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최북단 DMZ의 가을은 순식간에 지난다. 색색의 가을 잎들은 어느 곳보다 빠르게 물들고, 금세 떨어져 나간다. 어느 곳 하나 놓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서로 다른 분위기로 만날 수 있는 접경 지역 3곳의 가을을 소개한다. 고성 금강산 줄기에 자리한 건봉사, 고지대에 발달한 분지인 양구 펀치볼 둘레길, 북에서 내려오는 작은 하천이 만든 연천의 재인폭포까지. 눈으로 만나 마음에 새기는 DMZ 접경 지역의 어느 가을날. 더욱 평온하게 가을을 즐길 수 있을 때까지, 반드시 다시 찾아오는 가을을 기억하자. 가장 먼저 만나보는 가을 풍경은 고성군 거진읍, 최북단에 자리한 건봉사다. 금강산 시작 지점에 있어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신라 법흥왕 7년(서기 520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찰로, 고성군에서 지정한 고성 제1경으로 보존되고 있다. 건봉사는 국내의 수많은 고찰과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의 상흔이 현재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건봉사의 역사를 조금 더 깊게 되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신라 시대에 자장법사의 진신사리 100과 중 일부를 통도사와 월정사, 법흥사, 정암사, 봉정암 등에 나누어 봉안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임진왜란이 일었고, 당시 왜구에 의해 통도사의 사리를 빼앗겼다. 전쟁 후 사명대사는 일본에 건너가 다시 사리를 되찾아 왔지만, 또다시 빼앗기는 것을 염려하여 통도사의 금강계단과 이곳 건봉사에 봉안했다. 한국전쟁 후 건봉사는 민통선 안에 속해 일반인의 출입이 어려웠다. 당시 사리들이 도굴되었었는데, 몇 도굴범들이 사리를 돌려보내 총 12과 중 8과가 회수되었다. 그 이전에는 사리의 존재를 알 수 없었으나, 이 사건으로 건봉사 사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천년 세월 자리를 지켰던 건봉사는 한국전쟁에서 모두 폐허가 되었었다. 이 일대에서 여러 차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며 옛 절터와 사찰 출입문인 불이문만이 남겨졌었다. 현재 볼 수 있는 건봉사의 모습으로 복원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르러서다. 복원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국전쟁 때 불타지 않은 불이문은 1920년에 세워진 것으로 특이하게도 4개의 돌기둥 위에 나무 기둥으로 만들어졌다. 불이문과 옛 건봉사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공터를 지나면 2005년 최종 복원된 능파교를 만난다.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로 건봉사의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구분해 준다. 대웅전 방향 능파교 끝에는 열반에 이르기 위한 10개의 수행단계를 의미하는 십바라밀을 기호화해 음각한 돌기둥 두 개를 볼 수 있다. 능파교를 지나쳐 오르면 사리가 봉인된 적멸보궁과 한국전쟁에서도 불타지 않은 왕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건축물들이 깨끗하다는 생각이 들 뿐, 여느 사찰과 다를 것 없이 전쟁의 흔적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의 시간을 떠올려보면, 새로이 모습을 다져가고 있는 사찰 풍경 위로 아무것도 남지 않고 모두 사라져 버렸던 지난 역사가 겹쳐진다. 그리고 그 곁을 지켜온 자연이 더욱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고성 건봉사]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 033-682-8100 / www.geonbongsa.org 고성군 문화관광 / 033-680-3114 / www.gwgs.go.kr 양구 해안면 일대는 펀치볼 마을이라 불린다. 펀치볼이라는 이름은 한국전쟁 시 외국 종군기자에 의해 처음 불리게 되었다. 해발 1,100m가 넘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형성된 지역의 모양 때문이었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은 한국전쟁에서 무수한 격전지가 된 이유이기도 했었다. 양구 전역의 9개 전투 중 4개의 전투가 해안면 일대에서 일어날 정도였으니, 해안면 주민의 고초는 가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전쟁 후 이곳은 군부대 지역으로 주민의 일상은 철저히 통제되기도 했었다. 현재는 누구나 지역 내 출입이 가능하고 주민 생활은 더욱 발전했지만, 분지지형의 척박한 환경은 여전하다. 도로 위를 달려 마을에 들어서면 그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펀치볼 둘레길을 걸어 곳곳에 마련된 전망대에 올라서야 정말 펀치볼처럼 움푹 파인 마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가을빛 머금은 마을 풍경에 관광객은 그저 탄성만 자아낸다. 펀치볼 둘레길은 말 그대로 펀치볼 마을을 둘러싼 산자락을 걷는 길이다. 한국전쟁의 흔적인 지뢰들이 산 곳곳에 퍼져 있어 한동안 입산이 불가했지만, 지뢰를 제거한 길을 내어 펀치볼의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별도의 참가비는 없지만 1일 2회 사전 예약을 통한 숲길체험지도사와의 동행 탐방만 가능하다. 평화의숲길, 오유밭길, 먼멧재길, 만대벌판길까지 총 4개의 코스로 이뤄졌다. 탐방객과 현지 상황에 따라 걸을 수 있는 코스는 매일 달라진다. 둘레길은 탐방 시간 외에는 여전히 통행이 불가한 곳으로 천혜의 자연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곳곳에 철책과 초소, 벙커, 지뢰지대 등 전쟁의 흔적도 스쳐 지난다. 숲에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자라 다채로운 가을 색을 선보인다. 길을 가다 보면 발아래 아직 지지 않은, 또는 이제 막 피어난 야생화들이 눈에 띈다. 어느새 날은 차가워졌지만, 희망은 함께 피어난다. [DMZ펀치볼둘레길]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해안서화로 23 / 033-481-8565 / www.dmztrail.or.kr 양구문화관광 / 033-480-7204 / www.ygtour.kr 북에서부터 흘러오는 하천이 폭포를 이루어 떨어지는 재인폭포는 한탄강 지질공원에 속한다. 폭포의 높이는 약 18m에 달하며, 폭포 주위의 현무암 주상절리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연천군 지역의 90% 이상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통행에 많은 제한을 받지만, 재인폭포는 접경 지역에서도 일반인 입장 제한이 없어 많은 사람이 사시사철 폭포의 풍경을 만나러 찾는다. 또한 최근에는 재인폭포 공원화 사업이 시작되어 출렁다리와 산책로, 전망대 등을 갖추고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공원화 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에 주차장이나 화장실 등 편의시설 주변이 다소 어수선하다. 하지만 폭포를 둘러보는 길이 새롭게 마련되어 이동이 편리하고 폭포 입구에서 안전모를 제공하는 등 탐방객을 위한 배려가 곳곳에 묻어난다. 성인 둘이 지나기 충분한 넓이의 출렁다리는 무척 튼튼해 보이면서도 출렁다리에 걸맞게 걷는 내내 살짝 흔들리면서 약간의 아찔함을 선사한다. 다리 중간에는 아래가 내다보이는 강화유리로 바닥을 만들어 짜릿함을 더해준다. 출렁다리를 지나면 안전모를 제공하는 간이 안내소가 나오는데, 지질공원해설사가 상주하니 재인폭포에 관한 재미있는 해설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현재 재개방되어 운영 중인 재인폭포 일대에는 2020년 10월 말까지 국화축제가 한창이다. 대중이 밀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운영하지 않지만, 백만 송이 국화로 만들어진 다양한 조형물을 구경하며 사진 촬영하고 산책하기 좋다. 주말에는 연천 지역 특산물과 소규모 체험이 가능한 공간도 운영하니 참고하면 좋다. [재인폭포]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산21 / 연천군청 관광과 031-839-2061 연천문화관광 031-839-2063 https://tour.yeoncheon.go.kr:8443/web/main 벌써 가을 끝자락이다. 올해는 모두에게 조금 더 어려운 한 해였으리라, 떨어지는 낙엽에 마음이 더 쓰리다. 그래도 수천 년 우리 곁을 지켜준 자연은 그렇게 다시 가을을 선보인다.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기보다, 다가올 겨울과 돌아올 봄을 기대해 보는 건 어떨까? 희망은 기억하고 기대하는 자의 몫이니 말이다. 그래! 가을이 지나고 있어, 다행이다. DMZ의 가을이 위로한다. window.ytPlayerList.push({ Id: '707bce5d-99c9-4b36-b2bc-c2aeeed2e0f6', DivId: 'eb970910-dc7f-4e67-801f-f6d3bc76d5c8', VideoId: 'PMfesnh3lpQ', playerVars: {rel:0, playsinline:1,}});
글·사진 김애진(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0년 1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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