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밭으로 유명한 전남 보성군에 새로운 명소가 하나 더 추가됐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한 득량역 ‘추억의 거리’가 그 주인공. 역전길을 거닐다 보면 요샛말로 새록새록 ‘추억이 돋는다.’ 그리운 추억이 정차하는 작은 간이역. 하루에 기차가 몇 차례밖에 서지 않는 플랫폼은 한가롭다 못해 평화로운 분위기다. 긴 기다림에 지루해진 사람들을 위한 배려일까. 플랫폼 한 귀퉁이에 나무그네와 풍금이 놓여 있다. 눈을 감고 서 있자니 선생님 풍금 반주에 맞춰 신나게 동요를 따라 부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마치 풍금에서 진짜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그네가 살랑살랑 몸을 흔들어댄다. 기찻길을 따라서는 예쁜 꽃길 산책로가 꾸며져 있다. ‘부부 벚꽃’이라 이름 붙여진 거대한 노거수 두 그루가 사이좋게 자라는 산책길은 잠깐 걷기만 해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그 길을 따라 트레킹을 나설 수도 있다. 역 건물 전면에 '어서 오시오!'라고 크게 써 붙인 현판 너머로 ‘봉숭아 역’이라는 또 다른 작은 현판이 걸려 있다. 역사 입구에는 1987년 손으로 써 붙인 열차 시간표과 운임표, 옛 사진들이 진열되어 득량역의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장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기념사진을 하나쯤 남겨보는 건 어떨까. 오봉산 거북바위가 새겨진 득량역 스탬프도 좋은 기념품이다. 역전을 나서면 1970~80년대 유행했던 롤러장이 환영인사를 건넨다. 지금은 머리가 희끗한 나이가 되었지만 그 시절 풋풋한 청춘남녀였을 한 무리의 중년 여행자들이 반갑다는 듯 안을 들여다본다. 롤러장에 이어 기억 너머에 묻혀 있던 이발소며 다방, 만화방 등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벽면에는 <우뢰매>, <미워도 다시 한 번>, <부시맨> 같은 옛날 영화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빨간 기계식 공중전화도 원래 그곳에 있었다는 양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봇대 사이에 내걸린 ‘휴지 버리지 말기 운동’이라 쓰인 현수막과 연탄집, 석유집, 의상실 등이 나란히 늘어선 득량역 추억의 거리는 이른바 ‘그때 그 시절’로 통하는 타임머신 길이다. 추억의 거리 중간쯤 역전 만화방 옆 샛길로 내려가면 옛 득량국민학교(초등학교) 교실을 재현해놓은 특별한 공간이 숨어 있다. 실제 득량국민학교는 폐교된 지 오래지만 방 한 칸 남짓한 작은 공간을 통해 당시 풍경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오래돼 삐걱거리는 걸상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책상 위에 놓인 주판과 멜로디언에서는 잊고 지낸 옛 시절의 기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국어, 산수, 자연 등이 뒤섞인 시간표는 왜 그리 반갑고 정겨운지. 작은 등짝에 메고 다녔을 가방과 신발주머니의 주인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교실 뒤편에는 아이들의 언니, 오빠가 입었을 손때 묻은 교복이 다소곳하게 걸려 있다. 학교를 나서 다시 길을 걷는다. 어릴 적 엄마 몰래 들락거렸던 만화방에도 몽글몽글 추억이 피어오른다. 지나던 이들도 하나둘 들어와 옛적 만화책들을 뒤적여보며 그 시절 향수에 젖어든다. 친구네 집에 자랑스레 놓여 있던 텔레비전을 부러워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도 몰랐던 대통령 담화문과 게시판을 덮은 각종 광고 문구들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참 많이 흘렀음을 깨닫게 해준다. 추억의 물건들이 가득한 문구점 앞에선 나이 지긋한 어른들도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듯 설레는 표정으로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바쁘다. 차와 음악이 있는 행운다방에서 커피 한 잔도 잊지 말자. 직접 담근 매실차와 계란 동동 쌍화차, 칡차, 솔잎차 등을 판매한다. 향수를 자극하는 DJ 뮤직박스와 무수한 LP판들에 둘러싸여 마시는 커피 한 잔이 기가 막히게 맛나다. 다시 역전으로 돌아가는 길에 득량마을 안내소에 들러 기념 선물도 챙겨본다. 지금은 찾기도 힘든 옛날 물건들이 그득하다. 설날 세뱃돈 받아 사 모으던 종이인형과 종이딱지, 추억의 과자 등이 보물처럼 쌓여 있다. 내친김에 종이 뽑기에도 도전해본다. 번번이 꽝이 나오기 일쑤지만 그때마다 오히려 호쾌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동심을 되돌아보게 해주니 도리어 고맙다고나 할까. 득량역 추억의 거리는 그리 길지 않지만, 그곳에서 얻은 여행의 감동은 오래도록 추억에 남을 것 같다. 득량역 추억의 거리를 둘러본 뒤에는 가까운 강골마을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이곳에서는 아주 먼 옛날의 추억과 조우하게 된다. 황토색 담장길이 아름다운 마을 안에는 문화재급 전통 가옥들이 여러 채 보존되어 있다. 민속자료 제162호로 지정된 열화정(悅話亭)은 19세기 중엽에 지어진 건축물로 전통적인 조경 수법이 잘 표현된 곳으로 꼽힌다. 마을 뒤쪽 깊은 숲 가운데 자리한 열화정은 조선 헌종 때 이진만이 후학을 양성하고자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주변이 한적하고 산수가 수려해 이곳에 있으면 절로 공부할 맛이 날 것 같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옛 사대부집의 건축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이용욱 가옥이 자리한다. 집 앞 큰 연못에 오래된 버드나무가 하늘하늘 가지를 드리운 풍경이 산수화에서 막 튀어나온 풍경처럼 보인다. 황토 담장으로 둘러싸인 옛 가옥은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기둥과 회색 기와지붕이 조화를 이루며 평온한 느낌을 준다. 고택 체험도 가능한 곳으로 하룻밤 묵어가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기분이다. 100년이 넘었어도 한옥이 지닌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이금재 가옥도 지나칠 수 없다. 이 집에 사용된 목재는 소나무로, 바닷물에 충분히 담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뒤틀림 없이 집을 튼튼히 떠받치고 있다. '오래될수록 아름답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집이다. 안채 뒤편에 숨겨진 아담한 후원은 여인들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구조로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득량역 추억의 거리 주소 : 전남 보성군 득량면 역전길 28 문의 : 061-853-7136 주변 음식점 -보성녹차떡갈비 : 보성녹차떡갈비 / 보성군 보성읍 녹차로 1396 / 061-853-0300 -청마루식당 : 녹돈삼겹살, 녹동등갈비 / 보성군 보성읍 중앙로 98-1 / 061-852-8011 숙소 -보성다비치콘도 : 보성군 회천면 충의로 36 / 061-850-1100 -보성관광모텔 : 보성군 보성읍 현충로 6 / 061-853-7474 -골망태펜션 : 보성군 보성읍 노산길 5-56 / 061-852-1966 http://kbs1.kr/h/golmangtae/ 글, 사진 : 정은주(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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