왔다. 출판을 주제로 하지만 건축 문화의 장이기도 하다. 건축가 승효상이 건축 코디네이터로 참여한 건축심의위원회가 건물의 크기와 배치, 재료 등을 고루 살펴 통제한 결과다. 건물은 하늘로만 치솟지 않고 수평으로 뻗어나간다. 기존의 생태를 보존하며 이웃한 건축과의 어울림도 고려한다. 그 가운데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 건축가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은석교사거리를 지나 우측 단지에 도서출판 동녘의 사옥이 있다. 건축 서적을 내는 출판사답게 2010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지마 카즈요, 니시자와 류에 부부가 설계한 사옥이다. 반듯한 직육면체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불규칙한 위치에 창 몇 개가 나 있다. 건축가를 알지 못하면 그냥 지나칠 만큼 단출하고 간결하다. 그들의 건축 색깔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덕이다. 때문에 호불호가 분명하다. 무엇보다 출판사 사옥이라 일반인의 출입이 수월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단숨에 시선을 압도하는 ‘무엇’이 있다. 공간 또한 갤러리로 개방해 한층 유연하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파주출판단지 북쪽 끝자락에 있다. 심학교사거리 못 미쳐 왼쪽이다. 단지 내에서 도서출판 동녘의 대각선 반대편에 해당한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지었다. 미메시스는 열린책들의 예술서적 전문 브랜드이다. 설계는 알바로 시자(Alvaro Siza)가 맡았다. 1992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다. 같은 해에 미스 반 데어 로에 재단 유럽건축상을, 2002년에는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황금사자상, 2012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안양예술공원의 ‘안양파빌리온(구 알바로 시자 홀)’에 이은 그의 두 번째 국내 건축물이다. 동아일보와 건축 전문지 《월간 SPACE》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건축 전문가 100인이 뽑은 한국 최고의 현대 건축 16위에 꼽혔다.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이라는 수식이 따라다니는 현역 건축가의 위용이다. 흰색의 외관과 곡선의 건축이 한 편의 시처럼 펼쳐진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문발로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에 앞서 한창 건축 중인 열린책들 신사옥이 막아선다. 건축가 김준성의 작품이다. 새로운 사옥 역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연장선상이다. 김준성 건축가는 1988년부터 2년간 알바로 시자의 사무소에서 함께 일했다. 안양파빌리온은 물론이고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도 알바로 시자와 같이 작업했다. 기본 디자인과 설계는 알바로 시자 사무소가, 시공 전반은 김준성의 설계사무소가 맡았다. 신사옥과 접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중정을 낀 건물의 측면에 해당한다. 지하 1층에서 지상까지 올라온 나무 한 그루가 독특한 풍경을 연출했다. 그러나 신사옥이 들어서고 있는 현재는 대로 쪽에서 그 실체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측면을 지나 오른쪽 입구로 들어서자 그제야 유려한 선을 뽐낸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다. 파주출판단지 내에서도 곡선이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다. 외벽은 순백색이며 1층을 제외하면 창이 없다. 사무실과 카페(2층 기준)의 주공간을 잇는 가운데 회의실 쪽으로 깊숙하게 파고든 나선이 두드러지는 형태다. 햇살이 좋은 날에는 한쪽 면의 그림자가 반대편 벽면에 그려내는 음영이 볼거리다. 알바로 시자 사무소의 수석 건축가 카를로스 가스탄헤이라(Carlos Castanheira)의 말을 빌리면, 한 마리 웅크린 고양이의 형상(《미술관이 된 시자의 고양이》, 홍지웅, 미메시스)이다. 알바로 시자는 빈 대지의 형태 위에 고양이를 스케치하는 것으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설계를 시작했다고 한다. 고양이 그림은 7년이 지나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입구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바깥으로 너른 창을 낸 카페 쪽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2층까지 시원스레 열린 구조다. 창이 넓어 자연광이 좋다. 벽면은 외관의 나선을 따라 흐른다. 나란한 책꽂이에는 열린책들에서 펴낸 책들이 가지런하다. 20~60%까지 할인된 가격에 구입이 가능하다. 맞은편 끝은 안내실을 겸한 아트숍이다. 거기서 방향을 틀어 안쪽 전시실로 이어진다. 그 사이의 틈새로 스미는 빛의 매혹도 빼놓을 수 없다. 알바로 시자는 가급적 인공광을 배제하고 자연광을 끌어들여 내부를 밝혔다. 빛의 세기에 따라 면과 선이 만나고 흩어지며 그려내는 농담이 건축물을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든다. 안쪽 전시실에 앞서서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지하 1층과 2이 사무공간이다. 신사옥이 완공되면 이전할 계획이다. 그때부터는 건물 전체가 오롯이 뮤지엄이 될 예정이다. 계단을 오르기 전 모퉁이에서 한 번 더 걸음을 멈춘다. 움푹하게 안쪽으로 파고든 건물의 곡선이다. 바깥으로 창이 났는데 마치 건축선의 일렁임이 일어나는 진원의 꼭짓점 같다. 세로로 높은 면은 좌우로 웅장한 흐름을 만들며 열리고, 정면에는 정원 너머 이웃한 직선의 건물이 자리한다. 곡선이 품은 직선은 흥미로운 풍경이다. 계단을 올라가면서는 뒤쪽을 돌아본다. 여전한 빛의 음영이 멈춰 선 위치에 따라 다채로운 변주를 선보인다. 2층은 사무동이라 곧장 3층으로 올라간다. 다만 올라서기 전에 1층 카페와 2층까지 열린 로비 공간을 내려다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3층으로 오르는 계단 바깥으로 야외 전시 작품도 눈길을 끈다. 3층 계단에서는 머리 위 천장에 커다란 원이 보인다. 자연스레 빛을 받아들이는 것이 알바로 시자의 건축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기법이다. 3층은 가장 너른 전시실이다. 역시 안쪽으로 들어온 면을 곡선을 기준으로 좌우 공간으로 나뉜다. 하지만 그 꼭짓점에서 고개를 들어 위로 향하면 예각의 삼각 천장이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자칫 무료해지기 쉬운 흰색 면과 친절한 곡선의 행진에 제동을 거는 장면이다. 긴장감을 부여하므로 생기가 돈다. 그러고 보면 천장에는 날카로운 직선의 면들이 자주 교차하며 곡선의 벽면과 대비를 이룬다. 알바로 시자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 하나의 예술품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남몰래 직선을 품은 곡선과 그 선들이 연출하는 빛의 농담이 마치 흰 도화지 위에 수묵처럼 그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나와서는 파주출단단지를 천천히 돌아봐도 좋겠다. 샛강을 따라 들어선 마을에는 우리 건축가들의 걸작도 보물처럼 자리했다. 승효상, 조성룡, 민현식, 김인철, 최문규 등 우리 건축의 얼굴들이다. 그들이 창조한 건축의 맵시도 알바로 시자나 세지마 카즈요, 니시자와 류에 등에 뒤지지 않는다. 조금 더 진한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평화누리길이나 심학산을 권한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인근에는 평화누리길( www.walkyourdmz.com )이 지난다. DMZ 접경 지역인 김포, 파주, 연천, 고양을 잇는 최북단의 걷기 좋은 길이다. 총 12개 코스 184km에 달한다. 한 구간이 보통 15km 내외로 5시간 정도 걸린다. 파주출판도시 이채사거리에서 통일동산까지 9.7km는 파주시 첫째길이다. 3~4시간 코스다. 1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면 심학산 둘레길 정도로 행로를 잡는 것도 방법이다. 가는 길에는 갈대가 하늘거리는 출판단지의 샛강이 가을 정취를 더한다. 심학산은 파주출판단지 동쪽에 자리했다. 194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출판단지를 걷다 한 번씩 돌아보면 먼발치에 가을 단풍(11월 10일 시점)이 절정이다. 건축이 사람이 만든 예술이라면 단풍은 자연이 만든 예술이다. 기어이 그 품에 파고들고픈 마음을 어쩔 수 없다. 심학산둘레길은 5개 코스로 이뤄졌다. 대단한 길이라기보다 심학산 정상에 이르는 다섯 구간이다. 각 지점에서 심학산 정상까지 짧게는 0.8km에서 길게는 2.9km다. 제법 가파르기는 해도 20~30분이면 올라간다. 멀리서 볼 때는 단풍이 짙었지만 산길로 접어드니 가을의 막바지다. 높이 자라 햇볕을 머금은 마지막 잎들이 산의 겉모습을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낙엽을 밟는 느낌도 좋다. 무엇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심학산 정상 전망대에서는 파주 일대와 한강 줄기가 가시권이다. 또 문발IC와 자유로를 따라 통일전망대는 물론, 멀리 북한 개풍군까지 비교적 또렷하게 보인다. 도심의 전경도 들고나지만 산과 강 그리고 논밭이 어울리니 좀더 평온하다. 들뜬 마음이 가라앉을 때 즈음에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힌다. 산행이 버겁다면 지척에 있는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파주점으로 걸음을 옮겨도 좋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400m 남짓 되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파주출판단지는 서울 시내에서 대중교통으로도 이동이 원활하다. 하루를 잡으면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과 심학산,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주소 : 경기 파주시 문발로 253(파주출판단지 내) -문의 : 031-955-4100 -입장료 : 성인 8,000원, 학생 6,000원(8~18세) 미취학아동 무료 단체 6,000원(20인 이상 사전 예약시) 복지카드 소유자 6.000원 -휴관일 : 전시장 휴관 : 매주 월~화 휴관 (북카페는 운영), 글, 사진 : 박상준(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4년 7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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