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에 꽃이 폈다. 눈보다 하얗고, 얼음보다 투명한 눈꽃이 마른가지만 앙상하던 잿빛 산을 온통 은빛으로 물들였다.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햇살에 반짝거리는 눈꽃을 좇아, 꿈길 걷듯 그렇게 태백산을 오른다. 크고 밝은, 민족의 영산 태백산을 만난다. 눈꽃산행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산이 몇 있다. 무주의 덕유산(1614m), 제주의 한라산(1950m) 그리고 태백의 태백산(1567m)이 대표적이다. 그 가운데서도 태백산에 유독 마음이 끌리는 건 해발 1500m가 넘는 고산임에도 큰 힘 들이지 않고 산정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흔한 말로 '가성비'가 좋다는 말씀. 산머리에 쉽게 올라서는 산으로는 곤돌라를 타고 산정 턱밑까지 갈 수 있는 덕유산이 한 수 위지만 스틱 쥐고 등산화 챙겨 신은 입장에서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서울에서 차로 4시간 이상을 부지런히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먼 곳이지만 그래도 바다 건너 제주까지 가야 만날 수 있는 한라산보다는 가까우니, 태백산은 이래저래 눈꽃산행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무엇보다 태백은 매년 눈꽃축제가 열리는 눈의 고장이 아니던가. 태백산을 처음 만나는 이들은 해발 1500m가 넘는 높이에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 1500m를 넘는 산은 앞서 언급한 한라산과 덕유산을 포함해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오대산(1563m) 등 10여 개에 불과하다. 산행 시간도 짧게는 6~7시간에서 길게는 10시간 이상 걸린다. 한데, 태백산은 해발 1567m라는 높이에도 불구하고 산행 시간이 4시간 정도다. 이유는? 산행 들머리인 유일사 주차장이 북한산 백운대(836m)보다 높은 해발 880m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그건 다시 말해 실제 올라야 하는 산의 높이가 700m가 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천제단이 있는 산정까지 산행거리도 4km로 넉넉하다. 산객들이 흔히 말하는 된비알(거친 고개)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는 구조다.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악산 중에 악산으로 꼽히는 치악산(1288m)은 900m 정도의 높이를 3km 내외의 산행으로 올라야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무릎이 가슴에 닿을 것 같은 급경사를 주야장천 올라야 하는 치악산에 비하면 태백산은 말 그대로 뒷산 산책하듯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산이다. 그렇다고 뒷산 가듯 편한 복장으로 올라도 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겨울 산에 오를 때는 무엇이든 넉넉하게 준비하는 게 좋다. 아이젠과 스패츠, 등산스틱은 기본이고 방한에 대한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복장은 레이어링(Layering)이 기본이다. 두꺼운 외투 한 벌보다 보온과 방풍 기능이 있는 얇은 옷 2~3벌을 겹쳐 입는 게 좋다는 얘기다. 장갑도 마찬가지다. 겨울 산행에서는 더워지기 전에 벗고, 추워지기 전에 입고, 배고프기 전에 먹고, 목마르기 전에 마셔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지난 2016년 8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태백산에서는 취사가 불가하니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충분히 담아가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식사는 끓는 물 없이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준비하는 게 좋다. 태백산 산행은 유일사 주차장에서 천제단을 지나 석탄박물관이 있는 당골로 내려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유일사 주차장에서 천제단까지 3.5km를 올라, 천제단에서 당골까지 4km 정도를 내려온다. 산행을 조금 더 길게 즐기고 싶다면 천제단에서 문수봉(1517m)을 거쳐 당골로 내려오면 된다. 문수봉을 거칠 경우 산행 거리는 3km 정도 늘어난다. 오전 10시 30분. 유일사 주차장은 사람 반, 버스 반이다. 눈 소식이 있는 주말이라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태백산 눈꽃산행의 명성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산객을 부린 버스는 대부분 하산 지점인 당골로 이동하기 때문에 주차 공간은 여유가 있지만,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등산로 입구에는 자연스레 긴 줄이 만들어진다. 산객들이 흔히 말하는 줄서서 오르기, 즉 '기차놀이'는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주말이나 휴일에 태백산 눈꽃산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것도 자가 운전으로 태백산을 찾아갈 생각이라면 오전 10시에서 오전 11시 사이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태백산은 일출 2시간 전에서 일몰 2시간 후까지 입산이 가능하니, 조금 서두르거나 시간을 아예 늦춰 산에 드는 게 낫다. 이즈음 시간으로 환산하면 대략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가 입산 가능 시간이다. 유일사 주차장에서 유일사에 이르는 1.5km 구간은 완만한 오르막이다. 길도 널찍하다. 기대했던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며칠 전 내린 눈이 고스란히 남아 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득뽀득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굽이굽이 산허리를 따라 이어지던 길은 유일사 쉼터에서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갑자기 좁아진 등산로 탓에 앞서 걷던 이들의 걸음이 더뎌지면서 금세 긴 줄이 만들어진다. 러시아워에 상습 정체 구간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잠깐의 정체를 지나 유일사 쉼터를 벗어나면 길은 다시 여유를 찾는다. 조금 가파른 길이지만 나무계단이 설치돼 걷기는 되레 편하다. 차곡차곡 걸음을 쌓아 나무계단 끝에 서면 태백산의 명물 주목 군락이 기다린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더니, 튼실한 몸통에서도, 어른 허리보다 굵은 가지에서도 천년의 힘이 느껴진다. 천년 아니, 2천 년, 3천 년도 거뜬히 버텨낼 기세다. 멀리 하얀 눈 이고 앉은 함백산과 겹쳐 보이는 주목의 당당한 모습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주목 군락에서 태백산 최고봉인 장군봉까지는 평지나 다름없는 길을 따라간다. 겨울이 아닌 철쭉이 만발한 봄에 이곳을 지났다면, 분명 천상화원이라는 표현을 썼을 너른 공간을 편한 걸음으로 지나면 활짝 열린 하늘을 배경으로 성벽을 닮은 제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군단이다. 태백산에는 모두 세 개의 제단이 있다. 가장 북쪽에 자리한 장군단을 시작으로 영봉에 천왕단이, 그리고 부쇠봉 가는 길목에 하단이 남쪽을 바라고 자리한다. 이들 세 개의 제단을 아울러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단, 즉 천제단이라 한다. 천왕단에서는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천제가 열린다. 태백산 정상석이 있는 천왕단에서 당골광장과 문수봉 방향으로 길이 갈린다. 당골광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르면 천제를 지낼 때 제수로 사용했던 용정이 솟는 망경사를 지나 당골광장으로 내려올 수 있고, 문수봉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부쇠봉과 문수봉을 거쳐 당골광장으로 내려서게 된다. 유일사 주차장에서 유일사에 이르는 임도 구간이 마음에 걸리거나, 자가운전자의 경우에는 당골광장에서 망경사를 거쳐 천왕단(천제단)에 오른 후 문수봉을 거쳐 다시 당골광장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코스로 태백산을 만나는 것도 괜찮다. 태백산국립공원 -주소 : 강원도 태백시 태백산로 4779 -문의 : 033-550-0000 http://taebaek.knps.or.kr/ 태백산눈축제 2018 -기간 : 2019.01.18 ~ 2019.02.03 -장소 : 태백산국립공원, 황지연못(문화광장), 태백역 등 시내일원 https://korean.visitkorea.or.kr/ 주변 음식점 -태성실비식당 : 한우생고기구이 / 태백시 감천로4 / 033-552-5287 -김서방네닭갈비 : 닭갈비 / 태백시 시장남1길 7-1 / 033-553-6378 숙소 -동아호텔 : 강원 태백시 먹거리길 36 / 033-553-7407 -태백고원자연휴양림 : 태백시 머리골길 153 / 033-582-7440 http://forest.taebaek.go.kr/ 글, 사진 : 정철훈(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12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조회수
한국관광공사에 의해 창작된 은(는) 공공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사진 자료의 경우, 피사체에 대한 명예훼손 및 인격권 침해 등 일반 정서에 반하는 용도의 사용 및 기업 CI,BI로의 이용을 금지하며, 상기 지침을 준수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용자와 제3자간 분쟁에 대해서 한국관광공사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