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하회마을에는 재앙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주민 허도령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 '12점의 탈을 만들면 재앙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탈 만들기에 들어간 허도령, 아쉽게도 마지막 이매탈을 만들던 중 죽고 만다. 이유는 '탈을 만들 때 그 누구도 봐서는 안 된다'는 산신령의 당부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도령을 흠모하던 (아무것도 모르는) 이웃집 처녀가 탈 만드는 그를 훔쳐봤고 둘은 죽는다. 하회탈은 이렇게 태어났다.안동 여행의 대표적인 '핫스팟'으로 꼽히는 하회마을을 살펴볼 때 빼놓으면 아쉬운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회별신굿탈놀이요, 다른 하나는 부용대에 올라 바라보는 하회마을 전경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하회별신굿탈놀이. 별신굿과 하회탈을 중점적으로 살피고 굿판이 벌어지던 하회마을을 살펴보려 한다. '탈'을 쓰고 '무탈'을 기원하던 선조들을 따라 가보자. 재미없게만 느껴지던 '탈'이 들려주는 신명나는 이야기 속으로. 얼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펼쳐지던 탈놀이다. 동시에 마을의 안녕과 대동,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마을 굿이었다. 주민들은 풍농과 안녕이 마을을 지키는 동신에 달려있다고 믿었고,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신의 영험이 줄어든다고 생각해 일정 주기마다 정기적으로 굿을 했다. 마을을 지키는 신을 북돋워주며 노여움을 풀어주기 위해 일정 기간마다 펼쳐진 특별한 굿이 바로 별신굿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이런 신앙적 의미와 더불어 신분제와 농사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해소하는 축제이기도 했다. 농경사회에서 자연은 강력한 존재였다. 1년 농사가 어떻게 되었느냐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풍농을 비롯해 마을의 평안이 인간의 영역 밖인 자연, 나아가 신의 뜻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한해가 시작하는 정월대보름이면 수호신에게 올해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의 제사를 지냈다. 이를 '당제' 또는 '동제'라고 한다. 신에게 풍농을 바라는 마음은 같지만 별신굿은 일정한 주기를 갖고 정기적으로 열렸다. 5~10년마다, 또는 신탁이 있을 때 '별신굿'이 펼쳐졌다. 이름 그대로 '별나고 특별한 굿'인 별신굿은 동제와 별신굿 모두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같다. 차이가 있다면 별신굿은 마을을 지켜주는 신의 영험이 줄거나 신의 노여움을 샀을 경우 그것들을 풀기 위해 일정 간격으로 진행하는 대형 굿판이라는 점. 별신굿은 주역은 무당 또는 마을 주민들이었다. 전통사회에서 지역공동체를 아우르던 축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21세기 지금도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다. 그것도 그 옛날 신명나는 하회별신굿탈놀이 한판이 벌어지던 안동 하회마을에서! 12월까지는 주4회(수·금·토·일), 1~2월에는 주말에 한해 연중 상설로 공연이 진행된다.대부분의 공연이 그러하겠지만 하회별신굿탈놀이 역시 직접 보는 게 최고다. 반세기도 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직접 탈을 쓰고 했던 한판 난장은 21세기 현대인들에게도 웃음과 풍자, 나아가 위로를 전한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통하는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공연이 진행되는 날, 1회(14:00)만 펼쳐진다. 성수기와 비수기에는 약간의 변동이 있으니 미리 확인해두는 편이 좋다. 공연 시간에 맞춰 하회마을을 돌아보는 것으로 동선을 잡으면 된다. 하회마을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부용대를 오가는 배는 오후 5시까지 운행한다. 때문에 하회마을 도착시간이 배 시간에 빠듯하다면 일단 부용대에 올라보는 편이 좋다. 나룻배로는 금방이지만 부용대까지 올라가는데 10~15분 정도 소요된다.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 전경을 만난 후 천천히 하회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자. 풍산 류씨 집성촌으로 알려진 하회마을. 이 공간이 유명해진 것은 600년 전통의 힘도 있지만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물줄기의 공이 크다. 하회(河回)라는 이름도 여기서 왔다. 풍수지리에서 보면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인 연화부수형으로 돌은 무거워 가라앉는다고 흙담이 대부분이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한 고택이 자리한 하회마을은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재진행형 공간이다. 수많은 고택 중에서도 하회마을이 품은 보물, 입암 류중영과 류운용이 머물던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서애 류성룡 종택 충효당(보물 제 414호)은 꼭 살펴보자. 하회마을과 화산(271m)을 사이에 두고 자리한 병산서원도 빼놓으면 아쉽다. 서애 류성룡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사당을 세우며 정식 서원으로 자리 잡았다. 만대루에 올라 바라다보는 평화로운 물줄기와 기암 풍광이 끝내준다. 1863년 병산서원이라는 편액을 받은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서낭당에서 신내림을 받은 놀이패가 들어서는 '무동마당'에서 시작한다. 성황신의 현신으로 받들어진 각시탈은 땅을 밟지 않고 무동꾼 어깨에 올라 등장한다. 이 장면은 마을 수호신을 맞이하는 것을 상징한다. 평안과 풍농을 품고 있다. 이어 '주지마당'이 펼쳐진다. '주지'는 신성하고 무서운 상상의 동물로 암수 주지 한쌍이 격렬한 춤을 추며 잡귀를 쫒는다. 암컷이 이기는 것은 다산과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다. 백정이 소를 잡아 염통과 우랑(소불알)을 떼어내 관람객들에게 권하는 '백정마당'부터 우리 조상들의 해학과 풍자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이어 과부탈로도 불리는 부네탈이 고운자태를 뽐내며 나타나는 '파계승마당'이다. 흥에 겨워 춤을 추던 부네의 소변에 홀린 스님이 종교를 버리고 인간 본성을 찾아간다. 이어 등장한 양반과 선비는 '양기에 좋다'는 소불알을 두고 다투며 지배층의 위선과 가식을 보여준다. 이처럼 탈춤은 사회의 모순과 지배층의 위선을 시원하게 보여준다. 21세기 후손들이 보기에도 헛웃음이 나며 속이 뻥 뚫리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 민초들은 얼마나 후련했을까. 적어도 별신굿이 펼쳐지는 보름동안은 신분과 성별, 재산에 관계없이 자유로웠으리라. 물론 별신굿이 끝난 후에는 다시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잠시라도 자유를 만끽하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렸을 것이다. 억압받는 자들에게 허락된 보름간의 평등한 세상. 서로간의 갈등을 완화하며 마을의 단결을 만들었던 대동축제이자 특별한 굿.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전해지게 된 이유 아닐까. 주변 음식점 -까치구멍집 : 경북 안동시 석주로 / 054-821-1056 http://andongrice.com/ -옥류정 : 경북 안동시 풍천면 / 054-754-8844 -안동김대감찜닭 : 경북 안동시 번영길 / 054-853-0449 숙소 -북촌댁 :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북촌길 7 / 054-853-2110, 010-2228-1786 http://www.bukchondaek.com/ -옥연정사 : 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솔밭길 / 054-854-2202 http://www.okyeon.co.kr/ -락고재 :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강변길 / 054-857-3410 http://www.rkj.co.kr/ -수애당 :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용계로 / 054-822-6661 http://www.suaedang.co.kr/ -지례예술촌 : 경북 안동시 임동면 지례예술촌길 / 054-822-2590 http://www.jirye.com/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관광진흥팀 이소원 취재기자( msommer@naver.com ) ※ 위 정보는 2016년 1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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