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제가 호재가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제약이 많은 땅 위에 들어섰지만 그로 인해 돋보인다. 공간의 역사성을 간직한 채 제 몸을 낮추며 길을 열었다. 미술관은 길이 되고 광장이 되고 또 예술의 섬이 됐다. 경복궁사거리에서 삼청동 방면으로 접어든다. 경복궁 동편 담장이 나란한 길이다. 맞은편에는 갤러리현대와 금호미술관, 학고재, 국제갤러리 등 미술관이 줄을 잇는다. 갤러리현대가 1975년에 이전해온 후 오랜 시간 우리나라 미술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동네다. 그저 삼청동 초입이 아니라 사간동 갤러리라 따로 불리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여기에 굵직한 예술 공간이 들어섰다. 2013년 11월에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서울관)이다. 과천관과 덕수궁관에 이어 세 번째로 문을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서울관은 현 부지로 결정이 나기 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결정이 난 후에는 쉽지 않은 난제로 여겨졌다. 위치가 가지는 역사성 때문이다. 우선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복궁이 자리했다. 정독도서관에 있던 종친부도 이전 복원했고, 20세기 초에 지어진 옛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도 등록문화재 375호였다. 북촌 입구인 삼청동과 소격동, 사간동 일대의 환경과 기존의 마을 동선도 고려해야 했다. 각종 규제 탓에 수직으로 솟아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서울관의 건축을 맡은 민현준 건축가는 이를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섬이 떠 있는 듯한 군도(群島)형 미술관으로 풀어냈다. 7개 건물이 섬처럼 무리를 이뤄 서울관이라는 전체를 이룬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광장을 조성해 공공성을 높였다. 여기에 담장이 없는 열린 미술관을 지향했다. 섬 사이로 밀려드는 물결처럼 길에서 광장을 지나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거나 공원을 산책하듯 바깥 공간만을 경유해 빠져나간다. 미술관이지만 공원이자 광장이며 길이다. 그 사이에서 시간을 달리한 건물은 나이가 다른 크고 작은 섬으로 들고나며 서울의 역사성을 드러낸다. 또 시선은 낮은 건물로 인해 인왕산 등 주변의 고유한 경관을 품는다. 마법 같은 질주고 유랑이다. 서울관이 호응을 얻은 건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이다. 일반 관람객과 잠재적 관람객인 서울시민이 서울관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다각화했다. 무엇보다 미술관이 스스로 날을 세우지 않으므로 현대미술은 난해하다는 선입견을 깬다. 첫인상은 20세기 초에 지어진 옛 기무사다. 서울관의 전시실과 사무동을 겸하는 공간이다. 1928년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의 외래진찰소로 개원해 1932~3년에 증축했다.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광복 후에는 서울의대 제2부속병원과 육군통합병원으로 쓰이다 1971년부터 기무사가 사용했다. 철근 콘크리트 골격에 벽돌로 치장해 건축사에서도 중요한 건축물이다. 옛 기무사 건물은 서울관의 일부가 되면서 변신했다. 흰 페인트를 일일이 벗겨내 준공 당시의 붉은 벽돌을 되살렸다. 옛 기억을 가진 이들에게는 새로운 건물인 양하지만 또 본래의 모습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곧장 매표소로 향한다. 첫 방문이라면 기무사 쪽 입구를 지나 미술관 마당으로 들어서길 권한다. 옛 기무사 건물과 강의동 건물 사이다. 마당에 앞서서는 먼저 강의동 앞 열린마당에 시선이 쏠린다. 비슬나무 세 그루가 경복궁을 향해 가지를 뻗었다. 비슬나무는 왕실의 뜰에 심었던 상록수다. 강의동 유리에 어린 그림자가 고와 유독 시선을 끈다. 아니나 다를까, 수령 170년의 이들 나무는 서울관과 기무사가 들어서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사의 격변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서울관 이전에 땅의 역사요 증인이다. 서울관이 들어서는 내내 가장 귀하게 다뤄진 나무들이다. 장승처럼 서서 각별한 대접을 받는 이유를 알 법하다. 비슬나무 뒤쪽에 선 강의동은 외장을 테라코타 타일로 치장했다. 연갈색 타일은 단색인 듯하지만 네 가지 색이다. 차분하면서 날리지 않는 색감이 미술관을 이루는 다른 건물의 특질과 조화롭다. 곧장 미술관 마당으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강의동 아래를 지나 종친부 쪽을 향한다. 통로 왼쪽은 벽이 높아 잘 보이지 않지만 지상으로 열려 있는 지하의 전시마당이다. 지하층의 야외 공간으로 지상의 자연광이 지하 전시관으로 스미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 길의 또 다른 의미는 마을의 이동로라는 사실이다. 접한 도로에서 미술관 동쪽의 주택가를 가로지른다. 미술관 운영시간이 끝난 후에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고려했다. 미술관 안의 동네 골목인 셈이다. 서울관의 개방성이 또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종친부는 바로 그 미술관 ‘골목’의 가장자리에서 큰 어른처럼 굽어본다. 종친부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9호로, 왕의 족보와 초상화를 보관하고 왕가와 종친의 일들을 맡아 보던 기관이다. 종친부 일대는 사간원과 규장각 등이 있던 자리로 그 의의가 특별하다. 기무사가 들어서며 정독도서관으로 옮겼던 것을 서울관이 들어서며 제 위치에 복원했다. 서울관은 종친부를 중심에 두고 지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미술관의 중심을 이룬다. 종친부의 위용과 눈을 맞추다 돌아서면 비로소 그 말을 실감한다. 미술관의 제5전시실 지붕에 해당하는 잔디밭으로 풍경에 홀린 듯 걸음을 옮긴다. 옛 기무사의 붉은 벽돌과 강의동의 테라코타 외관 사이에 경복궁 담장과 인왕산 산세가 한 폭의 수묵처럼 걸렸다. 하나의 액자 안에 과거와 현재,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다. 제 몸을 낮출수록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이 새삼스럽다. 발밑으로는 미술관 마당을 가로질러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옛 기무사의 붉은 벽돌과 새로 지어진 미술관이 어떻게 만나는지도 드러난다. 멀뚱히 서서 보지 않아도 된다. 잔디밭에는 김승영의 작품 <따뜻한 의자>가 관람객과 호응한다. 붉은색 보일러식 의자로 사람의 체온과 같은 36.5도다. 그 위에 앉아 몸을 녹이노라면 온기가 기어이 마음 깊은 곳까지 이른다. 미술관의 내부 전시실 풍경도 외관과 다르지 않다. 경직돼 있기보다는 관람객의 선택을 존중한다. 민현준 건축가는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의 로톤다와 비교한다. 구겐하임미술관이 동선을 미리 정의한다면 서울관은 관람객의 동선을 자유로이 열어둔다. 주요 건물이 군도처럼 떠 있듯, 내부의 8개 전시실 역시 공간을 탐험하듯 돌아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로비에서 곧바로 전시실로 이어지지 않는다. 동쪽에는 서울박스의 작품이 살짝 얼굴을 드러낸다. 그 너머 수평 창에 종친부의 흔적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반대편은 기무사 건물의 붉은 벽돌이다. 그 아래를 지나 왼쪽으로 가면 기무사에서 들어오는 미술관 입구다. 통로에는 뮤지엄 숍이 자리했다. 이 또한 미술관 동선의 종점에 자리하는 종례의 틀을 깬다. 전시는 1층 입구에 들어서며 시작된다. 정면에 신현중 작가의 <공화국 수비대>가 살짝 고개를 내민다. 도롱뇽을 닮은 재미난 작품이다. 오른쪽에 제1전시실이 있고 뒤쪽으로 계단을 오르면 2층 제8전시실이다. 제1전시실은 스크린 천장이라 자연광의 양을 조절한다. 공간 전체를 비추는 자연광이 관람객의 피로를 덜어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서울박스를 중심으로 제2전시실에서 제7전시실이 들고난다. 그 사이에 미디어랩, 영화관 등이 있다. 북쪽은 종친부 가는 길의 왼쪽 벽 아래에 해당하는 전시마당과 지상 1층으로 이어지는 전시 공간이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가장 먼저 서울박스와 만난다. 가장 주목받는 전시관이다. 확산광이 들어와 그림자가 없는 빛의 공간이다. 높이 17m에 달하는 전시 공간으로 현재는 서도호 작가의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푸른색 폴리에스테르 천으로 만든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은 서양식 주택 안에 공중에 떠 있는 집 속의 한옥을 연출했다. 서울박스에서 멀티프로젝트홀로 가는 중앙홀에는 최우람의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달의 숨겨진 그림자)>가 공중에 걸렸다. 초승달이나 애벌레를 닮은 작품은 일정 시간마다 숨 쉬는 것처럼 날개를 펴듯 움직인다. 작품을 설치한 천장에는 색동의 오색 패널을 부착했다. 큰 치장 없이 공간의 분할과 동선만이 있는 실내에서 유일한 장식이다. 주변으로 개별 전시실마다 개성 넘치는 작품이 기다린다. 순서대로 돌아볼 필요는 없다. 발길 닿는 대로 물고기가 바다를 유영하듯 자유로이 감상하는 게 제일이다. 설계자의 의도도 그러하다. 가로 15m, 세로 12m의 공간을 채운 에드윈 판 데르 헤이더의 설치 작품 <진화형 스파크 네트워크>나 건축가와 엔지니어, 디자이너가 협업한 필립 비슬리의 <착생식물원> 등도 그 길목에서 우연처럼 마주할 때 더욱 흥미롭다. 전시 관람이 끝난 후에는 다시 밖으로 나와 미술관 주변을 어슬렁거려볼 일이다. 놓치고 지나간 공간의 아름다움을 마저 누려 안는다. 주변 공간과 만나고 헤어지며 만드는 조화로움은 서울관을 맞이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그러다 다시 경복궁이나 삼청동, 소격동이나 북촌한옥마을로 걸음을 옮겨도 좋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군도를 콘셉트로 했지만 그 자신 또한 무수한 섬 가운데 하나다. 주변 공간들과 만나 하나의 완벽한 실체를 이루고 완성한다. 그 품속에 지긋한 서울의 역사를 품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관람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수․토요일은 오후 8시까지),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 서울관 통합권 7,000원, 서울관-과천관 통합권 1만 원, 자이가이스트-시대정신(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 포함) 3,000원, 연결-전개(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 포함) 7,000원, 알레프 프로젝트(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 포함) 5,000원 문의 : 02-3701-9500 www.mmca.go.kr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세종대로 → 광화문삼거리 우회전 → 경복궁사거리 좌회전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대중교통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경복궁역사거리(동십자각)에서 우회전해 300m쯤 가면 된다(도보 약 15분 소요). 또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로 나와 광화문 앞에서 우회전한 다음 첫 번째 경복궁역사거리(동십자각)에서 좌회전하면 된다(도보 약 17분 소요). 2.주변 음식점 플로라(삼청점) : 파스타 / 종로구 삼청로7길 7 / 02-732-7009 삼청동수제비 : 수제비 / 종로구 삼청로 101-1 / 02-735-2965 http://www.sujaebi.kr/index.asp 청수정 : 홍합밥정식 / 종로구 팔판길 46 / 02-738-8288 서울서둘째로잘하는 집 : 단팥죽 / 종로구 삼청로 122-1 / 02-734-5302 3.숙소 우프코리아 게스트하우스 : 종로구 계동길 52-11 / 02-723-4458 http://wwoofkoreaguesthouse.com/ 북촌게스트하우스 : 종로구 계동길 89 / 010-6711-6717 http://www.bukchon72.com/ 락고재 : 종로구 계동길 49-23 / 02-742-3410 http://www.rkj.co.kr/ 라온게스트하우스 : 종로구 사간동 율곡로1길 40-11 / 02-722-2303 http://www.raonhouse34.com/ 글, 사진 : 박상준(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4년 4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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