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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제주 음식의 첫 경험은 원시림 같았다. 간신히 간만 맞은 수준이라고나 할까. ‘갖은 양념’ 맛에 길든 입맛엔 무척 거칠게 다가왔다. 이제 와서 솔직한 고백인데 다른 사람들에겐 ‘식재료의 본연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음식’이라고 둘러댔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제주음식을 작정하고 취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손님 맞을 채비를 해서 그런지 다행히 ‘갖은 양념’의 맛있는 음식점 몇 곳을 건졌다. ‘그래, 이 맛이야’ 하며 쾌재를 불렀다. 그 뒤론 계속 늘어 몇 년 전부터는 대부분 ‘훌륭’의 평가를 했다. 그런데 묘하게 신바람이 나질 않았다. 오히려 짜증나고 불편했다. ‘제주도에 내려가도 먹을 게 없어. 어딜 가도 똑같은 관광지의 맛이야’란 밥투정을 하게 됐다. 결국, 얼마 전부터 제주로 갈 때면 30년 전으로 돌아간 원시림의 맛을 찾는다. 자연의 맛, 민속의 맛, 언어의 맛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제주 섬의 단순한 맛. 그 맛이 그립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간신히 간을 맞춘 수준의 거친 맛을 원하는 건 아니다. 정신적인 위안까지 채워줄 세련된 맛을 요구하며 뭍사람의 과욕을 부려 본다. 원시 제주 맛의 시작은 자리 물회다. 제주도에서 가장 싸고 흔한 생선은 자리돔이다. 가치로 따지면 어물전 꼴뚜기나 밴댕이를 닮았다. 어린 아이 손바닥 만한 놈을 뼈째로 숭숭 썰어서 물에 푼다. 다른 지역의 뼈 없는 물회처럼 후루룩 마시다간 큰일 난다. 꼭꼭 씹어서 먹다가도 재수가 없으면 가시로 입안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자리가 겁나면 한치 물회가 있다. 무채처럼 가늘게 썰어 쫄깃한 살맛을 즐긴다. 양념 육수에는 둘 다 특이하게 된장이 들어가며, 깻잎·풋고추·오이·파 등 채소를 곁들여 맛을 낸다. 다음은 몸국이다. 몸은 모자반이라 불리는 해초. 평소엔 된장에 무쳐 먹는 식재료다. 그러나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땐 돼지를 잡아 고기와 내장을 삶은 국물에 끓여 먹던 음식이 몸국이다. 신 김치나 시래기 등을 썰어 넣어 고깃국물의 느끼함을 달랬다. 해초 특유의 미끈한 맛이 있다. 몸국과 함께 최근 주목을 받는 게 제주도식 육개장이다. 소 살코기 대신 제주의 특산물인 고사리가 들어간 육개장이다. 국물의 베이스는 몸국과 마찬가지로 돼지다. 겉보기에는 천렵으로 끓여 먹던 어죽을 닮았다. 술 마신 다음 날 해장 메뉴로 손색이 없다. 제주 음식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생선회랑 해산물이다. 싱싱한 회가 중심이므로 곁들이 안주(쓰키다시)가 많이 나오는 곳보다는 ‘자연산’ 또는 ‘당일 생선’을 고집하는 곳을 찾는 게 제주 횟집을 제대로 이용하는 요령이다. 육지에서는 갈치를 구이나 조림으로 먹는데 제주에선 회와 국으로 요리한다. 갈치회는 손가락 크기로 떠서 내는데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과 고소한 뒷맛이 좋다. 갈치국은 구이 크기로 토막을 내 호박이나 배추를 넣어 맑게 끊인 뒤 풋고추를 넣어 매콤한 맛을 더했다. 제주음식의 하이라이트로 돼지고기도 빠뜨릴 수 없다. 제주도에서 먹는 돼지고기는 ‘모 아니면 도’다. 모는 제주산, 도는 수입산을 말하는데 제주도에 수입산은 있어도 우리나라 육지 다른 곳에서 들어온 돼지고기가 없다는 의미다. 이왕이면 제주도 토종 흑돼지구이가 제격이다. 살코기만 보면 알 수 없지만 껍질 속에 꺼먼 털이 송송 박혀 있다. 주로 껍질이 달린 삼겹살을 숯불이나 불판에 구워 멸치젓에 찍어 먹는다. 두툼한 고기가 노릇노릇 익을수록 맛있다. 육지의 보쌈에 해당하는 돔베고기도 필수코스다. 돔베는 도마의 제주 사투리. 삶은 돼지고기를 도마에 썰어주는 게 특징이다. 돔베고기를 삶은 물에 국수를 말아내는 고기국수도 별미다. 일본의 돈코츠라면처럼 뽀얗고 걸쭉한 국물에 육지에선 맛볼 수 없는 진한 맛이 가득하다. 고깃국수와 어깨를 겨룰 해산물 국수로는 보말칼국수를 꼽을 만하다. 제주도 해안에만 서식하는 보말고둥으로 끓인 칼국수다. 전복내장 못지않게 진한 색과 맛을 낸다. 돈사돈 제주에선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한 끗발 위다. 똥돼지든 흑돼지든 다른 지역의 돼지고기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나다. 이곳에선 일명 ‘근고기’라고 해서 두툼하게 썰어낸다. 연탄불에 잘 익혀 추자도 멜젓(멸치젓갈)에 찍어 먹는다. 흑돼지 1근(600g) 5만4000원. 064-746-8989. 제주시 우평로 19. 닐모리동동 ‘한라산 빙수’란 메뉴로 제주 토박이는 물론 관광객까지 끌어들인 레스토랑. 용두암 해안도로변에 위치해 제주 푸른 바다까지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산모양의 빙수에 팥앙금, 녹차, 블루베리 등을 부어 눈 덮인 한라산을 연출해 맛본다. 한라산빙수 1만3000원. 064-745-5008. 제주시 서해안로 452. 순희뽀글이 6000원 가지고 만나는 제주 최고의 음식점. 옆 테이블에선 7000원, 8000원을 내도 아깝지 않다고 평을 한다. 제육쌈밥을 바탕으로 대접보리밥에 강된장과 6가지 반찬. 제주식 된장냉국도 곁들여준다. 여유 있는 시간엔 달걀부침이 특별서비스로 나온다. 064-755-7441. 제주시 공설로 27-1. 우진해장국 제주 육개장을 파는 곳이다. 육지의 육개장이랑 영 딴판이다. 오히려 어죽을 닮았다. 걸쭉해질 정도로 푹 삶은 돼지고기 국물에 부드러운 제주도산 고사리를 섞어 끓였다. 뜨끈하게 한 그릇 먹고 나면 속이 확 풀린다. 1인분에 9000원. 064-757-3393. 제주시 서사로 11. 신설오름 제주도 향토음식을 취급하는 실비집. 주특기는 몸국과 물회지만 다른 곳보다 경쟁력이 뛰어난 것은 몸국이다. 모자반이 넉넉하게 들어있어 미끈한 바다 맛이 풍성하다. 외지인보다 제주토박이 손님들이 더 많다. 몸국 작은 것 7000원, 몸국수 7000원. 064-758-0143. 제주시 고마로17길 2. 해월정 외관과 실내는 보잘것없이 허름하지만, 창밖의 풍경은 성산일출봉을 한껏 품어 장관이다. 원뿔형 보말고둥을 넣어 끓인 보말칼국수(10000원)는 뜨거운 땡볕 무더위든 허리케인 폭풍바람이든 거뜬히 물리칠 정도로 알차다. 마무리 죽(3000원)도 빠뜨리지 말 것. 064-782-5664.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2340. 가시아방국수 돔베고기가 맛있으면 고기국수도 맛있고, 고기국수가 맛나면 돔베고기도 맛나다. 한 솥에서 만들어지니 당연한 이치다. 뽀얀 국물의 고기국수, 촉촉한 윤기가 가득한 돔베고기 둘 다 흠잡을 게 없는 맛이다. 고기국수 6000원, 돔베고기 2만5000원. 064-783-0987.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528. 남양수산 메뉴판도 가격표도 없다. 곁들이 안주(쓰키다시)도 없다. 그날그날 잡아온 활생선을 가지고 회를 쳐 내놓는다. 어른 세 명이 도미 한 마리(6만원)로 술 한잔에 식사까지 해결했다. 1시간 이상 푹 끓인 서더리 맑은국이 뽀얗다 못해 노란빛 나는 진국이다. 064-782-6618. 서귀포시 성산읍 동서로56번길 11. 순덕이네 성게와 톳을 올려 비벼 먹는 성게톳밥(1만2000원)이 제주향토음식의 신세계로 안내한다. 싱싱한 성게의 바다향이 입을 통해 온몸의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간다. 전국노래자랑 출전 경험이 있는 재간둥이 여주인의 돌문어톳죽도 맛나다. 064-784-0073.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서로 48. 공천포식당 제주에서 물회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여기에 전화부터 걸어보라고 한다. 어떤 물회가 가능한지 물어보기 위해서다. 기상 상태가 나쁘면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지 않아 해삼이나 소라 물회는 먹을 수 없다. 한치물회 12000~15000원. 전복물회 1만5000원. 064-767-2425. 서귀포시 남원읍 공천포로 89. 남경미락 생선회 광팬들이 열광하는 다금바리(1kg에 22만원) 전문 횟집. 가격순으로 꼽으면 제주에서 첫손가락 부럽지 않을 만큼 비싸다. 사장이 ‘제주산이 아니면 판매를 안 한다’고 써 붙일 정도로 대단한 자긍심으로 운영한다. 산방산 아래 해안가에 위치. 064-794-0055.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남로 190-7. 온평향토맛집(온평생활개선) 농사일과 물질을 병행하는 온평리 억척여성 14명이 일을 하나 더 추가한 공동체식당. 앞바다에서 캐온 해삼, 소라, 전복을 살짝 데쳐 애기미역이랑 무쳐낸 해삼토렴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대(大) 한 접시 3만원. 064-782-8689. 서귀포시 성산읍 환해장성로 389. 출처 : 청사초롱 9호 글 : 유지상 사진 : 유지상, 박은경 기자 ※ 위 정보는 2019년 11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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