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꼽아 기다려온 여름휴가가 시작됐다. 올 여름엔 복닥거리는 휴양지 말고 조용한 산사에서의 하룻밤을 계획해보면 어떨까? 템플스테이가 시작된 지 어느덧 10년. 요즈음 템플스테이는 시기와 취향에 따라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종류도 다양하고 내용도 풍성해졌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도솔산 기슭에 자리 잡은 1500년 고찰 선운사는 한국인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만한 국가대표급 사찰이다. 붉은 동백이 절정을 이룬 봄날의 선운사에 한 번쯤 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고, 선운사 앞에선 장어구이를 먹고 복분자주를 마셔야 한다는 게 관례가 됐다. 문학의 향기도 진하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더라는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는 가장 널리 알려진 시. 김용택과 최영미 시인도 선운사 동백을 소재로 시를 썼고, 가요 쪽으로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로 시작하는 송창식의 <선운사> 가 유명하다. 우리에게 선운사는 아주 친숙한 관광지라는 의미다. 그런데 관광객이 모두 빠져나간 뒤 고즈넉한 절간 마당에 홀로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본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고요한 새벽, 어둠을 뚫고 울려 퍼지는 장엄한 예불 소리에 감동의 눈물을 흘려본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템플스테이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휴식형은 저녁예불과 새벽예불에 참여하고 공양시간과 취침시간을 지키는 것 외의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지내는 형태다. 책을 읽고 산책도 하고 낮잠도 자면서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체험형은 예불, 공양, 명상, 포행, 울력 등 사찰의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1박 2일 또는 2박 3일 코스로 정해진 프로그램을 따른다. 휴식형과 체험형을 묶어서 신청할 수도 있다. 선운사에는 그밖에도 연말연시의 해맞이 템플스테이, 5월의 동백 시문학 템플스테이, 7~8월의 하계방학 템플스테이, 9~10월의 차꽃따기 템플스테이 등 특정 시즌에 마련되는 테마형 템플스테이도 있다. 어떤 유형을 선택하든 참가자가 준비할 것은 수건과 세면도구, 그리고 열린 마음뿐이다. '참된 나를 찾아 떠난다'는 거창하고 원대한 포부가 굳이 필요할까? 그저 잠시 일상을 벗어나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이면 충분하다. 체험형 1박 2일 코스는 토~일요일, 2박 3일 코스는 금~일요일에 진행된다. 첫날 오후 4시부터 일정이 시작되므로 오후 3시~3시 30분 사이에 도착해서 예약을 확인하고 숙소를 배정받아야 한다. 참가자 수가 적을 때는 혼자서 방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2~3명이 한 방을 사용하게 된다. 짐을 풀고 수련복으로 갈아입은 후 4시부터는 참가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기본적인 사찰 예절을 배우게 된다. 합장하는 법과 절하는 법을 포함한 사찰 예절 습의가 끝나면 30분간 다 함께 사찰 투어에 나선다. 간혹 비가 너무 많이 온다든가 해서 외부 일정이 불가능할 때는 간단히 자기소개 시간을 갖기도 한다. 참가자들 면면은 아주 다양하다. 불자도 있고, 크리스천도 있다. 홀로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녀가 함께 혹은 장성한 자녀와 함께 참여한 부부도 있다. 외국 유학 중 방학을 이용해 찾았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군 입대를 앞두고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찾아왔다는 청년도 있다. 선운사는 외국인 템플스테이가 가능한 사찰 중 한 곳이기도 해서 방학 중에는 특히 많은 외국인들이 단체로 머무는 경우도 많다. 오후 5시 40분부터는 저녁공양이 시작된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가장 기대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마지막 남은 고춧가루 하나까지 남김없이 먹어야 하는 발우공양 시간일 터. 하지만 선운사에서는 뷔페식으로 개인 접시에 먹을 만큼 덜어 먹도록 되어 있으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깨끗이 설거지하는 것이 원칙이다. 공양이 끝나면 6시 20분부터 약 20분간 타종체험을 한다. 범종, 법고, 운판, 목어 등 예불에 사용되는 불전사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스님의 지도에 따라 참가자 모두 범종을 쳐볼 기회를 가진다. 저녁예불이 끝난 후 오후 7시부터는 108염주 만들기 체험이 시작된다. 자운 스님의 죽비 소리에 따라 절 한 번 하고 엎드려 염주 한 알 꿰는 동작이 108번에 걸쳐 계속된다. 염주 만들기는 템플스테이 일정 중에서 강도가 높은 프로그램에 속한다. 말이 108번이지 뒤로 갈수록 자세는 흐트러지고 염주 알을 꿰는 손동작도 정교함을 잃는다. 하지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공간 속에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그만큼 집중도가 높다는 이야기다. 108번 절을 하고 108개 염주 알을 꿰는 동안 누군가는 고통스럽고, 누군가는 인내를 배우며, 또 다른 누군가는 완벽한 몰아(沒我)의 상태를 경험했을 것이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완성된 108염주를 목에 걸면서 뿌듯함과 희열을 느낀다는 것. 매듭을 묶어 마무리까지 하고 나면 어느새 9시가 훌쩍 넘어 있다. 각자 방으로 돌아가 취침 준비를 마친 후 늦어도 10시 이전에는 소등을 하는 것이 예의다. 산사의 기운이 남달라서일 것이다. 새벽 4시 기상이 생각보다 수월하다. 템플스테이의 꽃이 라 할 수 있는 새벽예불은 4시 10분에 시작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예불 드리기 전 천지만물을 깨우고 도량을 청정하게 하는 의식인 도량석이다. 대웅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만이 형형하다. 스님들이 조용히 대웅전으로 이동하고, 템플스테이 참가자들도 한옆에 자리를 잡는다. 땅위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는 법고, 천상과 지옥 중생을 깨우는 범종, 수중 중생을 깨우는 목어,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는 운판 등 불전사물이 차례로 울리고, 이윽고 목탁 소리와 함께 장엄한 염불이 시작된다. 염불 소리는 몸을 바닥에 낮추어 절을 할 땐 깊이 잦아들었다가 몸을 세우면 함께 따라서 일어나며 리드미컬하게 이어진다. 로마 가톨릭의 그레고리안 성가 못지않은 위대한 종교음악이 사찰의 새벽예불 합창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다. 반야심경 독송과 함께 예불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대웅전 옆 영산전으로 이동해 108배와 명상을 이어간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을지언정 머릿속은 유리처럼 맑아지는 느낌이다. 아침공양 후 잠시 쉬었다가 도솔암으로 묵언포행에 나선다. 포행이란 산책하듯 느린 걸음으로 가볍게 걸으며 참선하는 수행법을 일컫는다. 참가자 모두 일렬로 늘어서서 40분 거리의 도솔암으로 향하는 길. 말을 하지 않으니 모든 감각이 주변 사물과 자연의 소리를 향해 활짝 열린다. 흐르는 계곡물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명징하게 다가온다. 내원암 앞에서 탁 트인 전망을 마주하고 마시는 봉지 커피 한 잔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이어지는 주지 스님과의 차담 시간. 어떤 마음으로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는지, 참가 전과 후에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시간이 가장 좋았고 또 힘들었는지 진솔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쯤 되면 생판 남으로 만나 1박 2일을 함께한 다른 참가자들이 마치 오래전부터 알아온 사람인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산을 내려갈 시간. 아쉬운 마음이 반, 뿌듯한 마음도 반이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전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되겠지만, 1박 2일의 시간이 안겨준 행복한 기억은 오래 간직될 것 같다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주변 음식점 -신덕식당 : 장어구이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8 / 063-562-1533 -동백장식당 : 장어구이, 백반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중촌길 26 / 063-562-1560 숙소 -선운산관광호텔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287-5 / 063-561-3377 http://www.sushotel.com/ -히든모텔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동리로 240 / 063-562-1006 글, 사진 : 이정화(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7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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