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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동네를 달린다. 오르막길 좌우로는 낡은 집들이 들고난다. 꽃 장식이 고운 벽과 담장이 있는 곳, 홍제동 개미마을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용구와 딸 예승이가 살던 동네다. 영화는 교도소 생활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아침의 풍경이 어린 한 장면은 마치 영화 속 판타지의 진원처럼 자리매김한다. 대문이 열린다. 바가지머리의 용구(류승룡 분)가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선다. 내복 차림의 딸 예승이(갈소원 분) 손을 흔들며 따라 나선다. 부녀는 정겹게 인사한다. 햇살이 곱게 내리쬐는 아침이다. “하나, 둘, 셋!” 예승이가 맘속으로 숫자를 센다. 용구가 구령을 듣기라도 한 듯 갑작스레 돌아선다. 버스 정류장 앞이다. 곧 두 사람은 그들만의 특별한 인사를 나눈다. 1,200만 관객을 동원한 <7번방의 선물>의 도입부다. 영화는 부유하지 않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녀가 주인공이다. 여섯 살 지능을 가진 아빠와 그보다 어른스런 딸아이다. 영화는 비극을 향해 치닫지만 시종 경쾌하고 유쾌하게 전개된다. 작품의 배경은 초반과 회상 장면을 제외하고는 주로 교도소 안과 밖이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사건이 작품을 이끌어 나간다. 적당한 판타지도 섞인다. 촬영은 전북 익산의 교도소 세트에서 이뤄졌다. 최근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교도소는 익산 교도소 세트로 무려 60여 편에 등장했다. 그에 비해 용구와 예승이가 사는 동네의 분량은 고작 두 장면뿐이다. 두 사람이 아침인사를 나누는 장면과 예승이가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는 장면이다. 분량으로는 익산 교도소 세트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두 사람의 가장 평온한 시절이자 돌아가고 싶은 지난날이다. 애드벌룬을 타고 올라가 바라보는 노을 진 서편이고 환상 속 이데아다. 그런 의미에서 홍제동 개미마을은 적확한 선택이다. 낡은 판자촌을 장식한 예술의 감성은 현실을 넘어선다.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마을이다.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 <7번방의 선물>과 닮은 흔적들이 남아 있다. 홍제동 개미마을은 한국전쟁 이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야산에 천막을 치고 살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젊은이도 숨어들었다. 그 풍경이 인디언 부락 같았던지 처음에는 ‘인디언촌’이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며 천막은 무허가 판잣집으로 진화했다. 경사지에 아슬아슬하게 똬리를 틀었다. 70년대에는 몇 차례 철거 시도가 있었다. 지난 1985년을 전후해 토지비를 낸 이들에게 땅을 불하했다. 현재는 120여 동에 350여 명이 산다. 이름도 개미마을로 바뀌었다.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의미다. 마을 풍경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7번방의 선물>이 흥행한 이후로 부쩍 늘었다. 물론 이전부터 낙산의 이화동과 더불어 서울의 벽화마을로 이름을 떨쳤다. 그 시작은 2009년. 한 건설회사의 후원 아래 서울에 있는 5개 대학의 미술학과 학생들이 참여해 마을 벽화를 그렸다. 환영, 가족, 자연 진화, 영화 같은 인생, 끝 그리고 시작 등 다섯 가지를 테마로 했다. 128명이 참여해 그린 벽화 51편이 마을을 새롭게 바꿔놓았다. 그 가운데 <7번방의 선물>에 나오는 장소는 동래슈퍼 앞 삼거리다. 용구와 예승의 장난스런 표정이 떠오른다. 슈퍼에서 맞은편 약수터 가는 오르막은 용구와 예승이 살던 집 방향이다. 개울 곁 노란 건물 외벽에는 전깃줄에 나란히 앉은 어미 참새와 새끼 참새가 그려져 있다. 영화 속 부녀처럼 다정한 모습이다. 맞은편도 볼거리다. 낮은 옹벽에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그려놓았다. 마음만은 구름 위를 걷듯 걸어보란 뜻일까. 다시 뒤를 돌아보면 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마을 꼭대기에 있는 집까지 갈지(之)자의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동래슈퍼 옆에 있는 화사한 색의 작은 판잣집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용구가 고릴라 흉내를 내며 예승에게 인사하는 장면에 나왔던 곳이다. 건물 가운데 입구에 문이 없다. 바깥으로 색동의 줄을 내려 안을 가렸을 뿐이다. 자세히 보니 화장실. 그 너머에 남성용 소변기가 있다. 반전이 있는 풍경이다.건물과 도로 사이 콘크리트 경계석도 재미나다. BUS STOP! 알파벳 일곱 글자가 커다랗게 쓰였다. 예승이 밤늦게까지 용구를 기다리던 자리다. 실제 정류장 이름은 삼거리 연탄가게 앞이다. 동래슈퍼 터에는 예전에 연탄가게가 있었다 한다. 지리적으로는 마을의 중심부에 해당한다. 주로 개미마을 주민들이 마을버스를 타고 와서 내리는 곳이다. 동네 노인들이 볕을 쬐거나 잠깐씩 쉬어 가기도 한다. 마을을 보러 온 이들은 한 정거장을 더 지나 종점에서 내린다. 대로변 문화촌아파트나 마을 초입 인왕중학교에서 출발하면 가파른 경사로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종점에서 걸어 내려오며 마을을 둘러보는 게 한결 수월하다. 종점에서 처음 만나는 것은 공중화장실이다. 마을에는 화장실이 없는 집이 여럿이다. 그래서 공중화장실을 만들었다. 그 사유에 마을의 형편이 스몄다. 내리막으로 첫걸음을 낸다. 벽화에 앞서 서울 시내 전경이 들어온다. 가까이 판잣집과 먼발치의 고층 아파트가 대비를 이룬다. 어렵사리 첫걸음을 디디니 오른쪽 집의 파란 벽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눈송이일까, 그저 달빛일까. 07번 마을버스 노선도 위의 스노볼은 개미마을이나 다름없다. 한 편의 판타지인 양하다. 이어서 동물들의 벽화가 차례로 등장한다. 길에 접한 창가에서 그림 속 강아지들이 눈웃음을 친다. 소와 돼지가 창밖으로 손을 흔든다. 슬며시 웃음이 난다. 반대편 계단에는 층층마다 빨간 하트 무늬가 남았다. 그림은 시간을 따라 퇴색했다. 그 또한 자연스레 사람의 발자취다. 그리 50m쯤을 내려오면 다시 동래슈퍼 앞이다. 삼거리를 지나서 인왕중학교까지는 꽃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누이처럼 돌아선 국화와 그리움을 담은 꽃창포와 하늘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다. 이 꽃들이 화단을 대신한다. 때때로 옹벽의 각진 돌은 거북의 등이 되고, 애니메이션 캐릭터도 골목대장처럼 지키고 서 있다. 그 사이로 서대문 07번 마을버스가 ‘7번방의 선물’을 싣고 오간다. 어느 날의 예승이를 닮은 꼬마들이 들썩댄다. 벽화가 그려지기 전 개미마을에선 재개발 찬반 논의가 거셌다. 관련 문구들이 경쟁적으로 담장을 채웠다. 그 증거처럼 재개발조합 총회소집공고 몇 장이 남았다. 그 또한 몇 달이 지난 공고다. 의견은 분분하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요원한 소식이다. 굳게 자물쇠를 걸어 잠근 집과 주인이 떠난 빈집도 적잖다. 그 자그마한 공간에도 용구와 예승이처럼 따스한 인사로 하루를 시작하는 가족이 있었겠지. 어느 날 아빠는 딸에게 “아빠 딸로 태어나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전했으려나. 집은 사라지고 사람은 떠나갔어도 잊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많다. “예승아, 잊지 마.” “뭘요?” “오늘을 그리고 아빠를.” 영화의 마을에서 영화처럼 가만히 하나, 둘, 셋을 헤아려본다. 고운 그림의 벽화가 잠시 현실을 지워낸다. 서대문구 홍제3동 주민센터 02-330-8125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내부순환로 성수대교 방향 홍은램프 → 유진상가 사거리에서 직진 → 홍제3동 주민센터 → 인왕중학교 → 개미마을 * 대중교통 지하철 3호선 홍제역 1번 출구 → 서대문 07번 마을버스 → 종점(개미마을)에서 하차 2.주변 음식점 수라면옥 : 냉면 / 서대문구 홍제내길 232 / 02-396-2257 베네치아 : 스테이크 / 서대문구 백련사길 130 / 02-309-5033 3.숙소 그랜드힐튼서울 : 서대문구 연희로 353 / 02-3216-5656 http://www.grandhiltonseoul.com/HILTON/HTML/APP/MAIN.ASP 글, 사진 : 박상준(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12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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