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풍경의 가장 화려한 정점은 두말할 것 없이 ‘눈(雪)’이다. ‘눈 구경’이야 말로 겨울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목적지는 동계올림픽을 화려하게 끝낸 강원 평창. 다음은 겨우내 평창의 오대산 자락에 펼쳐지게 될 기막힌 설경에 대한 이야기다. 산 아래는 비로 촉촉하게 젖지만, 산중에는 그득하게 폭설이 내리는 날. 강원 산간으로 ‘눈 구경’을 떠나기에 이런 날이 으뜸이다. 눈 구경을 떠나기 전에 눈에 대한 상식 한 가지. 다 똑같아 보이지만, 눈의 종류는 두 가지다. 바람에 후르르 날아 가버리는 ‘건설(乾雪)’과 축축하게 늘어 붙는 ‘습설(濕雪)’이 있다. 건설과 습설을 가르는 건 눈이 수분을 얼마나 포함하고 있느냐다. 건설은 말 그대로 수분 함량이 40% 이하인 ‘마른’ 눈. 바람에 쉽게 날아가지만 좀처럼 녹지 않는다. 모든 것이 꽝꽝 얼어붙는 영하 10도 이하에 주로 내린다. 습기를 머금은 습설은 이내 녹긴 하지만 나무에 축축하게 잘 달라붙는다. 스키를 타는 데는 건설이 으뜸이지만, 겨울 숲의 눈부신 설경을 만들어내는 건 십중팔구 습설이다. 눈사람을 만들기에도, 순백의 눈 위에 발자국을 찍기에도 습설이 더 낫다. 그러니 눈 구경을 간다면 습설이 내릴 때를 겨눠야 한다. 혹한의 날씨에 쏟아지는 건설은 내릴 때도 그렇지만, 내린 뒤에도 바람 한 번 불면 다 흩어져 버린다. 게다가 추위로 도로가 꽁꽁 얼어붙기라도 하면 길마저 두근두근 위태롭다. 반면 습설은 주로 푸근한 날에 내리니 설경까지 가는 길의 미끄러운 도로 걱정도 덜 수 있다. 설경을 만나러 가는 여정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기억해 둘 일이다. 강원 평창 최고의 설경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계곡을 따라 상원사를 잇는 길고 긴 계곡 길에 있다. 비포장 흙길인데 눈이 내리면 눈부신 설경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길이다. 산문 밖의 겨울비는, 월정사 계곡을 끼고 상원사로 이어지는 8km의 계곡에서 폭설이 된다. 성글고 가는 눈발도 이 계곡으로 들어서면 금세 함박눈으로 변한다. 눈이 그친 뒤에도 잔설이 겨우내 녹지 않고 남아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이 길이 특별한 것은 걸어서도, 차를 타고서도 지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계곡 이쪽으로 차로가 유연하게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계곡 저쪽의 숲 사이로는 걷는 길이 있다. 따뜻한 차 안에서 나른한 음악을 틀어 놓고 설경을 감상하며 계곡 이쪽의 도로를 따라 느릿느릿 운전할 수도 있고, 계곡 저쪽의 숲을 따라 놓인 나무데크 도보길 ‘선재길’을 걸으면서 눈 쌓인 겨울숲 속으로 걸어 들어설 수도 있다.선재길은 60년대 말 상원사까지 도로가 놓이기 전에 월정사와 상원사의 스님이 교유하던 길이고, 간절한 기원을 품은 불교 신도들이 오가던 길이기도 하다. 오대산의 월정사도, 상원사도 모두 1000년을 헤아리는 고찰이니 이 길의 나이도 족히 1000년을 넘는다. 이 길에 ‘선재’란 이름이 붙은 건 오대산이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문수보살의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이가 ‘화엄경’에 등장하는 선재동자다. 그러니 선재길이란 이름은 ‘참된 나’를 찾는 깨달음의 길을 은유한다. 오대산 국립공원 안에는 겨울 눈꽃 산행으로 이름난 계방산도 있다. 오대산 국립공원의 경계는 계방산 남쪽의 발치 아래 방아다리 약수까지다. 지도를 펼쳐 보면 국립공원 구역이 남쪽으로 길게 뻗어서 방아다리 약수를 가까스로 품에 안은 형국이다. 오대산의 설경 명소로 계방산 일대를 꼽는 건 약수로 가는 길의 전나무 때문이다. 짧아서 아쉽긴 하지만 길에는 수령 60년을 넘긴 전나무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수령 500년을 헤아리는 월정사 전나무의 웅장함에는 턱없이 못 미쳐도 정갈하고 가지런한 전나무 숲길은 낭만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방아다리 약수는 산길을 걷는 수고 없이도, 애써 눈길을 아슬아슬 달리지 않아도 단번에 당도할 수 있다. 난이도는 최하. 게으른 여행이라면 설경을 즐기는 데 여기만 한 곳이 없겠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폐지됐지만 방아다리 약수는 입장료를 받는다. 약수 일대가 개인의 사유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방아다리 약수에는 자연체험학습장 ‘밀브리지’가 들어섰다. 학교법인 대제학원 소유인 밀브리지는 나무 하나 다치지 않고 방아다리 약수 전나무 숲에 들어선 미술관과 숙소, 레스토랑 등으로 이뤄진 독특한 문화공간이다. 노출 콘크리트 외벽의 소박하지만 세련된 공간의 설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의 솜씨다. 전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향 가득한 숲속의 미술관이며 커피숍이 그윽한 정취로 가득하다. 오대산 북쪽 자락에는 오지마을 ‘부연동’이 있다. 한때 오지의 전설처럼 불렸던 산중마을이다. 강원 산간에 눈이 내리는 날이면 이곳 부연동은 말 그대로 ‘눈 폭탄’이 떨어진다. 한 번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40cm가 넘게 쌓이는 건 예사다. 부연동을 찾아가려면 오대산과 황병산 사이의 낮은 목인 진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눈이 내리는 날이라면 일단 여기서부터 난관이다. 특히 진고개 정상에서 삼산리 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길고 가파르다. ‘진(긴)고개’라는 이름값을 단단히 한다. 제설작업이 빠르긴 하지만, 눈이 내리는 중이거나 눈 내린 직후라면 되도록 들어서지 않는 편이 나을 정도다.진고개를 넘어간 뒤 삼산리 마을에서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면 악명 높은 전후치 고개가 나온다. 부연동을 전설의 오지로 만든 것도 바로 이 고개다. 전후치란 이름은 오르는 길도, 내려서는 길도 똑같아서 앞(前)과 뒤(後)가 똑같은 고개라 해서 붙여진 것이다. 눈이 내리지 않는 계절이라도 운전에 능숙하지 않다면 이 시멘트 도로 고갯길은 진땀이 다 날 정도다. 부연동은 이 고개 너머에 있다. 부연동은 5년 전쯤 문 닫은 분교 외에는 이렇다 할 게 없다. 폐교된 부연 분교는 나무로 지은 산골 학교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운동장은 겨우내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이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겨울 부연동에서 봐야 할 것은 눈이다. 부연동에는 한 번 눈이 내리면 몇 날 며칠을 쏟아져 고립된다. 왜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눈에 깊이 파묻힌 산중 마을에서 모든 걸 잊고 숨어 있고 싶을 때…. 그럴 때 가면 딱 좋은 곳이다. 출처 : 청사초롱 글, 사진 : 박경일(문화일보 여행전문기자) ※ 위 정보는 2018년 12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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