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마지막 달은 드라마 <미생>으로 들끓었다. 서울역을 지나는 이들에게 촬영지 서울스퀘어가 남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이제는 건물 외벽을 가득 메운 줄리안 오피의 미디어 파사드마저 <미생>처럼 보인다. ‘내가 열심히 했다고? 아니,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드라마 <미생>의 첫 회는 장그래(임시완 분)의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회를 거듭하며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나간다. 미생은 바둑에서 완생할 여지가 남아 있는 상태의 돌이다. 원작은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이다. 실제 모델은 연세세브란스 빌딩에 있는 대우인터내셔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드라마 촬영지는 지척에 있는 서울스퀘어다. <미생>을 연출한 이재문 PD는 “종합상사의 전성기를 몸으로 겪어낸… 한 시대의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건물”이라 말한다. 그럴 만하다. 서울스퀘어의 전신은 대우그룹의 거의 모든 계열사가 입주해 있던 대우빌딩이다. 1977년 지하 2층 지상 23층으로 지어졌다. 5층 건물이 빌딩으로 불리던 시절이다. 서울역과 마주한 건물의 상징성은 물어 무엇 할까. 대우빌딩은 지난 2009년 리모델링을 거쳐 서울스퀘어로 다시 태어났다. <미생>은 서울스퀘어 13층에 원인터내셔널 세트를 꾸며 촬영했다. ‘담배 한 대’가 갖는 다층의 의미가 고스란하던 옥상 역시 서울스퀘어다. 실제로 드라마를 촬영한 23층 옥상에서는 서울의 전경이 아찔하리만치 시원스럽다. 하지만 드라마로 족할 일이다. 서울스퀘어는 3층에서 23층까지 오피스 동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 개방 공간은 지하 2층에서 지상 2층까지다. 주로 카페, 레스토랑 등이 있는 서울스퀘어 몰이다. 하지만 옥상의 아쉬움을 달랠 만한 촬영지는 있다. 서울스퀘어 2층 뒤편 주차장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는 주민참여공원이다. <미생>의 중반부를 지나면 옥상보다 더 빈번하게 등장한다. 특히 안영이(강소라 분)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많다. 엄마와 통화하며 화를 내는 장면, 마 부장이 부당한 명령을 하는 장면, 장백기(강하늘 분)에게 구두를 선물 받는 장면도 공원이다. 안영이만일까. 장그래가 퇴사를 고민하며 엄마와 통화를 하던 곳도, 오 차장이 마지막으로 고 과장과 우정 어린 대화를 나누는 곳도, 게다가 <미생> 마지막회의 시작도 공원이었다. 그때마다 빨갛게 익은 홍시가 인상적이었다. 공원은 남대문교회, 밀레니엄힐튼호텔 사이의 자투리 경사지를 활용했다. 중구에 속하나 서울스퀘어에서 관리한다. 서울스퀘어 5층과 다리로 연결돼 주인공들이 난간에 기대거나 공원을 오가던 장면을 촬영했다. 그리 넓지 않은 터에 호젓한 길이지만 산중의 숲속을 걷는 듯하다. 족히 50년은 넘어 보이는 은행나무 몇 그루도 운치를 더한다. 숨 가쁜 도심 가운데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고요한 쉼터다. 서울스퀘어에는 드라마 촬영과 무관하게 볼 만한 ‘작품’이 여럿 있다. 가장 먼저, 건물 4층부터 23층까지 가로 78m, 세로 99m의 건물 외관에 LED전구 3만 9,336개를 설치한 미디어 파사드다. 거대한 미디어 캔버스 위에 국내외 작가들의 영상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 줄리안 오피의 ‘크라우드(Crowd)’가 인기다. 가볍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미지로 서울스퀘어 새 단장 때 큰 화제를 모았다. 겨울에는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매시 정각에 10분가량 상영한다. 남대문 쪽에는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종이인형처럼 가장자리를 잘라낸 이 작품은 경쾌한 원색이 입체감을 더한다. 지하 계단을 올라와 화단의 둘레를 따라 이어지는데 덩달아 유쾌해진다. 지하 1층 서울스퀘어 몰에는 그의 또 다른 작품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도 한쪽 벽을 가득 채운다. 1층 로비에 자리한 론 아라드의 조형 작품과 1층 뒤편 엘리베이터 앞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사진도 자랑이다. 예술의 감흥을 더 누리고 싶다면 도로 건너 문화역서울284로 걸음을 옮겨도 좋겠다. 문화역서울284는 옛 서울역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이다. 284를 번지수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사적 제284호를 의미한다. 문화공간으로 쓰이기 전부터 문화재로 지정돼 과거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예술 작품과 옛 시간의 자취를 같이 둘러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다만, 오는 1월 31일까지 본관은 다음 전시를 위해 휴관하고 RTO 공연장만 이용이 가능하다. 문화역서울284를 잇는 서울 여행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먼저 고건축의 역사를 돌아보는 여행지로 중림동 약현성당이다. 서소문 방면으로 700~800m 거리라 걸어서 갈 만하다. 중림동 약현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명동성당보다 6년 빠른 1892년에 지어졌다. 중림동 언덕 위에서 고딕 로마네스크 양식의 단아한 품새를 자랑한다. 내부는 십자형의 삼랑식 구조로 성스러움을 더한다. 기도동산이라 불리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따라 걸어보길 권한다. 연말이나 연초에는 마음을 가다듬기에 제격이다. 눈 오는 날 풍경도 아름답다. <미생>의 옥상 장면에 나오는 서울 전경이 잊히지 않을 때는 남산으로 갈 일이다. 남산순환버스 03번이 서울스퀘어 앞을 오간다. 이태원을 거쳐 국립극장 쪽 남산 북측순환로로 진입한다. 순환도로를 따라 언뜻언뜻 들고나는 야경 덕분에 낭만버스로 통한다. 종점에서 내려 남산서울타워까지는 5분 정도 걷는다. 타워 전망대에 오르지 않아도 서울의 야경을 감상하기에 어려움이 없다. 특히 이맘때는 극중 시기와 겹쳐 13회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오 차장이 장그래에게 건넨 ‘더할 나위 없었다’고 적힌 송년 카드는 옥상에서 하늘로 날아올라 서울 하늘 아래 장그래의 지난 시간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에 앞서 오 차장이 신입사원들에게 무심한 듯 건넨 격려 또한 <미생>을 통틀어 가장 명징한 대사이기도 했다. “오늘 하루도 견디느라 수고했어. 내일도 버티고, 모레도 견디고, 계속 계속 살아남으라고.” 겨울 남산에서 보는 서울은 알알이 색색의 사연이다. 그 불빛 아래 무수한 미생들이 하루를 버티며 완생을 꿈꾼다. 때로는 찬바람보다 아련한 현실이 코끝을 찡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다.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므로. 서울스퀘어 주소 : 서울 중구 한강대로 416 문의 : 02-6456-0100 www.seoulsquare.com 문화역서울284 주소 : 서울 중구 통일로 1 문의 : 02-3407-3500 www.seoul284.org 중림동 약현성당 주소 : 서울 중구 청파로 447-1 문의 : 02-362-1891 www.yakhyeon.or.kr 1.주변 음식점 잼배옥 : 설렁탕 / 중구 세종대로9길 68-9 / 02-755-8106 일미장어 : 장어정식 / 용산구 후암로57길 35-15 / 02-777-4380 호수집 : 닭꼬치 / 중구 청파로 445 / 02-392-0695 2.숙소 마루게스트하우스 : 중구 남대문로 25-13 / 02-753-2555 http://www.guesthousemaru.co.kr/ 호텔명동 : 중구 남대문시장길 61 / 02-771-4545 밀레니엄서울힐튼 : 중구 소월로 50 / 02-753-7788 http://www.hilton.co.kr/ 글, 사진 : 박상준(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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