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오래도록 아이가 없어 고민이던 금슬 좋은 부부가 있었다. 간절히 빌어 뒤늦게 외동딸을 하나 얻었는데 이 아이는 얼굴이 고울 뿐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효심 지극한 딸은 아비의 극락왕생을 빌며 백일동안 탑돌이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이 절의 젊은 스님은 여인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귀의한 몸으로 여인에게 고백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말 한마디 못한 채 끙끙대던 스님은 탑돌이를 마친 여인이 돌아가자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만다. 그리고 이듬해 봄, 스님 무덤가에 어느 풀꽃이 돋는다. 푸른 잎과 붉은 꽃이 함께 피지 못하고 번갈아 나는 모습에 사람들은 상사화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모습이 스님의 절절한 사랑과 닮았기 때문이리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품은 상사화 전설이다.굴비로 유명한 전남 영광의 가을은 단풍이 시작되기 전부터 붉게 물든다. 매년 초가을이면 애틋한 붉은 물결로 일렁이는 불갑산(佛甲山·516m)의 꽃무릇 덕분이다. 잎과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다는 공통점과 비슷한 생김새 덕분에 흔히들 상사화(相思花)로 알고 있지만 우리 눈앞에 펼쳐진 붉은 꽃의 정체는 꽃무릇이다. 나무 아래 무리지어 핀다고 붙은 이름이다. 돌틈에서 나오는 마늘을 닮았다고 석산(石蒜)이라고도 부른다. 꽃무릇은 9월 초순 즈음 꽃대가 올라와 추석 전 후로 절정을 이룬다. 그 후 꽃송이가 시들면 그때서야 잎이 올라온다. 겨우내 버틴 잎은 이듬해 봄이 되면 시든다. 앞서 잠깐 소개했듯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건 비슷하게 생긴 상사화와 꼭 같다. 사람들이 이 둘을 혼동하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상사화는 붉은상사화 노랑상사화 위도상사화 등 여러 종류고 꽃무릇은 한 종류 뿐이다. 또 상사화는 칠월칠석 전후, 꽃무릇은 초가을 즈음으로 꽃을 피워내는 시기도 다르다. 꽃무릇에 대해 살펴봤으니 꽃구경 나서기 전 불갑산 등산 안내도를 체크할 차례다. 전역이 붉은 물결이지만 안내도에 꽃무릇 군락지가 표시되어 있어 동선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 군락지를 보면서 정상까지 다녀오는 불갑사~동백골~구수재~연실봉~해불암~동백골~불갑사로 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걷기로 했다. 주차장까지 포함해 총 7.3km, 3~4시간 소요된다. 동백골~해불암 구간은 가파른 편이니 관절에 무리가 있다면 피하는 편이 좋다. 꽃무릇 구경만으로 충분하다면 불갑사~동백골~불갑사까지 걸어도 충분하다. 일주문부터 붉은 물결이 넘실거린다. 길 양쪽으로 꽃무릇이 가득이다. 상사화 축제 기간에 불갑사를 찾았다. 만개한 붉은 물결에 각종 먹거리 장터, 상사화 미디어퍼포먼스와 상사화 창극 등이 흥을 더했다. 전국에서 몰려든 이들은 꽃구경하랴 촬영하랴 바쁘기만 하다. 평지와 산자락의 꽃무릇 만개 시기는 사나흘 차이가 있다. 마라난타가 불갑사(佛甲寺)를 지은 덕분에 이 산은 불갑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전에는 산의 형태가 부드러운 것이 어머니를 닮았다고 모악산(母岳山)이라 불렸다. 384년(침류왕1),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는 영광 법성포를 통해 백제에 불교를 전파한다. 일부 매립되긴 했지만 뭍으로 깊숙하게 파고든 법성포는 예로부터 서해안 천혜의 항구로 서역 문물을 받아들이던 관문 역할을 해왔다. 이 법성포를 통해 백제에 처음 전해진 불교는 백제 최초의 사찰, 불갑사로 이어진다. 육십갑자의 으뜸인 '갑(甲)'은 여러모로 의의 깊은 공간임을 알린다. 안타깝게도 현재 불갑사에서는 조선후기 사찰 양식만 살필 수 있다. 화재로 여러 차례 중건했기 때문이다. 불갑사 곳곳에도 꽃무릇이 자리한다. 불갑사 뿐 아니라 고창의 선운사 등 사찰 근처에 꽃무릇이 흔한 건 줄기가 한약재로 쓰였기 때문이다. 보물 제830호인 불갑사 대웅전부터 살펴보자. 대웅전은 서쪽을 향하고 부처는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정문을 열면 부처의 옆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대웅전 용마루 보탑도 놓치지 말자. 모두 남방 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라고 한다. 천왕문 근처에 자리한 성보박물관도 들러보자. 불갑사 구석구석에 대해 살필 수 있다. 불갑사에서 동백골로 향하는 길은 평탄하지만 선명한 붉은 물결 덕분에 꽃불이라도 난 것 마냥 일렁인다. 불갑사 근방에 자리한 참식나무(천연기념물 제112호) 군락지도 보인다. 이곳이 '참식나무의 북한계선'이라고 적혀있다. 여기보다 남부 지방에서 자란다는 뜻이다. 불갑사의 정운이라는 스님이 인도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 그곳 공주가 이별하면서 준 나무 열매가 자란 것이라는 전설을 들려준다. 꽃이나 나무 모두 못 다 이룬 사랑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래서일까. 불갑사에서 동백골을 지나 구수재까지 이어지는 길은 고즈넉하다. 사랑의 전설 때문인지 아직 남아있는 녹음과 붉은 꽃길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수재까지 부담없는(?) 산책을 즐겼다면 이제 정상을 오를 시간이다. 지금껏 걸어온 길과 달리 된비알이 시작된다. 해불암까지는 물을 구할 수 없으니 연실봉(정상)에 오를 생각이라면 물과 간식은 반드시 챙겨가자.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오르막이 가파르다. 해불암에서 동백골로 향하는 길에 화장실이 있으니 기억해두자. 얼마나 걸었을까. 서서히 산 아래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노루목에서 연실봉으로 향하는 나무 데크와 만나면 곧 정상이다. 나무 데크가 끝나는 지점이 바로 정상이다.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며 땀을 식혀본다. 저 아래로 불갑사와 불갑저수지가 보인다. 아쉽게도 꽃무릇의 붉은 물결은 녹음에 가려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산이건만 산을 오를 때에는 함께 했던 꽃무릇이 정상에 오르자 모습을 감춘다. 문득 십 수세기 전 백제땅을 찾은 마라난타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그는 이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불갑산(佛甲山·516m)의 예전 이름은 낮고 부드러운 산이라는 뜻의 모악산(母岳山)이었다.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인도의 마라난타가 이 산에 불갑사를 창건하며 '불갑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상사화만 구경할 계획이라면 주차장~불갑사~동백골만 다녀와도 충분하다. 남녀노소 모두 무리없이 걸을 수 있다. 가장 흔하게 걷는 코스는 이번 상사화 트레킹을 소개한 주차장~불갑사~동백골~해불암~연실봉~구수재~동백골을 지나 원점회귀 하는 총 7.3km 코스다. 보통 서너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진한 꽃무릇 구경 더하자면 약간 더 여유를 갖는 편이 좋다. 동백골~해불암은 가파른 편이니 기억해두자. 해불암 근처에 음용수와 화장실이 있다.불갑산 등산 안내도에서는 6개의 코스를 소개한다. 주차장~수도암~도솔봉~용천봉~용봉~구수재~동백골~불갑사~주차장을 잇는 1코스는 총 5.8km로 정상은 가지 않는다. 2코스는 주차장~불갑사~동백골~해불암~연실봉까지 갔다 다시 해불암을 통해 원점회귀 하는 6.1km의 코스. 가장 짧게 정상을 오를 수 있으니 해불암~연실봉 구간이 가파르다. 가장 대중적인 코스는 주차장~불갑사~동백골~해불암~연실봉~구수재~동백골을 지나 원점회귀 하는 7.3km가량 거리의 3코스다. 4코스는 주차장~불갑사~동백골~해불암~연실봉~노루목~장군봉~투구봉~법성봉~노적봉~덫고개~불갑사~주차장으로 이어지는 6.8km의 길이다. 주차장에서 동백골~구수재~연실봉~장군봉~투구봉~덫고개~주차장으로 돌아오는 5코스는 8.1km다. 주차장~덫고개~노적봉~연실봉~구수재~도솔봉~주자장으로 이어지는 6코스는 불갑산 가장 외곽을 돌아온다. 총 8.2km. 주변 음식점 영광 법성포 굴비를 맛볼 수 있는 굴비한정식이 별미다. 다만 법성포와 영광읍내에 굴비한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몰려있다. 1인은 주문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법성포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백반이나 찌개 등 거하지 않은 식사류를 하는 음식점들이 있다. 문정한정식 굴비한정식 / 영광읍 도동리 / 061-352-5450 일번지식당 굴비한정식 / 법성면 법성리 / 061-356-2268 한성식당 굴비백반 / 백수읍 천마리 / 061-352-7067 동락식당 한정식 / 영광읍 백학리 / 061-351-3363 숙소 불갑사 주변에 마땅한 숙박시설은 많지 않다. 영광읍내에 숙박시설이 몰려있다. 글로리관광호텔 영광읍 옥당로 / 061-351-8700 카리브모텔 영광읍 대하길 / 061-353-1400 신라모텔 영광읍 옥당로 / 061-353-3333 노을연가 백수읍 해안로 / 061-352-0016 골든비치모텔 법성면 법성포로 / 061-356-0101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이소원 취재기자( msommer@naver.com ) ※ 위 정보는 2019년 9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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