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기는커녕 커다란 눈망울이 귀엽기만 한 호랑이와 소나무 한 그루, 호랑이야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겁도 없이 소나무 가지 위에 올라앉은 몸집 작은 까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그래서 더 웃음 짓게 만드는 이 민화의 제목은 <작호도>다. '까치호랑이'라고도 하는 이런 유형의 그림에는 여러 가지 변형이 존재한다.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열 가지 사물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학교 다닐 때 그토록 열심히 외웠건만 이제는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십장생' 그림, 즉 <십장생도>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정서가 깃들어 있는 민화를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 영월 김삿갓계곡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조선민화박물관이다. 동강이라는 천혜의 비경과 비운의 임금 단종의 애사를 품은 강원도 영월 땅은 박물관의 고장이기도 하다. 별마로천문대, 동강사진박물관, 영월곤충박물관, 강원도탄광문화촌, 아프리카미술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 베어가곰인형박물관… 얼른 떠오르는 곳만 꼽아도 벌써 예닐곱 개. 현재 영월에는 공립과 사립 모두 합쳐 20여 개의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 수도 많지만, 그 주제가 또 어찌나 다양한지 박물관 투어만으로도 훌륭한 테마 여행 코스를 짤 수 있다. 그 중에서 따스한 가을날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박물관 투어의 첫 코스로는 조선민화박물관이 제격이다. 조선시대의 진귀한 진본 민화들, 전국민화공모전 수상작들, 19금 춘화 등 흥미진진한 옛 그림들을 전문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민화 체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산중에 목조 건물로 지어진 이 박물관은 외관부터 편안하고 푸근하다. 조선민화박물관은 2000년 7월에 민화 전문 박물관으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오석환 관장이 오랜 세월 사재를 들여 수집한 3,800여 점의 조선시대 민화들을 200여 점씩 교대로 상설 전시한다. 1층에는 꽃과 새를 그린 화조도, 글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문자도,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그림으로 표현한 <구운몽도>, 까치호랑이, 어해도 등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본 듯한 친숙한 그림들이 걸려 있고, 2층에서는 전국민화공모전 수상작 등 현대의 민화들을 볼 수 있다. 2층 한쪽 모서리에는 커튼으로 가려진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입구에 19금 표시를 떡 하니 붙여놓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키는 이 방은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춘화들만 모아놓은 '춘화방'이다. 우리 조상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성(性)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라는 설명문이 있지만, 소박하되 노골적이고 대담한 그림들에 깜짝 놀라는 사람도 많다. 커튼 뒤편으로 슥 사라졌다 나타난 엄마 아빠를 보며 궁금해 죽겠다는 아이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춘화를 비롯해 박물관 내에 전시된 모든 작품은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 1층 안쪽 뮤지엄숍에서 전시 작품 도록을 판매하고 있으니 필요한 사람은 구입하면 된다. 민화는 전문가가 그린 정교하고 세련된 정통 회화가 아니다. 일상생활의 필요에 따라 그려진 소박하고 실용적인 그림이라서 대부분 작자 미상이요, 낙관도 없다. 이를테면 화조도는 가정의 화목, 물고기·게·거북을 그린 어해도는 부부 금슬이나 출세, 십장생도는 장수를 기원하며 그려졌다. 이런 민화들은 방 안을 장식하는 용도로 쓰이거나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다. 일정한 형식 없이 자유롭게 그려진 민화는 소박하기 그지없고, 익살과 해학이 묻어나며, 놀랄 만큼 파격적이다. 어떤 유명 화가의 작품보다도 서민의 생활상과 정서, 꿈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진솔한 그림이다. 이렇듯 '작자 미상에, 격이 낮고 촌스러우며, 정통 회화를 모방한 창의성 없는 그림'이라고 무시당해온 민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의 결정체가 바로 이 조선민화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민화를 쉽게 이해하고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단 한 사람의 관람객이라도 원한다면 전문 해설사가 동행해 민화의 특징은 물론 개별 작품의 배경과 내력을 설명해준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실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그 동안 명칭 외에는 잘 몰랐던 우리 민화에 대한 이해가 한결 깊어짐을 느끼게 된다. 어린이 관람객들에겐 역시 작품 감상보다는 붓을 들고 직접 채색을 하거나 한지에 작품을 찍어보는 체험 학습 시간이 더 즐겁다.
전통 한지를 이용해 판화를 찍어보는 '민화 판화 체험'은 가장 간단하고 쉬운 프로그램. 민화가 인쇄된 패널에 알록달록 채색을 해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보는 '민화 패널 만들기 체험'과 까치호랑이, 어변성룡도, 연화도 등 민화가 인쇄된 한지 부채에 채색을 하는 '민화부채 만들기 체험'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붓을 쥐는 법부터 붓에 물감을 묻히는 법, 그러데이션을 표현하는 방법까지 선생님들의 시범과 설명을 보고 들은 후 일제히 작품 만들기에 몰두하는 아이들의 표정에 진지함이 뚝뚝 묻어난다.
10분, 20분… 시간이 지나면서 흰 바탕에 검은 선뿐이던 부채 위에 어느새 초록빛 솔잎과 분홍빛 연꽃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파란 물결이 넘실거리며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노란 나비가 나풀거리며 날아다닌다. 아이들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엄마들은 뮤지엄숍에서 각종 민화 상품과 도서, 도록을 구경한다. 민화 아크릴 자석, 엽서, 필통, 메모지, 퍼즐, 타일 등 예쁜 상품들이 많다. <조선민화박물관 이용 안내> 주소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841-1(김삿갓계곡 내) 홈페이지 : www.minhwa.co.kr 관람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11~2월은 오전 10시~오후 5시), 연중무휴 관람료 : 유치원생 3,000원, 초중고생 4,000원, 일반 5,000원 문의 : 033-375-6100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영동고속도로 → 남원주 → 중앙고속도로 → 제천IC → 영월 방면 38번 국도 → 영월읍내 → 고씨동굴 → 고씨동굴에서 10km 직진하면 삼거리 → 김삿갓 유적지(김삿갓 묘역 방면) → 조선민화박물관 * 대중교통 [버스] 서울→영월 동서울터미널(1688-5979)에서 1일 13회(07:00~22:00) 운행, 2시간 20분 소요 센트럴시티터미널(02-6282-0114)에서 1일 4회(10:00, 13:30, 19:00, 20:30) 운행, 2시간 30분 소요 [기차] 청량리역에서 영월역까지 무궁화호 1일 7회(07:10-23:15) 운행, 2시간 15분~2시간 45분 소요 2.맛집 청산회관 : 영월읍 영흥리 / 곤드레밥 / 033-374-3030 민속촌 : 김삿갓면 진별리 / 산채돌솥비빔밥 / 033-372-2963 대영매운탕 : 김삿갓면 진별리 / 민물매운탕 / 033-372-2989 3.숙소 김삿갓모텔 : 김삿갓면 진별리 / 033-372-0016 구름정원펜션 : 김삿갓면 와석리 / 033-375-0244 / http://cloudgarden.net 길벗펜션 : 김삿갓면 와석리 / 070-8891-7965, 010-9128-7965 / www.길벗펜션.com 프레임하우스 : 김삿갓면 와석리 / 033-372-8888 / www.framehouse.kr 가향펜션 : 김삿갓면 와석리 / 010-8013-1006 / http://김삿갓계곡펜션.kr 망경대산자연휴양림 : 중동면 연상리 / 033-375-8765 / www.mgds.kr - 글, 사진 : 이정화(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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