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가을비가 내려앉은 안동 하회마을. 산허리를 감싼 물안개와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 들녘, 600년 세월을 지켜온 느티나무와 만송정 소나무숲이 고즈넉한 풍경을 빚어낸다. 어둠이 내린 낙동강 위로는 붉은 불꽃이 쏟아지며 낮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펼쳐낸다. 낮과 밤, 서로 다른 매력을 품은 안동 하회마을로 힐링 여행을 떠나보자. 안동터미널에서 210번 버스를 타고 30여 분 달려 도착한 하회마을. 낙동강 물길이 S자로 휘감아 흐르며 마을을 감싸 안은 독특한 지형 덕분에 하회(河回)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 위에 연꽃이 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산줄기와 물길이 태극 모양을 이룬다 하여 ‘태극형’으로도 불린다. 예부터 풍수지리적 명당으로 꼽혀 온 이곳은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온 전통 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아온 대표적인 전통 씨족 마을이다. 기와를 얹은 고택과 소박한 초가가 한데 어우러져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마을의 역사를 보여준다. 조선 시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고택과 골목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하회마을이 지켜 온 전통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뒤 무료 셔틀버스로 5분 남짓 이동하면 마을 입구에 닿는다. 산허리를 감싼 운무가 흐린 가을 하늘 아래 운치 있게 내려앉아 있다. 종합안내소에서 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평탄해 걷기에도 부담이 없다. 서두르지 않고 발길을 옮기며 고택과 들녘, 멀리 산자락까지 천천히 눈에 담기 좋은 길이다. 하회마을 서북쪽 끝, 낙동강 백사장과 마을 고택 사이에는 만송정숲이 길게 자리하고 있다. 소나무가 병풍처럼 늘어선 이곳은 마을 안길을 둘러본 뒤 이정표를 따라 찾아가도 좋고, 마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7분쯤 걸어가면 바로 만날 수도 있다. 강변 둑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벚나무 터널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만송정숲이 나타난다. 천연기념물이자 산림청 선정 ‘100대 명품숲’으로 이름을 올린 만송정숲은 조선 선조 때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 선생이 강 건너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완화하고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숲이다. 숲길로 들어서자 촉촉한 가을비에 젖은 솔잎이 바닥 전체에 깔려 마치 붉은 갈색 카펫을 밟는 듯하다. 빗물을 머금은 소나무 껍질은 진한 흑갈색의 묵직한 멋을 뿜어내고, 비안개 사이로 번지는 솔향은 숲 전체를 은은하게 감싼다. 그윽한 솔향과 달리 소나무 줄기들은 저마다 자유롭게 몸을 비틀며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거센 풍파를 맞으며 마을을 지켜야 했던 소나무들은 부용대의 거친 기운에 온몸으로 맞서야 했기에 곧게만 자랄 수 없었나 보다. 거센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버티는 소나무의 모습에서 선비의 기개가 느껴진다. 숲에는 솔잎과 색깔을 맞춘 나무 벤치들이 곳곳에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아 강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휘어진 소나무 줄기 사이로 64m 높이의 기암절벽 부용대가 웅장한 자태로 우뚝 솟아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굵은 솔가지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촘촘한 솔잎이 우산이 되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막아준다. 발밑에는 떨어진 솔방울이 툭하니 인사를 건넨다. 비안개 자욱한 솔숲에서 빗소리와 솔향을 맡는 이 시간, 도심에서는 느끼기 힘든 참 편안한 쉼이 되어준다. 하회마을의 오랜 역사와 함께해온 수령 90~150년의 노송들은 마을 사람들이 꾸준히 심고 가꿔온 작은 소나무들과 나란히 서서 숲의 오랜 생명력을 이어간다. 흐린 하늘 아래 드러난 기암절벽과 고요한 강변 풍경이 어우러져 한층 깊은 가을 정취를 자아낸다. 매년 음력 7월 16일 밤이면 이곳 만송정숲과 강 건너편 부용대 꼭대기를 밧줄로 이어 불꽃을 피우는 하회선유줄불놀이가 펼쳐진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오색 천을 두른 장승과 솟대가 먼저 반긴다. 바닥에 표시된 분홍색 길 안내를 따라가면 돌과 진흙을 켜켜이 쌓은 고샅길이 이어진다. 가장 먼저 들른 노인회관에서는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어르신들이 경쾌한 리듬에 맞춰 다듬이 방망이를 두드리고 있다. 딱딱, 딱딱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정겨운 가운데, 한쪽에서는 맷돌 손잡이를 직접 돌려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골목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하회마을 북촌을 대표하는 고택, 화경당을 만난다. ‘북촌댁’으로도 불리는 이 집은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양반 가옥이다. 화경당이라는 이름에는 조화로 어버이를 섬기고 공경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사랑채와 안채, 별당채, 사당 등을 갖춘 사대부 가옥으로, 한때 ‘북쪽 마을의 99칸 집’으로 불릴 만큼 규모가 컸다. 현재 사람이 거주해 내부를 둘러볼 수는 없지만, 큰사랑채 뒤편 뜰에는 수령 300여 년의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발길을 옮겨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으로 향한다. 류성룡이 세상을 떠난 뒤 문하생과 지역 사람들이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집이다. 경내에는 서애의 저서와 유품을 전시한 영모각이 있으며, 바깥마당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을 기념해 심은 나무도 볼 수 있다. 입구 왼편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밴 통나무 구유가 먼저 눈길을 끈다. 세월이 느껴지는 사랑채 대청마루는 묵직한 윤기를 띠고, 그 위로 조선 후기의 명필 미수 허목이 쓴 ‘충효당(忠孝堂)’ 현판이 걸려 있다. 안뜰에서는 오래된 소나무 가지가 처마 위로 길게 뻗어 나와 고택의 풍경에 깊이를 더한다. 이어 찾은 양진당은 풍산 류씨의 대종택으로, 류종혜 공이 하회마을에 들어와 가장 먼저 터전을 마련한 뒤 지은 집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말 건축양식과 조선중기 건축양식이 섞여 있는 점이 특징이다. 우뚝 솟은 솟을대문과 너른 대청에서 수백 년 종가의 위엄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인근 번남고택에서는 하회마을의 다채로운 풍경과 사계를 담아낸 사진전이 발길을 붙잡는다. 골목을 따라 마을 중심부에 이르자 하회마을의 당산인 삼신당 신목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령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신앙의 중심이 되어 온 나무다. 엄마의 자궁을 닮았다 하여 예로부터 아기를 점지해 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신목이다. 매년 정월대보름에 이곳에서 마을의 평안을 비는 동제를 지낸다고 한다. 굵은 둥치와 사방으로 뻗은 가지로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나무 둘레에 둘러친 새끼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며 매달아 둔 하얀 소원지들이 가득하다. 한쪽에 소원을 쓰는 공간이 마련돼 있으니 원하는 소원을 꼭 적어보자.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안동 하회마을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종가길 2-1 (매표소: 전서로 214-41) 문의: 안동하회마을관리사무소: (054) 854-3669 / 종합안내소: (054) 840-3803 홈페이지: http://www.hahoe.or.kr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부용대 앞 백사장으로 모여든다.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결코 놓칠 수 없는 하회선유줄불놀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회선유줄불놀이는 조선 시대 하회마을 선비들이 배를 띄워 시를 읊고 가무를 즐기던 뱃놀이 선유와 쏟아지는 불꽃을 감상하던 불놀이가 어우러진 풍류로, 45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안동 고유의 전통놀이다. 밤 7시, 안내 방송과 함께 행사장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꺼지고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 사이로 적막이 흐르는 것도 잠시,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바로 부용대에서 강 건너 만송정에 이르는 허공에 매달린 여러 가닥의 동아줄에서 뽕나무 뿌리로 만든 수백 개의 숯봉지가 차례대로 타들어가며 허공을 은은하게 밝히는 줄불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하나, 둘, 셋!” 백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순간, 부용대와 만송정 솔숲을 가로지르는 굵은 밧줄 위에서 불꽃이 번쩍 터져 내리기 시작한다. 촘촘히 매달린 숯봉지에서 불꽃이 공중으로 쏟아져 내리며 밤하늘에 거대한 붉은 불꽃 커튼을 길게 드리운다. 강변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음악이 더해지자 현장은 그야말로 벅찬 감동의 도가니가 된다. 은은하게 매캐한 숯불 냄새가 기분 좋게 피어오른다. 강물 위에는 달걀 껍데기 속에 기름을 묻힌 솜을 넣고 불을 붙인 수백 개의 달걀불이 강물 위에 은은한 빛을 띄우며 유유히 떠내려 온다. 그사이 배 위에서는 흥겨운 가무와 함께 시회가 펼쳐진다. 몽환적이며 아련한 줄불과 강물 위를 흐르는 달걀불, 배 위의 풍류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백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낙화야~!” 우렁찬 함성이 메아리치자 높이 64m의 부용대 벼랑 위에서 불붙은 거대한 솔가지 묶음이 던져진다. 수직으로 낙하한 거대한 불덩이가 절벽 바위에 부딪히며 사방으로 화려한 불꽃 파편을 흩뿌린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관에 탄성이 터져 나온다. 하늘에서는 꽃잎이자 별빛 같은 붉은 불꽃 커튼이 쏟아지고, 절벽에서는 소원을 실은 불덩이가 포효하며 떨어지는 밤. 죽기 전에 꼭 한 번 직접 봐야 할 풍경이라고 감히 적어본다. 행사 문의: 하회마을보존회 054-853-0109, 070-4103-2667 사전예매 및 관람권 문의: 경북봐야지 고객센터 (070-7018-9441 / https://www.gb-voyage.com ) 하회마을의 고즈넉한 풍경과 선유줄불놀이의 감동을 마음에 담았다면, 귀갓길이나 이튿날 일정으로 월영교 인근 안동댐 민속경관지 안에 자리한 안동시립박물관에 들러보길 권한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본관에서는 안동의 유교문화와 민속문화, 불교문화 등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살펴볼 수 있다. 실내 전시실에서는 안동의 전통음식과 복식, 농기구, 안동포 짜기 등 선조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국보 제121호 하회탈 및 병산탈도 만날 수 있으며, 2층에는 전통 가옥의 구조와 서당의 교육 풍경, 선비들의 사랑방과 문방구, 관례와 혼례, 회갑과 상례·제례 등 전통사회의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면 안동댐 건설 당시 수몰 위기에 처했던 전통 가옥들을 옮겨와 조성한 야외민속촌이 넓게 펼쳐진다. 까치구멍집, 초가토담집 등 영남 북부 특유의 전통 가옥 사이로 호젓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가까이 자리한 월영교까지 함께 둘러보며 잔잔한 낙동강 풍경 속에서 여행의 여운을 정리하기에 좋다. 안동시립박물관 https://www.andong.go.kr/museum 경상북도 안동시 민속촌길 13 안동시립박물관 (054) 821-0649 - 2027년 1월 4일(월)까지 내부 리모델링 공사로 휴관 (야외박물관 및 별관 전시실은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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