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영암의 문화를 대표하는 구림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품은 곳이다 . 삼한 시대부터 무려 2200 년 동안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왔고 , 왕인박사 , 도선국사 , 최지몽 등 걸출한 인물도 많이 배출한 마을이다 . 특히 이 마을의 이름이 지어지게 된 계기인 도선국사의 설화가 아주 재미있다 . 신라 말기 어느 겨울에 이 마을에 사는 한 처녀가 시냇가에서 싱싱한 오이가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건져 먹었는데 , 그 후 그녀의 배가 점점 불러오더니 가을에 아들을 낳았다 . 그의 부모는 오이를 먹고 임신한 것을 괴상하게 생각해 갓난아기를 근처 바위 아래에 버렸다. 며칠이 지난 뒤 처녀는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그 바위 아래로 가보니 비둘기 떼에 둘러싸여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처녀의 부모도 범상치 않은 일이라 여겨 그 아이를 키우는 것을 허락했고, 그 아이가 후에 자라서 풍수의 대가인 선각국사 도선이 되었다고 한다 . 그 이후 이 바위를 국사바위라고 부르고 , 마을 이름도 비둘기 구 ( 鳩 ) 자에 수풀 림 ( 林 ) 자를 써서 비둘기 숲 , 즉 '구림 ( 鳩林 ) 마을'이라고 불린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구림마을은 월출산 서북쪽에 동구림 ‧ 서구림 ‧ 도갑 ‧ 동계 ‧ 서호정 등 열두 마을이 하나의 이름으로 어우러져 있다 . 어느 마을에서나 월출산이 지근거리에 보이며 , 지금도 600 여 세대 1 천 1 백여 명이 살고 있다 . 그래서 이번 여행에 마을을 전부 돌아볼 수는 없었다 . 필자가 방문한 구림마을 명소 중 가장 추천하는 곳은 상대포역사공원이다 . 상대포는 고대 서남권 지방의 국제 무역항으로 중국 , 일본 등과의 교역의 중심지였다 . 이곳은 백제 왕인 박사가 1600 년 전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문물을 전수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 이곳에 오면 목교를 건너 취석루에 올라가 봐야 한다 .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싱그러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 이외에도 구림마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 영암의 역사는 도기박물관과 하정웅미술관에 가보면 더 많이 알 수 있다 . 월출산의 기를 받으러 구림마을로 가보는 건 어떨까 , 어쩌면 당신도 이 기를 받고 또 한 명의 역사적 인물이 될지도 모르니 . ※ Accomodation 해남 무선동 마을은 한옥마다 객실 구조가 다르다 . 약 7 개의 한옥 민박이 운영 중이다 . 예약 문의는 한옥별 홈페이지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 ※ Activities / Program - 전통 혼례 , 짚풀 공예 등 농촌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 민박마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문의해 보기를 권한다 . ※ Travel information - 위치 :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호정길 20 - 가격 : 숙소마다 상이 - 전화번호 : 061-470-2656 ( 군서면 사무소 ) ※ 인근 여행지 - 영암도기박물관 우리나라 최초의 유약 도기를 생산한 곳으로 평가된 구림도기가마터 ( 사적 338 호 ) 를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보존 ․ 활용함으로써 구림 도기의 역사성과 영암의 우수한 도기 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 영암도기박물관은 영암군에서 출토된 구림 도기 및 기증품들을 상설전시하여 영암 도자 문화의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으며 , 방문객의 오감 만족 체험 프로그램 운영으로 영암의 도기 문화의 가치를 느끼고 체험하는 창조적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특히 왕인문화축제와 왕인국화축제에 맞춰 진행하는 특별 ․ 기획전은 영암을 찾는 관광객과 지역민의 볼거리를 제공함은 물론 문화향유의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하였다 . -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 영암군 홍보대사이자 , 재일교포인 동강 하정웅 선생이 메세나 정신으로 평생을 수집해 온 미술작품을 기증한 것을 계기로 건립한 제 1 종 미술관이다 . 연 4 회에 걸쳐 동강 컬렉션 미술품을 공개 전시하며 , 세계 미술문화교류의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 - 죽정서원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마을에 있는 서원 . 1681 년 ( 숙종 7 년 ) 에 조선 초기의 문신 박성건 ( 朴成乾 , 1418~1487 년 ) 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 박성건은 국문학사상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경기체가 < 금성별곡 ( 錦城別曲 )> 을 지었다 . 1683 년 박권 ( 朴權 , 1465~1506 년 ) 과 박규정 ( 朴奎精 , 1493~1580 년 ), 1726 년에 이만성 ( 李晩成 , 1659~1722 년 ) 이 추가 배향되었다 . 이후 1868 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1 년 지방 유림들에 의하여 복설되면서 박승원 ( 朴承源 , 1573~1640 년 ) 을 추가 배향하여 총 5 위를 제향하고 있다 . - 왕인박사유적지 왕인박사는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것은 물론 기술공예의 전수 , 일본가요의 창시 등에 공헌함으로써 일본 황실의 스승이며 정치고문이 되어 백제문화의 전수를 통하여 일본 사람들을 계몽한 일본문화사상 ( 日本文化史上 ) 의 성인 ( 聖人 ) 으로 일본 비조문화 ( 飛鳥文化 ) 의 원조가 되었다 . 이 유적지는 1985 년부터 1987 년까지 사당을 비롯한 유적지 정화사업을 시작으로 왕인공원 등 성기동 문화관광사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 글: 손소현(여행 작가) 사진: 이희배(사진 작가) ※ 위 정보는 2021년 1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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