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효심과 애민정신을 지녔던 조선 정조대왕. 그의 뜻이 담긴 수원화성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5.7km에 이르는 성곽을 걸으며 아름다운 조형미를 지닌 성곽 건축물과 그 안에 깃든 의미를 만난다. 200년 넘는 세월에도 그 빛을 잃지 않은 유적 안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수원의 모습도 공존한다. 글 박성원 , 사진 문일식 조선의 21대 임금 영조가 승하한 뒤 왕위에 오른 정조대왕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조선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던 수원 화산(化山)으로 옮긴다. 화산 인근에 살던 사람들을 팔달산 아래 넓은 기슭으로 이주시키고 성을 쌓아 도시를 건설했으니 바로 수원화성이다. 조정 신료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다산 정약용 등 실학자들에게 설계와 축조를 맡겨 2년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화성을 완성했다. 강력한 왕권을 실현하고 백성을 위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정조대왕의 뜻이었다. 외부의 침입에 대비해 군사 전략에 근거한 망루와 포루, 돈대를 빈틈없이 설치한 화성은 건축적 아름다움도 고려해 성곽 전체의 조형미도 빼어나다. 성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수원천을 중심으로 도로를 설계하고 백성들을 이주시켰다. 군사적 방어 목적뿐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고려한 설계였다. 조선 후기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다. 성곽의 중심에 자리한 화성행궁은 정조대왕과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을 찾을 때 머물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가 1996년에 복원했다. 옛 멋은 찾기 힘들지만 조선의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다.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정조가 활쏘기를 한 득중정, 정조가 머물던 복내당, 집사청 등이 복원되어 있다. 그중 낙남헌은 곡절 많은 인생을 살았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는 건축물 중 하나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이를 기념하는 특별 과거시험 등이 열리기도 했다. 정약용이 남긴 《화성성역의궤》에는 성의 설계를 비롯해 축조 과정, 성을 쌓는 방법과 재료, 벽돌을 굽는 방법,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의 수와 임금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에 근거하여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훼손되었던 부분들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조선의 르네상스로 평가받는 시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백성들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꿈꾸었던 정조대왕은 수원화성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남쪽에 팔달문, 북쪽에 장안문, 동쪽에 창룡문, 서쪽에 화서문. 이렇게 4개의 문루가 있는 수원화성은 어디에서 출발해도 한 바퀴를 돌면 원점으로 회귀할 수 있다. 둥글게 이어지는 약 5.7km의 성곽을 걸으며 망루와 장대, 포루와 암문 등을 만나고 화성행궁에서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2012년 ‘한국관광의 별’ 문화관광자원 부문에 선정되었다. 장안문을 출발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성곽을 걷는다. 보물 제1710호로 지정된 서북공심돈, 화서문과 군사지휘소인 서장대, 화양루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서남각루를 차례로 둘러본다. 성벽을 따라 긴 돌계단을 내려서면 화성행궁으로 이어지는 장안문 옛길이다. 아기자기한 벽화와 카페, 공방 들이 이어져 전통과 현대를 함께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화성행궁은 다양한 전통 체험과 공연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앞에서는 정조대왕 거둥 행렬, 장용영 수위 의식, 무예 시범, 전통 무용, 전통 줄타기 등이 열린다. 행궁 안에서는 민속놀이 체험, 다양한 만들기 체험, 뒤주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화성행궁을 둘러보고 성안에 자리한 지동시장을 지나면 다시 성곽길이 이어진다. 동남각루에 오르면 봉수를 올리던 봉돈, 동포루를 지나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에 이른다. 화성의 동장대에 해당하는 연무대와 동북포루인 각건대를 지나면 연못과 어우러진 방화수류정과 수원천 위에 세워진 화홍문을 만난다. 7개의 홍예문 위에 세운 화홍문은 굵은 버드나무가 호위하는 수원천과 둥글게 이어지는 성벽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다. 북동포루와 북동적대에서 출발지인 장안문으로 이르는 길은 초록의 숲이 함께해 여유로운 성곽 여행의 마무리를 이끈다. 해가 지고 난 후 수원화성에 조명이 켜지면 화려하게 변신하는 길이기도 하다. 화성행궁 뒤편 팔달산과 연무대를 오가는 화성열차는 정조대왕의 거둥 행렬 가마를 본뜬 꼬마열차다. 성곽의 안팎을 오가며 화서문, 장안공원, 화홍문을 둘러볼 수 있다. 중간 정류장에서 내려 잠시 성곽 여행을 한 뒤 다시 열차를 타도 된다. 왕복 티켓을 구매해 편안하게 성곽을 둘러보는 것도 즐겁다. 연무대 정류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전통 활쏘기인 국궁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는 내부로 들어갈 수 없는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의 내부 구조를 비롯해 《화성성역의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화성행궁에서 베푼 진찬연을 모형으로 만나볼 수 있다. 야외에는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이용한 거중기, 녹로, 유형거 등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의 과학기술과 선조들의 지혜를 살펴볼 수 있다. ✔ 주소 -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일원 ✔ 문의 - 화성문화재단 031-290-3600 / www.swcf.or.kr ✔ 식당 - 가보정 : 한우양념갈비 / 수원시 팔달구 장다리로 282 / 031-238-3883 / www.kabojung.co.kr - 오리대가 : 유황오리진흙구이 / 수원시 팔달구 경수대로565번길 27 / 031-223-5292 / www.오리대가.kr - 충남집 : 순댓국, 소머리국밥 /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264번길 30 / 031-243-3284 ✔ 숙소 - 수원호스텔 :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11 / 031-254-5555 - 이비스앰배서더 수원 : 수원시 팔달구 권광로 132 / 031-230-5000 / ibis.ambatel.com - 호텔아테네 : 수원시 팔달구 권광로180번길 53-22 / 031-235-6966~7 ✔ 여행 팁 매년 10월, 수원화성문화제에서 정조대왕능행차와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재현된다. 정조대왕능행차는 만 18세 이상 내·외국인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참여자에게는 <원행을묘정리의궤> ‘반차도’ 속 인물의 의상이 제공된다. 수원화성을 주말에 찾으면 무예24기 시범공연, 장용영 수위의식, 토요상설공연 등을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