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를 피해 나주로 피신 온 흑산도 어민들
나주 시내에서 영산교를 건너 홍어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코끝이 찡해짐을 느낀다.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톡 쏘는 듯한 묘한 향. 홍어가 아니고서는 그 어느 음식도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향이다.
거리에 가득 들어선 홍어음식점을 보면서 쉽게 풀어지지 않는 의구심이 든다. 영산강과 홍어, 홍어와 나주 영산포.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의 연관성을 이해하기 어렵다.
홍어 하면 누가 뭐래도 흑산도 아닌가. 흑산도 다음으로는 목포가 떠오르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 난데없이 나주에서 홍어축제를 개최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주에서 만난 영산강은 초라하다. 강이라고 하기에는 강폭도 좁고 수량도 넉넉지 못하다. 하지만 지금 모습이 300년 전, 아니 500년 전의 강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1976년 영산강하구언이 생기기 전에 영산강은 전라남도 사람들의 생명의 젖줄이었다. 바닷물이 드나들고 돛배가 오르내리는 제법 강다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홍어가 나주 영산포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기인 1363년경이다. 왜구의 노략질을 피해 흑산도 및 인근 섬 주민들이 강을 따라 육지로 거슬러 오면서 영산포에 정착한 후부터라니 영산포와 홍어의 인연은 600년 이상 되었다. 영산강 줄기를 타고 들어온 흑산도 주민들이 영산포에 정착했다
본래 흑산도에서는 삭힌 홍어가 아닌 생물 홍어를 먹었다. 그러나 영산포 사람들은 흑산도 인근에서 잡은 홍어를 뱃길로 여러 날이 걸려 옮겨와야 했기 때문에 자연 숙성된 홍어를 먹게 되었다.
영산포가 호남 제일의 포구로 번성하던 시절 숙성된 홍어는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일품요리였다. 하지만 영산강 하구언으로 강이 끊기고, 설상가상으로 1989년 7월 대홍수로 영산강이 범람하면서 11명이 사망하고 포구는 쑥대밭이 됐다. 자연스레 영산포의 홍어 상권은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어둠 속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하리라 여겼던 홍어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다시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다. 1997년 나주시 문화원에서 발행한 “내 고향 나주”의 특산물 한마당편에도, 2001년 나주시 문화원 발행 “영산강 유역의 중심 나주”의 특산물편에도 영산포 숙성홍어는 거론되지를 않는다. 숙성홍어가 영산포의 특산품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어는 잘 삭힐수록 잡내가 나지 않는다
1997년 영산포 선창의 한일수산이 상호를 영산포식품(주)으로 변경하고 풍부한 수입산 홍어를 이용하여 국내 최초로 소포장 규격화된 제품을 생산했다. 그리고 전남이 아닌 외부지역에 판매하면서부터 침체기를 겪던 영산포 홍어는 전환기를 맞기 시작한다.
또 강건희 씨의 영산홍어가 넓은 숙성공간에 최신 냉장시설을 설치하고 균일화된 숙성 홍어의 대량생산에 뛰어들면서 영산포 홍어의 전국화를 선도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홍어거리에 음식점이 하나, 둘 들어서고 대량으로 홍어를 생산하는 시설이 들어서면서 영산포 홍어는 새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 선 이가 영산홍어의 강건희 씨다. 부산수산대학교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원양어선을 탔던 그가 바다를 떠나 뭍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서 인연을 맺은 게 홍어다.
부산에서 수산가공사업을 시작할 때 주요 품목이 홍어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홍어 작업은 원시적인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식품산업으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건희 씨는 홍어가 식품사업으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1997년 부산을 떠나 영산포에 터를 잡고 숙성 홍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영산포에 홍어집이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영산포와 홍어의 관계를 설명할 근거자료도 없었다.
홍어 사업에 뛰어든 이상 영산포가 홍어의 고장이라는 걸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강건희 씨의 고향은 나주가 아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충북 제천이다. 10대는 경기도, 20대는 서울, 40대까지는 부산에서 보냈다.
영산포와의 관계는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는 게 그의 이력이다. 그러나 부산에서 수산물가공사업을 하면서 홍어와 인연을 맺고, ‘홍어 아웃사이더’에서 ‘홍어 장인’이 되기까지 주경야독을 멈추지 않았다.
홍어에 대한 자료를 미친 듯이 찾아 공부했다. 영산포와 흑산도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파고들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가 흑산도 주민이 고려 말 왜구를 피해 영산포로 스며들었고, 이들을 통해 삭힌 홍어가 만들어졌음을 밝힌 것이다. 건희 씨가 운영하는 영산홍어의 숙성실에는 눈도 뜨기 어려울 만큼 진한 홍어 냄새가 풍긴다. 처음에는 코끝도 찡하고 눈물이 핑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콧속에 시원함이 감돈다. 이게 홍어의 매력이다.
썩은 듯하지만 절대 썩은 게 아니라 잘 삭혀진, 그리고 그 속에 깊이 배어난 진득한 맛.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미각의 세계가 홍어에 담겨 있다. 1. 좋은 홍어를 고르는 요령은?
‘홍어오미(五味)’라는 말이 있다. 살, 날개, 코, 애, 뼈가 각각 다른 맛을 지니고 있어서 나온 말인 듯하다. 각 부위가 지닌 맛을 알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좋은 홍어는 잡내와 잔맛이 없다.
홍어를 코에 대고 깊이 숨을 들이쉬어 보라. 덜 삭혀진 것은 물비린내가 나고 잘못 삭힌 홍어는 톡 쏘는 냄새 속에 코를 자극하는 잡내가 난다.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좋은 홍어는 목 넘김을 할 때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나야 좋은 홍어다.
2. 홍어는 남도상차림의 필수음식이라는데
남도지역에서는 집안의 경사나 대사가 있는 경우 홍어가 없으면 상을 차릴 수 없고 홍어가 빠진 경우는 산해진미가 있어도 차림상이 부실하다고 여겼다.
조선시대 학자인 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에는 “배에 복결병이 있는 사람은 썩은 홍어로 국을 끓여 먹으면 더러운 것이 제거된다”고 적혀 있다. 이외에도 또 “뱀은 홍어를 기피하기 때문에 그 비린 물을 버린 곳에는 뱀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 “뱀에 물린 데에는 홍어의 껍질을 붙이면 잘 낫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중 눈여겨봐야 할 것이 복결병에 효험이 있다는 대목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큰 행사를 치를 경우 식중독에 대한 걱정이 컸을 것이다. 옛 선조들은 홍어가 식중독 방지와 제어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3. 삭힌 홍어는 영산강 유역의 특산품이다
홍어는 보관 상태 및 관리 방법에 따라 미숙성 홍어와 숙성 홍어로 구별된다. 흑산도 홍어는 먼 옛날부터 1970년대까지 영산강 물길을 따라 영산강의 종착 포구인 영산포까지 운반되어 숙성 홍어라는 독창적인 음식문화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자연 숙성된 홍어는 영산포를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의 목포, 무안, 영암, 함평, 나주, 화순, 광주, 장성, 담양 등지에서 즐겨 먹는다. 도로와 운송수단이 발달하기 전인 1900년 전후까지는 홍어가 영산포를 거치지 않고는 유통이 어려웠을 것이다. 자연스레 숙성홍어도 영산포를 중심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 시중에서 먹는 홍어는 외국산이라는데
국내에 외국산 홍어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부터이다. 당시만 해도 홍어수급은 국내산만으로도 가능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국내산의 자원고갈로 가격폭등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연안 어업을 하던 회사들이 북한산 홍어의 반입을 시작한다. 북한산 홍어는 국내산 홍어와 동일한 어종으로 엄격히 외국산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차츰 홍어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북한산 홍어로도 부족하게 되자 아르헨티나 수역 영국령 포크랜드에서 어획한 홍어가 수입되었다. 저렴한 가격과 질 좋은 품질의 홍어는 수요를 창출하고, 그 수요는 다시 공급을 유발하면서 외국산 홍어가 국산 홍어를 밀어내고 홍어시장을 석권하게 되었다.
이후 칠레 및 미국의 홍어가 반입되어 홍어시장에는 외국산 일색으로 변했다. 흑산도 홍어는 공급이 급감하면서 별도 예약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귀한 물건으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강건희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수산대학을 나와 젊은 시절 원양어선을 타고 오대양을 누볐다. 부산에서 수산물가공업을 하면서 홍어와 인연을 맺고, 1997년부터 영산포에 내려와 홍어 식품 사업을 시작해 규격화된 소포장 홍어를 생산하고 있다. 영산포 홍어의 적통과 대중성을 위해 홍어의 학문적 공부와 숙성 방법 개발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
글. 사진 U투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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