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심줄 같던 잎맥에 힘이 빠졌나 보다. 나뭇잎이 벌써 바닥에 깔려 바스러지고 있다. 삼척 취재 중 가을 앓이가 도졌고, 온갖 잡생각이 끊이질 않고 머릿속을 헤집으니 걸음이 시시때때로 멈춘다. 나무, 바위에 꽂힌 시선은 쉬이 빠지지 않았고 미처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발걸음을 재촉하며 여정을 이어갔다. 삼척에는 온 국민이 알만한 인지도 높은 관광지가 드문 편이다. 삼척시의 관광지도를 펼치면 환선굴을 제외하고 가보지는 않았지만 유명세를 타서 친숙한 관광지가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 가서 둘러보고 문화해설을 들어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고유의 향이 마음에 스며든다. 어느 곳, 어느 땅에 서더라도 그곳은 설명하기 어려운 특별함이 있음을 일깨워준 삼척, 그 첫 목적지는 코스모스 꽃밭이다. 코스모스가 파도친다. 성격 급한 일부만 꽃을 피운 상태지만, 노랑, 분홍, 흰 코스모스가 파스텔 톤으로 살랑거리는 것이 장관이다. 눈길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산이 사방으로 솟아 있다. 고운 능선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니 하늘이 예쁘게 오려진 하늘색 종이 같다. 그 아래로 코스모스가 주인공처럼 무대를 장악한 모습이다. 한 주민의 텃밭으로 보이는 곳, 산 중턱에 너른 터 등 아기자기한 코스모스 꽃밭도 눈길을 끈다. 10월 12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코스모스 축제장,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일대의 9월말 풍경이다. 얼마 후면 만발할 꽃 사이로 얼굴을 내민 사람들, 카메라 셔터 소리로 시끌벅적할 것이다. 좁은 수로를 따라 꽃밭 중심부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 길을 걷다가 신발이 젖을 수 있으니 장화 또는 샌들을 준비하면 좋겠다. 사진을 찍으러 간다면 삼각대도 큰 도움이 된다. 왕의 코스모스 축제는 이번이 제1회, 첫선을 보이는 삼척의 야심 찬 작품이다. 굽이진 길을 따라 산속으로 꽤 들어와야 하는 내미로리 일대는 그야말로 깊은 산골마을. 이곳 주민이 점점 고령화되면서 비옥한 땅임에도 노는 땅이 늘어가는 실정이었다고 한다. 이에 삼척시가 나서서 코스모스를 활용한 축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외진 산골마을은 공기도 좋고 물도 맑아 참 좋다. 하지만 마을은 절반이 노인, 절반이 허름한 집이라 떠나는 길에 마음이 시리곤 했다. 그래서일까. 깊은 산골에서 펼쳐지는 코스모스 축제가 더욱 반갑다. 마을 주민도 좋고 여행객도 좋은 이번 축제에 많은 기대를 해본다. 코스모스 꽃밭에 정신이 팔려 왜 축제이름에 '왕'이 들어가게 됐는지 뒤늦은 궁금증이 난다. 이를 해결해줄 다음 행선지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준경묘'이다. 주차장에서 약 1.8km를 걸어가야 한다. 초반에 깔딱 고개라고 불리는 오르막이 있는데, 경사가 이름값을 한다. 오르막 후 내리막 있다고 했던가. 준경묘 가는 길은 오르막 후 삼척 10경 중 한 경치가 펼쳐진다. 깔딱고개 정상에서 숨을 가다듬는다. 고개로 모이는 바람이 한결 시원하다. 흙길은 걷는 맛을 돋운다. 수림이 울창해 산림욕 효과가 좋을 듯하다. 숲내음에서 썩는 냄새가 미진하게 도는 것이 확실히 가을이다.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본 하늘은 언제 저렇게 높아졌는지 구름이 멀다. 여름이 두고 간 열기는 안간힘을 내며 눈 부신 햇살을 쏟는다. 베슬거리던 산바람도 조금 거칠게 산을 훑자 기다렸다는 듯 나뭇잎이 갈지자로 떨어진다. 그렇게 한참 걸으면 송림이 나온다. 준경묘가 가까워진 것이다. 걸을수록 옆을 스치는 소나무의 자태가 고와진다. 고혹적인 소나무 너머로 너른 산 중턱에 자리한 준경묘가 드러난다. 준경묘는 태조 이성계의 5대부 이양무 장군의 묘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주에 살았던 목조(이양무의 아들)는 어떻게 삼척에 오게 됐을까. 사건의 발단에는 기생이 있다. 목조는 한 기생을 사랑했지만, 산성별감인 남자가 그 기생과 관계를 맺으면서 두 남자의 싸움이 벌어진다. 이에 전주의 지주가 나서지만 목조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전주를 떠난 목조는 외가 쪽 지역인 삼척에 정착. 하지만 이양무 장군이 죽음을 맞으면서 목조는 묏자리를 찾아 삼척을 둘러봐야 했다. 잠시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뜻하지 않게 한 스님의 혼잣말을 듣게 된다. 대지로다. 개토제(開土祭)에 소 일백 마리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관을 금으로 만들어 장사지내면 5대 안에 왕이 출생하여 기울어 가는 이 나라를 제압하고 창업주가 될 명당이로다 그리하여 준경묘가 생기게 됐다는 백우금관의 설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용비어천가에서는 목조로부터 왕조의 터전이 잡혔다고 기록돼 있다. 코스모스 축제와 멋진 송림의 준경묘가 한데 어울렸으니 삼척의 가을은 풍성하기 그지없다. 삼척하면 동굴을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동양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환선굴과 이번에 소개하는 대금굴이 있다. 대금굴은 환선굴과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동굴로 위치도 가까운 곳에 있다. 이 동굴이 발견됐을 당시 동굴 내부는 금처럼 빛났다고 해서 대금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동굴이 관광화되면서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는 경우가 늘어감에 따라 환경단체에서는 휴식년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에 삼척시는 '대금굴'을 개방하면서 예약제 도입, 출입인원 제한, 모노레일로만 가능한 출입경로 등 다양한 방법을 적용해 좀 더 앞선 동굴 관광지화 선례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는다. 대금굴 내부, 어디서 이렇게 많은 수량이 물이 들어오는지 힘찬 물살 소리가 동굴을 가득 메운다. 대금굴에서는 물이 흐르는 종유석과 물이 떨어지는 석순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살아있는 동굴의 면모를 쉽게 볼 수 있으며 그 감동은 동굴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해간다. 기존의 동굴탐방이 전설을 듣는 수준이라면, 대금굴 탐방은 전설 속 현장에 떨어진 기분이다. 관동별곡이 노래하는 멋진 풍광 중 유일한 누각이 삼척에 있다. 평탄한 지면이 아닌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지어진 죽서루이다. 어느 시기에 지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고려 시대의 죽서루 관련 시가 남아 있어 1190년 이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불규칙한 기반암을 고려해 각각 다른 길이의 기둥을 세웠다. 바위와 기둥이 접하는 곳을 보면 바위에 맞춰 나무를 깎아 얹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는 규율과 형식에 있어서 한 치의 어긋남도 허용하지 않았던 시기다. 그런 기본에 충실했던 선조가 자연에 있어서만큼은 유연한 건축술로 만든 누각이라는 점에서 죽서루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나무기둥 결은 살아있는 듯 선명하고, 현판의 글씨는 붓을 그은 힘이 느껴진다. 누각의 동쪽으로 대나무 숲이 있었고, 숲 속에는 죽장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대나무 서쪽의 누각, 설마 했던 상상이 사실이였던 죽서루의 유래다. 내부에서는 증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눈길을 끈다.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 건축술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산의 능선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는 사이 풍류를 즐기던 나그네가 된다. 멀리 강원도 동남부 특유의 산세가 이어진다. 유유히 날아다니는 학 한 쌍을 그려본다. 산골에서 흘러내려 온 강이 죽서루 앞에서 굽이친다. 노련하게 노를 젓는 뱃사공도 강 위에 띄워본다. 코스모스가 파도치는 축제, 조선왕조 건국의 터전으로 불리는 준경묘, 생생한 태곳적 모습의 동굴탐방, 자연과 하나 된 죽서루… 볼거리, 이야기가 가득하다. 여정이 끝날 즈음, 가을은 매일 찾아오는 내일처럼 친숙해졌고, 가을앓이로 뒤틀린 심사는 빗질한 것처럼 가지런해져 있었다. 문화해설사의 이야기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한다. 학생시절 역사 수업시간에도 저렇게 집중했었는지 의심스럽지만 삼척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재미있으면서 현장이 잘 보존돼 있으니 공부가 저절로 되는 삼척 여행이다. 삼척을 두고 바다이야기가 없으니 뭔가 허전했을 것이다. 이어지는 후속으로 해신당, 해양레일바이크, 이사부사자공원 등 바다를 벗 삼은 삼척을 소개한다. 주변 음식점 -곤드레 : 곤드레밥정식 / 강원 삼척시 봉황로 117 / 033-574-7585 -감나무 : 한정식 / 강원 삼척시 대학로 74-7 / 033-575-5733 -만월정 : 굴밥정식 / 강원 삼척시 근덕면 방재로 811 / 033-572-8835 -죽서뚜구리집 : 추어탕 / 강원 삼척시 죽서루길 61 / 033-574-5535 숙소 -씨스포빌콘도 : 강원 삼척시 근덕면 상맹방길 30-80 / 033-570-5000 http://seaspovill.co.kr/resort_site/index.html -삼척온천관광호텔 : 강원 삼척시 정상동 351-1 / 033-573-9696 -M모텔 : 강원 삼척시 당저동 129-5 / 033-573-5800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안정수 취재기자( ahn856@gmail.com ) ※ 위 정보는 2016년 9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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