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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500리 길(212.3km)을 나그네처럼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어느 강보다 서정적인 섬진강을 따라 천방지축 처녀귀신과 꽃미남 사또의 사랑이 피어오른다. 사랑의 장소는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이 품어낸 악양면 평사리의 최참판댁이다. 드라마 <아랑사또전>에서 최 대감(김용건 분) 댁으로 나오면서 아랑(신민아 분)과 은오(이준기 분)가 알콩달콩 정을 쌓아가는 데 일조한 촬영지다. 아랑과 은오가 기와 담장으로 주왈(연우진 분) 도령을 넘겨보던 연못과 아담한 건물은 최참판댁의 별당이고, 귀신들이 넘어가지 못한 긴 담도 최참판댁의 담장이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은 최근 <아랑사또전>의 인기에 힘입어 아랑의 흔적을 찾는 여행객의 발걸음이 잦다. 이름 아침 <아랑사또전>의 촬영지인 하동군 악양면의 최참판댁을 찾아가는 길. 지리산 형제봉과 구재봉 줄기가 두 팔을 활짝 벌려 포근히 감싸고 있는 들판과 만난다. 안개가 내려앉은 들에는 아침 햇살이 가득하고, 들 한가운데에는 부부송이라 불리는 멋진 소나무 두 그루가 가장 먼저 여행객을 맞는다. 부부송은 오랜 세월을 지켜온 두 그루의 소나무로 악양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산중에서 만난 평야는 품이 넉넉하다. 농부들에게는 풍성한 수확을 안겨주었고, 나그네에게는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을 선물한다. 그리고 만석지기 최 참판을 탄생시켰다. 최 참판은 우리나라 대하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박경리의 《토지》에 등장하는 중심인물이다. 외둔마을을 지나 상평마을 고샅길로 들어서면 앙증맞은 돌담이 정겹게 놓여 있다. 땅만 파면 나오는 것이 돌이기에 그저 되는 대로 올려놓은 게 돌담이고, 그 위로 담쟁이가 힘차게 뻗어가고 있다. 담장 너머엔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이 고개를 떨구지 않고 나무에 매달렸다. 마을길 옆으로 드라마 <토지>를 촬영할 때 조성한 세트장이 있다. 무당의 딸 공월선, 투기심이 강한 강청댁, 재물에 집착하는 임이네 등 서민들이 모여 살던 초가 그대로다. 초가마다 극중 인물의 사진과 이름이 붙어 있고 극중 대사까지 적혀 있어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생생한 느낌이 든다. 돌담길을 거닐며 한적함에 젖어 있노라면 초가 뒤편 모퉁이에서 문득 토지의 등장인물인 최치수, 서희, 김환, 별당 아씨, 조준구, 길상, 공 노인 등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분위기에 감싸인다. 최참판댁은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했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위치다. 악양들의 풍요로움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섬진강의 속살까지 샅샅이 내려다보인다. 집 뒤로는 대숲이 울창하고 형제봉의 든든한 산세가 병풍이 된다. 최참판댁은 <아랑사또전>에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중요한 장소다. 극중 최 대감댁으로 나오는데, 아랑의 억울한 죽음과 이를 파헤치는 은오의 활약이 이곳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때론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가 엉켜 있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랑사또전>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 드라마를 시청한 여행자들만이 기억을 더듬어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어디에도 <아랑사또전>과 최참판댁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안내 문구가 없는 탓이다. 아직도 최참판댁의 기억을 지배하는 것은 1987년부터 3년 동안 방영된 드라마 <토지>다. 소설 《토지》는 박경리 선생이 1969년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한 이래 26년에 걸쳐 전 5부 16권으로 완간된 대하소설의 금자탑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구한말부터 8·15 광복까지. 우리 근대사의 혼란과 그 속에 깃든 인간의 애환을 악양들의 만석지기 최참판댁의 마지막 당주인 최치수와 그의 고명딸 서희의 삶을 따라가며 그려낸다. 최참판댁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처마 밑에 걸린 옥수수와 수수, 벽면의 농기구 등이 옛 시골집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당에서 가장 먼저 발길이 옮겨지는 곳은 사랑채다. 사랑채는 주인 최치수가 머물던 곳이다. 누각이 딸려 있는 ㄱ자 모양의 구조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누각에 올라서면 절로 알게 된다. 난간에 팔을 괴고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만석지기 부자 서넛은 낼 만한 악양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들녘을 감싸며 돌아 흐르는 섬진강 물결이 발아래 펼쳐진다.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설레는 황홀한 풍경이다. 아무래도 소작농을 감시하기에 이보다 좋은 자리는 없을 듯하다. 사랑채는 원래 있던 건물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을 재현한 건물이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일반 주택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구한말에 볼 수 있는 한옥의 모습이다. 서희가 거하던 별당은 운치 있는 연못과 건물의 조화가 뛰어나다. 여인의 공간인 만큼 닫힌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나 연못과 버드나무 등으로 운치를 더해 답답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최참판댁이 부잣집이었음을 짐작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지금도 카랑카랑하고 꼿꼿한 서희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최참판댁 뒤로 이어진 관람로를 따라가면 울창한 대숲이 펼쳐진다. <아랑사또전>에서 자주 보이던 홍련의 초당으로 가는 대숲길처럼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것만 같다. 가벼운 걸음으로 산책하듯 숲길을 따라가면 최참판댁의 사당이 나오고, 그 위로 평사리문학관이 이어진다. 소설 《토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박경리, 신동엽, 문순태 등 문인들의 작품집이 전시되어 있다. 하동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섬진강이고, 섬진강에서 건져 올린 것 중 대표적인 게 재첩이다. 재첩은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곳에서 서식하는데,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첩의 대부분을 섬진강에서 채취한다. 재첩은 보약조개라고 불릴 만큼 영양소가 풍부하다. 《동의보감》에는 눈을 맑게 하고 피로를 줄여주며, 간 기능을 개선하고 황달을 치유하며 기를 돋우는 효과가 있다고 적혀 있다. 재첩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음식이 재첩국이다. 재첩을 껍질째 넣어 푹 우려낸 국물은 뽀얀 색을 띠는데, 특별한 양념 없이 부추를 잘게 썰어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해서 먹는다. 맛은 구수하고 시원하다. 자극적이지 않은 단순함이 전하는 깊은 맛이 입안에 감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재첩국 한 그릇이면 속도 풀리고 몸도 풀린다.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남해고속도로 하동IC → 계천사거리 우회전(19번 국도 하동 방면) → 고남교 → 하동포구공원 → 하동송림 → 평사리삼거리 우회전 → 최참판댁 * 대중교통 서울→하동 : 서울남부터미널(02-521-8550)에서 1일 9회(06:30~22:00) 운행, 4시간 소요 부산→하동 : 부산서부버스터미널(1577-8301)에서 1일 13회(07:00~19:00) 운행, 2시간 20분 소요 2.주변 음식점 하동원조할매재첩식당 : 하동읍 목도리 / 재첩국 / 055-884-1034 여여식당 : 하동읍 광평리 / 재첩국 / 055-884-0080 동흥식당 : 하동읍 광평리 / 재첩국 / 055-883-8333 동백식당 : 화개면 탑리 / 참게탕 / 055-883-2439 섬진강횟집 : 하동읍 화심리 / 참게가리장국 / 055-883-5527 3.숙소 너른마당 : 악양면 등촌리 / 055-884-3888 시골집 : 악양면 입석리 / 010-2873-0692 평사리황토방 : 악양면 정서리 / 055-882-5554 www.pyeongsari.com 글, 사진 : 오주환(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4년 4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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